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불변 유리병 아이 (이영은 시집)

영원불변 유리병 아이 (이영은 시집)

$12.00
Description
“너를 안고 쓰다듬으며
내일이 오지 않길 바랐던 것”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의 잔해 속해서
끝끝내 길어올리는 차갑고 연약한 사랑의 인사
이영은 시인의 첫 시집 『영원불변 유리병 아이』를 문학동네 시인선 243번으로 펴낸다. 202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이영은 시인은 “섬세하고 치밀한 문장,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언어 전개, 음영이 짙은 시선, 장면의 전환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잘 어우러진 화면 구성”(이수명, 시인)으로 완성도 높은 시 세계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등단 이후 치열한 퇴고 끝에 완성한 이번 시집은 제목이 암시하듯 투명하고도 위태로운 감정의 유리병 속에 고요히 보관된 사랑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준다. 동시에 그 유리병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믿었던 사랑의 상징이자, 깨지기 쉬운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세상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그리고 예견된 미래」), 즉 세계는 멸망을 향해 가리라는 인식을 전제로 하여 시편들의 순서를 섬세하게 구성했다. 그러면서도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시인은 무너져가는 폐허 속에서도 과거의 사랑이 남긴 잔해를 묵묵히 수집하고, 다음 사랑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아무리 강렬한 사랑도 이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는 일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랑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는 시인의 첫 시집을 기쁜 마음으로 소개한다.
저자

이영은

저자:이영은
2022년문학동네신인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손을맞잡고노래를부르다구멍으로천천히뛰어내리는
소극장
그리고예견된미래
인지
큐브
무영
몬더그린
조도
사인용가정
병동일지
그때
미래의일들

2부남에게그림자를많이밟히면빨리죽어버린대
너와나의고양이의대화법
여름의끝
서향
자살중독
엔트로피
인간생태보고서
멈춰버린그러나지속될
작은신은야옹하고울지
비(非)여름
폴리이미드필름
드리밍북
여학생
새로운일
미래의미래
눈,눈,눈
택시드라이버

3부개는오직개의마음만을가질것
구의일기
구의일기
생동
올바른생활
최근에쓴사랑시는오월달
사랑하는사람을미워하는것만큼쉬운일은없다지만사랑할만한구석도잘알았으니까
슬픔을키우는사람
여름을부탁해
서은재
우리의책
형상기억박물관
인간은새에서부터시작됐다
<h1>
영원불변유리병여름아이
실내수영
변수의힘

4부종말이성큼성큼우리의앞으로다가오고있다는게좋아서
성당
전개
해시태그동시대성
ErrorCode:224003
동거
그많던()누가다먹었을까
눈썹털냄새
신드롬
메리홀리데이
완벽한완공식
목조건물
나무를다음해
기계적인사랑시
윈터타임
컨테이너

청색누드
ThelastthingIsaidtoyouisdon’tleavemehere

해설_고장난사랑기계
하혁진(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오래오래문을걸어잠그고있으면.

영사기돌아가는소리가들렸다.그건아마도냉장고흐르는소리.쌓아둔필름이하나둘소진되는소리.

침대맡에웅크리고앉았다.한낮의개처럼.며칠째열리지않는현관을바라보면서.아무도초대한적없으니아무도찾아오지않았다.

손발이점차투명해졌다.없는사람이되어갔다.

낡은브라운관에서는남극에관한다큐멘터리가방영되고있었다.녹아내리는빙하.빙하를관통한커다란구멍.
_「그리고예견된미래」부분

『영원불변유리병아이』에는이름붙일수없는감정들과질서를부여받지못한파편적인삶의단면들을시적인언어로치열하게직조해낸결과물이담겨있다.제목에서부터느껴지는긴장,즉‘영원불변’이라는절대성과‘유리병’이라는고립성,그리고‘아이’라는취약성은이시집을관통하는핵심적인인식의틀이다.사랑과상실,존재와멸망이라는대립적이고근원적인질문들은각시편에서끊임없이교차한다.특히‘멸망’에대한감각은이영은시의출발점이다.이시집은종말을향해다가가는시간속에서화자개인의감정과일상을꼼꼼히탐색하고기록한다.종말은한개인의내면에서벌어지는작은붕괴이기도하고,세상이무너져내리는것이기도하다.시인은이멸망의시공간속에서도무력하게주저앉지않고,부서진조각들을응시하며감정의파편들을수집한다.그중에서도가장중요하게다뤄지는감정은사랑이다.이영은의시에서사랑은기능이나효용의문제가아니다.사랑은시적주체를‘나’로존재하게하는하나의사건이다.사랑없는‘나’는“손발이점차투명해”지고“없는사람이되어”(「그리고예견된미래」)간다.사랑없이는세계조차무의미하다는,철저하고도근원적인신념이시인의언어를지탱하고있는것이다.사랑은주체를무너뜨릴수도있는파괴적인믿음이며,사랑없이는‘나’도존재할수없다.그진실의자리를향해이영은의시적주체는조심스럽게,그러나결단있게내딛는다.

(…)손을

맞잡기만해도사람을사랑할수있었는데사람들은겨우손을맞잡는일따위로사람을사랑해주지않고.결국

모든사랑을실패했다.
실패하고또실패했다.

아무리실패해도태초에나는그렇게빚어졌기때문에
이미실패한일을계속해서반복했다.서로를안아도심장이맞닿지않는상대가많았고.(…)
_「인간생태보고서」부분

그렇다고『영원불변유리병아이』가단순히낭만적인사랑을말하는시집은아니다.오히려시인은사랑이라는감정이정해진서사나결말로환원될수없음을직시한다.사랑은늘어긋나며,때로는너무늦게찾아오거나아무도기다리지않은때불쑥나타난다.이영은의시는그와같은예측불가능한사랑의순간을세심하게포착하여그것을마치한장의사진처럼고요하고차갑게정지시킨다.그리고독자는그정지된순간을오래응시하게된다.그렇기에이시집을읽는일은사랑이끝난자리에서다시발화하는사랑의언어를만나는일이다.시인은말한다.“모든사랑을실패했다.실패하고또실패했다”(「인간생태보고서」).그러나바로그렇기때문에,우리는다시사랑할수있다.이렇듯이영은의첫시집은사랑이후의시간을다시사랑으로채워나가려는치열하고조용한선언으로읽힌다.
이영은의시는끝내무너지고,깨지고,흩어질운명에놓인감정들에대해말하면서도,그모든것들이결코무의미하지않음을증명한다.시인은절망과고통의연속속에서도쉽게허무로흐르지않고,감정을뚫고나가는언어의길을끝까지포기하지않으며끝없이“사랑을했다고설정”(「새로운일」)한다.그길끝에놓인것은다음사랑,다음존재,다음‘나’일것이다.그래서이시집은끝난사랑의이야기이자아직도착하지않은사랑을향한예감의기록이다.때문에이영은의시적주체는사랑이실패로끝나고,이별의그림자가사라지지않더라도손을내민다.그손을붙잡을‘너’의손가락이“부러져있”(「폴리이미드필름」)어도,그손을잡을것이다.그리고그손마디사이로“외출했던희망이/다리를절뚝거리며돌아오”(「조도」)는모습을,그비이성적인믿음을시어로붙잡는다.당신이아직사랑을잃지않았다면,혹은사랑이이미끝났다고믿는다면,이시집이당신에게다가갈것이다.우리가읽는것은,실패로점철된사랑의언어이다.하지만그언어속에서‘나’는다시태어난다.사랑앞에무릎꿇는대신,사랑과함께존재하기로선택한『영원불변유리병아이』는그렇게당신을사랑과멸망의세계로초대한다.

사랑해

너의몇번째사랑이가장큰크기일까.그것만은알수없었지만

거실에서일어나남향으로난큰창을함께닫을때,우리의팔뚝으로내려앉던빛이나그빛이남기고간잔상들을되짚어보면서
그렇게지내고싶었어.이런말을몰래읊조리기도했다.

등너머에서유리깨지는소리가들렸다.

모호한마음이자라고있다고믿었다.
_「비(非)여름」부분

물론이사랑은어떤것에도도달하지못한다.그럼에도불구하고“다타버린잿더미같은말”(「눈썹털냄새」)은결코무의미하지않다.전부타버린탓에오히려“영원히타오르지않을어떤말”(「우리의책」)이된사랑의기록은,한없이부유함으로써사랑의의미가고정되는것을끝없이지연시킨다.이렇듯완고한운명과맞서며“내앞으로도래할미래가두렵지않았다”(「목조건물」)고말하는이영은의시적주체는,이제야비로소“발목이부러”(「폴리이미드필름」)진사랑의춤을춘다.그리고그렇게시집을덮으면저멀리‘나’와비슷한모습의‘너’가“발목을접질린채로”(「ThelastthingIsaidtoyouisdon’tleavemehere」)다가와손을내민다.이어질장면을상상하는것은어렵지않다.‘나’는또한번그손을잡을것이다.절룩거리는사랑의춤을출것이다.그춤은아름다운만큼위태롭고,위태로운만큼아름다울것이다.
_하혁진,해설에서

이영은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영원불변유리병아이』로독자들과첫인사를나누게되셨어요.이번시집을어떤마음으로준비하셨는지궁금해요.

독자분들이시집의마지막장까지서서히읽어나가는과정에서세계의끝을향해가는기분이들었으면좋겠다고생각하며엮었습니다.그외에는‘나를아는모든사람이이시집을읽고내가싫어지면어떡하지.나를모르는사람들마저도나를싫어하게되면어떡하지’하는이상한걱정과불안들뿐이었어요.물성을획득해누군가의손안에서한페이지씩넘어갈시집을생각하고있다보면왜인지아주맹렬한무서움이느껴집니다.

Q2.시집의제목이‘영원불변유리병아이’입니다.제목을통해독자들에게어떤인상을주고싶으셨는지,어떻게시집의제목을결정하게되셨는지궁금해요.

무언가를결정하는데에전혀소질이없어요.제목역시길게고민했지만좋은아이디어가떠오르지않았고,결국편집자선생님께조언을구했는데‘영원불변유리병아이’라는제목이어떤지물어보시더라구요.생각해본적없는제목이었지만오랫동안생각해온제목인것같기도했습니다.그감각이좋았어요.혼자남겨진모습을떠올렸습니다.유리병처럼깨지기쉬운공간이지만아이러니하게도깨지지않고영원히혼자남아있을수있는장소에서,오래오래추위에떨며혼자남겨진모습을요.

Q3.시집의화자들이적극적으로사랑을행하면서동시에멸망을바라는모습들이눈에띄었어요.사랑을하면서도멸망을그리는이유는무엇일까요?

저는이별이세계의종말이나멸망과같다고생각해요.그리고멸망은인간이아무리노력해도피할수없는결말이라고생각합니다.사실피할수없는결말이라기보다는피할수없이찾아오기를바라고있습니다.이지긋지긋한세상이한꺼번에끝이나버렸으면좋겠다고요.정말완벽한끝으로요.하지만이별은되도록피하고싶습니다.연인에게종종장난스레하는말이있는데,이별보다사별을원한다는말입니다.이런마음들을이렇게정리할수있을것같아요.이별은피할수없이찾아올것이고,그러니차라리세상이멸망해버렸으면좋겠다.그러면사랑이끝난게아니라세상이끝난거니까.

Q4.이번시집은봄부터겨울까지폭넓은계절을아우르고있어요.그럼에도빙하나눈처럼차가운이미지들이유독눈에많이띄는것같습니다.차가운이미지를시에적극적으로담은이유가있으실지궁금해요.

스스로는여름의이미지에천착해있다고생각했는데원고를엮으면서차가운이미지를많이사용했다는사실을깨달았어요.왜였을까요?지금생각해보면추운겨울을가장익숙하게느끼는것같기도합니다.집으로돌아가는길,얼굴에찬공기가닿는조용한골목을안전하다고느낄때도있구요.머플러에고개를묻고눈을밟으며조심조심걷고싶어요.얼어붙은것은단단하지만쉽게녹고쉽게부서지기도한다는것이슬픔을불러일으키기도하네요.

Q5.마지막으로『영원불변유리병아이』를만날독자분들께인사한말씀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이영은입니다.독자분들께첫시집으로인사를드릴수있어기쁘고무서워요.저는이상하게유독마음이기우는시한편만만나도시집읽기에성공했다고생각하는데요.『영원불변유리병아이』를읽으며마음이기울어지는시를한편이라도찾으실수있기를바라겠습니다.그리고꼭모든사랑을이루실수있기를요.

시인의말

어차피다무너지고겨우끝에도달하면다시시작되는그래서영영끝을알수없는사랑만남겠지

2025년10월
이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