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교의날카로운펜끝은텍스트뿐아니라자기자신까지겨누고있기에,그어떤비평에서도발견할수없는진솔한대면-대화의자리를만들어낸다.‘제정신병자들’이라는제목역시그러한맥락과차원에서지어졌다.자신의처지를자조(自嘲)하는데서시작해자기를되돌아보는자조(自照)로,그리하여자기자신을축조하는기예로서의자조(自造)로발돋움하는일.이는수치심이곧자부심이되는시대정신의표상이자그자체로문학의요체를지시하는단어이기도하다.“신기오른무당이줄줄이떠오르”게하는오은교만의독보적인감각으로읽어낸한국문학은저자와독자의“난잡한욕망을읽어내면서도그뒤틀림이세상의규범과정상성의형식을어떻게찌르고틈새를내는지정확하게짚어내기에”(강지희)야무지게화끈하다.이거침없는첫책을‘정신없이’,“모쪼록재미있게읽어주시길바란다”(‘책머리에’).
모두가나름의제정신을차리기위해노력하며살아간다.하지만제정신으로는못버티는나날들이반드시온다.정동적으로온다.그파라노이아는제정신이라는상태가임시적임을깨닫게하고그허구적정상성과항구성을점검하게만든다.정신병자라는말의낙인을염두에두고‘제정신병자’라는조어를사용하다보니수치심과자부심이동시에들었다.(…)시대와형편에따라한생명의우연이자개인의운명이되는,지극히가변적인‘제정신’은어떤대상이아직좋고나쁠수있다는예감의윤리뿐만아니라영영옳고그를수있다는판단의도덕을낳아특정행동과감정을강제하고억압하며동시에다른존재가될기회의쾌락과틈을부산물처럼생성한다.그잠깐을조금더강렬하고선명하게현시하고알아채는일에삶의기예로서의문학이있다.문학은과연제정신병자들의놀이터다._‘책머리에’에서
“의심을포기할순없지만,의심만으로예술을할순없다.”
자조(自嘲)에서자조(自照)로,그리하여자조(自造)로나아가는우리-제정신병자들
『제정신병자들』은총5부로구성되었다.
1부‘도전하는섹슈얼리티’에서는대규모성범죄와여성주의정신의확산이후친밀성의경제에대한논의를모았다.포문을여는「오염과친밀성의경계에서」는동시대문학에서의기이한여성섹슈얼리티재현을버르집는글이다.‘여성서사’라는이름아래부정되고누락되어매끈하게마감되는‘톤폴리싱’행위는“단지공허할뿐아니라섹슈얼리티를프로파일링하며분할정치를수행하는문화적안보체제를수립”(50쪽)하는것은아닌지,“‘탈성애’가페미니즘서사의가장유력한마스터플롯이되는것은지당한일”(23쪽)인지심문한다.각별한애정이묻어나는이희주론「죽을만큼사랑해,죽일만큼사랑해」역시주목을요한다.이희주소설속급진적상상력과“예술의이름으로정치적안전지대에머무르려는욕망을가뿐히뛰어넘는”(96~97쪽)여성캐릭터를통해오늘날은물론다가올정동역시우리는예감할수있을것이다.
2부‘로맨스비틀기와스릴러재장전’에서는후일담,스릴러,로맨스등의여성주의서사를분석하며새로운문법이발명되고있는지점들에주목했다.젠더화된앎과무지의차이에서오는권력관계의기울기를가장잘보여주는스릴러장르를통해편혜영,강화길로이어지는한국문학의새로운지형도를꼼꼼하게그려냈다.더불어은희경의소설을총망라하며가닿는결구“여성이홀로서기위해자처한고독을고립화하는세계에서,여성이새로운삶을살아가기위해마주한불안을공포화하는세계에서,여성은오직다른여성들과의연대를통해서만나아갈수있다”(「여성,타인에게가는길」,141~142쪽)에서는오은교가꿈꾸는‘파라노이아너머’를상상하는단초를엿볼수있기에더욱값지다.
내가「음복」의독서를일차적으로완료한날은이소설이실린잡지를읽었던날이아니라위의독후감을들은순간인것같다.정적속에서나는기이하고도중층적인전율에휩싸였다.첫번째전율은쓴웃음이나는허탈함이었다.소설속화자의남편이아무것도모르듯이남성독자또한아무것도모른다면이소설은무슨소용이며나아가문학의보편적호소력이란것은대체무엇이란말인가하는의문이곧장솟구쳤다.두번째전율은은밀한쾌락이었다.내가어떤작품들을영영소화할수없는신체를가졌듯이나에게도내가더잘해득할수있는동시대문학을가지게되었다는기쁨이조용히일렁였다.여성의경험이잘이해받지못하는상황에서늘그렇듯그날나는약간의초조함과더불어침착하게‘해명’하고싶다는욕구가발생하고있음을실시간으로느끼며속으로말을고르고있었는데,거기에는절대로기각할수없는모종의만족감이분명히있었다.나는그의심스러운만족감을잠시손에쥐어보기로했는데,문학텍스트를‘연구’하는입장에서참으로드문순간중에하나였다._「사람들이던진돌로쌓은여자의성채」(192~193쪽)
3부‘동아시아의소녀들’에는성장소설을중심으로동시대한국문학속젠더테크놀로지를보여주는작품과그비평을모았다.「‘혐한’과‘노재팬운동’속일본여성을읽는일」에서는박민정,배삼식의텍스트를깊이읽어내며신극우화정세속동아시아여성혐오의역사와양상을탐문한다.안담과장진영의소설을다룬「여자탈락여자문학」역시오은교의장기가짧지만강렬하게발현되는글이다.“성적관계에서동의를다루는언어라고는‘매우동참’아니면‘강간’뿐일때,우리가지금껏거쳐온모든혼란한성적관계들을명명할수없다.동의했다고말하기엔심란하고,강간이었다고말하면더심란한,허다했던그런일들”(240쪽)의결을세심하게더듬어여성섹슈얼리티의복잡성을복잡한그대로음미하게끔우리를멈춰세운다.
4부‘독자의광장과감염의독서’에서는그간한국문학의타자들이담론의중심에서게된풍경을조망했다.김보영의소설과그의창작내력을집요하게분석한글「독자오더메이드소설,국산SF문학이걸어온어느길」을통해제시한“문화계에여성서사에대한요청이마치천지개벽미증유현상인것처럼말하는것은오랫동안여성들이구축해왔던아카이브를존중하지않는일이”며“여성들이갑자기계몽된것이아니라여성들은그저좋아했던걸계속좋아하고있는데세상의시각이달라진것뿐”(300쪽)이라는비판은재삼곱씹어볼필요가있다.더불어「여성들의잡스러운독서사,불투명한문서고와환상의그림자들」속“페미니즘이시대정신으로갈음되는상황속에서우리는여성주의서사들에대한은근하고도집요한백래시뿐만아니라기묘하리만치후하고성긴우대들,다소막연한형태의환대들또한지속적으로의심해야할것이며이에페미니즘비평또한끊임없이더섬세해져야할것”(334쪽)이라는사유역시이견의여지가없는정확한분석이다.
미투운동이후의시대를통과해온이라면누구나파라노이아에대해서할말이있을것이다.끝도없이발견되는체계적불의,눈앞에서펼쳐지는손절매의수싸움,해석언어와처리능력의미비함,의심과불안으로찢어지는관계……정말많은것을배우며공황을얻었다.
체계적이고조직적인망상을의미하는파라노이아는그럴듯한근거를갖추고있다는점에서합리적이지만현저한현실왜곡이발생한다는점에서비합리적인,상당히모순적인감수성이다.그렇기에파라노이아는기성의방식으로는표현할수없는여성의고통을재현하는유력한미학으로채택되어왔고미투운동은이개인의파라노이아를공동체의파라노이아로확산하여‘비정상적사고’라여겨졌던것이얼마나보편적인것인지를증명하는계기가되었다.그러나지난시간은파라노이아만먹고사는일이몸에이롭지못하다는것또한깨치게해주었다._「파라노이아비평을넘어」(408~409쪽)
5부‘취약한신체,불구의사랑’에서는페미니즘리부트를통과하며느낀불안과파라노이아를이해해보고자하는취지를담은글들을모았다.특히대미를장식하는「파라노이아비평을넘어」는저자의곡진한목소리가고스란히담긴글이자작금의문학관을집약적으로풀어낸글로꼭일독을권한다.“불안함,외로움,우울증,공황장애,갈수록가난해지는조건과사나워지는성격들은당연히구조적문제지만,동시에그것이전부가아니라고주장하는작고용맹한이야기들을더많이주목하고싶다”는바람,“두려움이단지소문이아닌실체가되더라도이윽고그것을디디고사는일도가능하다는”(424~425쪽)용기에귀기울이지않을도리가없다.
파라노이아에서시작하여파라노이아너머를상상하는한비범한평론가의탄생을함께지켜봐주시기를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