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양장본 Hardcover)

장미 (양장본 Hardcover)

$18.00
Description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로베르트 발저의 마지막 산문집
프란츠 카프카, 헤르만 헤세, 발터 벤야민, 수전 손택, W. G. 제발트 등 무수한 거장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은 스위스의 대표적인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장미』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장미』는 발저가 스스로 펴낸 마지막 산문집으로, 발저 후기 문학에 위치하는 독특하고 세련된 작품집이다.
1925년 베를린,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작가로 동시대인들에게 서서히 잊혀가던 그는 이즈음 길이가 긴 작품들은 피하고 신문의 문예란과 잡지에 실릴 만한 소품들을 주로 쓰고 있었다. 그중 38편의 짧은 산문을 직접 골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에른스트 로볼트 출판사에서 펴내는데, 출판의 중심지였던 베를린에서 출간되었고 당대 유명한 삽화가였던 그의 형 카를 발저가 표지를 그려주었음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후에도 로베르트 발저는 계속 글을 쓰기 위해 애썼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심리적 위기 상태를 겪고 의사의 조언에 따라 1929년 발다우 요양원에 입원한다. 그런 와중에도 후대에 ‘마이크로그램’이라 불리는 매우 작은 글씨로 원고들을 써내려갔지만, 명료한 산문 형식을 유지한 채 완결된 하나의 미학적 지평을 보여주는 작품은 『장미』가 마지막이라 할 수 있다.
『장미』는 당대 문학의 중심에서 천천히 물러나던 한 작가의 마지막 목소리이자, 현대 문학에 견주어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강한 실험성을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발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타너가의 남매들』 『조수』 『벤야멘타 하인 학교: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등의 장편소설에서 보여준 ‘약한 존재들에 대한 존중’ ‘사소함’ ‘익명성’의 미학은 그의 산문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나는데, 이는 구조 없이 자유로운 발저 산문 특유의 흐름과 불확정적 화자, 유동적이고 시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장미』에서 그 정점에 이른다.
저자

로베르트발저

1878년스위스빌에서태어났다.초등학교와예비김나지움을다녔으나넉넉하지못한가정형편때문에그이상의교육은받지못했다.생계를이어가기위해열네살때부터베른주립은행에서견습생생활을했고,이후취리히,베른,베를린,슈투트가르트,뮌헨등스위스와독일의여러도시들로거처를옮기며엔지니어조수,은행원,사서,비서등으로일했다.1898년처음으로지역신문에시를발표했고,그후로여러작품을문학잡지에발표했다.1906년부터『타너가의남매들』『조수』『벤야멘타하인학교:야콥폰군텐이야기』등대표작을출간했는데,그의작품들은프란츠카프카,로베르트무질,헤르만헤세,발터벤야민,수전손택등에게찬사를받았다.1913년모국스위스로돌아와호텔다락방에서7년을머물며산문집『작은문학』『물의나라』,장편소설『토볼트』『테오도르』등다수의작품을집필했고,1925년2월마지막책『장미』를출간했다.고독과불안,망상으로고통받던그는누나의권유로1929년베른에있는발다우정신요양원에입원했다.입원뒤에도집필을계속했으나1933년헤리자우에있는정신요양원으로이송된후에는절필한채여생을보내다1956년12월25일산책을하던중눈속에서심장마비로사망했다.

목차

블라디미르
일요일산책
마누엘
주네브
도스토옙스키의『백치』
파리의신문들
게르다
말과곰
켈러의노벨레
쿠르트
입센의노라혹은뢰스티
쇼윈도
뵈리스회퍼
모범적인사람
옛날극장이준인상에대하여
교사와짐꾼
아저씨
원숭이
천사
에디트에게보내는편지
에리히
티투스
따귀한대와그외
몇몇작가와어느성실한부인에관해
자허마조흐
파르치팔이그의애인에게편지를쓰다
기이한아가씨
아이
설탕조각
루트비히.서평
아름다운여인과진실한남자
유골함
일기장
프리돌린
코끼리
대화
고독한남자
사랑받는여인

해설작고사소하고아름다운것들의세계_안미현
로베르트발저연보

출판사 서평

불가해한삶의의미를세련된문체로피워올린찬란한문학의장미
로베르트발저는『장미』를자신의작품중가장세련되고,가장무례하고,가장젊은작품이라말한바있다.이산문집에서발저는그간최소한겉으로라도지키려했던문학적관습과사회적터부를뛰어넘는거리낌없는방식으로새로운글쓰기를시도한다.고향마을인빌과비교할때세계여러나라들과국제적인관계를맺고있던연방수도베른의대도시다운분위기에서영향을받았으리라는추측도가능하다.
『장미』에수록된글들은대개두세쪽내외의짧은산문이다.이글들은뚜렷한결말이나극적반전을보여주지않는다.발저는명확한줄거리나서사를조탁하기보다순간의감각,사유,언어의결을포착하는데집중한다.산문이라는형식자체에도전하는그의과감함이돋보이는지점이다.독자에게난해함으로다가올수있는이러한시도는무의미속의의미,사소함속의아름다움을순도높게담아내고자했던의지의발현으로볼수있다.
그의산문에등장하는인물들은대부분눈에띄지않는서민적인인물이지만현실성과구체성을가진다고보기는어렵다.이들은살과피를가진인물이라기보다는작가의문학적지식과자유로운환상속에서만들어진추상적이고뼈대만갖춘인물들이다.확고한정체성이없는이인물들은처음에한말을다음순간바로번복하며,스스로모순되고이율배반적인존재처럼행동한다.그들은너무사랑하기때문에사랑할수없고,너무그리워하기때문에더이상그리워하지않는다고고백한다.
우스꽝스럽고모순으로가득찬이인물들이처한상황또한지극히미미하고일상적이다.거리위에무수한사람들사이에서눈에띄지않는,어쩌면작가의자화상과도같은보통의인물들.그들은평범하게여행을하고,차를마시고,대화를나눈다.아이러니한것은존재의의미가미미해보이는이들이야말로실은가장무고하고가장정직한사람들이라는점이다.그들은곧잘병든상태,열과환상에들뜬상태에처한것처럼보이지만,실제로는누구보다사심없고어디에도얽매이지않고건강하다.바로이인물들이야말로놀랍게도현대적인인물의속성을가장잘보여주는것이아닐까.

사소한일상에서발견해낸아름다움과덧없음
로베르트발저는현실세계와인물들이처한특별한의미없는,우연적인상황들의수집과나열속에서이같은‘사건없음’혹은‘줄거리없음’을섬세한언어유희로대체한다.많은글들이일상의평범한장면에서시작되지만,미세한균열을일으키는단하나의문장만으로새로운세계를열어젖힌다.작가는수시로직접나타나목소리를내며,독자들에게넌지시혹은직접말을걸고의중을떠보기도한다.이후그전설적인‘마이크로그램’원고에서더극단적으로드러나는언어유희적현상들은그가이른바‘서사’가지녀야할구성요소인줄거리혹은플롯을이미오래전에해체했음을말해준다.이문장들은말보다침묵,진술보다여백,설명보다감각을추구한다.그것은사라지려는존재가남긴마지막흔적을닮았다.‘산책자’로베르트발저는그렇게한걸음한걸음자신을점점지워나간다.
우리는이산문들에서어떠한종류의확실한메시지를찾아내지못할지도모른다.대신조용히사라지려는존재가남기는언어의흔적을,그리고작고사소한존재들이지닌아름다움을마주하게된다.로베르트발저는가장사소한것에가장깊은관심을기울였고,작은것만이위대해질수있다고믿었다.이는단지어느고독한작가의문학적실험이아니라,지금우리시대가잃어버린감각을회복하는작업이다.동시에그것은위대한문학적침묵을발굴해내는일이기도하다.『장미』는삶의아름다움과덧없음을깨달은자의고요한울림으로서,희미해져가는언어를찬란하게피워낸문학의장미로서수많은독자들에게오래도록읽히는귀한고전으로자리잡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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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발저의책을수십만,수백만의사람이읽었다면세상은보다나은곳이되었을것이다._헤르만헤세

발저의작품에나타나는윤리의핵심은권력과지배에대한저항이다.발저의힘은고도로세련된예술의힘이다.그는진실로놀라움과저릿함을느끼게하는작가다._수전손택

로베르트발저가살면서남긴흔적은너무나희미해서바람이라도한자락불면흩어져사라질것만같다.예나지금이나발저는여전히유일무이한수수께끼같은인물이다.그는독자들에게자기자신을가능한한숨겼다._W.G.제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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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저의인물들은문학사의위대한고전에등장하는주인공들처럼단하나뿐인독특하고강력한개성을가진인물들이아니다.객관적으로보자면이들은대단히아름답거나대단히지적이지도않고,놀라운통찰력을갖춘것처럼보이지도않는다.그들의정체성은허약하고,스스로부인되고,다른것과쉽게대체될수있는익명의인물들과흡사하다.때로는어릿광대같고때로는난센스와모순으로가득차보이는이인물들이처한상황또한지극히미미하고일상적이다.그들은말하자면역사의‘현장’이아니라역사의가장변두리,‘가장자리’에서있는것이다.하지만바로이같은의미에서『장미』에나타나는인물들은놀랍게도현대적속성을지닌다고할수있다.어쩌면이것이야말로바로작가자신의자화상이자동시에오늘날을살아가는수많은익명의현대인들의속성을보여주는것이아닐까._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