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조그

허조그

$24.00
Description
냉소와 위트로 바라본 삶의 놀라운 순간
전위적 서술로 증명해낸 솔 벨로 문학의 총합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이며 당대 문화를 섬세하게 분석했다”는 평과 함께 197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문학의 거장 솔 벨로의 『허조그』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9번으로 출간되었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상당 부분 반영된 이 소설은, 비교적 성공한 대학교수이지만 유대인으로서 소외감을 느끼는 허조그의 복잡하고 부침이 많은 내면을 그린다. 아름다운 아내가 믿었던 친구와 사랑에 빠져 떠나버리자, 허조그는 패닉 상태에 빠져 주변인, 망자(亡者), 유명 학자, 정치가, 심지어 하느님에게까지 장황한 편지를 써대며 지난한 사상의 여정 속을 헤매다가 종국에는 언어와 이데올로기의 세계가 아닌 삶 속에서 평화를 찾게 된다. 작가에게 두번째로 전미도서상을 안겨준 이 작품을 두고 필립 로스가 “솔 벨로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꼽은바, 『허조그』는 미국 현대문학에 대한 이해에 깊이를 더해줄 것이다. 솔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를 우리말로 옮긴 베테랑 번역가 김진준의 탁월한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다.
저자

솔벨로

SaulBellow
1915년캐나다퀘백주라신에서러시아계유대인부부의사남매중막내로태어났고,아홉살때미국일리노이주시카고로이주했다.시카고대학교,노스웨스턴대학교,위스콘신대학교등에서수학했고,1941년첫단편「두개의아침독백」을발표했다.미네소타대학교,뉴욕대학교,프린스턴대학교,시카고대학교에서오랫동안인류학,문학등을가르쳤다.『오기마치의모험』(1947),『허조그』(1964),『샘러씨의행성』(1970)으로전미도서상을세차례수상하며전무후무한기록을세웠다.1976년『험볼트의선물』(1975)로퓰리처상을받았고,같은해“인간에대한깊은이해를보이며당대문화를섬세하게분석했다”는평과함께노벨문학상을수상했다.현대인의고립과소외를주로다루었고,유려한문체와날카로운언어감각을지닌지성주의작가로20세기미국문학의거장중한명으로꼽힌다.오헨리상,말라파르테문학상,세인트루이스문학상,펜/맬러머드상을수상했고,국가예술훈장과전미도서재단공로훈장등을수훈했다.그밖의작품으로장편『허공에매달린남자』(1944),『피해자』(1947),『오늘을잡아라』(1956),『학생처장의12월』(1982),『실연으로인한죽음』(1987),『래블스타인』(2000),중편집『나를기억하게하는것』(1991),중편『진실』(1997)등이있다.2005년4월,매사추세츠주브루클라인의자택에서89세를일기로영면했고,버몬트주브래틀버러의유대인묘지에안장됐다.

목차

허조그9

해설|추락에서치유로589
솔벨로연보597

출판사 서평

★1976년노벨문학상
★1965년전미도서상
★2005년타임선정‘20세기100대영문소설’

솔벨로의가장자전적인작품

이소설의주인공이자1인칭화자인모지스엘카나허조그는두번의이혼을경험한유대인중년학자다.17,18세기영국과프랑스정치철학을주제로박사학위논문을썼고,『낭만주의와기독교』라는책을출간하여학계로부터긍정적인반응을얻었다.초기에이룬업적덕분에교직을얻고연구비를타는데에지금까지어려움이없었지만,패기넘치던젊은학자의모습은잃어버렸으며원대한야망을품고착수한낭만주의연구는논점을찾지못한채뒤죽박죽상태다.엎친데덮친격으로허조그의가정생활도파탄에이르렀다.매력적인아내매들린이허조그의가장친한친구인방송인거즈바크와사랑에빠져허조그를단한번도사랑한적없었다고고백하고는딸주니를데리고집을떠나버린것이다.기만당하고배신당했다는극심한분노에사로잡힌허조그는살기등등하여그들을목졸라죽이거나고문해서괴롭히는상상을하며황홀해한다.이소설속모지스허조그는작가와많은면에서닮은인물이다.솔벨로역시유대인이고,대학에서오랫동안교편을잡았을뿐만아니라,자신의아내가그의학계동료이자친구와불륜으로엮이는바람에순탄치못한삶의소용돌이에휩싸인바있다.

허조그의광기에가까운신경증증상은‘편지쓰기’로구체화된다.허조그는가방에종이를잔뜩집어넣은채미국곳곳을이리저리옮겨다니며신문사,공무원,친구나친척,죽은사람,유명철학자등온갖상대에게미친듯이편지를써댄다.주변인들은그가돌았다고생각하고,흥분하여붕뜬상태에있는허조그는‘내가정말미쳤더라도상관없다’면서편지질에몰두한다.마법에라도걸린듯편지를쓰는동안에는자신감을되찾고명랑하고통찰력이샘솟는것같다고느낀다.역사와철학,사상사에대한풍부한레퍼런스를바탕으로한편지들은무척현학적이고중구난방인듯보이면서도,한편으로는냉소와위트가넘치며전위적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삶은계속된다

장광설로가득한편지를쓰고또쓰고과거에대한상념에잠기기를거듭하다가,허조그는매들린과살기위해아버지의유산까지들여무리해서장만했던버크셔스의궁벽한곳에자리한집을떠올리고는그곳으로향한다.거금과많은노력을들여꾸몄던그집은이제시간과자연에점령당해폐허가되었다.마당에는잡초가무성하며벽면의페인트도벗어졌고거실에는부엉이들이날아다니고화장실변기속에는새들의해골이있다.과거의회한이서린이장소에서허조그는비로소스스로의인생을되돌아보게된다.지식인으로서자신의책무가막중하다며“문명의발전이-아니,문명의생존이-모지스E.허조그의성공여부에달렸다”라고자신만만하게단언하던허조그는“수영연습을식탁위에서했던셈”이라고반추하며지적오만함에갇혀학자의재단하는시선으로만세상을봤던것은아닌지,“여느연구주제와똑같이인생도하나의연구주제일뿐”이라고여겼던것은아닌지돌아본다.철학담론을두루섭렵했으나정작인생의문제에있어서는서툴렀다.아이를사랑하지만아빠역할은잘해내지못했고,연구로잔뜩예민해진탓에남편노릇도잘하지못했다.부모와형제자매를사랑했으나서먹한거리가있었다.우정과사랑에도회피적이고게을렀다.언어를통해매들린과거즈바크에게복수하고자했지만실패했다는것을깨달은허조그는미워하는마음을내려놓기로마음먹는다.그는친한친구인루커스에게이렇게말한다.

“그동안사방팔방정신없이편지를썼어.말을마구쏟아냈지.나는언어를통해현실을파악하려하니까.어쩌면현실을모조리언어로바꿔놓고싶었는지도몰라-그래야매들린과거즈바크도양심의가책을느낄테니까.(…)그래도그연놈들이괴로워하지않는다면이미내손에서벗어났다는뜻이겠지.그들이도망치지못하게하려고온세상을편지로가득채웠어.나는그들이인간의모습으로남아있길바라고,그래서말의힘으로환경을통째로만들어그속에가둬놓고싶었지.그런허구의세계를창조하려고혼신의힘을기울였어.그래도결국허구의세계일뿐이더라.”(473쪽)

편지쓰기로현실을바꿀수있다고믿으며지난며칠간허공을맴돌다가느닷없이지상으로추락한허조그의현실인식은고통스럽지만명정하다.그는루디빌의폐허에서파묻혀있을것이아니라,“그가형기를치러야하는곳”인“바깥의길거리,미국사회”로나가야한다는것을깨닫는다.이제언어로고통을연구하지않아도마음을열수있다는허조그는세상으로나가살아있음에감사하는인간으로서날것의삶을살아보기로결심하고는미래의일을차근차근계획한다.첫번째결혼에서얻은아들인마르코와캠핑을가기로했던약속을지켜야겠다고다짐하고,딸주니가좋아하는재미있는이야기들을써볼까하는생각을한다.그의절망은희망의불씨로바뀐다.오래전에세웠던목표몇몇은이미사라져버렸지만,지상의삶을성실하게살아가겠다는새로운목표가생겼다.번듯한학문적성취를이루지못했다는절망,유대인아웃사이더라는외로움,자신의가장친한친구와새로운가정을꾸린아내에대한격렬한증오를모두털어낸허조그는이제더이상편지를쓰지않는다.“지금은아무에게도할말이없다.그렇다.한마디도없다”(588쪽).다만살아갈일만이남았을뿐이다.작품중반에서“모지스E.허조그가어떻게변모하는지당신이지켜보기바란다”고선언했던허조그는기적처럼달라진마음을독자에게내보인다.수많은이데올로기와담론이자신만이옳다며끊임없이싸우고있는현대사회에서,『허조그』는어지러운생각을멈추고지상의땅을밟고눈앞의삶을살아보라고넌지시격려하는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