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손더스
저자 : 조지 손더스 George Saunders
“현존하는 영어권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라 불리는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1996년 첫 소설집 『악화일로를 걷는 내전의 땅CivilWarLand in Bad Decline』을 출간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소설집 『패스토럴리아』(2000)는 〈밀리언스〉 선정 2000년대 위대한 책 5위에 올랐으며 『12월 10일』(2013)은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폴리오상과 스토리상을 수상했다. 첫 장편소설 『바르도의 링컨』(2017)은 출간 즉시 아마존과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워싱턴 포스트〉 〈USA 투데이〉 등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 작품은 2017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우화인 『여우 8』, 시러큐스대학교에서 25년간 해온 창작 강의를 집대성한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등을 발표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22년 발표한 『해방의 날』은 날카로운 유머와 거침없는 상상력이 빛나는 아홉 편의 단편이 담긴 소설집이다. 권력과 윤리, 그리고 진정한 정의에 대하여 묵직하고도 시의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이 소설집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타임〉 〈뉴요커〉 〈오프라 데일리〉 등 유수의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역자 : 정영목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패스토럴리아』 『바르도의 링컨』 『로드』 『제5도살장』 『에브리맨』 『울분』 『미국의 목가』 『책도둑』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호밀밭의 파수꾼』 등이, 지은 책으로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등이 있다. 『로드』로 제3회 유영번역상을, 『유럽 문화사』로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해방의 날 9
과감하게 행동하는 엄마 99
사랑의 편지 143
일터에서 생긴 일 159
참새 199
구울 213
어머니날 263
엘리엇 스펜서 305
나의 집 349
옮긴이의 말 361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 버락 오바마 선정 올해의 책
타임, 뉴요커, 오프라 데일리, USA 투데이, 가디언, 에스콰이어, 뉴스위크,
커커스 리뷰, 북리스트, 라이브러리 저널, NPR 선정 올해의 책
여기 적힌 말들이 낡은 세계를 무너뜨리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해방의 날』은 아직 해방의 날을 맞이하지 못한, 어딘가에 갇힌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표제작이자 작품의 문을 여는 소설 「해방의 날」은 과거의 기억을 삭제당한 채 ‘벽’에 고정되어 부유한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 ‘공연’을 펼치는 ‘이야기꾼’들을 그린다. 주인공 제러미는 운터마이어 가족에게 고용된 이야기꾼으로 그들에게 조종당하며 살고 있지만, 이 일에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끼며 밤마다 따로 자신을 불러내 로맨틱한 이야기를 해주길 요청하는 미시즈 운터마이어를 남몰래 흠모하기까지 한다. 또다른 단편 「구울」은 바깥세상과 차단된 지하의 테마파크에서 ‘악귀’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브라이언의 이야기를 그린다. 테마파크의 일꾼들은 언젠가 찾아올 ‘관람객’을 기다리며 최선을 다해 각자 맡은 역할을 연기한다. 이상한 건 그 누구도 실제 ‘관람객’을 본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왜’라는 질문은 금물. 의문을 품거나 공동의 목적의식을 상실한 사람은 동료 일꾼들의 발길질로 처단당한다. 소설집에서 가장 독특한 형식으로 쓰인 「엘리엇 스펜서」의 화자는 기억은 물론 언어조차 잃었다. 정해진 루틴에 따라 하루에 몇 개의 단어를 학습하면서, 목적을 모르는 시위에 참여해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선전하는 일을 강요당한다.
위의 ‘감옥’들이 일면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 모습이라면 「사랑의 편지」의 세계는 현실과 밀접하여 더욱 공포스럽다. 때는 202X년,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손자에게 조심스러운 말을 골라 편지를 쓴다. 당연하고 굳건해 보였던 사회의 시스템과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한 어리석은 자의 손안에서 어떻게 무너졌는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었으며, 이제 더는 할 수 없는지. 그런가 하면 「과감하게 행동하는 엄마」의 화자를 가둔 감옥은 바로 그녀 자신이다. ‘자아’라는 감옥에 갇힌 채 자신만의 세계에서, 남들에게 읽히지도 않을 글을 쓰는 이 여성은 누군가 길에서 자신의 아들을 밀쳐 다치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그러나 이 분노는 가선 안 될 방향으로 향하고 그녀는 끝없는 죄책감과 도덕적 함정 속에 스스로 몸을 던지고 만다. 이들을 가둔 ‘감옥’은 갇힌 이들로 하여금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들고, 함께 있는 이들을 원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절망적이면서도 무척이나 현실적이다.
모든 못난 존재들에 바치는
지극히 손더스다운 사랑의 편지
인물들은 이처럼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보이는 고된 상황 속에서도 씩씩하게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 ‘남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애쓴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의 ‘나’는 회사 비품을 조금씩 훔치고 있지만, 저보다 더 큰 횡령을 하는 사람이 사내에 있단 사실을 알게 되며 그것을 빌미로 자신의 곤란에서 벗어나려 한다. 「어머니날」의 ‘나’는 오래전 제 남편과 바람을 피웠던 여자 ‘데비’를 길에서 마주치고 그녀의 삶이 얼마나 불행했는지를 떠올리며 상념에 잠긴다. 「참새」는 틀에 박힌 말만 하는 지루한 여자가 같은 직장의 마마보이 남자를 사랑하게 된 일화를 긴장감 있게 그려내며 뜻밖의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소설 속의 모든 인물은 계속해서 현실을 부정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진정으로 비관하지조차 못하기에 굴욕적인 상황을 감내하고, 때론 살아 있는 재앙처럼 굴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끝끝내 사랑스럽다.
『해방의 날』 속 인간들은 대부분 예술이나 창작을 한다. 이들은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연기하고 마임하고 소설과 에세이와 편지를 쓴다. 심지어 예술이 그들을 가두는 감옥인 마당에, ‘벌받기’를 도저히 멈출 수 없다는 듯 끝없이 주어진 일을 수행한다. 그 지난한 반복 속에서 어쩌면 ‘해방의 날’ 같은 건 쉽게 오지 않으리란 메시지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손더스의 『해방의 날』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글을 써도, 단숨에 세계를 구원할 ‘해방의 날’ 같은 것은 오지 않는다는 진실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감옥’은 이미 도래한 현실이고,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다가올 미래라는 진실을. 그러나, 그럼에도, 그 반복이야말로 ‘해방의 날’을 위한 유일한 단서임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손더스 역시 그 반복의 주체이며, 작품을 읽는 이들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열린 마음으로 이 세상에 발을 디뎠다면 누구나 감옥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인간들을 점차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반복되는 모든 삶의 고통 사이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짚어내고야 마는 그의 능력은 이 엉뚱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온기로 전해진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바로 아름다운 “샛길”. “그리고 조금 웃고 그 길로 간다”.
책 속에서
왜?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세상에는 이들 모두를 평화롭게 감당할 만큼 부와 아름다움이 충분치 않은 것인가, 그렇게 모두를 감당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할 때? (……) 평화는, 아무래도, 인간의 최종 목표는 아닌 듯하다, 남는 시간에는 (소중한 가정에서, 개인의 마음에서) 가끔 그렇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해방의 날」, 60쪽
어떤 나이에 이르면 시간이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걸 알 수 있지.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오늘 아침에 튀어나가던 그 사슴들 같은 순간을 말하는 거야. 네 어머니가 태어나는 걸 지켜보고, 여기 식탁에 앉아 전화벨이 울려 어떤 아기(너)가 태어났다는 말이 들려오기를 기다리고. 또는 우리 모두 포인트 로보스로 하이킹을 갔던 날. 그 엄청나게 시끄러운 바다표범, 네 누나의 목도리가 떠내려가고, 그 시커멓고 소금투성이인 큰 바위까지 떠내려가고, 네가 그것 대신이라며 몬터레이에서 사주었던 것, 네가 네 착한 마음으로 누나를 얼마나 기쁘게 해주었던지. 그런 것들은 진짜였어. 그게 사람이 얻는 거지(그게 다야). 다른 모든 건 그런 순간을 훼방 놓는 만큼만 진짜야. 「사랑의 편지」, 148~149쪽
사실 그런 어릿광대 같은 자가(이 편지는 읽은 뒤에 없애주기 바란다) 시간의 시련을 견디어낸 그 고귀하고 또 강력해 보이던 것들, 말 그대로 우리 삶에서 매일 우리와 함께 있던 것들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다른 말로 하면, 그 심오한 뜻이 담긴 선물을 너무 당연하게 여겨온 거지. 그 선물이 요행이고, 키메라이고, 합의와 상호 이해에서 탄생한 경이로운 우연적 결과물이라는 걸 몰랐던 거야. 「사랑의 편지」, 151쪽
나는 그저 역사가, 실제로 우리에게 올 때는, 역사책을 읽은 것에 기초하여 예상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야. 역사책에 나오는 일들은 늘 아주 분명해. 그걸 보면 자기가 그런 상황에서 할 일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지. 「사랑의 편지」, 153쪽
매일은 어떤 날로 시작하고, 소중한 독자여. 이날이 시작될 때, 우리는 이날을 오늘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매일, 우리는 잠에서 깨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면서 오늘이 그날일 수도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날? 그건 알려져 있지 않고, 그건 내가 찾아내야 한다, 이제 빨리.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다가오는 나의 오늘들 각각을 무엇에 쓸까? 「구울」, 260쪽
우리가 만든 이 세상이 연인들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일까?
나는 살아서 그것을 보지 못할 거고, 분명히 다가올 발길질이 두렵지만, 여기 적힌 말들이 낡은 세계를 무너뜨리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구울」, 260~261쪽
나는 아직 서쪽 나무들 이름 서쪽에 있는 나무들 이름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앞으로 곧 배울 수 있다 늘 배우고 있다.
안다: 밤, 별, 문
안다: 걷는다, 숨는다도 안다
안다: 샛길 그리고 조금 웃고 그 길로 간다. 「엘리엇 스펜서」, 348쪽
그 집은 늘 댁의 주위에서 무너져내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게 우리 주위에서 늘 무너져내리고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생기가 넘쳐 그걸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요. 나는 지금은 내 몸으로 그 말이 진실임을 느낍니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두렵습니다, 밤에.
「나의 집」, 3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