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소실되는 풍경 (장석원 시집)

우리가 소실되는 풍경 (장석원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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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내 안의 너 살아났다가 죽어버린 너
명멸하는 너와 나”

모든 정념이 불타 사라진 뒤에도 완수되지 않는 이별,
결정체처럼 남겨지는 불연성의 존재
첫 시집 『아나키스트』(문학과지성사, 2005)를 통해 격렬한 투쟁의 언어, 혁명으로서의 사랑을 선보이며 평단의 뜨거운 주목을 받은 장석원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우리가 소실되는 풍경』이 문학동네시인선 250번으로 출간되었다. 그간 여섯 권의 시집을 거치며 세계의 비정함을 부단히 폭로하고 사랑이 끝난 뒤의 폐허를 비통하게 직시해온 시인은 이제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간 뒤 우리가 소실되는 풍경에 다다랐다. 통절한 감정을 리드미컬하고 능숙하게 구사하는 시인의 문장은 왈칵 쏟아질 듯 넘실거리는 그리움의 정서를 동반한다. 이때의 그리움이란 헤어진 연인에게로 한정되는 평면적인 감정이 아니다. 시인이 그려내는 이별의 감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소멸하는 우리의 현재에 대한 애틋함과, 다가올 일을 모른 채 ‘너’와 같은 시간선에 머물렀던 ‘나’에 대한 회한까지를 포함한다. 이를 도착적으로 파헤치고 영영 기억하고자 할 때, ‘너’와 ‘나’가 사라지지 않고 명멸하는 “무한 천공”(「플랑크 타임」)의 영원이 가능해진다.
저자

장석원

2002년대한매일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아나키스트』『태양의연대기』『역진화의시작』『리듬』『유루무루』『이별후의이별』,산문집『우리결코,음악이되자』『미스틱』등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배타원리
플랑크타임

2부절명의피막
묘혈/절곡(折曲)/충무로역1번출구에서/나를불태워줘/절곡(絶穀)/견고한대지와늪/힘힘너머로/Nothingness/파주/환면(幻面)/문산/조준사격/착한에세이/영현(英顯)처리/기체인간/혼유석(魂遊石)앞에서-Contaminateme/쌍분(雙墳)/꽃무덤

3부보존처리
폼페이,(그)라(디)바

4부별사
적열(赤熱)/맥주를들고집으로/단자(單子)의플롯/회회(蛔蛔)/가소성/훈증/화장장에서/단자의리스페리돈/메틸렌블루/대속(代贖)과구령(救靈)/출장길,뒤돌아보니인중과아미(蛾眉)가/조운트조(soundso)/수색역에서,1988/더멀리,우리의색신/두눈으로우는우리는사후(死後)에/●/폭장(曝葬)


해설|눈물이쉬루르_양순모(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허공이벌어진다
경탄에젖어열리고있다
안면이생긴다
사랑에빠진육체흐드러진다

요확에서
네가나타난다그때나는
베어지고비탄과신음
구멍마다새어나오고

(……)

너와나는하나였는데존재한적이없었고
맞붙었던입술떨어질때우리가헤어질때
너는활상하는그림자가되고……영원한●
_「플랑크타임」부분

시집을여는첫시의제목‘플랑크타임’은물리학에서유의미하다고판단하는최소의시간단위를뜻한다.이를시적으로해석하면“저곳과이곳,없음과있음,알수없음과앎,카오스와코스모스의경계”(문학평론가양순모,해설)라고이해해볼수있겠다.공간감을지닌것처럼묘사되는그찰나의시간속에서,“내가나타나면네가사라지고/네가다가오면내가멀어”지는사건이벌어지고있다.“영원히반복되는1초”안에서그렇게두사람은“연속적이고연쇄적”인스침을지속하는중이다.시공간이점(●)으로수렴하는,“너와나”가“동시에탄생”(「플랑크타임」)하고폐기되기를반복하는무한한세계에서과거와미래는하나로중첩된다.
다시는회복할수없는관계를암시하듯“불붙”고“몽그라진”(「절곡(折曲)」)모습의‘너’는복구가불가능할만큼변질된뒤지만,도리어“발광체”처럼“뚜렷해”(「나를불태워줘」)진형체로‘나’를찾아온다.“누군가사랑때문에죽어가고있”는상황을두고화자는“너무지겨워나를지져줘나를묻어줘”(「충무로역1번출구에서」)라고한탄하다가도,“너의잘린토막으로”나마“포만”을느끼고“살”을빚어내며“네옆에살아남아서창궐”(「힘힘너머로」)할힘을얻는다.그렇게연결되는‘나’와‘너’는그런데피안의세계로넘어가버린듯,“절개된채썩는”“속다내어준채/문드러지고있”(「Nothingness」)는모양새다.

아무도아닌
내안에서
아무는누구

다무는입
나를닫아걸고
너를묻는다

(……)

우리는서로를
찢어버렸네
비명과울음없이
피없이애도없이

절개된채썩는
아무와아무
나아닌나와너

속다내어준채
문드러지고있다
割,愛
_「Nothingness」부분

이렇듯손상되고부서지는몸의이미지를지닌채로,‘너’는“망각과회억의상관관계속에서”“살아나는밤의불빛”(「문산」)처럼가물거리며슬픔과그리움의대상으로그려지는데이때화자가‘너’를회상하고추억하는일은보통의이별에수반되는과정과는사뭇다른결을취한다.그것은때로“가슴속긁어대는”“쇳소리”로,“회전하는총알”(「조준사격」)로,“기묘하고차갑게”다가오는“시반”(「착한에세이」)으로표현된다.이러한서늘한이미지는‘부음’‘국화’‘화장장’과같은시어들과더불어사별을암시하기도한다.다만마치“터미널을빠져나”(「영현(英顯)처리」)오듯누군가와함께했던한시절로부터탈각되어나오는과정역시이별이라고할수있다면,시인에게있어서이별이란어떤사정으로다시는만날수없게된그상대를‘영현’으로처리하는일일지도모른다.이는한시절전체를애도하는일이기도하다.“끝없음을거듭해환기하며보다근본적인애도작업을작동”(해설)시키는방식으로.

투명하고깊은X의흰손이
내게사랑을불러왔지

X를안고서미끄러져내려간다
어둠안으로들어가서재생한다
기쁨과두려움그리고가려움

나는X의체온을잊지못해
기억해그것을,X의것을
불덩어리의아름다운활강을

(……)

폭우가쏟아진다.바위가굳는다.빗물혓바닥땅을핥는다.새로운X가태어난다.방혈하면나는깨끗해질까.나와공동(空洞)사이에,나와너사이에,비가있다.비가나를다스린다.나는녹는다,흘러간다.용암.종말.사랑은망각후에발굴될것이다.
_「폼페이,(그)라(디)바」부분

그러나기억을“보존처리”해둔다면,‘너’와누렸던시간은언제든“재생”할수있는영원한역사가된다.위시의‘X’는이미“불덩어리”로타올라사라진뒤지만,‘나’는“떠난지오래되었는데”“붙들린것같다”고토로하며‘X’와의대담을이어간다.시속‘X’는화자를사랑해주는타인처럼도,화자자신처럼도(“내가너야.너를사랑해”)보인다.“X는누구일까”라고자문하던‘나’는이내“바위가녹아내”릴듯뜨겁고“살타는냄새가득”한살풍경속에서“새로운X”의탄생을예감한다.
편집자와의사전인터뷰에따르면,장석원의시속‘너’는타인이기도하지만오래전그때그시절에존재했던‘나’이기도하다.수많은‘나’가‘너’혹은또다른‘나’와헤어졌다가다시만나기를반복하며,오늘에이르러‘우리’로거듭나는것이라고시인은말한다.현재의우리가소멸한뒤다음세상에는어떤새로운존재가탄생할까.이별과만남이,죽음과탄생이뫼비우스의띠처럼반복되는세계에서장석원은타자와타자화된나를‘너(X)’라고총칭하며삶에서발생할수있는모든종류의이별을아우르고있다.

통증없이나를기재한다
후회없이나를벗겨낸다

조금더멀어졌던가
나는어디에서어떻게부패했던가

부르튼얼굴들여다보면

느리게달라질까
우리는무엇으로부터

비롯된것
발생된것
기억된것
서술된것
일까
_「훈증」부분

대체로절망적이고비통한정서가시집전체에배어있는가운데,집념을내려놓은자의초연함이느껴지는구절들이눈길을붙잡는다.“이별은흘러가는것땀이나눈물같은것이지사랑처럼쉽게탈색되지”(「착한에세이」),“기다려보자견뎌보자달라질것이다”(「단자의리스페리돈」)와같은문장이그렇다.위시역시마찬가지다.화자인‘나’는이제“통증없이”“후회없이”자신을직시할수있게된사람으로,초탈한태도로“부패”된‘나’와“우리”의기원을되짚어간다.그로써‘나’는너무도밀접했던이별의통증으로부터스스로를떼어낸뒤‘우리’가하나가아닌둘로“쪼개진”상태임을자각하고,“너를기다리다가생매장된나를꺼내”볼용기를,“헤어진몸,사출한그몸”은“소각하”(「회회(蛔蛔)」)겠다는결심을품게된다.“전쟁과전염”“미망의광기”속에서도“어떻게든/일상”은“지속”될것이므로“너를붙잡지않겠다”고선언하고“오랫동안/널머금을수있”도록오히려“조금더멀어져”(「단자의리스페리돈」)야겠다고다짐한다.그로써“영구히떠나지않”는것은“사랑이아니고”“사랑하는이들은,결단코만나지않는다”(「대속(代贖)과구령(救靈)」)는아이로니컬한깨달음이도출된다.이는“운명적인사랑을만나게될까”기대했지만“사랑하는사람이자꾸사라”지는,“감지할수없는어떤힘이나를끌고가”(「조운트조(soundso)」)는위협적인세계로부터나자신을지키는길일수도있겠다.
몸이불타소실되는고통을느낄만큼뜨거웠던한세월을지나고난뒤,시인은마침내우리는함께“경험하는자”이며“광장의굉음에절삭되며신음하는몸들”이자공통적으로“사라지는”신체를가진,“세계의전부를소실”(「●」)한후다음으로건너갈존재들이라고말할수있게된듯하다.시집의마지막시편,모든것이허물어진생의끝에이르러몸을태우고남은재를바람에날리는「폭장」에서‘나’는마지막으로‘너’를기린다.“봄바람”이실어다주는“꽃씨”처럼나를스쳐간,한때는내“살속의뼈”와도같았던‘너’가“나에게들어왔다가빠져나갔”음을느낀다.여전히고통스럽지만,이별의폐허에매몰되는대신그피폐한풍경속남겨진‘나’와‘너를고요하게응시한다.그렇게‘우리’는영원히이별하고영원히애도하는자로거듭난다.

우리가소실되어가고있음에도불구하고결코사라지지않는‘나’,결코반성될수없는‘나’.누구보다현실을잘알고있음에도불구하고도착속에서,이미지속에서현실을초월하며풍경을그려내는‘나’.그런데우리저‘나’를바라보며외려‘나’를압도하는‘이별’을,‘죽음’을어느때보다슬프게예감하고있지않은가.우리가본것은무엇인가.우리가진정마주한것은무엇인가.(……)우리의삶이진정삶다운것이되기위해,그앞과뒤에서묵묵히문학을하고있는시인과눈이마주쳤다면,모든것을알고있음에도그렇기에끝없는패배를수행하는시인과눈을마주쳤다면,우리는볼수있을것이다.시인너머,‘나’너머의그것들을참으로슬프게바라볼수있을것이다._양순모,해설에서

◎장석원시인과의미니인터뷰

1.2023년에출간한『이별후의이별』이후일곱번째시집으로돌아오셨습니다.소회가어떠한지궁금합니다.

시집출간은언제나기쁘고설레는일입니다.비로소‘나’가되는느낌이라고할까요.어떤것이마무리되었는데곧이어다른어떤것이새로시작되는느낌.어딘가에서유실했던것을마침내되찾은느낌.약간의두려움과조금모자란만족감과어김없이밀려드는부족함의화환같은느낌.시집을준비할때,시집꼴을막갖춘원고를들고비오는카페창가에서처음으로정독했을때가떠오르네요.「이별후의이별」그너머에무엇이있나.그곳에내가도착했다면,나는어떻게살고있고어떤언어를지니고있나.이와같은질문을스스로에게던졌고,쏟아지는빗줄기를바라보면서,시집원고를손에들고,원고와겨룰때필요한염결성을짊어지면서,마치결승전에나서는선수같은마음을가져보았습니다.그럴때제가시쓰는사람이라는사실을느끼기에,시집을낸다는일은아주힘들고어려운일이지만,그것이본질같다고여기기에,지금,기쁩니다.

2.제목처럼‘우리’가소멸하고소실되는이미지들이강렬합니다.제목을어떻게고르시게되었는지,또선생님께‘이별’이란어떤의미인지들려주세요.

‘나’가‘너’를발견합니다.‘너’는타인‘너’이기도하고,오래전그곳에존재했던‘나’이기도합니다.그‘나’와‘너’가겹쳐지고뭉개지고분리되고다시합장하듯만나는오늘의이곳에서‘우리’가된다고생각했습니다.사회적으로역사적으로또한개인적으로‘우리’가소실된후에누가또는무엇이새로태어나고나타날까.이런질문속에서,알수없고가볼수없는미래를단념하고,현재의우리가또헤어지고더많이부서지고마침내불꽃에먹혀버리는경과와풍경을,묵묵하게먹먹하게체험한나와너와우리의“이미지”를집약할수있는구절이라고판단했습니다.
이별은힘들고아픕니다.문득“이별은싫어추억의그림자가너무많아”라는노랫말이떠오르네요.저에게이별은살면서건너갈수없는,닿을수없는피안의그무엇같습니다.중학교2학년때어제까지만났던친구가결석했는데,선생님께서말씀하시길연탄가스를마셨다고,이제못볼것이라고.그덤덤함.그땐어려서그말의의미를알지못했는데요.그후로정말로다시보지못했는데,그친구얼굴이여전히지워지지않습니다.떠나간사람들이많아요.이별의주체와대상은언제나동시적입니다.나를떠났거나내가떠난경우.사랑하면서사랑한다고말하지못한사람,사랑하지않으면서사랑한다고거짓말한사람,영원속으로떠난후에야사랑을발견하고주저앉아우는사람.모두가제안에살면서떠나지않고사라지지않고있습니다.언어로이미지로남아서저에게시로나타날때가있어요.다시만나려고떠나지않았나봅니다.이별하지않으려고여태머물고있었나봅니다.시가별사(別辭)가된다면,시가지방(紙榜)이된다면……좋겠습니다.

3.특이한행배치와기호들이눈길을사로잡습니다.특히시집을열어주는첫시「플랑크타임」에는점(●)들이등장하는데요.이와같은설정에의도하신바가궁금합니다.

가까운시인과평론가들이모여서특강을듣는모임이있었는데요.어느대학의총장인소설가께서이상의시를주제로삼아「선에관한각서3」에나오는‘●’을보여주셨어요.시간을응집하는어떤것,이미지를응결하는어떤것이그때제게절실하게필요했는데,그특강에서‘●’이단자(單子)로서의사람으로보이기시작했습니다.어떤구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