없어질 행성에서 씁니다

없어질 행성에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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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금은 여기만이 우리의 행성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믿고 싶다”

가없이 팽창하고 불시에 수축하는 가변의 세계에 맞서,
무한정한 믿음과 애정으로 탄생시키는 너와 나만의 우주
독보적 스타일로 자신만의 별세계를 펼쳐 보이는 신진용의 첫번째 시집
2015년 『현대시』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신진용 시인의 첫번째 시집 『없어질 행성에서 씁니다』가 문학동네시인선 242번으로 출간되었다. “세계를 해석하는 힘이 강렬”하며 “공격적이면서도 파워풀”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문단에 힘차게 발을 내디뎠던 시인이 데뷔 십 년 만에 발표하는 이 첫 시집에는 오랫동안 갈고닦아온 폭발적인 에너지가 내포되어 있다. 팽창하는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처럼, 긴 시간 농축된 이야기를 자신만의 거침없는 스타일로 터뜨리는 신진 시인의 등장이라고 일컬어도 좋을 것이다. 신진용의 시 속에서 인류는 생존을 위해 거대 우주선으로 이주하고, 웜홀로 마음과 마음 사이를 순간이동하며, 비인간 존재에게 길러져 살아가거나 이미 죽은 과학자들의 이름으로 새로이 쓰인 평행 세계를 마음껏 탐험한다. 촘촘하게 짜인 거대한 알고리즘 같기도, 정신을 쏙 빼놓는 화려한 만화경 같기도 한 신진용의 시적 시계는 그야말로 미래적이다.

가볼 수 없는 곳에 대해 쓰기로 했다. 심해나 우주, 마음 같은. 다 쓰고 나면 그걸 바탕으로 시를 쓰겠다고 했다. 그러면 전부 가본 것 같은 마음이 될 거라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거짓말이다.

심해에 다녀와서 쓰고 싶다 나는. 가라앉고 또 가라앉아, 빛도 없이. 차갑게 멈춘. 그런 마음을 쓰고 싶어서.
_「심해의 사랑」 부분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끊임없는 탐구”(문학평론가 조대한, 해설)에 골몰하는 신진용이 첫번째로 주목하는 공간은 바로 심해다. 1부 ‘심해는 또다른 우주’는 인간이 아직 파악하지 못한 드넓은 해저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그렇게 도달한 바다 밑바닥에서 화자는 “빛도 없이. 차갑게 멈춘” “천 배로 짓눌린, 일억 개가 넘는 마음”(「심해의 사랑」)을 발견한다. 수압을 견디며 살아가는 심해 생물들처럼, 마음들은 무언가에 짓눌린 채로 “해구의 밑바닥에”(「마음시」) 혹은 “어둡고 느린 아래 하늘에”(「바다라는 하늘」) 방치되어 있다. 이때의 마음은 “천사”를 물속에 가라앉게 할 만큼 밀도가 높고 무거운데, 마음을 버리지 못해 결국 썩어버린 천사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사랑을 “할”(「섬 이야기」) 예정인 천사로 강조된다는 점에서, ‘사랑’은 마음을 붙잡아두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듯하다. 이어 ‘너’와 함께 “해변에 매일 죽어 있는” 것을 목격하곤 “사랑이라고 부르기로”(「바다에 가지 않고도」) 결심하면서, 시적 화자에게 있어서 사랑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태도가 된다.
이어지는 2부 ‘두 사람을 위한 행성’에서는 심해와 유사한 공간으로서 우주가 다뤄진다. 시집의 제목이 속해 있는 시이자 2부를 여는 시 「우주의 사랑」 속 화자는 “아직 살아 있지 않을 그러나 살아 있게 될” 누군가를 향해 편지를 쓰고 있다. 그에 따르면, 행성은 “강한 중력에 이끌린 마음들이 하나로 단단하게 뭉쳐”져 생겨난 집합체이다.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우주에서 “오래될” 예정이며 어쩌면 “없어진” 것과 다름없는 불안정한 행성의 미래를 짊어진 채, 화자는 행성을 이루는 구성 물질인 ‘마음’에 관해 끈질기게 탐구한다. 그러던 그는 당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직면한다.

수십 년도 더 전에, 당신은 물었습니다. 마음이 중력을 발생시킨다면. 마음이 다른 마음을 끌어당겨 결국 하나로 합쳐진다면. 하나로 합쳐진 마음이 더욱 강한 중력을 발생시킨다면.
이 모든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어째서 우리의 마음은 하나가 아닙니까.
_「다시, 우주의 사랑」 부분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본문을 보충하는 각주에 따르면 편지의 수ㆍ발신자가 스위스의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1898~1974)”라는 점이다. 츠비키가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우주에 분명히 존재하는 미지의 물질을 최초로 감지해 1933년 ‘암흑 물질’이라고 명명했다는 사실, 그리고 위 시(편지)에 같은 연도가 적혀 있는 점을 나란히 두고 보면 우주에는 “마음과 마음이 합쳐져 하나의 마음이 될 수 없게 하는” 방해 물질이 존재한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허구와 현실이 절묘하게 교차되는 가운데, ‘마음’은 점차 현실의 구체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통용된다. 예컨대 “블랙홀”은 “스스로의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내부로 함몰되”(「블랙홀」)는 마음이며, “삼십만 년 전, 지금의 유카탄반도 칙술루브 지역에”(「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떨어진 운석의 이름은 ‘마음’이다.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마음 얽힘 현상”(「마음시」)은 ‘양자 얽힘’ 이론을 떠오르게 한다.
이 밖에도 시인은 각주를 통해 수많은 학자와 학계를 시에 연관시켜 실제 사실과 무관한 허구의 맥락을 부여한다. 이는 시집 바깥의 시공간을 평행 우주처럼 공유하는 새로운 시세계를 창조하려는 시도이자, 시집의 전체적인 개연성을 끌어올리는 필수적인 장치이다. 일반적으로 각주는 본문에서 불충분하게 다뤄진 내용을 보충하거나 전문 용어를 설명하는 용도로 쓰이지만, 이 시집에서는 시 안에 현실과의 접점을 부여해 다층적인 해석이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능청스럽고도 정교한 이 상상력은 3부 ‘응답 같은 건 없었다고’에 이르러 ‘신’을 호명해낸다. 과학과 비과학의 기묘한 공존 속에서, 신은 “시 창작 수업”을 이끄는 교수이자(「종교시」) 영화 속 주인공이며(「종교 영화」), 좀비를 연기하는 배우가 되었다가(「좀비 영화」) 신체 일부를 기계화한 ‘기계 좀비’로 끊임없이 변모한다(「기계 좀비의 신」). 시인이 직접 연작시라고 밝힌 「기계 푸들의 신이 있었다」 「신앙시」 「불신앙」에서는 세상을 떠난 반려견으로 암시되기도 한다.

신이었던 것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나는 따로 떨어져 걸었다 아내가 나보다 조금 앞서 갔다

신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아내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고

다른 신을 섬기게 되면 좀 나을 거야
나는 아무도 없는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

그날 우리는 둘 다 빨리 잠들었다 절대 잠들지 못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결국
_「불신앙」 부분

읽는 사람의 신념에 따라 다르게 읽힐 3부의 시편들은 “그러한 가상의 존재를 믿으며 살아가는 일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해설) 헤아려보도록 이끈다.
4부 ‘슬픈우울한절망한사랑하는’에는 마찬가지로 가상의 존재인 ‘코코로’가 등장한다. 동명의 시 「코코로」 일곱 편이 4부 전체를 구성하는 가운데, 주인공인 코코로는 “인간 사냥꾼”이거나 “프로그래밍된 데이터 인격”, 혹은 “고분자무기하이브리드 심장”을 장착한 “비/인격체”로 그려진다. 인간이 동물의 일종으로서 가축화되는 디스토피아, 모든 감정이 망가져 “우울이 분진으로 날리”는 환상의 도시, ‘인간 혁명’에 성공한 인간이 다시 비인간을 지배하게 된 세계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중첩되는 가운데 마음을 향한 끈질긴 탐구가 계속된다. 이 세계는 “깊고 진한 슬픔”을 마약처럼 투약하며, “지독하게아픈마음”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곳이다. 인간에겐 “슬픈우울한불안한절망한 마음뿐”이고, “사랑, 이별, 죽음”은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만큼 강한 위력”을 갖는다. “사랑하는 마음의 사용 연한은” 다른 마음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은 편이나, 절망의 도시에서 인간을 구제해줄 묘약은 오로지 그것뿐인 듯하다.

코코로는 시리도록 고독한 눈길로 인간을 찬찬히 살폈다. 슬픔도 우울도 불안도 절망도, 그 무엇도 없이 평화로웠다.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 있는 것일까. 코코로는 몸을 열고 낡은 사랑을 꺼냈다. 인간을 작동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코코로는 사랑을 조작했다. 인간의 동공이 열리며 인간 안으로 어둠이 쏟아져 들어왔다. 코코로는 다시 한번 사랑을 조작했다. 인간이 작동을 시작했다. 불길이 확 피어올랐다.
_「코코로」 부분

사랑으로 불타오른 인간에게서 새어 나온 “흰 연기가 응결되어 눈처럼 내”리고, 그 눈은 5부 ‘눈 속에 묻혀 있던 것’에서 소복하게 쌓인 특수문자들로 구현된다. 여기서도 ‘마음’은 여전히 중요한 시어로 등장한다. “눈송이는 마음으로 반복”되며, “마음의 결정핵”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다만 “모든 마음은 다르므로 같은 모양의 눈송이는 반복될 수 없”(「❄」)고, 시편들에 두루 등장하는 총 다섯 가지의 모양에 따라(❄, ❅, ❆, ❉, ❋) 갖가지 형태로 내리고 쌓인다.

❅❆❈❉❊❋*✻✼✽✾❃❅❆❈❉❊❋*✻✼✽✾❃❅❆❈❉❊❋*✻✼✽✾❃❅❆❈❉❊❋*✻✼✽✾❃❅❆❈❉❊❋*✻✼✽✾❃❅❆❈❉❊❋*✻✼✽✾❃❅❆❈❉❊❋*✻✼✽✾❃❅❆❈❉❊❋*✻✼✽✾❃❅❆❈❉❊❋*✻✼✽✾❃❅❆❈❉❊❋*✻✼✽✾❃❅❆❈❉❊❋*✻✼✽✾❃❅❆❈❉❊❋*✻✼✽✾❃❅❆❈❉❊❋*✻✼✽✾❃❅❆❈❉❊❋*✻✼✽✾❃❅❆❈❉❊❋*✻✼✽✾❃❅❆❈❉❊❋*✻✼✽✾❃❅❆❈❉❊❋*✻✼✽✾❃❅❆❈❉❊❋*✻✼✽✾❃❅❆❈❉❊❋*✻✼✽✾❃❅❆❈❉❊❋*✻✼✽✾❃❅❆❈❉❊❋*✻✼✽✾❃❅❆❈❉❊❋*✻✼✽✾❃❅❆❈❉❊❋*✻✼✽✾❃
_「❄」 부분

눈밭을 헤매며 화자는 무언가를 “묻는”(「❆」) 행위를 지속하는데, 이는 실제로 눈을 파내는 행동을 뜻하는 동시에 눈발 속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지는 모습으로도 읽힌다. “눈 속에 묻혀 있던 것”(「❆」)의 정체는 “더 쓸 수 없을 때까지 종이 위에 써낸”(「❅」) 어떤 기록이기도 하며, 두 사람이 나누던 “사랑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시 속 화자는 영원히 지켜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대상들을 눈 속에 묻어 보존하고자 하는 듯한데, 시집에 줄곧 내리는 눈과 마찬가지로 이 행위 역시 ‘반복된다’. 이를 “마음이 다할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다짐은 6부 ‘단 한 사람과’의 「함께 쓰는 백 행의 시」로 연결된다. 연인과 번갈아 쓴 백 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한 편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백 편이 넘어가도 끝나지 않을 수 있는” 무언가다. 이렇듯 시인은 가변하는 세상 속에서 오래도록 불변할 무언가를 좇는 일에 천착한다.

어둠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빛이며 “빛은 이 우주에서 불변하는 유일한 것”(「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이다. 1부의 화자가 해저에서 줄곧 찾아 헤맨 빛은 “마음의 빛”(「바다시」)이었다. 심해, 우주, 미래, 가상 세계로 무한하게 뻗어 나가며 확장되는 신진용의 시적 세계는 이처럼 ‘마음’이라는 시어를 통해 한 가지로 꿰어진다. “끝없이 팽창해 나아가는 힘”에서 출발해, “중심으로 더욱 깊게 침잠해 들어가는 힘”으로 마무리되는 이 같은 결말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내부를 탐구하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진”(해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수억 명의 출연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우습고도 애달픈 한 편의 “리얼리티 쇼”(「워프」) 같은 삶을 직시하기 위해서 신진용은 자신만의 우주를 설계하고, 창조자로서 연민어린 시선으로 이 세계를 굽어본다. 수많은 과학적 탐구와 수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쳐 완성된 그의 실험적인 세상에서 우리가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은, 인간이 가진 것 중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가치는 바로 마음뿐이라는 명료한 사실이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시인은 광활한 우주의 극히 작은 일부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너’와 ‘나’의 마음속에서 사랑이라는 낯익은 감정을 건져 올려 ‘우리’라고 재정의한다. 먼 하늘에 빛나는 별 하나에 이름을 붙이듯이, 섬세한 눈길로.

프리츠 츠비키가 제시했던 보이지 않는 물질에 대한 주장을 다시금 떠올려보자. 논문을 발표했을 당시 그의 주장은 잠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가설 중 하나가 되어 사라졌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증거를 찾아 논의를 부활시킨 것은 베라 루빈이라는 후대의 과학자다. (……) 한동안 ‘잃어버린 질량(Missing Mass)’으로 불리던 그 미지의 물질은 ‘암흑 물질’이라는 분명한 이름으로 지칭되며 현대 천문학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고, 현재는 우주의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는 물질로 공공연히 간주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끊임없는 탐구, 과거와의 끈질긴 연결 덕분에 우리의 세계가 다시금 새롭게 구성된 셈이다.
그리고 여기 무형의 마음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본인만의 매혹적인 세계를 축조해낸 한 시인이 있다. 그의 전언이 적힌 편지가 우리에게 온전히 도착하려면 먼 우주의 시공간을 건너와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어쩌면 여러 희귀한 기록들이 망각의 파도에 휩쓸려 지워지고 말지도 모르지만, 묻힌 마음들을 파내고 또 파내다보면, “빛이 없어서 스스로 빛을 내게 된 생물들처럼”(「심해의 사랑」) 자신만의 믿음을 품은 채 살아가다보면,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일도 언젠가 일어난다고 믿는 너와”(「시뮬레이션」)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거푸 반복하다보면, 낯선 풍경의 세계와 얽혀드는 우리의 행성 또한 어느덧 그에 맞춰 아름답게 이지러질지도 모를 일이다. _조대한, 해설에서
저자

신진용

저자:신진용
2015년『현대시』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심해는또다른우주

심해의사랑/마음시/나는나무의가지가모두다른방향으로뻗어있지만결국나무는위를향한다는사실과그나무위에앉아있던수백마리의새떼가이유없이한순간에날아오르는모습과이제나무에는단하나의이파리도남아있지않다는슬픔과짙은비행운과비행운을따라날아가는새떼와실은이모든것이보이지않는천사가의도적으로남긴흔적이라는생각에대해너에게/섬이야기/레인메이커/바다라는하늘/바다라는하늘/바다시/바다에가지않고도

2부두사람만을위한행성

우주의사랑/다시,우주의사랑/블랙홀/우리들마음에빛이있다면/열개의마음/반중력적인/우주에서온색채/미래적인/마음시/시뮬레이션/시뮬레이션/시뮬레이션/스페이스오디세이/워프/성간비행/인공항성/팽창과수축

3부응답같은건없었다고

종교시/종교시/종교영화/좀비영화/기계좀비의신/기계푸들의신이있었다/신앙시/불신앙/마음시/리인카네이션/DIY

4부슬픈우울한불안한절망한사랑하는

코코로/코코로/코코로/코코로/코코로/코코로/코코로

5부눈속에묻혀있던것

*/*/*/*/*

6부단한사람과

함께쓰는백행의시

해설|마음에대한시적증명_조대한(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보이지않는미지의존재에대한굳건한믿음과끊임없는탐구”(문학평론가조대한,해설)에골몰하는신진용이첫번째로주목하는공간은바로심해다.1부‘심해는또다른우주’는인간이아직파악하지못한드넓은해저세계를향해나아간다.그렇게도달한바다밑바닥에서화자는“빛도없이.차갑게멈춘”“천배로짓눌린,일억개가넘는마음”(「심해의사랑」)을발견한다.수압을견디며살아가는심해생물들처럼,마음들은무언가에짓눌린채로“해구의밑바닥에”(「마음시」)혹은“어둡고느린아래하늘에”(「바다라는하늘」)방치되어있다.이때의마음은“천사”를물속에가라앉게할만큼밀도가높고무거운데,마음을버리지못해결국썩어버린천사가다른이들과는달리사랑을“할”(「섬이야기」)예정인천사로강조된다는점에서,‘사랑’은마음을붙잡아두는중요한요소중하나인듯하다.이어‘너’와함께“해변에매일죽어있는”것을목격하곤“사랑이라고부르기로”(「바다에가지않고도」)결심하면서,시적화자에게있어서사랑은죽음을받아들이고포용하는태도가된다.

이어지는2부‘두사람을위한행성’에서는심해와유사한공간으로서우주가다뤄진다.시집의제목이속해있는시이자2부를여는시「우주의사랑」속화자는“아직살아있지않을그러나살아있게될”누군가를향해편지를쓰고있다.그에따르면,행성은“강한중력에이끌린마음들이하나로단단하게뭉쳐”져생겨난집합체이다.팽창과수축을반복하는우주에서“오래될”예정이며어쩌면“없어진”것과다름없는불안정한행성의미래를짊어진채,화자는행성을이루는구성물질인‘마음’에관해끈질기게탐구한다.그러던그는당최해결할수없는문제와직면한다.

수십년도더전에,당신은물었습니다.마음이중력을발생시킨다면.마음이다른마음을끌어당겨결국하나로합쳐진다면.하나로합쳐진마음이더욱강한중력을발생시킨다면.

이모든것이부정할수없는사실이라면.

어째서우리의마음은하나가아닙니까.
_「다시,우주의사랑」부분

여기서주목해야할것은,본문을보충하는각주에따르면편지의수?발신자가스위스의천문학자“프리츠츠비키(1898~1974)”라는점이다.츠비키가눈에는보이지않으나우주에분명히존재하는미지의물질을최초로감지해1933년‘암흑물질’이라고명명했다는사실,그리고위시(편지)에같은연도가적혀있는점을나란히두고보면우주에는“마음과마음이합쳐져하나의마음이될수없게하는”방해물질이존재한다는추론이가능해진다.허구와현실이절묘하게교차되는가운데,‘마음’은점차현실의구체적인대상을지칭하는이름으로통용된다.예컨대“블랙홀”은“스스로의중력을견디지못하고/내부로함몰되”(「블랙홀」)는마음이며,“삼십만년전,지금의유카탄반도칙술루브지역에”(「우리들마음에빛이있다면」)떨어진운석의이름은‘마음’이다.“아무리떨어져있어도서로영향을주고받는”“마음얽힘현상”(「마음시」)은‘양자얽힘’이론을떠오르게한다.

이밖에도시인은각주를통해수많은학자와학계를시에연관시켜실제사실과무관한허구의맥락을부여한다.이는시집바깥의시공간을평행우주처럼공유하는새로운시세계를창조하려는시도이자,시집의전체적인개연성을끌어올리는필수적인장치이다.일반적으로각주는본문에서불충분하게다뤄진내용을보충하거나전문용어를설명하는용도로쓰이지만,이시집에서는시안에현실과의접점을부여해다층적인해석이이루어지도록만드는역할을한다.

능청스럽고도정교한이상상력은3부‘응답같은건없었다고’에이르러‘신’을호명해낸다.과학과비과학의기묘한공존속에서,신은“시창작수업”을이끄는교수이자(「종교시」)영화속주인공이며(「종교영화」),좀비를연기하는배우가되었다가(「좀비영화」)신체일부를기계화한‘기계좀비’로끊임없이변모한다(「기계좀비의신」).시인이직접연작시라고밝힌「기계푸들의신이있었다」「신앙시」「불신앙」에서는세상을떠난반려견으로암시되기도한다.

신이었던것을보내고돌아오는길에아내와나는따로떨어져걸었다아내가나보다조금앞서갔다

신없이어떻게살아야할지모르겠어
아내는나를돌아보며말했고

다른신을섬기게되면좀나을거야
나는아무도없는뒤를돌아보며답했다

그날우리는둘다빨리잠들었다절대잠들지못할것같았는데그렇지는않았다결국
_「불신앙」부분

읽는사람의신념에따라다르게읽힐3부의시편들은“그러한가상의존재를믿으며살아가는일이서로의마음을이해하는데어떤도움을주는지”(해설)헤아려보도록이끈다.

4부‘슬픈우울한절망한사랑하는’에는마찬가지로가상의존재인‘코코로’가등장한다.동명의시「코코로」일곱편이4부전체를구성하는가운데,주인공인코코로는“인간사냥꾼”이거나“프로그래밍된데이터인격”,혹은“고분자무기하이브리드심장”을장착한“비/인격체”로그려진다.인간이동물의일종으로서가축화되는디스토피아,모든감정이망가져“우울이분진으로날리”는환상의도시,‘인간혁명’에성공한인간이다시비인간을지배하게된세계등이동시다발적으로중첩되는가운데마음을향한끈질긴탐구가계속된다.이세계는“깊고진한슬픔”을마약처럼투약하며,“지독하게아픈마음”이폭우처럼쏟아지는곳이다.인간에겐“슬픈우울한불안한절망한마음뿐”이고,“사랑,이별,죽음”은“도시하나를통째로날려버릴만큼강한위력”을갖는다.“사랑하는마음의사용연한은”다른마음들에비해터무니없이짧은편이나,절망의도시에서인간을구제해줄묘약은오로지그것뿐인듯하다.

코코로는시리도록고독한눈길로인간을찬찬히살폈다.슬픔도우울도불안도절망도,그무엇도없이평화로웠다.어떻게인간이이럴수있는것일까.코코로는몸을열고낡은사랑을꺼냈다.인간을작동시키기위한장치였다.코코로는사랑을조작했다.인간의동공이열리며인간안으로어둠이쏟아져들어왔다.코코로는다시한번사랑을조작했다.인간이작동을시작했다.불길이확피어올랐다.
_「코코로」부분

사랑으로불타오른인간에게서새어나온“흰연기가응결되어눈처럼내”리고,그눈은5부‘눈속에묻혀있던것’에서소복하게쌓인특수문자들로구현된다.여기서도‘마음’은여전히중요한시어로등장한다.“눈송이는마음으로반복”되며,“마음의결정핵”을바탕으로형성된다.다만“모든마음은다르므로같은모양의눈송이는반복될수없”(「*」)고,시편들에두루등장하는총다섯가지의모양에따라(*,*,*,*,*)갖가지형태로내리고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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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부분

눈밭을헤매며화자는무언가를“묻는”(「*」)행위를지속하는데,이는실제로눈을파내는행동을뜻하는동시에눈발속에서있는누군가에게질문을던지는모습으로도읽힌다.“눈속에묻혀있던것”(「*」)의정체는“더쓸수없을때까지종이위에써낸”(「*」)어떤기록이기도하며,두사람이나누던“사랑하는마음”(「*」)이기도하다.시속화자는영원히지켜내고싶지만그럴수없는대상들을눈속에묻어보존하고자하는듯한데,시집에줄곧내리는눈과마찬가지로이행위역시‘반복된다’.이를“마음이다할때까지”(「*」)계속하겠다는다짐은6부‘단한사람과’의「함께쓰는백행의시」로연결된다.연인과번갈아쓴백행으로이루어진이시는,“한편으로끝나버릴수도있는”것이지만동시에“백편이넘어가도끝나지않을수있는”무언가다.이렇듯시인은가변하는세상속에서오래도록불변할무언가를좇는일에천착한다.

어둠을밝힐수있는유일한힘은빛이며“빛은이우주에서불변하는유일한것”(「우리들마음에빛이있다면」)이다.1부의화자가해저에서줄곧찾아헤맨빛은“마음의빛”(「바다시」)이었다.심해,우주,미래,가상세계로무한하게뻗어나가며확장되는신진용의시적세계는이처럼‘마음’이라는시어를통해한가지로꿰어진다.“끝없이팽창해나아가는힘”에서출발해,“중심으로더욱깊게침잠해들어가는힘”으로마무리되는이같은결말은우리로하여금“스스로의내부를탐구하는일에는상대적으로소홀해진”(해설)자신을돌아보게만든다.

이상하고도아름다운이세상을이해하기위해서,“수억명의출연자들이함께살아가”는우습고도애달픈한편의“리얼리티쇼”(「워프」)같은삶을직시하기위해서신진용은자신만의우주를설계하고,창조자로서연민어린시선으로이세계를굽어본다.수많은과학적탐구와수번의시뮬레이션을거쳐완성된그의실험적인세상에서우리가도출해낼수있는결론은,인간이가진것중유일하게변하지않는가치는바로마음뿐이라는명료한사실이다.그믿음을바탕으로,시인은광활한우주의극히작은일부분을공유하며살아가는‘너’와‘나’의마음속에서사랑이라는낯익은감정을건져올려‘우리’라고재정의한다.먼하늘에빛나는별하나에이름을붙이듯이,섬세한눈길로.

프리츠츠비키가제시했던보이지않는물질에대한주장을다시금떠올려보자.논문을발표했을당시그의주장은잠시사람들의이목을끌었을뿐얼마지나지않아수많은가설중하나가되어사라졌다.그의주장을뒷받침하는새로운증거를찾아논의를부활시킨것은베라루빈이라는후대의과학자다.(……)한동안‘잃어버린질량(MissingMass)’으로불리던그미지의물질은‘암흑물질’이라는분명한이름으로지칭되며현대천문학의주요관심사로떠올랐고,현재는우주의상당부분을이루고있는물질로공공연히간주되고있다.보이지않는미지의존재에대한굳건한믿음과끊임없는탐구,과거와의끈질긴연결덕분에우리의세계가다시금새롭게구성된셈이다.

그리고여기무형의마음에대한믿음을기반으로본인만의매혹적인세계를축조해낸한시인이있다.그의전언이적힌편지가우리에게온전히도착하려면먼우주의시공간을건너와야할것이고,그과정에서어쩌면여러희귀한기록들이망각의파도에휩쓸려지워지고말지도모르지만,묻힌마음들을파내고또파내다보면,“빛이없어서스스로빛을내게된생물들처럼”(「심해의사랑」)자신만의믿음을품은채살아가다보면,“일어날수없을것만같은일도언젠가일어난다고믿는너와”(「시뮬레이션」)끝나지않을이야기를거푸반복하다보면,낯선풍경의세계와얽혀드는우리의행성또한어느덧그에맞춰아름답게이지러질지도모를일이다._조대한,해설에서

신진용시인과의미니인터뷰

1.등단이후출간되는첫시집입니다.그간미처하지못했던,혹은하고싶었던이야기가많으셨을듯한데요.이번시집을엮는소회가어떠한지궁금합니다.

‘하고싶은이야기’들중에서‘할수있는이야기’를하나씩골라담다보니여기까지오게되었습니다.지난몇년간시를쓰면서그두가지가점점일치되어가는것같다는느낌을받았는데,재밌었지만어쩐지조금슬프기도한경험이었습니다.결과적으로는하고싶은/할수있는단하나의이야기만이남았고,그하나의이야기를조금길게늘여썼을뿐이라는생각도듭니다.

2.부별로테마가또렷하게나뉘고있어요.심해와우주,그리고미래에이르기까지다양한세계관이등장하는가운데그중심을꿰뚫는시어가있다면‘마음’인것같습니다.궁극적으로어떤마음에관해쓰고싶으셨나요?

처음에는‘모든마음’에대해쓰고싶었지만,쓰다보니‘어떤마음’에대해서만쓸수있었고,결국마지막까지남은것은특정한마음이아닌‘마음에대한태도’였습니다.슬픈마음이든,기쁜마음이든,사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