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호 밖은 안녕 (이주혜 소설)

괄호 밖은 안녕 (이주혜 소설)

$17.50
Description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온전히 번역해낼 수 있을까
신동엽문학상 수상 작가 이주혜 신작 소설집

단단한 괄호에 걸어 길어올리는 타인과 기억
그 사이로 상처와 고통을 흘려보내는 안녕의 물결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제41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이주혜가 문학동네에서 세번째 소설집 『괄호 밖은 안녕』을 펴낸다. “엄정한 사유와 섬세하게 벼린 언어”로 “우리 사회의 여성 현실을 예리하게 탐색”(신동엽문학상 심사평)한다는 평단의 지지뿐만 아니라, “나는 오늘도 그의 이름과 언어에 신뢰를 한층 더 쌓아올린다”(구병모)는 동료 작가의 신망까지 한몸에 받으며 이주혜는 한국문학의 든든한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장편소설 『자두』에서 상실과 연대의 경험을 슬픔의 미학으로 담아낸 이주혜는 『괄호 밖은 안녕』을 통해 다종다양한 관계에 얽힌 고통과 이해를 더욱 깊어지고 확장된 시선으로 그려낸다. ‘번역’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이번 소설집은 지금까지 이주혜의 작품들을 따라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반가움을, 처음 읽는 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이름을 남길 것이다.
번역을 두고 “이해를 향한 부질없는 그러나 지난하고 포기하지 않는 노력”(예스24 인터뷰에서)이라 표현하는 그의 마음은 『괄호 밖은 안녕』에도 짙게 묻어난다. 이번 소설집에서 이주혜는 과거에 화자들이 당면했으나 받아들이지는 못한 존재나 시간을 지금의 시공간으로 데려온다. 그들이 마주하는 기억은 대체로 유령(환영), 허상, 말하는 동물 등 환상적인 형태로 등장한다. 이러한 기억의 화신과의 대면을 ‘여행’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는 ‘기억을 다시 쓰는 행위’와 순환하며 맞붙는다.
“이색적인 풍광을 맞닥뜨리며 감회에 젖는 대신, 기묘하게 낯익은 공간에서 친숙한 기억들이 침투”(강지희 해설)하는 여정에서, 자신이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남겨둔 조각들이 미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순간은 이주혜의 소설 속 인물들에게 그 자체로 해석해야 할 대상이 된다. 이 해석의 여정에서 『괄호 밖은 안녕』은 그간 묻어두었던 시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그 시간을 나란히 함께 걸으며 화해할 수 없었던 기억과 존재를 마주하게 한다.
『괄호 밖은 안녕』에서 반복적으로 전개되는 ‘기억을 해석하려는 치열한 시도’는 그의 소설세계의 근원이자 중핵이기도 하다. 소설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책장을 넘기면 “의식적으로 해석할 필요”도 없이 “단단한 괄호에”(「괄호 밖은 안녕」, 82쪽) 담긴 기억이 마지막 페이지 위로 툭 떨어질 것이다. 그 괄호 안에서 우리의 고통과 상처는 자유롭게 흘러다니고, 때로는 넘실거리다 범람하고, 그러다 다시금 그러모이기도 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기억을 다시 쓸 수 있다.
저자

이주혜

2016년창비신인소설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그고양이의이름은길다』『누의자리』『괄호밖은안녕』,장편소설『자두』『계절은짧고기억은영영』『여름철대삼각형』,산문집『눈물을심어본적있는당신에게』,옮긴책으로『우리죽은자들이깨어날때』『멀리오래보기』등이있다.신동엽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안개의기분_7
여름손님입니까_35
괄호밖은안녕_67
이소중입니다_97
초록비가내리는집_123
할리와로사_153
맘껏슬픈사람_189
순영,일월육일어때_223

해설|강지희(문학평론가)
기억의물결위를유랑하기_253

작가의말_285

출판사 서평

기억을번역하고마침내해방시키려는곡진한시도

기억과해석은다른가?당연히같지않겠지만,피하려고해도물리적인충격을동반해멋대로찾아온다는면에서는크게다르지않다._「괄호밖은안녕」,72~73쪽

『괄호밖은안녕』에는‘번역가이주혜’로서의면모가곳곳에담겨있다.번역이두개,혹은그이상의세상을엮어내는작업이라면,이주혜는이를소설로옮겨와온전히이해할수없는과거를현재와연결하고해석에한발짝다가가려분투한다.
표제작「괄호밖은안녕」은여행중인번역가화자를내세우며언어로소통할수없는상황을만들어낸다.‘나’는한계절에두권의책을잇달아번역한뒤몸과마음이소진되어가능한한음성언어를사용하지않겠다는다짐과함께자신에게익숙한언어가없는곳으로떠난다.여행중산속에서맨발의젊은여자를마주친‘나’는그냥지나치지못하고그를차에태우는데,둘은언어로소통할수없음을깨닫고몸짓과표정으로대화를나눈다.여자와의여정은‘나’가과거가정폭력에서도망쳐나온한여자를잠시집에들였던일,뿔뿔이흩어진자신의가족들과의일화등을소환한다.
이는「여름손님입니까」와도일면맞닿는다.소설은일본의한호텔에서만난직원들과의기묘한일화로시작한다.온천탕에서때를밀어주는노부인,번역기앱으로다소우스꽝스러운설명을들이밀며메뉴변경을요청하는식당직원등호텔에서맞닥뜨리는일들은화자를점점아리송하게한다.화자는삼십년전집을떠나홀로일본으로간언니의딸결혼식에참석하기위해일본에도착했지만,호텔에서의시간은그에게본격적으로과거의기억을불러일으키는계기가된다.
「안개의기분」「맘껏슬픈사람」은두소설모두영국의한대학원에진학하기전아들과엄마가떠난홋카이도여행을배경으로,각각아들과엄마를초점으로이야기가진행된다.두쌍의모자는여행중자신에게진한흔적을남긴과거를되새기며의미를되묻고이별을준비한다.이때그이별은서로와의이별이면서동시에묻어놓았던과거와의이별이기도하다.이주혜의소설적공간이대체로일본이라는점역시주목을요한다.너무다르지는않고동시에너무동일하지도않은,쉽게녹아들수있으나반드시해석이요구되는공간.그친숙한풍경에침투하는익숙한기억들이소설곳곳에서화자의발목을붙들고,떠나왔으나떠나보내지는못한,무의식적으로유사한공간을선택하게된이들의발걸음은‘과거’라는같은공간을맴돈다.번역의(불)가능성을언어에서기억으로옮겨와과거한때시간을같이썼던타자들그리고그기억을해석하려는부단한몸짓은이야기곳곳에녹아있다.


떠남으로써새로이쓰일수있는이야기

「할리와로사」와「순영,일월육일어때」는소설집내에서도특히친근하게다가가는작품이다.「할리와로사」의두사람은고향을떠나와선택한장소에서직접지은이름으로살아간다는공통점이있다.둘은‘할리’의고향인전주로여행을떠나는데,그과정에서할리는자신이버리고자했던원가족과고향의기억을마주하며고통스러워한다.그귀향의경험을여행으로바꾸는것은할리곁의‘로사’다.그는할리도몰랐던전주의장소와맛집을소개하며할리가가진괴로운기억에낯섦을더한다.
「순영,일월육일어때」는소설가인화자가대학생시절함께생활했던언니와의기억을회상하며진행된다.동아리에서사용할이름을정하라는이야기에‘영순’과언니‘은수’는서로의이름을빌려각자‘수은’과‘순영’이되기로한다.글을쓰는‘수은’에게꼭소설가가되라며용기를북돋아준언니를진심으로사랑했으나언니는느닷없이결혼과임신을이유로‘수은’의인생에서사라진다.내내해석할수없는숙제였던언니의삶은현재시점에서이메일로도착하는편지의스캔본을통해조금씩이해에가닿는다.두소설에등장하는인물들은모두서로에관해잘알지못하지만그럼에도서로를보듬고애틋해한다.무엇보다화자가고향혹은인연에얽힌기억을직면하고마침내떠나보내게된다는점에서닮아있다.

어디에도자신의처소를마련하지않고환대를기대하지않는이들은속박을끊어내며궁극에는자유로워진다.그렇게흘러다니며다른존재와접속하고미끄러지며새로운존재가되어가는과정에는어떤빛이어른거린다._강지희,해설에서


“나는오늘도그의이름과언어에신뢰를한층더쌓아올린다.”_구병모(소설가)

게리온과헤라클레스중누가더괴물인가.더괴물이라는표현은성립하는가.더많이사랑하는사람은늘약자일수밖에없는가.게리온이처음으로날개를펴고화산입구로날아간것은살고자함인가죽고자함인가.무수한논쟁과대화와때론독백이이어질것이다.파도는끊임없이밀려왔다밀려갈것이다.살고싶은사람도죽고싶은사람도하릴없이그소리와박자에몸을맡길것이다.여름이니까.밤이니까.마법같은여름밤이니까.그러기로약속했으니까._「이소중입니다」,111쪽

「이소중입니다」와「초록비가내리는밤」은독특한색채를발한다.다른작품들이주로기억의해석과번역의문제,과거로부터의이별이도드라진다면,이두편은독특한스타일로하여금스타일리스트이자문장가로서의이주혜를발견할수있는자리다.철학자의집으로향하는번역가,소설가,시인의여정을담은「이소중입니다」는앤카슨의『빨강의자서전』을중심으로,이들의어지럽고환상적인여름날여로를그려낸다.현실과비현실이뒤얽혀독자에게“마법같은여름밤”(111쪽)을선사하는이소설은특히나이주혜의아름다운만연체가돋보인다.
기담의형식을따르는「초록비가내리는밤」은세상을떠나기직전인부인‘양순덕’의이야기로시작해집에혼자남겨진남편‘박천일’의일상으로이어지며그가두려움에떨며떠난집에살게된‘손우정’의사연으로연결된다.양순덕이남긴백여개의식물은박천일에게도통알아들을수없는언어이자두려운존재이지만,손우정에게는이해하고싶은신선한언어이자삶을회복하게끔도와주는생(生)의귀한증거이다.이는양순덕이식물에관한조언을남긴노트를손우정이꼼꼼히읽으며그이면을해석하고자하는태도에서비롯된다.식물이마치살아움직이는듯한기이함이소설전반에깔려있는까닭은이것이기담의형식을차용하고있어서이기도하지만무엇보다식물의생동성,그투명하고빛나는삶에의의지가『괄호밖은안녕』이전하고자하는바이기때문일것이다.이주혜의시선이세상에“그어진미세한실금을어김없이포착하고야만”다는구병모의표현처럼『괄호밖은안녕』은우리삶에벌어진틈을괄호에담아소설위로포개놓는다.그너머에있는것은우리가해명하지못한과거의어떤순간들이다.이주혜의소설은이를억지로봉합하거나완벽하게해석하려들지않는다.다만포기하지않고계속해서번역을시도할뿐이다.이러한시도는때로는슬프고,때로는섬뜩하며,때로는미궁에빠진다.해석의근원적인불가능성에도불구하고그문을두드리고적극적으로“기억의허방에빠”(72쪽)지는일.그렇다면이과정은결국화자가과거를적극적으로다시쓰는작업이자다시쓰기를통해해석된기억을주체적으로떠나보내는행위이지않을까.『괄호밖은안녕』이건네는이용감한시도들에우리역시손쓸도리없이소설의물결속으로빠져들고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