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 - 문학동네 시인선 219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 - 문학동네 시인선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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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뚫고 지나갔던 공기가 다시 모이고
뚫고 갔던 몸이 다시 온전해지기까지”

고통과 상처 위에 돋아나는 '너와 나'라는 감각,
부스러지고 깨어진 세계를 메우는 회복의 언어
저자

손미

저자:손미
2009년『문학사상』으로등단했다.시집『양파공동체』『사람을사랑해도될까』,산문시집『삼화맨션』,산문집『나는이렇게살고있습니다이상합니까?』가있다.김수영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마주보면서멀어진다
몽돌해수욕장/물개위성4/물/점/포도/침/주전자/잘게부서지는컵/혼잣말을하는사람/점점크게/역방향/모빌

2부별처럼터진몸들에게
빗방울/파라라라라라/부드러운계단/충혈/정물/못봤으면서/이어지는사람/무생물적회의/수술/새를먹을때내가울까요?/오솔길/텔레파시연구회/오래된고래

3부잉크는번지고커지고거대해져
불면/생강/나의입구를서성이는동안/카페트/시럽은어디까지흘러가나요/건물장례사/회복의책/흰점/필담/불타는의자/원숭이옆에원숭이/NiVolasInterparoli/별자리

4부세계의빙과들이녹는다
세번째이름―희준에게/풍선/생각하면아직열이나서/내린다/다큐멘터리/동시에/전염/네모의공중/토마토/고체/마지막얼음/오로라는못봤어도

해설|나이면서너이기_김보경(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우리는공간을메우기위해계속말을했다
너와나의거리가너무멀어서
사람이지나가고
잔이깨지고
피투성이바람이지나가고

우리는멀어지는사이를메우기위해
계속말을했다
말은떠다니고
그러다
너는박차고일어나
걸어나가고

말이끝나면정말끝이날까봐
나는계속말을했다
_「혼잣말을하는사람」부분

‘너와나’가있다.둘은모여서‘우리’를구성한다.1부‘마주보면서멀어진다’에는주로‘너’의안부를묻고확인하려는‘나’의시도가담겨있다.아마도세상에존재하지않는듯한‘너’를찾아헤매며“네가돌이됐다고”하면“아무돌이나붙들고안아”보고(「몽돌해수욕장」),“깨진너에게/나의얼굴을/맞대고문질러보”(「주전자」)기도한다.「혼잣말을하는사람」의화자는“이쪽과저쪽”이갈라지고“하늘이찢어지는것을보면서”필사적으로“연고처럼끈적한말”을건네고있다.이렇듯멀어져버린‘너’와의간격을좁히기위해노력하는사이,화자는쪼개지고쪼개져“원자가되고”“소금한개의알갱이”(「점점크게」)만큼작아지는무력감을느낀다.김수영문학상수상당시“시를쓸땐죽었던심장과눈동자와입술과손가락에다시생기가오르는것을느낀다”고소감을밝힌시인의이번시집에서는,생기를가진것들이빛을잃고사라지는일들이반복된다.도처에죽음이있음을,그럼에도자신만은태연하게살아있음을아프게감각하며“하루는죽고싶다가/하루는살만하다가/매일/알알이살”(「포도」)아간다.

태어나려는뱃속빗방울과
죽으려는사람이한식탁에서고기를먹고있음

오래전부터죽는다던사람이죽지않고있음

(……)

괴롭히는사람은언제부터괴롭히는사람이되었을까?

마취된소는내뱃속으로떨어졌음

나에게다정해줘
안그럼죽어버릴거야
아무도구할수없음
움직일수없음

뱃속에서마취된몸에팔다리가생김
죽겠다던사람이계속이어지고있음

아무도구할수없음

사람은계속이어지고있음
_「이어지는사람」부분

상실을자각하는일은다른생명체에가해지는폭력에관한사유로이어진다.2부‘별처럼터진몸들에게’는인간이인간이기때문에필연적으로야기하는폭력을다룬다.“사람이사람에게왜그럴까”(「파라라라라라」)사유하고,“괴롭히는사람은언제부터괴롭히는사람이되었을까?”(「이어지는사람」)자문하는사이사이에죽음이계속된다.수많은사람혹은동물이매장당하거나학살되고,유희를위해희생된다.「수술」의화자는“조용히끌고온잘못들을머리맡에개어놓고”한사람이저질러온죄를해부하고복기하면서,다른존재의고통에기대어명맥을이어온인간이라는존재의무게를느낀다.

이러한고뇌는3부‘잉크는번지고커지고거대해져’를통해시쓰기로발화되기시작한다.3부를여는시「불면」의“이렇게사는게맞습니까”라는질문을시작으로푸른멍위에치열하게눌러쓴듯한시편들이이어진다.일상속에서피해자와가해자의경계가모호해지고,타인에게가하는폭력이만연해지는와중서로가서로에게긋는선은때로는교차되고때로는상대의영역을침범하며“엉켜서/밧줄처럼뻑뻑해”(「카페트」)진다.어떠한의무나결심을느낀듯“백지위에서깊고,두꺼워”진화자는“마음에서툭하고떨어”(「흰점」)지는말들을고요하게기록해보려한다.“이제다시는못쓸것같”다고낙담하다가도끈질기게“몇번이나쓰고지”우며“펜을깊게눌러찍”(같은글)는다.문학평론가김보경이해설에서“상처를기록한다는것은상처에서벗어나지못했다는방증”이지만“기록을통해자신의상처를대면하며객관화려는노력”이라고짚었듯이,그렇게“상처를꾹꾹눌러”쓴행위는일종의“지혈”(「회복의책」)이되고,눌러쓴기록들은‘회복의책’이된다.나아갈힘을얻은화자는“불타는너”가있는곳을향해,“매일불타고/매일죽어버리는/거기로”(「불타는의자」)가까이다가가겠다고결심하면서‘우리는이어져있다고믿어’보기로한다.

마음에걸리는게많아

팔과팔이부딪쳐
사람들은잠시돌아보지

우리는같이있다고믿어

어떤하루는너무길어
팔에붙여보았지

긴팔사이로
못지나간바람은몸에걸려있다

팔을뻗어팔을잡았어
손바닥가득한편서풍

우리는이어져있다고믿어
_「원숭이옆에원숭이」부분

편집자와의사전인터뷰에서시인은“살아있던사람이한순간에죽어버리는것이이상하게느껴졌”던경험을이야기하며“다른방식으로존재하게된이들의흔적을찾고싶었”다고말했다.그러한마음이담긴듯한3부의마지막시「별자리」에는이따금“머리를쓰다듬고지나는거대한손가락”이등장하는데,그손가락은마치외계에서들려오는듯한목소리로“곧,만나게될거야”라고말을걸어온다.그에화답하듯,이어지는4부‘세계의빙과들이녹는다’에는현실의경계너머를응시하고자하는시인의마음이고스란히담겼다.“안과밖”의구분이모호해지고,나는흘러내릴듯이녹아“점점물렁해지면서”경계바깥으로“이제는나갈수있을것같”(「오로라는못봤어도」)은마음이된다.저마다의녹진한마음들이쌓여높다란층을이룬벽앞에선채로,「고체」의화자는‘너와나’사이를가로막은그단단한벽에틈을내보려한다.

나는담벼락에기대서
벽돌에욱여넣었던
휴지와시계와굴뚝들을
담배꽁초와한사람의얼굴과병뚜껑을
이렇게텅빈벽돌에
쑤셔넣었던일주일과
벽돌을쥐고벌벌떨던벽돌의울음이
딱딱하게박혀있는것을보면서

맨밑의벽돌을빼려고한다

거기에초를꽂고
박수를치고
칼로자르고자르고잘라
후-
불어보려한다
_「고체」부분

이러한틈은견고하게구축되어있는세계를무너뜨리는결함이아니라,그사이를촘촘하게메울새로운결심이피어나게하는기제가된다.헐거워진벽돌사이사이수많은종류의감정이충돌하고굴절되고튕겨지며오가는것을시인은헤아린다.뻥뚫린틈새를다시울퉁불퉁하게메워회복하는것이삶임을,매일새로운단념하나결심하나씩을번갈아쌓아내는것이‘너와나’가함께해야할일임을전하는손미의시가어느새뭉클하게마음을흔든다.

상처가우리를훼손하면서동시에우리를강하게만들듯,손미의시는이러한‘나’의이야기가회복하는‘우리’의이야기가될수있다는점을보여준다.‘나’와‘너’사이에얽힌의존,상처와훼손의역사를응시하고기록하는것은‘나’가언제나‘나’이면서‘너’로서존립해왔음을일깨우는일이다.그렇게만들어지는공동의삶이라는직물(textile)에짜인무늬는전에없던것일테고,기묘하고아름다울것이다._김보경,해설에서

손미시인과의미니인터뷰

1.김수영문학상을수상하신첫시집『양파공동체』와두번째시집『사람을사랑해도될까』이후5년만입니다.오랜만에시를엮는마음이남다르셨을것같은데요,소회가궁금합니다.

정말오랜만에내는시집입니다.그동안결혼을하고아이를낳아기르면서물리적으로,체력적으로시에집중하지못한시간이많았어요.그래서더욱출간을고대했습니다.시를쓰지못하는시간이길어질수록시가얼마나중요한지절실하게깨닫게되었습니다.직장에다니면서,아이를키우면서,깨지고빠져나오면서피투성이가된과정들이묻어있는시집입니다.

이번시집은결국관계에대한이야기인것같습니다.내가가해자로혹은피해자로서이세상을관통하는과정에서자연스럽게직조되는관계들이있기마련입니다.다시는만나지않을관계에도,반면아직한번도만나지않은관계에도끊기지않고계속연결되는신호가있습니다.저는그모두와‘이어져있다고’믿습니다.

2.시에죽음의이미지가자주등장합니다.이는곧살아가는일에관한회의로이어지는듯도했어요.어떤마음으로그런시들을쓰셨는지궁금합니다.

나이가들며주변의죽음을많이목격했습니다.그과정에서경험한감정들이고여자연스럽게시가되었을겁니다.불과일년전까지만해도,혹은어제까지만해도살아있던사람이한순간에죽어버리는것이이상하게느껴졌습니다.생명이끊기고,갑자기사라져버리는그런순간.에너지는어디론가이동하기마련인데,어떠한이동도없이그렇게끝나버린다는점이늘이상했습니다.죽은이는어디로가는것일까요?

다만,사라짐은실종의형식이지증발의형식은아닌것같다고생각했습니다.사람의모양을버리고다른방식으로존재하게된이들의흔적을찾고싶었습니다.이역시‘이어져있다’는믿음의방식이겠습니다.어느날지인으로부터돌고래의초음파는달까지닿는다는말을들었습니다.단지인간이그주파수를들을수없을뿐이라고.혹시그러한주파수로죽은사람들이서로대화를나누고있지않을까?그것을나의귀가듣지못하고해석하지못하는것이아닐까?이러한질문들이시집에담겼습니다.

3.제목인'우리는이어져있다고믿어'에는함께하는것에관한소망이느껴지는듯해요.어떤의미가담겨있는제목인지들려주세요.

처음생각한제목은‘회복의책’이었어요.이전에는나의아픔에집중하고수렴하는방식으로시를썼다면,이제는나의살과부딪쳐멍이들어버린타인의아픔이보입니다.내가공동체를위해,‘나’아닌‘너’를위해무엇을해왔는지돌이켜보니굉장히부끄러웠습니다.스스로어떤가치관을가지고어떤목소리를내왔는지떠올려보고,연대와수행으로시를풀어내기에는아직부족하다는생각에시가외연을크게크게돌고있었을지도모른다는생각이들었습니다.

한가지의문은여전했습니다.삶과죽음,청군과백군,남성과여성,만남과이별간에정말분명한경계가있는걸까?오로지두선택지만있는것일까?저는그런분명한경계앞에서결정을망설이는모든마음들에게이어짐을말하고싶었습니다.그러면회복할수있을것이라고희망하면서요.

4.수록작중유독아끼시는시가있는지궁금합니다.

모든시에마음이가지만아이슬란드여행후쓴시들이각별하게느껴집니다.한겨울,북반구의아이슬란드로혼자날아간적이있습니다.오후3시만되면해가지는곳이었는데요.그흐릿하게어둑한오후,중형차보다커다란얼음이떠내려가던풍경과마을꼭대기에있던조용한교회와아무것도날아다니지않던검고고요한하늘이오래도록마음에남아있습니다.그런기억들은시가됐습니다.시집여기저기에서파편처럼아이슬란드의풍경이발견될텐데,반갑게읽어주시면좋겠습니다.

5.이시집을읽을독자들께전하고싶은말씀이있으시다면부탁드려요.

종종시인인것을잊고살다가결혼을하고,직장을그만두고,아기를어린이집에보내고도서관에가더듬더듬시를썼습니다.그래서시와시사이에시차가있습니다.직장인일때,엄마일때,각각다른상태인채로다른시들을썼습니다.한권이지만여러권처럼읽힐수도있겠다는생각도듭니다.

이제이시들은제가가보지않은곳으로걸어갈테지요.걱정되면서도설레는마음입니다.누구든읽고있다면,쓰고있다면이어져있다고믿습니다.제삶의한토막을읽어주는귀한분들께감사의마음을전합니다.

시인의말

나는세상끝,벼랑으로가
팔을뻗었다

.

이어지는것이있다

2024년8월
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