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녹아물이되면
서로가서로에게포개지는영혼들
나는뜨거운걸잘못만진다
탕에발가락을넣으면
튕겨나온다
부글거리는물거품을떠올리며
땀만뻘뻘흘린다
커피하얀김이도망가는
뱀처럼빠르게일렁이다가
잠든뱀처럼느리게길어지는것을다
보고나서야잔에입을대었다
뗀다
_「차가운사람」부분
화자는“나는뜨거운걸잘못만진다”고고백한다.그는온탕이나커피의온기도저어할만큼열기를버거워한다.또다른시「겨울에태어난사람」에는“한여름에도땀을잘흘리지않는”이가등장한다.그에겐“술을나눠마신사람”의“추위를빼앗”아갈정도로깊은한기가흐른다.그러나차갑다는것이곧냉정하고매몰차다는뜻은아니다.그들은차가운사람인동시에“누군가가목뒤로삼킨불/꺼내려고”그것을“만져보고싶”(「차가운사람」)어하는사람이고,자신안의“겨울을식탁보처럼펼”치고“눈사람을식탁에앉”(「겨울에태어난사람」)히는사람이다.조해주시의‘차가운사람들’은함께뜨거움을견디는대신자신의차가움을나눠줌으로써“조금덜뜨거”워“이제마셔볼까”(「차가운사람」)싶은온도를만들어내고,자신처럼차가운누군가와“함께녹아내리는기쁨에대하여상상할수있”(「겨울에태어난사람」)는능력을갖고있다.그들이타고난성정과달리‘배운다정함’을품고있는까닭은얼어붙었다녹아본경험이있기때문이다.
언우물
주먹처럼웅크린몸으로그는
그안에잠겨있었지
(……)
새의목표는
깨뜨려서깨우기
그건그새만의방식이어서
그는뒤척였지
바깥에서보면악몽에찡그리는사람처럼보였지만
핏줄처럼금이자라고있었지
꿈을깨고나오는이마의분명함으로
있는힘껏밀었지
넘어질것이넘어질때까지
엎질러질것이엎질러질때까지
_「유리된느낌」부분
“언우물”안에“주먹처럼웅크린몸으로”잠들어있는사람은“봄가을새가와도”“목마른여름새가테두리에앉아고개를갸웃해도”“녹지않”는다.그러나“감나무잎하나떨어지”는겨울이오자그는처음으로“뒤척”인다.얼어붙은몸을녹인것은다름아닌“새”다.이시의새는“작은부리로”“나뭇가지/돌멩이/오디/총/콩/캔”따위의것들을“하나씩”“있는힘껏”밀어넘어뜨”린다.“깨뜨려서깨우기”가“그새만의방식이”므로.얼어있던‘그’가긴잠에서깨어날기미가보이자새는다만“온몸을털어내”고“그간의일을다잊은듯이날아”간다.
이번시집곳곳에날아다니는‘새’는한껏가벼워진언어로냉담한세계에온기를물어오는시인의분신같다.「반려」는“그는새를풀어놓고키운다”라는첫문장으로시작한다.이말에갸우뚱하게되는것은“새들은일년에하루만그의정원에머문다”라는문장이곧바로이어지기때문이다.비록새와함께하는날은일년에단하루뿐이지만,화자는새를떠올리고,새가남긴흔적을상상하고,새가흘린깃털을주우며“이게새와사는게아니라면……”하고생각한다.그렇게일년이지나고“어느새돌아와가만히가슴팍을두드리는기척”은잠든그에게“생일축하해”하고인사를건넨다.
그렇다면세계와적극적으로부대끼지않으나언제나함께하고있다는감각속에서새로이태어나는화자들을이번시집의주인공이라고말해볼수도있겠다.새가앉았다간자리에남겨진차가운사람들을마주하고있으면,“눈이녹으면뭐가되지?”(「눈빛보내기」)라는물음이자연스레잇따른다.누구나알고있다시피눈이녹으면물이된다.그래선지마치물처럼떠밀리고부딪치고밀려드는감각이다수의시에등장한다.식당문이열릴때마다밀려드는사람들(「강변식당」)이나새벽의실내수영장에서물살과함께밀려나는바깥의감각(「생존근육」),바람이“밀어내는대로/휘어지”는나무들(「느낌온도」)이그것이다.“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인사하다가이마가서로부딪치기도하”(「주말농장」)지만“부딪치면찌르르울리는것이있다”(「야외석」)는것을알기에밖으로향하는존재들이다.특히이시집의후반부에수록된세편의연작시〈보이지않는물〉은경계를넘어서는물의특성을더욱선명하게드러낸다.
사실영훈과나는쌍둥이였고,사람은잠든상태가기본이라고한다.발디딜곳없이헤매다가하얀네모안으로들어가쓰러지면그때진짜이야기가시작되는거라고.점점더깊이
이상해……참이상하단말이야……머리만대면파도가밀려온다.나는나의영혼을자꾸영훈이라고한다.이름을조금씩틀리게말하는습관이있다.
_「보이지않는물」(70쪽)부분
이시에서“무용수영훈이등장하는”“소설을읽는”화자는어느덧소설속으로들어가영훈과함께“해변에앉아있다”.“영훈은물처럼부드러운몸짓으로빠르게넘어가는페이지위를뛰어다니”고,“발을헛디”딘‘나’는“난데없는장소에떨어”져“모래위에한글자처럼누워있다”.그렇게텍스트의일부가된‘나’는“사실영훈과나는쌍둥이였”다는사실을깨닫는다.더나아가보이지않는“파도가밀려”오는순간,‘나’는자기자신의영혼조차타자(영훈)의이름으로부른다.그렇게‘나’가소설속인물과완벽히겹쳐질때우리는‘나’의영혼위에포개진다.
번번이얼룩진자리를씻어내고
다시시작하는마음으로
‘나’라는정체성에서미끄러져타인과완전한하나가되어보는상상은이땅에서살아가는모든생명이끊임없이순환하는존재라는믿음과맞닿아있다.그것은다른존재에감응하려는노력을지속하겠다는다짐이다.“한번도만난적없는사람을마주할수있다”(「고양이가그려진종이」)는각오는거창한신념보다“장미화단을본적없는사람도장미를그릴수있다”는사소한시도에서비롯한다.시인의말처럼“하얀마음”이란“어떤오염에도물들지않는/마음”(「음각」)이아니라,“계속더러워지는마음,그러나씻을수있는,회복가능한마음”(‘미니인터뷰’에서)이기때문이다.“하얀마음을가지게해주세요”라는바람말고는아무것도바라지않는그의시속에서우리는언제고다시시작할수있다.
그가꿈꾸는책은“열려있으니까언제든지와서있어”라고초대하는“주인없는아지트”,“펼친책에얼굴을파묻”으면“다시떼어낸뺨에는옮은문장이/말투가/까맣게새겨지”(「열린공간」)는시집이다.시인의마음에하얀색음각으로새겨진문장이다른이의마음에검은색양각으로옮겨가는일은놀랍고도아름답다.지금펼쳐놓은조해주의시집에서어떤문장이옮겨왔다면우리는겹겹이물드는하얀마음의공동체에도착한것이다.
_오연경,해설에서
·조해주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가벼운선물』이후4년만의신작시집입니다.이번시집의다정한거리감이퍽인상적이에요.무심하지도호들갑스럽지도않은그간극이기껍게다가왔는데요.이러한시적태도를취하게되기까지그뒤편의시간은어땠나요?
그간생애마지막졸업을했습니다.두번째시집『가벼운선물』이박사과정에입학한해가을에나왔고,이번시집은졸업한해가을에나오게되었네요.‘척척박사’가되면좀똑똑해지는줄알았는데그렇지는않았고,다만논문을쓰는동안저자신과대면하게되더라고요.좋으면좋은대로싫으면싫은대로숨기지를못하는,하나는알고둘은모르는단순한동물.그런얼굴이거울속에있었어요.그걸보고나니그전처럼은안되더라고요.좋아도선뜻좋다고못하고,싫어도곧장싫다고못하게되고요.그러면이제현대에맞는복잡한사람으로진화하고있느냐하면또그것도아니에요.이러지도저러지도못하고있네요.다정하지도무심하지도못하는인간.멀리하지도가까이하지도못하는인간.졸업을하고나니다시스무살이된느낌이군요.막막한와중에이런저런일을하며정신없이봄과여름을보냈어요.그간극이그래도‘다정’으로묶일수있다면다행이겠고요.
Q2.이번시집은일반적인시집구성과달리부가나뉘어있지않습니다.지난두시집도마찬가지인데요.굳이부를구분하지않은이유가있는지,그렇다면어떠한흐름을염두에두고시순서를배치하셨는지궁금합니다.
어쩌다보니이번까지세권모두부를나누지않게되었는데요.꼭그렇게하겠다고마음먹은건아니지만이유를붙여보자면이러합니다.비유하자면부를나누는일은산책로에쉼터를놓아두는것과비슷한데저는독자분들이멈추지않고한번에걸어가시면좋겠더라고요.물론시집한권을단숨에읽는건여러모로힘에부치기도하고덜즐거울지도모르지만요.제가떠올린독자의형상도결국걷는사람이었어요.첫시집부터시적화자가산책자라고여겼고,그이동경로가실내와실외를오가며목차에그대로드러난다고봤고요.대략이번시집에서도화자가실내와실외를오가는가운데전반부에는온도가낮고정적인시편이놓여있고후반부에는모임의이미지나관계를다룬시편이모여있습니다.
Q3.이번시집에는제자리에있는듯하지만미묘하게바뀐온도를포착하는장면이자주눈에띕니다.분명히무언가바뀌었음을감각하게되는순간에대해들려주세요.
두번째시집과세번째시집사이에제게일어난중요한일하나는조카가둘이나생겼다는것인데요.가까이살아서꽤많은시간을함께보내다보니알게됐어요.사람은생각보다많은것을타고나는구나.첫째는책을아주좋아하고많이읽는대신먹는데에는별관심이없어요.둘째는그반대고요.제어린시절은따로영상기록이없어어머니의증언에만의존할따름이지만아마제가문학으로오게된데에도제힘은미미하지않았을까싶어요.누군가를사랑할때자기의지가무용하듯이태어나기전부터지니고온사랑에떠밀려여기까지왔던것이아닌가.그렇다면이번생에서제가바꿀수있는몫은아주한끗에불과하겠죠.물론언제나그렇듯그작은한끗이가장바꾸기어렵고,또가장결정적인변화이기도할테고요.
그래서그한끗에자꾸눈이가요.크게달라지는일은좀처럼없으니아주조금달라지는쪽에관심을기울이게돼요.최근오랜만에발목을삐었는데요.보도블록에서아스팔트로발을내딛다가순간발목이꺾였는데,높이를가늠해보면한뼘도안되는차이였거든요.어느쪽을바닥으로감지하고있었는지착각한것이그만큼큰충격으로온거죠.미묘한변화도그렇게별것아닌듯보이지만큰압력을품고있다고생각해요.
시로예를들자면한권의시집안에서도시와시사이에어떤간격이있어요.예컨대「열린공간」의“열려있어밀면열려”와「문고치기」의“생활하려면막아둘수없어서어쩔수없이열어둔것이다”사이.무한히열어두는마음과최소한으로열어두는마음사이의온도차같은것이지요.
Q4.이번시집에서유독마음이가는시가있다면그이유와함께소개해주세요.
‘시인의말’과「하안(河岸)」사이에도어떤낙차가있는데그낙차때문에지금은「하안(河岸)」에마음이가네요.하안은제가어렸을때살던동(洞)의이름이에요.어머니가제출생지를서울이라고하셔서평생그렇게알고살았는데얼마전기본증명서를뗄일이있어보니광명에서태어났더라고요.지역번호를똑같이02로쓴다는점에서는같은지역이라고‘칠’수도있으려나요.따지고보면경계란원래거기있던것이아니라누가어디쯤에서한번그어둔것이겠지요.저는이제“사랑이끝나면영영시작되지않는사랑도있다”라고말하던「하안(河岸)」의세계에서“한번은들렀다나온마음”(‘시인의말’)으로족한만큼의온도변화를겪었어요.그렇다보니제게있었던「하안(河岸)」의마음이어쩐지조금멀게느껴져서자꾸마음이쓰이네요.
Q5.“하얀마음을가지게해주세요”라고기도하는사람들의마음은비슷하고도다를것같아요.하얀마음의공동체에도착할독자들에게인사한말씀건네주세요.
“하얀마음”은착한마음이나고결한마음은아니고요.속죄하는마음도아니고요.계속더러워지는마음,그러나씻을수있는,회복가능한마음에가까워요.비오는날장화를신는건젖지않아서가아니라젖어도금세닦아낼수있어서잖아요.새것이될수는없어도계속‘다시’돌아오는힘,그런게아닐까싶어요.
독자분들께제시가바닷물처럼짰으면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