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은전투가아니다.노년은대학살이다!”
2006년에발표된『에브리맨』은필립로스의스물일곱번째장편소설이며,그에게세번째로펜/포크너상의영광을안겨준작품이다.한남자가늙고병들어죽는이야기인이소설을통해필립로스는삶과죽음,나이듦과상실이라는문제에대한예리한통찰과깊은사유를보여준다.소설은황폐한공동묘지에서시작한다.그곳에모인사람들은모두누군가의가족이거나친구들이다.그들은막세상을떠난한사람을추억하고있다.소설『에브리맨』의주인공은바로이장례식의당사자인‘그’이다.이작품은이렇게,특별하지않은,그저그런보통의존재인한남자의죽음에서시작한다.소설은노년시절의‘그’의삶에초점을맞춰그의인생전반을돌아보며,삶과죽음그리고늙어간다는것이무엇인가에대해질문을던진다.
‘그’는미국뉴저지의한유대계가정에서태어난다.그의아버지는‘에브리맨’이라는이름의보석상을운영하고있다.대공황이라는어려운시절에도손님들에게스스럼없이외상을주는사람좋은아버지,가족에게충실한온화한어머니,여러방면에뛰어나며자신에게한없이자상하고듬직한형.그는안온한가정에서충분히사랑받으며커간다.그는오랫동안화가가되고싶다는꿈을꾸고미술학교에들어가지만,세속적인데다모험을싫어하는탓에그림을포기하고뉴욕의광고회사에취직해아트디렉터로성공을거둔다.그일은그에게경제적풍요와아름다운여인들을가져다주지만,그는결혼에서만은성공을거두지못한다.세번의결혼이모두실패로끝난것.
‘그’는이제직장에서은퇴하고저지쇼의은퇴자마을스타피시비치에내려와머문다.9?11테러이후피신하듯뉴욕을떠나이곳에자리잡고그토록갈망하던그림을다시그리기시작한다.스타피시비치주민들을위한그림교실도열지만,어쩐지허전한느낌은지울수없다.그를둘러싸고있는이세계는죽어가는잿빛세계이다.이은퇴자마을에서는그사람이어떤사람이고,그사람이무엇을했는지는중요하지않다.이제그들의이력이란의학적이력과똑같은것이되어버렸고,의학적정보교환이무엇보다중요시된다.안그래도쇠약해져가는몸은잦은수술과예고없이찾아오는통증을감당하느라지쳐있는데다,느닷없는외로움과고립감은그를한없이나약하게만든다.
그러나그일은끝난것이아니라계속진행되었다.이제한해도입원없이지나가지않았다.장수한부모의아들이고,토머스제퍼슨고등학교에서공을들고뛰던때와마찬가지로변함없이건강해보이는여섯살위의형을둔동생이었지만,그는아직육십대에불과한데도건강이무너지기시작했고,몸은늘위협을당하는것같았다.그는세번결혼을했고,애인들과자식들과성공을안겨준흥미로운일자리를가졌지만,이제죽음을피하는것이그의삶에서중심적인일이되었고육체의쇠퇴가그의이야기의전부가되었다.(본문96p)
그들모두한사람도예외없이점점기억력이나빠진다고때로는농담처럼,때로는진담처럼불평을했다.또달과철과해가얼마나빠르게지나가는지모른다고,인생이이제는전같은속도로움직이지않는다고말했다.(본문108p)
가장슬프고강렬한삶,그것은바로죽음!
자신보다스물다섯살이나어린‘뇌가없는모델’때문에사려깊고,성숙하고,헌신적이었던두번째아내피비를배신했던일은그의가슴을특히쓰라리게한다.여전히자신에게위로와위안이되는딸낸시를보면그회환은더욱사무친다.게다가자신에게그토록자상했던,그리고자신이누구보다도사랑했던형하위와의관계가멀어진것도그의마음을괴롭힌다.형이자신보다건강한육체를물려받았다는이유만으로,삶에대한의욕을그만큼강하게전달하는사람이없다는이유만으로,그는그토록사랑했던형에게마저질투를느끼고,형과의관계도점점소원해진것이다.
자신이없애버린모든것,이렇다할이유도없는것같은데스스로없애버린모든것,더심각한일이지만,자신의모든의도와는반대로,자신의의지와는반대로없애버린모든것을깨닫자,자신에게한번도가혹하지않았던,늘그를위로해주고도와주었던형에게가혹했던것을깨닫자,자신이가족을버린것이자식들에게주었을영향을깨닫자,자신이이제단지신체적으로만전에원치않았던모습으로쪼그라든것이아니라는사실을수치스럽게깨닫자,그는주먹으로가슴을치기시작했다.(본문208p)
그는언제나안정을통해힘을얻는사람이었다.하지만이제‘안정’이라는것은‘정체’의다른이름이었다.그의삶에는황폐만이자리하고있었다.더이상과거로되돌아갈수는없다.현실을다시만들수도없다.이대로버티고서서다가오는삶을(혹은죽음을)그대로받아들이는것뿐.물론그에게도최상의건강과좋은몸상태에서우러나오는가없는자신감으로보낸세월도있었다.육체적매력이넘치고수많은여자들로부터끊임없는관심을받았던시간들.병이라는역경과잠복해있는불행을면제받았던시간들.하지만지금그의앞에있는것은목적없는낮과불확실한밤과신체적쇠약을무기력하게견디는일과말기에이른슬픔과아무것도아닌것을기다리고또기다리는일뿐이었다.
그러는사이친구들의죽음과병에대한소식이하나둘들려온다.그림교실에나오던한여인은병이주는육체적고통과고립감,두려움을감당하지못하고스스로목숨을끊는다.‘그’는이은퇴자마을을떠나뉴욕으로돌아갈꿈을꾼다.그곳에서사랑하는딸낸시와함께지내는꿈을.하지만피비가뇌졸중으로쓰러지면서이꿈은시도도해보지못한채허망하게깨진다.경동맥수술을며칠앞둔어느날,그는부모님이묻혀있는무덤으로향한다.그곳에서무덤파는남자와이야기를나누며그는그무엇보다도큰위안을얻는다.
그들은그저뼈,상자속의뼈일뿐이었다.그러나그들의뼈는그의뼈였다.그는그뼈에가능한한바짝다가가섰다.그렇게가까이가면그들과연결이라도될것처럼,미래를잃은데서생겨난고립감은완화되고,사라진모든것과연결되기라도할것처럼.(…)육신은녹아없어지지만,뼈는지속된다.내세를믿지않고,신은허구이며지금이것이자신의유일한삶이라는사실을의심의여지없이믿고있는사람에게뼈는유일한위로였다.(본문223p)
그러고나서그저평범한일상의일을치르듯그는수술을위해병원을향한다.그리고그누구도곁에없이홀로수술실에들어간다.자신이다시충만해지길바라면서.하지만그는결국다시깨어나지못한다.그렇게이제‘있음’에서풀려나어디에도없는곳으로들어가고만다.그토록두려워하던그곳으로.
그무겁고,무덤같고,바위같은무게는말한다.
우리모두언젠가는죽는다고.
“(이소설은)한평범한사람이늙고병들고죽는이야기이다.그리고실제로이런사람이라면딱이렇게늙고병들고죽겠구나하는느낌그대로를전달해준다.그이상도이하도아니고,넘치지도모자라지도않게딱그대로를전달해준다.괜히초연한척하지도않고,특별한의미를부여하지도않고,어떤감상에도빠지지않는다.그냥딱이렇겠거니하는거기에서한치도벗어나지않는다.그렇기때문에,있는그대로이기때문에,(…)어떤섬뜩하고무시무시한감동같은것이찾아온다.”옮긴이의말에서
필립로스는언론과의인터뷰를극히꺼리는것으로알려져있다.그런그가『에브리맨』발표후가진한인터뷰에서무엇때문에죽음이두려운가를묻는질문에다음과같이대답했다고한다.“망각.더이상살아있지않다는것,살아있다는걸느낄수없다는것.하지만내가열두살때느꼈던죽음에대한두려움과지금느끼는두려움사이의차이점은지금은현실에대한체념같은것이있다는겁니다.전에는내가언젠간죽는다는게부당하다고여겨졌는데,지금은아닙니다.”
『에브리맨』은주인공인‘그’의이름을단한번도밝히지않는다.다른모든등장인물들은이름을밝히고있음에도그는그저‘그’일뿐이다.필립로스는이소설을통해모두가피하고싶지만모두가언젠가는맞이하게되는‘죽음’에대해이야기한다.그것은특별할것도없고,그저우리가맞아야할삶의한부분이라고이야기한다.소설속의주인공이이름없이‘그’라고만표시되는것도작가의이런의중이담겨있으리라.
건강과젊음이떠나고쇠잔해지는육체.찬란했던지난시절에대한추억을곱씹으며곧찾아올영원한망각을기다리는삶.서글프고애달프지만그것이바로늙어가는것임을,그리고우리모두에게똑같이주어진삶의일부임을겸허히받아들여야하는것임을이소설은이야기하고있다.필립로스는‘죽음역시삶의한부분’이라는사실을에두르지않고,과장하지도않으면서담담하게이야기한다.
소설속에서‘그’를애도하던이들은모두자리를떠났다.이제그빈자리에독자들이남아그를애도한다.하지만그들이애도하는것은소설속주인공인‘그’임과동시에,언젠가는늙고죽어갈우리모두,결국자신들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