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장편소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장편소설)

$20.21
Description
인간 개개의 삶이 깃든 무수한 이름들을 호명해온 작가,
이기호 11년 만의 본격 장편소설
애정어린 목소리로 불러보는 강아지들의 이름과 그 애잔한 발자취
최순덕, 권순찬, 최미진, 한정희, 강민호…… 친숙하고 구수한 이름들을 호명하는 소설로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보편적 본질에 다가서는 작가 이기호. 그가 『사과는 잘해요』(2009), 『차남들의 세계사』(2014) 이후 11년 만의 본격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1999년 데뷔한 작가의 업력을 고려하면 더욱 귀하고 반갑게 느껴지는 이 신작 장편에 등장하는 이름은 ‘이시봉’, 이기호가 초기작을 발표하던 20여 년 전부터 애정어린 목소리로 불러온 특별한 이름이다. 그 이름은 이기호의 인물 중에서도 어딘지 어리숙하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어 더욱 눈길이 가고 마음을 쏟게 되는 이들에게 주로 붙여져왔다. 이 이름을 새로이 받게 된 캐릭터가 인간이 아닌 개라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주목을 요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작가와 실제로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의 이름 또한 이시봉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성씨는 물론 그간 소설 속 캐릭터에게 붙여왔던 이름을 강아지에게 준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반려동물을 인간과 동등한 가족 구성원으로 대하며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은, 그런데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의 영향권에 있는 태도는 아닐까. 인간의 삶에 포섭되어버린 개, 나아가 동물의 행복을 과연 인간의 시선으로 판가름할 수 있을까. 이미 별개의 종으로 태어나버린 두 존재는 서로를 어디까지 이해해나갈 수 있을까.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작가 자신의 이러한 의구심과 문제의식 아래 쓰인 작품이다.
소설은 비숑 프리제 ‘이시봉’이 어느 가족의 삶에 깃들기까지 펼쳐졌을 우여곡절의 여정을 부려놓는다. 그 개가 이시봉이라는 이름을 얻는 계기에는 세상의 부조리에 동료를 배반하게 된 인간의 속죄 의식이, 그 개의 일족이 개 농장에 팔려간 과정에는 꿈을 좇은 대가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인간의 비참한 눈물이, 그 개의 선조들이 무려 유럽 왕실에서 길러지다 뿔뿔이 흩어지게 된 내력에는 사랑도 투쟁의 형식으로밖에 할 줄 모르는 인간의 반복되는 역사적 과오가 자리한다. 개들의 일생을 몇 대에 걸쳐 좇아나가며 인간의 삶과 교차시키는 작업을 통해, 이기호는 무한한 사랑을 받기도 하고 이용된 끝에 잔혹하게 희생되기도 하는 ‘비인간’ 동물과, 그들과 공존하는 ‘비동물’ 인간의 관계를 되돌아본다.
저자

이기호

저자:이기호
1999년『현대문학』신인추천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최순덕성령충만기』『갈팡질팡하다가내이럴줄알았지』『김박사는누구인가?』『누구에게나친절한교회오빠강민호』,장편소설『사과는잘해요』『차남들의세계사』,중편소설『목양면방화사건전말기』,짧은소설『웬만해선아무렇지않다』『세살버릇여름까지간다』『누가봐도연애소설』『눈감지마라』등을펴냈다.이효석문학상,김승옥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황순원문학상,노근리평화상,동인문학상을수상했다.현재광주대학교문예창작과에서학생들을가르치고있다.

목차

명랑한이시봉의짧고투쟁없는삶_007

작가의말_525

출판사 서평

방구석의먼지처럼작고애잔한내강아지가
유럽왕실에서기르던귀족중의귀족혈통이라니……
너는어떤모험끝에내게오게되었니?
이런나와함께사는게,과연너를위한일일까?

이시봉의보호자‘이시습’은아직자신만의삶의궤도를확립하지못하고방황중인20대청년이다.아버지를불의의사고로떠나보낸후,시습의가족들은겉으로는드러나지않는심각한마음의상처를입은상태다.이시봉을집에데려와“우리집막내”라부르며애지중지했던아버지의죽음에이시봉이연루되어있기때문이다.머리로는이시봉에게잘못이없다는것을이해해도가슴으로는이시봉을용서하지못하는어머니와함께살기에,시습은이시봉을마음껏사랑하고싶을때도집안의눈치를살핀다.현실에서도피하고자술에의존하게된시습은그와중에도이시봉을꼭끼고다니며보살핀다.비록이시봉의몰골이시습과닮아가꼬질꼬질하고비루해질지언정.

여동생‘시현’과친구들의걱정과안타까운시선을한몸에받으면서도이시봉과서로의지하며작은생활반경안에서재활을해나가던시습앞에,어느날비숑프리제만전문으로다룬다는브리딩업체‘앙시앙하우스’가나타난다.그곳의수석브리더‘미셸김’은시습에게놀라운말을한다.조사결과이시봉이과거유럽왕실에서기르던고귀한혈통으로,이제세상에몇마리남지않은‘비숑의왕’이라는것.미셸김은이시봉을넘겨받는조건으로적지않은돈을제안하며,앙시앙하우스에는이시봉을위한호화로운시설과체계적이고안락한케어가보장되어있다고시습을회유한다.

말도안되는제안이라여겼지만,이시봉과함께앙시앙하우스에방문하고업체대표‘정채민’의뜨거운애정공세를지켜보며시습은마음이복잡해진다.스스로의삶에자신이없는시습은자신이이시봉의더나은삶을응원하지못하고곁에붙잡아두고있는듯한기분을느낀다.이시봉을향한자신의사랑도한점부끄러움없는진실한사랑인데,왜자꾸만사랑에우열이가려지는것만같을까?이시봉의혈통에관한앙시앙하우스의주장이사실인지확인하기위해아버지가어린이시봉을입양해올무렵남긴행적을추적하던시습은또한번놀라운사실을마주한다.아버지의지인중에‘인간이시봉’이있었던것이다.시습,시현과함께‘시’자돌림으로지어진줄만알았던이시봉의이름에대한비밀이풀려나오기시작하며,소설은본격적으로파란만장한대서사를향해나아간다.

상처입고방황하는인간,순수해서명랑한개
스페인과프랑스,한국을잇는파란만장한대서사속에서
서로에게둘도없는반려가되어가는두존재의이야기

이후서사는크게세갈래로나뉜다.현시점과가장가까운서사는이시습이이시봉의이름에얽힌사연을추적한끝에진실과맞닿는이야기이다.시습의아버지는과거공장노동조합에서활동하다주위의만류에도불구하고희망퇴직한후,자신을대신해노조간부가되어갖은고초를치르게된동료이시봉으로부터개농장에맡겨진강아지를담보물삼아돈을빌려달라는부탁을받았는데,그것이이모든인연의단초였음이밝혀진다.그강아지를동료의이름으로부르며속죄하는마음으로끝까지지켜냈을아버지의마음을확인하는이서사는부조리한사회에서발생하는비극과그로인한아픔을짊어지고살아가는인간의개별적인표정들을생생하게그려낸다.

비숑프리제이시봉이개농장에방치되기에이른사연은정채민의과거서사와관련이있다.앙시앙하우스의정채민대표는자신이이시봉에게얼마나진심을다하고있는지피력하기위해이시습을초대해긴이야기를들려준다.유복한환경에서자란정채민은청년시절프랑스로유학을갔고,그곳에서가난한한국인예술가부부‘김상우’와‘박유정’을알게된다.어느날그들앞에유럽왕가의혈통을지닌개두마리가나타난다.정채민,김상우,박유정은애정을바쳐돌본그개들을한국으로들이기위해힘을모으지만,결국사랑과질투와돈이얽힌갈등끝에마음이엇갈리고만다.예술을선망하던가난한이들이꿈과불화하고현실과타협하게되는과정,숨겨왔던사랑이오랜시간을통과하며변질되는과정이애틋하고도격정적인서사위에드러난다.

그렇다면왕가에서생활하던비숑프리제들은왜이리도초라한계보를이어가게되었는가.그까닭은1808년스페인에서발발한민중봉기와관련이있다고정채민은말한다.시곗바늘이왕정시대로되돌아가고,더욱먼과거로확장된서사는스페인총리이자왕비의정부역할을하며민중의원성을산마누엘고도이의이야기를들려준다.약육강식의시대,이시봉의선조강아지들은위계관계를공고히하기위해하사되는정치적재산이었고,연모의마음을감춘채사랑하는이를점잖게만날빌미였으며,한시대를대표하던인간을무너뜨릴때그인간보다먼저짓밟을제물이었다.마누엘고도이가몰락하며그가애지중지하던개들또한비참한말로를맞는이장엄한서사는세속적욕망을실현할수단으로동물의생명까지이용하고희생시키는인간의유구한잔혹성을꼬집는다.

지금기적처럼곁에있는
작고소중한존재들이안겨주는
속수무책의감동

그리고이세갈래서사가한데모이는지점에서,상처입은채작은세계안에유폐되어있던이시습과이시봉의서사가움직이기시작한다.이시봉이미셸김과정채민의손아귀에넘어가려는절체절명의순간,소설은이시습은물론이이야기를읽어온모두에게깨달음을안긴다.이토록기나긴시간과무수한사연을거쳐다른누구도아닌내곁에오게된존재를좀더소중히여길필요가있다고.우리는반려동물의행복을인간의기준으로판단하려하지만,애초에누군가의행복을그아닌다른존재가가늠할수는없다고.이제최선을다해이시봉을사랑할준비가된시습은이시봉을되찾기위해달려나간다.

물론비숑프리제이시봉은이시습에게영영온전히이해할수없을미지의존재로남고말것이다.그개는인간이처한상황과느끼는감정은아랑곳없이무언가를본능적으로요구할것이고,본능을더욱충족시켜주는이가나타나면지체없이눈길을돌리고꼬리를흔들기도할것이다.하지만“이아무것도모르는명랑함,모든것이정직,정직그자체이기만한아이들”이,“사랑도투쟁으로바꿔버리는신기한재주를”지닌인간과달리제짧은생을사랑으로만채우다가투쟁없이숨을거두는개고양이새물고기파충류양서류들이지금기적처럼곁에있다는사실만으로투명한기쁨을느끼는사람이라면그들의가족이되기에충분하지않을까.서로에게이해받지못한채로함께해도행복할수있지않을까.이처럼아무것도바라지않고다른존재를사랑하는삶의형태야말로이기호가자신을,타인을,세계를소설로써나간끝에도달한‘이종異種’에대한이해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