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의 우리는 (정선임 소설)

그 밤의 우리는 (정선임 소설)

$17.00
Description
“이 단단한 소설들이야말로 용감한 사랑의 증거임을 믿는다.”_정이현(소설가)

2023 젊은작가상이 지목한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운 시선,
정선임이 그려내는 ‘오늘, 우리, 이 도시’ 이야기
2018년 단편소설 「귓속말」로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2023년 「요카타」로 제14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정선임의 두번째 소설집 『그 밤의 우리는』이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에서 일상의 저편으로 밀려난 존재들의 이름을 힘있게 호명해냈던 작가는 이번 책을 통해 그들이 각자 삶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모습을 세밀하고 구체적인 장면으로 그려낸다. 젊은작가상 수상 당시 “일생에 대해, 역사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소설가 강화길)는 작품이라는 평을 얻었듯, 정선임의 소설은 한 개인의 일상이라는 작은 실마리를 통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삶을 모아 꿰뚫어본다. 전 세계적으로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감염병 사태를 비롯해 최근 주요 이슈로 지목되고 있는 간병과 돌봄 문제, 세대 간에 발생하는 갈등 등 인간사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위기를 섬세한 필체로 그려낸다. 사람과 사람이 맞부딪칠 때마다 수 번 무너졌다가 다시 쌓아올려지길 반복하는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 믿음이란 것이 비록 희미한 형태에 불과할지라도 결코 저버리지 않고 끝끝내 붙잡고 버티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그렇게 정선임은 “모든 일상의 면면을 세계의 희망으로 받아들여 채록한다. 작은 생명이 군집되어 우글거리는 미니어처와 디오라마, 그리고 옥상 정원의 풍경 속에서 멸망 직전의 우주를 구해내는 역설로 말이다”.(문학평론가 전청림, 해설)
저자

정선임

2018년중앙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고양이는사라지지않는다』가있다.2023년제14회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이후,우리_7
우리가사랑했던정원에서_49
아직은고양이_87
인디언돌_119
해저로월_151
속삭이는깃발들_197
바다가는날_233
십일월이지나면_265

해설|전청림(문학평론가)
사라지지않는다,사라지지않겠다_303

작가의말_327

출판사 서평

“지금나는거리에있다.
우리의우정과상처를한없이가볍게여기는그거리에.”

정선임의인물들은밤을건너는중이다.어둠이짙게내려앉아어떤비밀을속살거려도괜찮을듯한,해가떠오르기전까지잠시동안만허락되는비밀스러운시간.규칙과규율로통제되는낮과는달리어떤비이성적인일이벌어진대도이상하지않을것같은그신묘한밤에,잘알지못했던상대의내밀한마음을꺼내어헤아려보고외면해왔던진실에가까워진다.함께했던시절로부터너무나멀어져이제는서먹해진‘우리’의관계를낱낱이해부하고재조립해본다.그리고돌이켜본다.그동안함께지나온숱한밤들은어떤밤이었나.
소설집의문을여는「이후,우리」는코로나19변종바이러스가전세계적으로유행하게된근미래를그린다.정부지침에따라감염자로분류된‘승희’는일주일간‘생활치료센터’에격리된다.특정한고통을공동으로경험한이들만이향유할수있는연대의공간에서,승희는자신에게스스럼없이다가오는십대여자아이‘유정’,튀르키예출신유학생‘하산’과함께짧지만강렬한우정을나눈다.사회로부터,가족으로부터소외된이들이모여피워내는공명의시간은이들로하여금외부로부터부여받은각자의역할에서벗어나자기삶의진정한의미에관해톺아보게만든다.특히견고하게유지해왔던승희의방어벽이유정에의해무장해제되는장면은,타인과의교류를통해한사람의세계가확장되는해방감을선사한다.
그러나때로친밀함은우정이라는이름아래악용되기도한다.「우리가사랑했던정원에서」속‘나’는대학생시절,함께공유하던문서함에‘정아’가남긴글을고치거나삭제하며그의삶을평가하고재단했다.나와다른상대를온전히이해하고받아들이기엔어리고미숙했기에,다시만난정아와는‘공유정원’을통해완성해지못했던우정의장을이룩해보고자한다.정성을들여식물을키워내듯마음을다해보살폈더라면달라졌을정아와의인연을반추하면서,‘나’는정아가남기고간식물을“품에꼭끌어안”는다.

구근주위의흙을맨손으로팠다.얼어서잘파지지않았다.손이시리고아팠지만개의치않았다.구근의잔뿌리가다치지않게살살뽑아내컵라면용기에담은뒤흙을퍼서고르게덮었다.
우리에게도아직남아있는문장이어딘가에있을까.(85쪽)

소중했던시절을붙잡아둘수있는건“우리에게도아직남아있는”(「우리가사랑했던정원에서」)무언가가존재하리라믿는마음덕택이다.첫소설집에서‘고양이는사라지지않는다’는믿음이보이지도들리지도않는유령같은존재를감각하게만들어주었듯이,정선임의작품에서고양이는곁에없는대상을향한믿음이투영된상징물로서빈번하게등장한다.정선임의인물들은사라진연인이고양이로변해찾아왔다며자신마저도고양이가되어버리는가하면(「아직은고양이」),죽은반려묘가여전히곁을맴돌고있다고믿으며자신만의방식으로상실감을소화해보려노력한다(「속삭이는깃발들」).남들에게이해받지못하고한심하다고여겨졌던이인물들의경험이화자인‘나’에게만큼은전달되기시작하면서,잊힐뻔했던존재들에형태감이부여된다.“우리가믿을수있고믿고싶어하는것.보고싶고듣고싶지만사라졌고,결코다른것으로대체하고싶지않은것.”즉,정선임이그려내는고양이는“소망의다른이름이다”.(전청림,해설)


“소란스러워지기전에다음문장을적어야했다.
아직은쓸수있으니까.믿음도,사랑이라는말도.”

믿음은“자신이지켜야하는것이무엇인지정확히알고있는이들이지닌”(「속삭이는깃발들」)신실한마음이다.「속삭이는깃발들」의‘형지’는저마다의소망을지닌채광장으로모여드는사람들을보면서,자신에겐없는그간절함의정체가무엇인지의구심을품는다.한번도무언가를“제디로믿은적이없다는것”,그것이“나의죄”라고까지말하는형지는한사람이갖는신념의힘을누구보다도잘알고있는사람이다.형지는자기삶의의문스러운부분을그냥지나치지않고,그주된근원인타국의여인‘마이라’에게끊임없이말을걸며지나온생을곱씹는다.
이렇듯믿음의문제를계속해서상기시키는낯선존재에정선임은‘마이라’라는공통된이름을붙여본다.「해저로월」은오랜타국생활끝에사망했다는고모‘미경’의유해를수습하기위해포르투갈로향하는‘나’의여정을그린다.그곳에서‘나’는친척들의입에오르내렸던질나쁜소문들과는달리고모가“자신의길에서달리는사람”이었음을알게된다.그곳에서‘마이라’로불렸다던고모의족적을따라가는동안,‘나’는어린시절고모가손에쥐여주었던차갑고매끈한마작패의감촉을생생하게되새겨본다.
손안에들어오는작고매끄러운물체의감각은「인디언돌」로이어진다.고등학교에입학해겉돌던‘나’는‘아희’를만나벼락처럼뜨겁고반짝이는우정을나눈다.“서로에게이야기할게너무많아서”,“아주사소한감정도,별일아닌일상도”전부털어놓기바빠서둘은몽돌을쥔사람만이발언할수있다는규칙을만들어냈다.그매끈한돌의감촉은한참의시간이흘러‘나’가아희없이홀로거리를오갈때뒤늦게“따뜻하다못해뜨거워”지며,돌이킬수없는지나간시절에대한그리움을증폭시킨다.
후반부에나란히배치된「바다가는날」과「십일월이지나면」은이처럼개인을압도하는세월의흐름앞에놓인인물들을그린다.폐암말기에섬망증세를보이는할머니와노화로인해요의를조절하지못하게된엄마(「바다가는날」),그리고암에걸려누군가의간병을필요로하는아버지(「십일월이지나면」)는결혼도하지않은자식에의탁하는대신스스로요양원에입소하기를선택했다.‘정상가족’을이루는것을최우선의가치로여기는부모세대가염려하는바가무엇인지누구보다잘알기에,그러한선택을초래한현실이“텁텁하고쓰”지만“그래도나는그것을삼킨다.”(「바다가는날」)“자신할수있는미래란”“십일월이지나면겨울이온다”(「십일월이지나면」)는명료한사실뿐임을묵묵히받아들이면서.그런‘나’를지켜보며,이미지난한삶을겪어본자가품는마음이란이런것이다.

다가오는죽음앞에서품위를유지하는일은불가능했다.힘없이축늘어진성기와뼈가드러날정도로볼품없던몸.그런상황을종료시킬수있는건회복이나성장이아니라죽음뿐이었다.단의소설을보며이런게사랑이냐고물었지만,실은나에게묻고싶었다.무엇이사랑인가.고통을느껴야사랑인가.바닥까지드러나야사랑인가.그저시간이지나가기만을바라는마음을단이알게되는것이두려웠다.(260쪽)

미로처럼복잡하게꼬인삶의내부를파고들면,몸체를숨긴채웅크리고있던저마다의고통이드러난다.정선임의인물들은자신이처한현실을과격하게돌파하기보단때로“시간이지나가기만을”(「바다가는날」)기다리며이어려움의정체를고요히들여다보고이해하고자한다.그것이현실을살아가는우리가스스로를지킬수있는가장성숙한방책임을작가는알고있다.그러니길고긴밤을통과해지금의자리에잠시멈춰선이들은,방향을잃은게아니라제자리에서단단해지는중이다.“삶이있으므로무언가를믿는것이아니라무언가를믿음으로써지탱될수있는것이삶”(전청림,해설)이기에,오래도록지켜야할소중한믿음하나씩을찾아손에쥐어본다.메마르고갈라진도시의살풍경을부드럽게봉합하는회복력은그러한결심에서부터비롯된다.머지않아상처가났던자리에도톰히새살이차오를것이다.



밥알을씹듯차곡차곡생을써나가다가어느순간문득한자리에우두커니멈춰서게되어버린사람들이있다.누군가에게는갑작스러워보일지도모른다.지쳐서그렇다고,시간이해결해주리라고말할수도있겠다.그러나정선임작가는알고있다.그들은방향을잃은게아니라‘멈춤’으로써걷던방향을떠나는중이라는것을.가장묵묵한방식으로고요한이격을감행하는중이라는것을.여기,작가가어떤인위적인형식이나과장된감정없이섬세한정공법으로구현해낸여덟편의소설이있다.이단단한소설들은삶이우리에게남기는상실과슬픔,불안과결핍을정면으로응시하며세계를이해하려는문학적의지의결정체이다.구근이담긴컵라면용기를품에안고어딘지모를어딘가를향해손을흔드는그마음.그것이야말로용감한사랑의증거임을믿는다._정이현(소설가)

하루에내뱉고들이쉬는이만번의호흡에새겨진각각의사정과아름다움을수집하기위해,그리고각기다른그숨이전부어렵게내뱉어졌다는걸기록하기위해이소설집은생겨났다.정선임은그렇게모든일상의면면을세계의희망으로받아들여채록한다.작은생명이군집되어우글거리는미니어처와디오라마,그리고옥상정원의풍경속에서멸망직전의우주를구해내는역설로말이다._전청림(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