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다!
혁명을외치면카드의순서가거꾸로뒤집힌다.
혁명이일어나면모두가놀랐고,웃음이터졌다.
그런행운이자주오지는않았고,
혁명을일으킨다고꼭대부호가되리란법도없었지만.”
단한장으로세상을뒤집는카드게임처럼
타인의이해를,고통의의미를,
그리고나를전복하는여덟편의이야기
소설집의문을여는「임장」은뭐하나특출난것없는‘나’가“자기만의집을홀로마련해야하는직장인여성”(12쪽)으로이루어진부동산임장모임을다니면서벌어지는일을그린다.‘나’는자신과달리똑부러지고프로페셔널한모임장민연언니를선망하게되는데,어느날그런민연언니가갑자기모임에나오지않고행방이묘연해진다.‘나’는다른모임원들과함께민연언니를찾아나섰다가이내믿을수없는장면을목도한다.
「임장」속사라진민연언니의행방을좇는‘나’처럼성혜령의소설전반에는어딘가로향해가거나사라진누군가를찾아나서는인물들의모습이긴장을불러일으킨다.「하악」은마흔살의여성자인이각각발달장애인동생태인,조카서린을만나기위해“낮에는북쪽으로,저녁에는다시남쪽으로이동”(39쪽)한기록이다.장애가있는동생을,그리고집에서가출해임시로얹혀지낸조카를더이상책임지지않기로결정했던자인의과거가차츰밝혀지며절정에다다르는이소설은위선보다차라리자기직시가윤리적인태도일지도모른다는진실을알려주는강렬한문제작이다.
「하악」이가까운가족사이에도결코건너지를수없는심연이있음을보여준다면,책의표제작이기도한「대부호」는가족간의몰이해속에서발견되는어떤소통의실마리를그린다.「대부호」는불의의사고로아빠를,또산재사고로오빠를여의고엄마와단둘이살아가는여성‘나’가,종일정치선동을하는유튜브영상을시청하다시위까지나가기시작한엄마를맞닥뜨리는모습을보여준다.‘대부호’란‘나’가엄마와함께하는카드게임으로,같은숫자로된네가지무늬카드를동시에내면서‘혁명’을외치면판도가달라지는규칙을지녔다.너무다른세계에자리한두사람이비로소서로의상처를한자리에서마주보게하는‘대부호’게임은그자체로관계의커다란혁명이며,읽는이의마음을진동하게한다.
“비록우리가서로많은이야기를나누지않았고,어떤이야기들은너무일찍영영모르게되었지만,그래도.그때우리는가족같았다.그게행운인지저주인지,흐름을뒤바꾸어놓을패인지,순조롭게만든패인지,지금으로서는전혀모르겠지만.”_「대부호」,84쪽
한편,「운석」과「나방파리」는누군가의죽음,혹은그와맞먹는돌이킬수없는관계의단절에서비롯된상실을다룬다.남편과사별하게된주인공백주가남편의동생이면서자신의친구이기도한설경에게받은운석에서어떤목소리를듣게된다는의미심장한상상력에서출발한「운석」은이해불가능한고통을짊어진채살아가는일이삶이자애도라는메시지를고요한분위기속에서서서히고조되는슬픔을담아전한다.반면「나방파리」는한때서로의힘든처지에이입해친구가되었다가어떤사건으로멀어진‘나’와종희언니의이야기로,아주약한힘으로도짓이겨져버리는미물‘나방파리’의이미지를통해살아있어도죽은것과다름없어진관계의흔적과그로부터좀처럼벗어나지못하는‘나’의죄의식을그려낸다.「운석」의독특한환상성과「나방파리」의비극적인이미지는독자의마음속에잔상처럼오래남아,상실이후에도끝나지않는애도의감각과종결된관계앞에서인간이감당해야할몫을생각하게한다.
군더더기없다!대범하다!
단순한응징이아닌
뒤틀린윤리그자체를무대에올려
독자라는관객을시험하는스릴
「독재자의오른발」은진화한성혜령표서스펜스를맛보게하는압도적인작품이다.입주간병인으로살아가는병옥이한노인의집에들어가고,그노인이과거군사정권시절보안사에서일했던악명높은고문관김무언이라는사실을알게되면서펼쳐지는서사를그렸다.간병인병옥,환자의딸이선,그리고환자무언이라는세인물의시점으로진행되는이소설은보호자인병옥과피보호자인무언사이에오가는기묘한알력을보여주는한편,그사이에낀방관자이선의숨겨진이야기까지조금씩밝혀지며충격을더한다.악인을향한단순한응징의서사가아니라뒤틀린윤리그자체를무대에올려독자라는관객을시험하는대범한스릴러이다.
「원경」은유방암가족력이있다는이유로연인원경에게이별을통보했던신오가자신이암에걸린뒤다시그녀를찾아가는모습을그려냈다.원경이이모와함께머무르고있는산속의집까지가아무일도없었다는듯원경을대하는신오의뻔뻔함과비겁함을포착하는작품으로,불행을피해달아나려할수록오히려그불행과가까워지는인간존재에대한고전적인아이러니를특유의속도감있는문체로펼쳐보이는수작이다.
「독재자의오른발」과「원경」이누군가를돌보거나혹은방임하는일에서비롯되는윤리적인문제를고민하게한다면,「베인」은우리가과연타인의고통을이해할수있는지를질문하는소설이다.고등학교시절신장암에걸려항암치료를받고복학한유급생‘나’는거식증증세에시달리면서도초연하기만한친구의연과가까워진다.반친구들로부터떨어져단둘이지내는두사람의우정은그러나어느날등장한보건교사의존재와그녀를둘러싸고생겨난오해로깨어지고만다.“눈앞에서누가총을맞고쓰러져도,종이에베인내손가락상처가더아픈게인간”(264쪽)이라는서늘한주제를던지며누구의마음속에나있는지울수없는흉터를떠올리게하는작품이다.
때로는인간존재에대한여운깊은연민으로,때로는차가운자기직시의시선으로,또한때로는봉착된상황을일거에풍자하는블랙유머로독자를끌어들이는『대부호』는단편하나하나가작가만의남다르고새로운서스펜스의힘을느끼게한다.어느한작품빠짐없이놀라운흡인력으로읽히는이번책은성혜령소설세계의찬란한전환점이자2020년대를기억하는하나의이정표같은문학작품으로기억될것이다.
훌륭한사회소설은풀어야할매듭을여럿남기면서도결코수다스럽지않다.성혜령의소설역시마찬가지다.사회에대해말하면서도사회만으로는해명할수없는수수께끼를남겨두기때문이다._해설,이소(문학평론가)
“『대부호』에실린여덟편의이야기에도어쩔수없이나의맹목적인공포와,모자란이해와,이기와좁은시야가스며들어있을것이다.아니그것들이전부일지도모른다.그럼에도,이이야기들을쓰는동안나와닮았지만다를수밖에없는인물들의마음을조금이라도들여다보려노력했던흔적이같이읽힐수있다면,기꺼이애쓴흔적을부족한부분과함께읽어주시는분들이계신다면,내겐그어떤기적보다감사한일이다.”_‘작가의말’에서
책속으로
맞다.우리모두에게는저마다의이유가있다.그런생각이들었다.그리고나는한번도스스로에게어쩌다이런사람이되었을까,물어본적없다는사실을깨달았다.
---「임장」중에서
자인은늘빠듯하게살았지만부끄럽지는않았다.가끔,혼자술을마실때면스스로가뿌듯할때도있었다.삶이내게준것은별로없지만,나는살인자가되지도않았고패륜아가되지도않았어.
---「하악」중에서
비록우리가서로많은이야기를나누지는않았고,어떤이야기들은너무일찍영영모르게되었지만,그래도.그때우리는가족같았다.그게행운인지저주인지,흐름을뒤바꾸어놓은패인지순조롭게만든패인지,지금으로서는전혀모르겠지만나는엄마의마음이나머릿속까지는어쩔수없더라도엄마의몸만은내가잘돌보고있다고생각하려했다.
---「대부호」중에서
아직어린벚나무의성긴그늘을지나며하천을따라산책하는사람들을내려다보면그사람들의기쁨과슬픔이닿지않는곳에있다는안도감이들었다.
---「운석」중에서
함께산다는것은생각해보면지금우리처럼이따금씩만나서로의이야기를나누는것아니겠냐고물었다.
---「나방파리」중에서
“참,사람이아프다는게뭔지.아픈사람마음은정말,아무도모를거예요.제가이일을오래할수있는것도,제자랑같아서말은잘안하지만,항상아픈사람이제일힘들다는것을잊어버리지않기때문이에요.”
---「독재자의오른발」중에서
한사람을사랑하는일이그사람이가지고있는여러문제들과그사람이가지고올불확실한미래까지기꺼이받아들여야하는일이라면,신오는지금까지누구도사랑해본적없었다.앞으로도누군가를,심지어자기자신조차사랑하기란불가능할것이었다.
---「원경」중에서
눈앞에서누가총을맞고쓰러져도,종이에베인내손가락상처가더아픈게인간이야.
---「베인」중에서
추천사
성혜령의소설을읽고있으면퍼트리샤하이스미스가2020년대한국청년들을주인공으로소설을썼다면이렇지않았을까상상하게된다.사회경제적격차가사적관계에남기는균열과그틈에서서서히소외되고고립되어가는개인의영혼이섬세하면서도서늘하게그려지기때문이다.스릴러와서스펜스의외피아래,이곳을건너는청년세대의불안은구체적인얼굴을얻는다.『대부호』는이제성혜령의소설이새로운모습으로변화하고있음을보여준다.한겨울꽝꽝얼어붙은호수의표면처럼차갑고투명하던하드보일드에낯선빛이스며든것이다.반투명한흰빛,수면에스포이트로똑떨어뜨린우유한방울같다.세계는여전히그대로일지라도어딘가엔작은가능성이스며들어번지고있을지도모른다는듯이.평행선을걷던인물들이문득스치듯서로를마주보는찰나,저릿한슬픔이밀려와긴여운을남긴다.한작가가한걸음씩자신만의세계를넓혀가는모습을지켜볼수있다는것.그것은동시대젊은소설을따라읽는독자만이누릴수있는기쁨이자특권이분명하다.
-정이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