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뱀이 있던 자리 - 문학동네 동시집 93 (양장)

초록 뱀이 있던 자리 - 문학동네 동시집 93 (양장)

$12.50
Description
초록 바람이 불었어
초록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들판을 마구마구 뛰어다녔어
농부 시인 김철순이 정성껏 일군 연초록빛 서정
김철순 시인의 두 번째 동시집 『초록 뱀이 있던 자리』가 출간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등 굽은 나무」,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사과의 길」 「냄비」 등으로 동시 독자들을 사로잡은 동시집 『사과의 길』 이후 10년 만이다. 긴 시간 공들인 만큼, 땅을 일구는 농부이자 글을 일구는 시인으로서 세상 만물을 귀하게 대하는 사랑이 더욱 깊고 지극해졌다. “길에서 마주치는 이름 모를 들꽃과 돌멩이와 벌레에게 먼저 다가가 고맙다고 말하며 마음의 온기를 전하는 것, 이것이 시인의 사랑법”이라는 함기석 시인의 말처럼, 자연에 대한 순수한 경탄, 삶을 대하는 아이와 같은 호기심의 바탕에는 사랑이 있다.

만나서 반갑다고
얼굴을 비비고
또 비비고

냉이꽃 노랗게
꽃다지 꽃물 들었어

꽃다지꽃 하얗게
냉이 꽃물 들었어

_「꽃물 들었어」 중에서

시인은 작은 것들에게 먼저 다가가 얼굴을 비빈다. 서로를 서로의 색으로 담뿍 물들인다. “동그란 돌을 주워다가/ 목욕도 시켜 주고/ 로션도 발라” 주며 아끼기도 하고(「멋진 돌을 키우는 법」), 작은 채송화를 두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기니 “저 꼬맹이에게는/ 심부름 같은 거/ 시키지 말자”고 당부하기도 한다(「채송화」). 시인의 마음은 “덩치 큰 코끼리가/ 스무 마리쯤/ 놀러 온다고 해도 걱정” 없을 만큼 넉넉하기에(「오래된 집」), 모든 존재를 폭넓게 포용할 수 있다. 한여름의 들판처럼 올곧고 푸르른 시정이 독자의 마음을 밝힌다.

저자

김철순

저자:김철순
1995년제1회지용신인문학상에시「가뭄」외1편이당선되었고,2011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동시「사과의길」「냄비」가,경상일보신춘문예에동시「할미꽃」「고무줄놀이」가나란히당선되었습니다.동시집『사과의길』,시집『오래된사과나무아래서』를썼습니다.

그림:최혜진
대학에서조소를전공하고디자이너로일하다오랜꿈이었던그림책작가가되었습니다.쓰고그린책으로『포도방방』『엄마가왜좋아?』『아빠와토요일』,그린책으로『파릇파릇풀이자란다』가있습니다.이책의그림을그리는동안시인의신비롭고따스한눈길을따라가며행복했습니다.독자들에게이런행복이잘전달되었으면좋겠어

목차


시인의말

1부뒤죽박죽내가태어난봄날
이른봄|뒤죽박죽내가태어난봄날이야기|초록바람|햇볕좋은날|멋진돌을키우는법|볼펜은|맹꽁이아니야?|멀뚱멀뚱|고양이울음|봄밤

2부염소흉내를내며놀았어
어느날아침고양이는|풀밭에서호랑이가어흥|통통통살찐수박이|5교시|매미|오리는꽥꽥긴울음줄을만들고|나리꽃이넘치네|달리는소문|말을잘못해도괜찮아,야옹

3부아무도보지않을때훌쩍
오래된집|문이있어요|잠이오지않는밤|첫눈오는날|눈사람|생각들모여모여|심심한고양이|채송화|울음나무

4부고래가저먼데서손을흔들고
베개|11살인내가오줌을싸고말았어,말이돼?|뻥치기엄마|ㄱ자놓고낫을모르겠다고요|내동생은1학년|늦잠을위한변명|무지개|감자한마리|쑥떡

5부은비야,부르면
목련꽃|벚꽃|강아지풀생각|꽃물들었어|여치|초록뱀이있던자리|깃털|거미의집|여름눈사람|은비야,부르면

해설_함기석(시인)

출판사 서평

풀이염소를삼키고고양이가멍멍짖었지
세상의질서에균열을일으키는극적인역발상

김철순시인의동시에는눈을빛내며슬쩍웃음짓는듯한장난기가담겼다.시인의천연덕스러운상상은현실의규약을훌쩍뛰어넘어독자를낯선곳에데려다놓는다.무엇이든가능한시의세계에는무한한상상과자유가넘실댄다.

이제염소는
무서워서풀밭에
다시는오지못할거야

호랑이처럼커진풀들이
어흐흥입을쩍벌리고
염소를한입에꿀꺽,
삼켜버릴지도모르니까

_「풀밭에서호랑이가어흥」중에서

염소가마음대로짓밟고뜯어먹던풀은어느날엔가몸집이점점커져서호랑이처럼된다.이제염소가도리어풀에게잡아먹힐까봐가까이가지못하는역설적인상황이펼쳐진다.강자와약자의구분을가뿐히뒤집는시적상상이통쾌하다.공고하던질서가무너져“세상이잠깐,/고장”나면좀어떠한가(「5교시」).거기에서부터또다른꿈과가능성이시작될수도있다.

어디로갈지는나중에생각하고,일단출발!
어린이의갑갑한마음을풀어주는기운찬상상

어느날아침고양이는
어떻게말했었는지잊어버렸어

어흥,이었나?
멍멍,이었나?
찍찍,이었나?

_「어느날아침고양이는」중에서

고양이는하루아침에제말소리를잊어버렸다.“이제고양이는/어떤말로울어야하나?”고개를갸우뚱하지만,나자신을잊었으니이제‘나’가아닌다른무언가가되어보아도좋을것이다.“기존의말을잃어버리고싶은욕구,그리하여어제까지와는완전히다른존재가되어다른말을하고싶은욕구”(함기석)는정해진대로만울어야한다는,단단한고정관념을파괴한다.고정관념이사라진자리에는어디로든갈수있는수천갈래의길이뻗어있다.“어디로갈지는/나중에생각하고,/일단,출발!”을외치는기세가어린이답고산뜻하다(「베개」).

할수없이침대를타고
노를저어바다로나아갔어
이럴땐도망가는수밖에

바다에는갈매기가끼룩끼룩
물고기떼가나를따라오고
고래가저먼데서손을흔들었어
바닷물이튀어옷이축축했지만
찝찝하지않았어
정말신이났어

_「11살인내가오줌을싸고말았어,말이돼?」중에서

실수로오줌을싸고만어린이(「11살인내가오줌을싸고말았어,말이돼?」),엄마의잔소리와허세가“혹시/뻥,아닐까?”의심스러운어린이(「뻥치기엄마」),“낫놓고/ㄱ자도모른다고/할머니는그러는데”대체낫이란게무언지알수없는어린이들은답답한현실을뒤집을몽상과상상의세계로떠난다(「ㄱ자놓고낫을모르겠다고요」).그곳에서실컷놀고는또다시“한걸음/한걸음/또박또박”일상을걸어갈힘을얻는다(「내동생은1학년」).

없는뱀이더무섭다없는뱀이더오래산다
부재하기에더선명해지는존재감

시인은“햇빛을/한가닥/한가닥”(「심심한고양이」)세는예민한감각으로대부분의사람들은심상히지나칠무언가의기척을알아챈다.없는자리를더유심히보는시인이기에,마음한구석의빈자리는더더욱또렷하게느껴질수밖에없다.

자꾸눈길이간다
스르르륵소리도난다
혀도날름날름거린다
없는뱀이더무섭다
없는뱀이더오래산다
_「초록뱀이있던자리」전문

이곳은비어있기에더신경쓰이고,무엇으로도다시채울수없다.바로사랑이머물렀던자리이다.20년전어느날,시인의곁에문득찾아와서오래머물다떠나간강아지,은비가남긴자리.시인은여전히없는은비를느끼고,없는은비를부른다.은비는시인에게돌보아주어야할아이이기도,항상함께하는친구이기도,삶을살아가는방식을알려주는선생님이기도하였다.그런존재를잃은시인의슬픔이얼마나클지짐작하기어렵다.

은비는나에게너무나많은걸가르쳐주었어요.그러니까사랑하는법을요.세상의모든나무들,새들,나비들,고양이들,눈사람들,풀들,무지개들,구름들…….이름을다불러주진못하지만이세상을함께하는모든것들과친구가되었어요.나랑같이살아줘서고맙다,고맙다,마음속으로얘기해요._김철순‘시인의말’에서

하지만시인은그저슬픔에만머물러있지않는다.“슬픔의경험을통해시인은자신을더깊이바라보고자연과세계를다시생각한다.”(함기석)무서워하던길고양이들에게먹이를주고,길을가다쪼그리고앉아풀꽃을살피며시를쓴다.세상에대한더폭넓은이해와사랑으로쓰여진동시들이『초록뱀이있던자리』에차곡차곡모였다.

노란꽃등불처럼다정하고
통통통배불뚝이수박처럼재미있는일러스트

최혜진화가의다정하고편안한그림은독자가『초록뱀이있던자리』를조금더가까이두고이해할수있도록돕는다.화가는시인에게어른의원숙한지혜와어린아이의천진한동심이공존함을알아채고,두이미지가시집안에서조화롭게표현될수있도록고민하였다.그덕분에시한편한편마다꼭어울리는그림들이다채롭게실렸다.통통튀는듯한재치있는움직임,시적정서를차분하게전하는풍경들이“아카시아꽃향기에/푹,절여진/봄밤”(「봄밤」)처럼시의세계에독자를푹잠기게한다.

*인증유형:공급자적합성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