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노벨문학상수상작가욘포세
시적이고음악적인문체로묘파하는인간의삶과생존투쟁,그리고죽음
“입센의재래”“21세기의사뮈엘베케트”라불리는노르웨이작가욘포세는오늘날세계에서가장널리활동하는극작가중한명으로현대연극의최전선을이끌고있다는평가를받아왔다.희곡외에도소설,시,에세이,그림책,번역에이르기까지다양한장르를넘나들며방대한작품을써왔고세계40여개이상의언어로번역되어세계적인주목을받았다.포세는1992년,2003년,2019년세차례에걸쳐노르웨이어로쓰인최고의문학작품에주어지는뉘노르스크문학상을비롯해유럽각국의주요문학상을수상했다.2003년프랑스공로훈장,2005년노르웨이국왕이내리는세인트올라브노르웨이훈장을수훈했으며,영국데일리텔레그래프가선정한‘살아있는100인의천재’에이름을올렸다.그리고2023년노벨문학상을수상했다.
그의작품은군더더기를극도로제한하는미니멀한구성,리얼리즘과부조리주의사이에서표현되는반복화법,마침표를배제하고리듬감을강조하는특유의시적이고음악적인문체를통해평범한일상이나인간관계속에서드러나는삶과죽음이라는보편적문제,인간존재에대한근본적인성찰을예리하고밀도있게그려낸다.
욘포세는1983년장편소설『레드,블랙』으로데뷔했다.1994년첫희곡『그리고우리는결코헤어지지않으리라』발표이후현재까지수십편의희곡을전세계무대에900회이상올렸고,‘입센다음으로가장많은작품이상연된노르웨이극작가’로서언어가아닌언어사이,그침묵과공백의공간을파고드는실험적형식으로‘21세기베케트’라는수식어를얻었다.2000년장편소설『아침그리고저녁』을출간하고‘노르웨이어를빛낸가치있는작품’에주어지는멜솜문학상을수상했다.이시기를기점으로희곡보다소설쓰기에더욱집중할것을선언하고,2014년유럽내난민의실상을통해인간의가식과이중적면모를비판한연작소설『3부작』(『잠못드는사람들』『올라브의꿈』『해질무렵』),2022년장편소설『7부작』등을발표했다.
탄생의아침과죽음의저녁
침묵과리듬의글쓰기로포착한전생애의디테일
바지런한산파의움직임,산모의고통어린숨,이제곧아버지가되려는남자의기대와걱정.소설은노르웨이해안마을어딘가,한살림집에서의출산장면으로시작된다.일이잘못되어아내나아이나아내와아이모두를잃을지도모른다는불안에찬남자의내적독백이끊임없이이어지고상념은분명그들을도와온갖나쁜일로부터구원해줄신에게로향한다.하지만모든일이신의뜻에따라일어난다고는믿지않는남자에게확실한것이있다면,아이가할아버지처럼요한네스라는이름을갖게되리라는것이다.미처단어가되지못한외마디모음과뒤섞인아내의비명이길게이어진후마침내아이가태어나면서초조한시간은끝난다.그렇게,요한네스라는이름의아이가태어났다.
장이바뀌고그사이긴시간이흘러,요한네스는노인이되었다.사랑하는사람과결혼해가족을이루고너무외진곳이었던고향을떠나새로운이곳에터전을잡았고고깃배를타고나가생계를꾸렸다.아내도친구도곁을떠난지금,적막하고고독하기만한요한네스의삶에서근처에사는막내딸만이의지처가되어준다.여느때와다름없는그의하루가막시작된참이다.썰렁한집안에서혼자일어나커피를마시고담배를피우고빵을먹는다.별다른기대가없는일상,모든것이평소와다름없고원래그대로인데한편으로는전혀다른듯하다.늙은몸도무게가거의없는듯이가뿐하다.눈에들어오는사물들,풍경이어쩐지너무달라보인다.요한네스는평범하기짝이없는것들을딴세상에있는것처럼바라본다.
그리고여느때처럼서쪽만灣으로산책을나간길에,페테르를만난다.같이배를탔고오십년넘게서로머리를잘라주기도했던절친한친구,그러나지금은세상에없는친구를.여느때처럼위층다락방에서잠들었다가어느날갑자기내려오지않았고그것이마지막이었던아내가집안의불을밝히고기다리다그를위해커피를끓인다.막내딸과마주치지만그가보이지않는듯지나가버린다.모든것이평소와다름없지만과거어느때와도다른이날,도대체요한네스에게는무슨일이일어난것일까?모든게그저그의상상인가?또번호없이여백으로만구분된마지막장에는어떤결말이준비되어있는가?
요한네스라는아이가세상에나온다,요한네스라는늙은어부가생의마지막날을맞이하려한다.이양끝사이의삶은요한네스의착각이나환각,그리고조각난기억들로채워진다.죽은자들이숨을불어넣어되살리는그기억은요한네스가지나온삶에서느끼지못한것들을느끼게만들고,확신했던일을불확실하게만든다.이렇듯이야기속에서삶과죽음이,물질적현실계와형이상적세계가자연스레겹친다.시간또한선적으로흐르지않아서현재와과거가,과거와미래가스며들어있다.
작품의형식또한이를구현해내고있다.이작품에는마침표가거의쓰이지않는다.쉼표로잠시침묵한뒤다음문장으로미끄러지듯넘어간다.“죽음과삶의과정이결국하나의끝나지않는문장속으로들어”와있다(정여울).아이에게아버지의이름을물려주고시간이흐른뒤그아이가아버지의이름을제아이에게물려주듯이,삶과죽음의세계는마치문장의사슬처럼서로이어지고,겹치고,스며든다.
이처럼‘저편으로넘어가는’존재의상태는연구자크뤼거가욘포세인물들의특징으로설명한‘멜랑콜리커’와도닿아있다.생각하고또생각하는요한네스와마찬가지로,이들은삶의진정한의미에대해,불안한실존에대해끊임없이사색한다.“멜랑콜리커는존재의이유와의미를고민하며,사후세계에대한답을얻을수없다는딜레마를안고있는사람이다.[그들은]과거를부정하지않고불안을받아들인다.”
“언젠가는사라져존재하지않겠지만그래여기머물러라”
가장단순한언어로만들어낸가장심오한이야기
소설의시작에서아이의탄생을앞둔아버지는말한다.거리의악사가훌륭한연주를할때,그의신이말하려는바를조금은들을수있다고,신이거기있다고.하지만사탄이이를좋아할리없으니,정말훌륭한악사가연주하려하면,늘많은잡음과소음을준비한다고.이책이만들어내는음악은특별히나직하고고요할뿐더러짧다.많은이야기를하지않는다.별다른사건이일어나지도비범한인물이등장하지도않고,화려한미사여구로눈길을끌지도않는다.무대위에서독백을들려주는배우처럼주인공내면의목소리가쉴새없이울리는데비해인물들끼리의대화는과묵하고삭막하기그지없다.침묵으로여백이깃들고,‘그래’‘아니’‘그리고’와같은단어가반복되며특별한리듬이만들어진다.무에서무로,그것이살아가는과정임을,“삶속의죽음,죽음속의삶”을이야기하는그음악은너무아름답기에사탄의방해는그저헛되지않은가.욘포세는단순하고간결한언어로심오한이야기를만들어냈다.쉼표너머의침묵,그내밀한뉘앙스를채워가는것은독자들의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