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피플 존 (정이현 소설집)

노 피플 존 (정이현 소설집)

$18.00
Description
동시대인의 맥박 소리를 듣는 소설가,
정이현 9년 만의 신작 소설집 출간!

때로는 지속해야 하고 때로는 끊어야 하는 관계
혼자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또 완전히 혼자이고 싶지만은 않은 욕망
그 사이에 선 사람들을 담아내는 정이현의 매크로렌즈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고독과 욕망을 특유의 섬세하고도 날렵한 필치로 그려온 한국 대표 소설가 정이현의 신작 소설집 『노 피플 존』이 출간되었다. 특별한 악의 없이도 위선과 모멸을 관성적으로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려 문단과 독자 모두의 주목을 받은 『상냥한 폭력의 시대』(문학과지성사, 2016) 이후 9년 만이다. 책의 제목 ‘노 피플 존’이란 수록작 「단 하나의 아이」에서 언급되는 말로, 사회와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겪는 갖가지 문제들에서 벗어나 ‘사람 없는 세계’에 있고 싶어하면서도 완전한 단절과 고립은 불안해하는 현대인의 모순적인 심리를 포착한 단어이다.
정이현은 『노 피플 존』의 출간을 앞두고 진행한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는 동안 사회구조와 인간소외의 관계라는 보다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물음을 좇았”(특별 소책자 ‘어텐션 북’에서)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간 동시대인의 세태를 놀랍도록 활달하고 핍진하게 표현함으로써 ‘도시 기록자’라고 호명되기도 한 작가는 이제 사회구조라는 시스템의 보이지 않는 선 안팎에서 상처 입고 상처 입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더욱더 세밀한 배율로 조정된 작가 고유의 매크로렌즈로 관찰한다. 2017년 발표작 「언니」부터 2025년 최신작 「실패담 크루」에 이르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작가가 공들여 쓰고 각별히 다듬은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된 『노 피플 존』은 바로 옆에서 듣는 듯한 실감 어린 대사, 해상도 높은 현실로써 구축된 그야말로 지금 우리 시대의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 중)
저자

정이현

저자:정이현
소설가.2022년12월까지개를만지지못했던사람.지금은유기동물보호소에서입양한바둑이와함께살고있다.지은책으로소설집《낭만적사랑과사회》《오늘의거짓말》《상냥한폭력의시대》,장편소설《달콤한나의도시》《너는모른다》《사랑의기초:연인들》《안녕,내모든것》,중편소설《알지못하는모든신들에게》,짧은소설《말하자면좋은사람》,산문집《풍선》《작별》《우리가녹는온도》등이있다.이효석문학상,현대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실패담크루…7
언니…49
선의감정…83
빛의한가운데…121
단하나의아이…155
우리가떠난해변에…189
가속궤도…225
이모에관하여…255
사는사람…299

해설|강지희(문학평론가)
선넘는사람들…339

작가의말…365

출판사 서평

“남의서사에끼어들고싶은마음,타인을가르치고싶은마음,
간섭하고싶은마음,(…)우린안하기로했어요.”

각기다른세대와계층간의몰이해
그안에서치열히자신만의것을지키는사람들

『노피플존』은저마다각기다른세대와계층의이야기를다채롭게다룬다.소설집의문을여는「실패담크루」는살아오면서겪은실패의경험들을고백하는‘실패담말하기크루’에가입한삼십대변호사이자모임의가장‘젊은이’를맡고있는‘나’의이야기이다.사회적위치가확고한중년의기성세대들로이루어진모임원사이에서‘나’는근사한실패담을발표해그들에게인정받고자노력한다.그러나‘나’의발표는거듭실패로돌아가고‘나’는모멸과패배감에휩싸인다.그러한‘나’의모습을통해소설은성공과실패를바라보는세대간,계층간의몰이해를서늘하게포착한다.“도태되지않기위해”(44쪽)치열하게생활하는사회초년생,혹은그시기를막지나온이라면특히공감하며읽을수있는수작이다.

발표당시부터주목받은「언니」는이십대초반의대학시절‘나’의가슴속에“뭐라설명할수없이먼빛”(81쪽)처럼남은선배‘인회언니’를조명하는작품이다.학과조교로일하는인회언니는지도교수의일거리를대신맡아열성을다하지만그공을인정받기는커녕부당한처우를받고학교에서배제당한다.인회언니는그에맞서일인시위를펼치고,한때인회언니와함께일했던‘나’는언니를지지하는마음으로그의곁에같이선다.확고한전망이보이지않는이십대의불안한시기,대학교수로상징되는강자와시스템쪽이아니라약자인언니의편에서는‘나’의모습은읽는이에게적지않은감동을불러일으킨다.

「실패담크루」와「언니」가생애주기의관점에서청년기라할수있는이삼십대인물의모습을보여준다면,「선의감정」과「빛의한가운데」는위세대인부모를부양하거나혹은아래세대인자식을건사하는장년기의중년인물을형상화한다.「선의감정」은코로나19팬데믹이한창이던시기를배경으로,경쟁적인성과급제도가들어선병원에서일하는의사‘나’가어느날자신의의료과실일지도모르는환자의죽음을통해겪게되는딜레마를그린한편의메디컬드라마이다.소설이초점화하는것은그진실의진위라기보다는,사건이후죽은환자의보호자였던딸이‘나’의환자가되어다시나타나는후반부의이야기이다.사람과사람간에지켜야할‘선(線/善)’이란무엇인지를힘있게질문하는소설이다.

「빛의한가운데」는아들을키우는‘안희’와딸을키우는‘미령’두여성의우정어린관계가한축,안희의십대청소년아들이딥페이크성범죄의당사자로지목되며벌어지는충격적인사건이다른한축으로전개되는이야기다.해설을쓴문학평론가강지희는두축으로이루어진이소설의구조를짚으며딥페이크사건이단지“특정청소년의일탈”이아니라“세대를거쳐축적된여성의성적대상화와성폭력을경시하는모럴이디지털기술과결합해폭력으로재생산되는문제”(363쪽)라고해석한다.아들을두둔하기만하는남편에게반기를들며“아니야,나는그런엄마가,아니야”(153쪽)라고말하는안희의비탄어린외침은가부장제체제로상징되는“남성지배”의“질긴결속을끊어”(363쪽)내는선뜩한목소리로읽힌다.

“존재하지않아도어딘가에남아있는것,
단하나의아이에대해한나는끝내생각을멈추지못했다.”

‘돌봄’이라는독한리얼리즘너머,그구조를직시하는이야기

「단하나의아이」와「이모에관하여」는‘돌봄’이라는키워드로읽을수있는소설이다.그런데보통이야기에서돌봄의주체와대상이가족관계로설정되는것과달리정이현소설에서의돌봄은그주체와대상이가족도아니고,서로간의감정적인교감이돋보이는이야기도아니라는점에서특징적이다.오히려정이현의소설은돌봄노동이라는고용환경의구조를가시화하고그안에서상처받고소외되는여성의위치를질문하는듯하다.

「단하나의아이」는놀이가정교사업체에취직한이십대여성‘한나’가심리적으로불안정해보이는아이‘하유’와보내는한때를그린작품이다.한나는돌봄노동에서피고용된지위로서아이와적절한거리두기,아이의가정사에함부로개입하지않기등을요구받는다.그러던어느날한나는하유에게서우려할만한점을발견하게되고,이를하유의보호자에게전한다.놀이교사로일하기전까지“어린이라는대상에게아무관심”(157쪽)이없었던한나가처음아이라는존재의마음깊은곳까지신경을쓰게된것이다.그후한나는,그리고하유는앞으로어떤삶을살아가게될까?

한편「이모에관하여」는회사에서팀장으로일하는‘재연’이둘째아이를임신하면서다시육아휴직을쓰지않기위해중국인동포입주시터‘이모’를구하게되는이야기이다.「단하나의아이」의한나와달리재연은돌봄관계에서고용자의위치에있지만,돌봄노동이란경제적인여유로도쉽사리해결되지않는다는것을소설은보여준다.소개소에서밝힌바와달리이모의신분은어딘가미덥지않고,그럼에도희망을걸어보려했던재연의심정을남편은제대로알아주지못한다.끝내참고있던감정이폭발한재연이남편에게쏟아내는감정은“독한리얼리즘”의절망적인“‘경력단절체험기’”(해설,352쪽)를독자로하여금절절하게느끼게한다.

내가대체언제까지이래야해?
재연은다시소리를질렀다.낯빛이하얗게질린,저바보같은남편이부디이음습한계획의공범이되어주기를바라면서.만약끝내눈치채지못한다면,그래도할수없었다.눈물이쏟아져내렸다.
난그냥이렇게살다가죽겠지.영원히못벗어나겠지._「이모에관하여」,294쪽

익숙한자기만의방바깥으로선을넘는사람들
그곳에서새롭게경신되는‘정이현존’이라는세계

「우리가떠난해변에」와「가속궤도」,그리고「사는사람」은작금의사회문제적인이슈를포착하는정이현의현재적인감각이빛을발하는작품들이다.「우리가떠난해변에」는연애예능프로그램이,「가속궤도」는데이트폭력문제가,「사는사람」은부동산과강남사교육이전경화되어있다.「우리가떠난해변에」는십여년전연애예능프로에출연해화제가되었던소위‘최커(최종커플)’의현재모습을취재하는방송작가‘설’과피디‘선우’의이야기로,사랑이끝난자리에서우리가발견할수있는감정적진실은무엇인지를생각하게하는서정적이고도아름다운소설이다.

우리부부가지금이렇게됐다고해서,그때의특별한사랑이사라지나요,없어지나요?
아니요,사라지지도,없어지지도않아요,하고설은속으로중얼거렸다.그런데그자리에있다고정말그대로있는걸까요,라고도.
모든멈춘것은퇴색하고틈이벌어지고낡아간다.(…)움직이지않는사랑도언젠가그처럼소멸하리라는희망만이그동안설을버티게했다._「우리가떠난해변에」,219쪽

「가속궤도」는어느날학원블로그에의미심장한악플이달리면서일상이공포로물드는학원강사‘소진’의이야기이다.소진의공포는오래전대학을다닐때사귀었던전남자친구의존재에서비롯된것이다.사귀는동안소진에게가스라이팅을일삼고이별후에는스토킹을하는등의데이트폭력을저질렀던전남자친구에대한기억은,십수년이지난현재에도마치브레이크가듣지않는자동차급발진처럼소진을공황에빠뜨린다.“여성의어떤생존은왜고요하게작열”하는지를보여주며,“그폭력의근원을응시하는”(해설,359쪽)이작품의서스펜스는결말까지밀도있게이어지며독자의숨통을조인다.

「사는사람」은학원상담실장으로일하는‘다미’가한학생으로부터시험지를미리전달받을수있는지청탁받는이야기가한축,남자친구와상급지아파트로부동산임장을다니는이야기가다른한축으로전개된다.사교육과부동산이첨예하게교차하는강남학군지라는소설속배경은단한계단이라도위로올라가고싶어하는인간의계급적욕망을날카롭게드러낸다.독자가‘사는사람’의의미를주거(live),구매(buy),또는생존(survive)등으로저마다다르게받아들이는묘미를불러일으키는「사는사람」의다층성은한국사회의복잡다단한세태를의미화하는것처럼보인다.작가의말마따나“앞으로나아가게될다음세계의방향을알려주는”“예감”(‘어텐션북’에서)을들게하는소설이다.

해설에서강지희는정이현의소설속인물들이“익숙했던게임의법칙을위반하고”“‘자기만의방’바깥”으로“선을넘으며나아간다”(364쪽)고말한다.“서로의언니가되고연대를모색”하는인물들은그선너머의자리에서이제“관성을깨부”(같은쪽)수려고한다.아직어떤것도완벽히해결되지도누구도도착하지도않았기에그곳은말그대로‘노피플존’이지만,그공백은“가능성의다른얼굴”(같은쪽)이라고.『노피플존』은그담담한결기로뻗어간선너머의자리에서우리를기다리고있다.

저는오늘도수많은모순에둘러싸여살아갑니다.혼자있기를간절하게바라지만또완전히혼자이고싶지만은않은,선택적고립의욕망도거기속할것입니다.제안과밖의모순과욕망들을오래들여다보면서천천히,멈추지않고썼습니다._‘작가의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