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기다림마저잊어버려야
그건오는것이다”
삶과죽음의아름답고도쓸쓸한풍경
그근경과원경을섬세하게배치하는엄원태만의시적조경학
단정한시어를통해삶에찾아오는쓸쓸한풍경들을정직하고또렷하게표현해온시인엄원태의다섯번째시집『거기호랑이가있다고』가문학동네시인선253번으로출간되었다.초기작인『침엽수림에서』(민음사,1991)와『소읍에대한보고』(문학과지성사,1995)를통해폐허와황량함,질병이가져온실존적고뇌와소멸을알레고리를통해다루었다면이후『물방울무덤』(창비,2007)에서시인의시선은평범한이웃들의고단한일상과타자의아픔을품어안으며더욱깊어진다.백석문학상수상작인네번째시집『먼우레처럼다시올것이다』(창비,2013)는삶의비극과상처를거부하거나원망하는대신거대한자연의섭리와생명의순환속에서소멸의운명을담담하게견뎌내는경지를보여준다.네번째시집이후긴시간이흘러십삼년만에펴내는이번시집에서흥미로운점은그가‘견딤의시학’에머무르지않고‘포용의시학’으로나아간다는점이다.그는생사의경계에도사리고있는죽음이라는절대적타자를정면으로바라보며고통의본질을끌어안는품넓은기개를보여준다.
왜가리는
단지그조용한성격탓에
격리조치처분을받았다고한다
조류관도곧폐쇄될거란소문이다
새들의방관자적수동성이우리사회의핵심문제라는진단이언론에보도되자
새지도부의전격적혁신정책목록에포함되었다한다
독방신세인왜가리는
대접만한물웅덩이를배정받았다
할수있는일이라곤
한쪽다리를접어몸속에집어넣는일
제얼굴만겨우비치는물웅덩이를골똘하게들여다보는일
_「왜가리의자세」부분
이번시집에서눈에띄는또다른부분은,현실의세상을동물원에비유하고있는점이다.시인이이야기하는‘동물원’은이경록시인이엄혹한유신체제하의사회를‘식물원’에비유한것과연결된다.자신들의말이통제당하고조용히복종할것을강요받은사람들이군사독재시기의‘식물’인간들이라면,갖은말들이넘쳐나시끌벅적한이자본주의사회는‘동물’들의공간이다.동물들의세상은이런저런울음소리로넘쳐나지만,정작귀기울여들을만한말은존재하지않고“백색소음”(「이동물원을위하여·서」)만으로가득하다.시인은“지구라는이거대동물원”(「내부의적」)으로세상을명명하며자본주의사회가주는본질적인괴로움과그모순을비유와역설을통해드러낸다.동물원같은이사회속에서,“경쟁을통해형평과균형에도달한다는건너무이상적인역설일뿐”(같은시)이다.하지만엄원태의시선은자본주의를단순히비판하는것에서그치지않는다.그가진정관심을갖는점은자본주의사회의냉정함자체가아니라그안에서소멸되어가는‘개인’이다.동물원이라는시스템속에길들여진인간들은자신이그안에갇혀구경거리가되는줄도모르고,각자의목소리로시끄럽게떠들고만있다.그들은스스로의자아가사라지는줄도모른다.자신의노동과감정,심지어는삶전체가자본의이익을위해전시되고소비되는데도말이다.시인은‘시인의말’에서“나라고할만한것이/내게서점점사라지고있다”고이야기하며“세계가온통거기에열심히참여중”인것같다고말한다.존재의소멸이개인의문제가아니라사회적인풍조에가까워지고있다는것이다.시인은그런상황을인식하며,어떻게하면자아의소멸에서벗어날수있을지골몰한다.사회가시인에게허락한것은“대접만한물웅덩이”(「왜가리의자세」)뿐이다.하지만시인은그걸거울처럼“골똘하게”(같은시)들여다보기를멈추지않는다.물웅덩이에비친스스로를끊임없이들여다보는일,그것은삼십년이넘는세월동안꾸준히시를써오며견딤과포용의시학을펼쳐온시인의모습과어쩐지겹쳐보이기도한다.
곤줄박이앉았던자리보다
쇠박새앉았던자리가
더
말갛다.
조금더비어있다.
비어있던가지였는데
새가앉았다가떠난뒤에야
더말갛게,
헹궈낸듯비워낸게보인다.
새는그렇게
저들의자취를허공에남긴다.
_「공허라는것」부분
엄원태시인은모든풍경을한발짝떨어져서관찰하는,관조의미학을아는시인이다.앞서이야기한사회적인풍조부터,자신의몸에밀착해서느껴지는삶의고통들까지그는한풍경에겹쳐놓고멀리서관조한다.이런그의태도는자신이견뎌온,그리고실시간으로견디고있는몸의병과무관하지않을것이다.“천천히망가져가는손가락뼈들”“고관절석회화건염”“사타구니물혹과겨드랑이혈종”(「가을의묵서」)과같은현실적인병의상황마저그는한발짝떨어져지켜본다.그가육신의고통을묘사하는것은자신이이렇게힘들다는호소가아닌묵묵한기록의의미가된다.“생애(生涯)라는건,/원래부터비어있는단애(斷崖)를/비로소마주하고,/온몸으로통과해내는일”(「공허라는것」)이라고그는이야기한다.깎아지른듯한낭떠러지를온몸으로통과하면서도그는불평하거나마냥괴로워하지만은않는다.대신그는여한은없다고,“문득참을수없이아름”(「거기도새가」)답다고읊조릴뿐이다.“저무는것들조차/수긍할줄알게되”(「4월에서5월로」)었다는그의표현에따르면,그는이시집을통해자신이받아들이고수긍해온것을그저가장가까이서기록하고싶었던것이아닐까생각하게된다.
작은식물들을공들여배치하고조심스럽게겹쳐놓아정원의풍경을만들어내듯,엄원태시인은이토록신중하고도침착하다.이런점에서엄원태의시집을읽는일은잘꾸려진정원을거니는일과도같다.작은꽃하나,작은풀하나를살피면서전체의풍경을조망할수있게하는일.그것이엄원태시인이이번시집『거기호랑이가있다고』를통해우리에게선물하는인상적인산책길일것이다.
느티나무우듬지에서
울다지쳐쉬곤하는산비둘기는
딱그만큼의높이에서
구슬픔하나로끈질기다
유치원아이들이재재거리며
행진하듯일렬로지나가는데
급식소앞노인들보단조금밖에서글프지않았다
봄날은그저허공에꽃구름을피워올리고,
제할일다했다는듯
하루를전심전력흘려보내고있다
_「꽃구름아래」부분
엄원태시인,그는정확하고정직했다.정확하다는것은사실이나현상에서명료하다는의미이며정직하다는표현은유불리를타산하지않는투명성을대신한말이다.그에게물으면결론이빠르다.독해와추론의조합이풍부하기때문이다.그가교양적인삶을살해하고인식의시들을쓰기로한다는각오는편편의시에스며있다.시집전반의치열하되고요하고정성을다하되수식없는검박함은그를끝까지맑은사람으로남게한다.쇠잔해가는육체에도불구하고어떤경우에도감상에떨어지지않는다.생애전모가극한이지만도망도물러섬도없다.그는충분히시와삶에복무하였다.육신에다가온그늘을생의한가운데풍경으로서한번,다시한번헹궈낼뿐거부하지않는다.울지않는밤은없지만울지않아야하는밤이있었다.그의말처럼이제“새는노래하지않아도좋을것이다”.그의육신에그려진고통의등고선이야말로이미“세상노래를/다한것이”므로,폐허를견딘눈부신개화가조용히그의언덕에서흔들리고있다.“단애”였던그의생애,그를향한‘차경’이라는명명은그가피워올린그꽃들,아슬한언덕위의눈부신꽃들이붙인이름이다.
_이규리,발문에서
·엄원태시인과의미니인터뷰
1.2013년이후13년만에다섯번째시집을펴내시는소감을여쭤보고싶습니다.오랜만의시집작업이어떠셨을지요?
개인적으로저의정년퇴직이2020년여름이었으니벌써6년이지났군요.퇴직후집가까운곳에원룸을얻어‘수유재’라는작업실을마련해출근하다시피하면서,요즘발표되는시들을집중적으로읽으며저나름의아카이빙을하고,또시편들을골라가까운몇몇후배시인들과월례시세미나모임을통해‘함께읽기’를해왔습니다.이번시집은이런연장선에서이뤄진오랜만의원고정리의결과입니다.그간오로지시를읽는데만마음이쏠려위안과치유를얻었습니다.하지만시쓰는일은여전히지지부진하다는게제소회이자아쉬움으로남습니다.새롭게쓰는작업도제대로다시시작하고정진하기위해시집을묶어발간하는것이라고변명같은췌언을덧붙입니다.
2.시집의제목이'거기호랑이가있다고'입니다.제목을통해독자들에게어떤인상을주고싶으셨는지,어떻게시집의제목을결정하게되셨는지궁금해요.
호랑이는‘거기’있습니다.여기있지는않지만,강건너거기에는있다는전언입니다.‘시인의말’에서도쓴바있지만,저의존재자체가희미해져가고있다는인식이요즘의저를사로잡고있습니다.저뿐만아니라세계전체가그런존재의희미해짐에골몰해있는듯합니다.‘호랑이’라는상징적존재역시그렇게세계에서사라져가고이제그존재자체가미미해졌습니다.하지만그럼에도아직거기엔분명히존재할것이라는실존적믿음-그것이이시집의제목이되었습니다.원고를살펴준김민정시인이‘호랑이’라는상징과‘거기’라는거리감에주목해제목으로제안했고,저는그말을듣자마자전격수용했습니다.
3.전체적으로동물원에대한시들이많이눈에띄어요.선생님에게'동물원'은어떤의미일지궁금합니다.
동물원시편들은오래전요절한고이경록시인의시집『이식물원을위하여』를오마주하여쓴것들입니다.‘식물원’에서우리사회가엄혹한유신체제하의‘말을잃어버린식물’로상징되는시대를거쳐왔다면,요즘은오히려말이넘쳐나서그야말로백색소음상태로개인의존재를속절없이지워가고있는시대라는역설을‘동물원’으로상징하고싶었습니다.덧붙이자면,이번시집을준비하면서추가된근작들은주로2부의동물원연작시편들에집중되어있습니다.또한집에서평생함께살아온어머니를작년에여의고쓴시편들은4부첫머리에모아두었습니다.
4.이번시집을살펴보며삶의고통을끌어안는태도와삶에대한쓸쓸한긍정의태도가눈에띄었습니다.어떤마음으로이런태도를견지하게되셨는지궁금해요.
‘삶에대한쓸쓸한긍정’의태도라하시니새삼제시세계를한마디로요약하는듯한인상을받습니다.저는서른셋젊은시절부터한평생을질병의고통과결핍과함께살아왔습니다.일찍이죽음과소멸을인식하고,그죽음과소멸을넘어혹은그것들과함께살아온제실존적경험이그런세계관을제게안겨주었습니다.어머니를먼저보내고저의병도깊어져끝이멀지않아보이는요즘은그소멸과순환에대한쓸쓸한긍정이더욱제것인양실감하고있습니다.
5.『거기호랑이가있다고』를읽을독자분들께한말씀부탁드리겠습니다.이시집을어떻게읽으면좋을지안내해주셔도좋을것같아요.
이번시집은개인적으로너무오랜만에내는것이라한가지주제를천착하는집중력이부족해보일수도있겠습니다.다만오랜기간제안의침묵을통한응축력이시집전반에걸쳐나름반영되었다고생각합니다.이시집을읽으실때도그침묵과여백의행간까지살펴읽어주시면좋겠습니다.고맙습니다.
·시인의말
나라고할만한것이
내게서점점사라지고있다.
존재의희미해짐이란
내것만은아니어서
세계가온통거기열심히참여중인듯하다.
뒤늦게야
세상을향해다시눈길을준다.
2026년9월
엄원태
책속으로
한감옥이다른감옥들을부수며,
세상경계를마구무너뜨리고있었다
우리는각자의흉곽안에서
고드름이후두두,흘러내리는소리를들었다
흔들림도없이
제자리에서고스란히,
무너져내리고있었다
---「해빙」중에서
하루에몇번씩주저앉는마음
때론기다림마저잊어버려야그건오는것이다
노을이물들어서야
결국오고야만다는것을
창문은말없이,
다만열중해서,
증명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