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15.00
Description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초기 대표작

어둠 속 하나의 추억, 한 사람의 정체를 비추는
열다섯 조각 반짝이는 생의 편린들
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파트릭 모디아노의 초기 대표작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새롭게 독자들을 만난다. 모디아노의 소설 가운데 국내에 가장 먼저 선보인 작품으로, 현지 출간 이듬해인 1978년 번역·출간된 이래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2015년 문학동네에서 재출간된 이후 십 년 만에 번역을 다듬어 선보이는 이 개정판에는 파트릭 모디아노라는 작가를 국내에 최초로 알린 번역가이자 문학평론가 김화영의 초판 해설과 더불어 거의 반세기 만에 작품을 다시 돌아보며 새로 쓴 풍부한 해설이 실렸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는 첫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시청으로 향하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연속적인 줄거리 없이 독립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둠 속에 잠긴 자신의 모호한 정체가 밝혀지기를 기대하듯, 열다섯 개의 장마다 “자질구레하면서도 마음을 뒤흔드는 세세한 일들, 그리고 어떤 역사책에도 언급되지 않는 사람들”(111쪽), 삶의 한순간 스친 물건, 풍경, 장소 등을 세밀하게 조명함으로써,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과거를 추적하고 잊힌 추억을 복원하려 애쓰는 모디아노의 소설 중에서도 자전적 색채가 가장 짙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저자

파트릭모디아노

저자:파트릭모디아노PatrickModiano
바스러지는과거,잃어버린삶의흔적으로대표되는생의근원적모호함을신비로운언어로탐색해온프랑스현대문학의거장.1945년불로뉴비양쿠르에서태어났다.열여덟살때부터글쓰기를시작해1968년소설『에투알광장』으로로제니미에상,페네옹상을받으며화려하게데뷔했다.『외곽순환도로』로1972년아카데미프랑세즈소설대상을,『슬픈빌라』로1976년리브레리상을,1978년에는『어두운상점들의거리』로프랑스의가장권위있는문학상인공쿠르상을수상했다.발표한전작품을대상으로2000년폴모랑문학대상,2010년치노델두카국제상,2014년노벨문학상을수상했다.주요작품으로『청춘시절』『잃어버린거리』『팔월의일요일들』『신혼여행』『도라브루더』『신원미상여자』『작은보석』『한밤의사고』『혈통』『잃어버린젊음의카페에서』『지평』『네가길을잃어버리지않게』『잠자는추억들』등이있다.
『추억을완성하기위하여』는딸의출생신고를위해시청으로향하는‘나’의이야기를시작으로,생의편린과도같은열다섯개의단편적인이야기를통해삶의한순간마주했던사람과물건,풍경,사건등을세밀하게조명한다.어둠속에흩어진기억의조각들을그러모으듯과거를추적하고잊힌추억을복원하며마침내자신의모호한정체를완성해나가는모디아노의소설중에서도자전적색채가가장짙은작품으로평가받는다.

역자:김화영
서울대불문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석사,프랑스엑상프로방스대학에서알베르카뮈론으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삼십여년간고려대불문학과교수를지냈고현재같은대학명예교수로있다.지은책으로는『바람을담는집』『시간의파도로지은城』『문학상상력의연구』『소설의숲에서길을묻다』『발자크와플로베르』『행복의충격』『한국문학의사생활』『여름의묘약』『김화영의번역수첩』등이있고,알베르카뮈전집(전20권),『다다를수없는나라』『어린왕자』『섬』『마담보바리』『방드르디,태평양의끝』,실비제르맹의『프라하거리에서울고다니는여자』『밤의책』,그리고모디아노의『잃어버린거리』『신혼여행』『어두운상점들의거리』『청춘시절』『팔월의일요일들』『잠자는추억들』등을우리말로옮겼다.

목차


추억을완성하기위하여_11

초판해설|기억의어둠속으로찾아가는언어의모험_205
개정판해설|현실과상상의무지개다리를넘나들며_219
파트릭모디아노연보_229

출판사 서평

특유의집요하고도섬세한문체로펼쳐내는
불연속적구조의이야기

이소설의제사(題詞)로,“산다는것은하나의추억을완성하기위하여집요하게애쓰는것이다”라는르네샤르의문장을통해짐작할수있듯,이작품에는어렴풋한이미지,희미한윤곽만남은기억을더듬어가는지난한여정이담겨있다.원제‘가족수첩(Livretdefamille)’은결혼을하거나첫자녀가출생한경우프랑스정부에서교부하는가족관계증명수첩을가리킨다.열다섯장내외의종이를철한,여권과비슷한형태의이수첩에자녀의출생,이혼,사망등가족관계에변화가있을때마다관련사항을추가로기재한다.말하자면한인물이지나온삶의여정을일련의이름들과시공간의좌표에따라기록함으로써그를사회와연결시켜주는공적인문서인것이다.
1장에서첫아이를얻은감동에젖어있던화자는시청가족관계등록과가문을닫기전에출생신고를하기위해서둘러병원을나서며자신의가족수첩을들춰본다.화자는자신이어디서태어났고“태어날때부모의이름이정확히무엇이었는지알지못한다”고고백한다.그의혼인증명서초본에는‘아버지’에대한칸이빈칸으로남아있다.그대신에부모의혼인증명서한장이가족수첩에부착되어있는데,독일점령기에한결혼이었으므로유대인이었던아버지의이름은가명이었다.부모는아무런연고가없는듯한므제브에서무엇을하다그도시에서혼인신고를하게된것일까?행적이모호했던아버지가선택한‘드종그’라는가명은어디서온것일까?‘나’는빈틈투성이인자신의가족수첩을바라보며의문에잠긴다.
화자는우연히만난아버지의옛친구장코로맹데와함께시청으로가우여곡절끝에딸의출생신고를마치고,가족관계등록부의내용을확인한뒤서류에코로맹데와나란히서명한다.태어나자마자공문서에너무도선명하고명확하게존재를증명하며“가족관계등록부라는저비밀스러운재산을”단번에얻어낸딸을떠올리며가족수첩을손에쥔화자는알수없는감정에사로잡힌다.

나는책상위에펼쳐져있던커다란등록부가계속떠올랐다.우리둘다같은생각을하고있었던지코로맹데가이렇게말했다.
“봤지?가족관계등록부,그거참묘한거야,안그래?”
그런데그는?그는과연어느가족관계등록부에등재되어있기나할까?국적이어디일까?벨기에?독일?발트삼국?아니,그보다는러시아사람일것같다.그리고‘자스파르’라고불리기전,‘드종그’라는성을덧붙이기전의내아버지는?그리고내어머니는?다른모든사람은?그리고나는?우리의성과이름,출생연월일,우리부모의성과이름을복잡한자획의펜글씨로기록한,종이가누렇게퇴색한가족관계등록부가어딘가에있을것이다.그런데그등록부들은어디있단말인가?(25쪽)

이후자기이름이파트릭모디아노라고밝힌화자는모호하고공백이많은자신의가족수첩과사그라드는추억의빈틈을채워보려는듯,삶의한순간스쳤던사람,여러장소,이름,공문서나장부에등재된날짜,도로명,전화번호등의객관적인증거들과,이미지와감각,인상이혼재하는불연속적구조의이야기를특유의집요하고도섬세한문체로펼쳐낸다.2장에서화자는상하이에서청춘을보낸앙리마리냥이라는사람을우연히만나,중국에서자신에게결핍된모든것을찾을수있기를기대하며중국대륙으로떠나기로결심한다.그런데마리냥은1945년사망한것으로기록된사람이다.“계속살아가고있는데도존재를인정받지못하다니도대체어찌된일일까?”(32쪽)그들은대사관직원과의접촉을기다리는데,계절이몇번이나바뀌도록기다림은계속된다.그다음사진으로도본적없는할머니가말년에살았다는레옹보두아예가를다시되짚어가보며자신의뿌리와그시절소리없이사라져버린사람들에대해떠올리는짧은단상이이어지고(3장),어머니가영화배우로활동하던시절,브뤼셀의촬영지로떠나기로한바로전날새벽나치독일군대의침공소식에혼란하고어수선했던도시풍경과,미국으로건너가기로한영화제작자들과달리프랑스에남기로결심한과정이생생히묘사된다(4장).
이야기의무대는아버지가레놀드라는인물에게서모종의서류에서명받기위해열다섯살인나를데리고기차를타고향한시골별장으로옮겨간다.그곳에서아버지의지인으로짐작되는미스터리한인물들을만나고,난생처음“기이한졸음같은것이몰려오는”(71쪽)듯한느낌과,이튿날낯선이들과함께한승마와사냥경험을회상한다(5장).6장에서화자인나는1973년10월초의어느저녁라디오를통해제4차중동전쟁소식이전해지자,“무엇인가가끝장나고있다”(83쪽)고느끼며“이른바‘위기’라고들부르는것이시작되고우리가새로운시대로들어서게된”(83~84쪽)지난순간을떠올린다.같은날밤엔카페에서한남자의갑작스러운죽음을목격한다.진술을위해경찰서까지동행해,그가앙드레부를라고프라는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출신이민자임을알게된다.그다음은작가인내가영화를위해시나리오각색을의뢰받고촬영이끝날때까지현장에서함께하게된일화가상세히펼쳐진다(7장).
한국전쟁으로인한위험때문에어린시절한때파리에서멀리떨어진비아리츠로보내져그곳에서세례를받은화자는,자신의유년기가남긴흔적인세례증명서를발급받기위해수십년만에아내와함께그옛동네에다시찾아가둘러본다(8장).그리고자신을자꾸만과거로잡아당기는“유독한기억”(112쪽)에서벗어나기위해중립지대였던스위스로떠나생활하던어느날,라디오음악프로그램진행자가독일점령기파리에서악명을떨친인물임을깨닫고그와대면할결심을하는이야기(9장),이탈리아에머물던시절알게된,카바레에서스트립쇼를하는클로드슈브뢰즈라는여성과,그녀가소개한이집트의마지막왕르그로라는인물에대한이야기가이어진다(10장).
한편,화자는삼촌과함께파리를떠나새로이정착할곳을찾기위해시골땅을보러가고,그끝에절망과서글픔만남았던기억을다시떠올린다(11장).열일곱살의화자모디아노는지인의소개로드니즈드레셀이라는여자를만난다.그녀역시이집트에서실종되어버린자신의아버지에대해잘알지못한다.“그녀를위해서라면무슨일이든하고싶었”던모디아노는왕년의쇼맨이자가수였다는그녀의아버지하리드레셀의전기를쓰기로결심하고,암스테르담으로향해여러인물을만나인터뷰하며그의생애의빈구멍을메워보려애쓴다(12장).결혼을앞두고장차아내가될여자의고향인튀니지에서보낸몇달간의여정이짧게이어지고(13장),신문부동산광고란에나온한아파트정보를보고어린시절을보낸옛집임을확신하며그집에찾아간모디아노는자신이태어나기전부모의행적에대한상념에잠긴다(14장).그리고마침내다시처음으로돌아오듯,시점은1장에서약일년이흐른1975년으로건너뛴다.모디아노는아내와함께택시를타고니스시내를가로지르며묘한기시감을맛본다.이제한살이된,아직기억같은것이없는딸아이는그에품에안겨곤히잠들어있다(15장).

바스러져버리는기억과삶의어둠
펜한자루로그어둠속을밝히며
나의잃어버린시간을찾아나선여정

이소설의파편적구조는“조각조각부서져흩어진요소들을바탕으로재구성할수밖에없는기억의특성을반영하는것”이며,“모디아노특유의가족관계와보편적삶이보여주는불확실성인동시에노벨상위원회가지적한‘기억의예술’”(222쪽)이라고번역가김화영은설명한다.하지만추억은부분적으로사실적이고정확할지언정,부분들의사이는단절되어“빈구멍”으로존재한다.하나의장은다음장과이어지지않고연속된이야기에대한기대를끊임없이배반한다.대신작가는펜한자루로국부조명을환히비추듯조각난기억하나하나에끈질기게매달린다.몇가지사실에집중해자세하게묘사하고그빈틈은어둠속으로가라앉힌다.그러므로역설적이게도그의문학적상상력은부재를중심으로작동한다고할수있다.서로좀체이어지지않을듯한,파편과도같은기억들은장마다등장하는일인칭화자‘나’의목소리를통해통일성을얻고하나로연결된다.
나의정체와하나의추억을완성하기위한집요한노력을증명이라도하듯,이소설에는가족관계등록부와세례증명서등의서류,수많은도시와길,인물의이름은물론이고영화와책,라디오프로그램제목과낡은전화번호부에실린주소와전화번호까지등장한다.객관적인문서와고유명사와숫자를동원해과거를추적하고잊힌추억을복원하는것은누군가가“이땅에머물렀던모든물적증거”,과거의편린들을모아하나의형태를만들어보려는시도에다름아니다.그렇게모디아노는상상으로채워낸자신만의문학적가족수첩을우리앞에꺼내보인다.

우리시대의프루스트,기억의예술가
파트릭모디아노의슬프고도아름다운오토픽션

모디아노의소설가운데자전적색채가가장짙은작품으로평가받는『추억을완성하기위하여』에는독일점령기에행적이묘연했던유대인인아버지,영화배우였던어머니,어린시절을함께보낸남동생뤼디등작가의실제가족으로보이는인물들외에도작가가삶의한순간실제로만났음직한수많은인물이등장한다.스스로이름이‘파트릭모디아노’라고여러차례밝힌화자는미스터리한남자의전기를준비하며“프랑스의작가가되는일만이남아있”(181쪽)다고서술했던소설속열일곱살의‘나’처럼,문학에열정을바치기로결심하고그로부터몇년후인1968년『에투알광장』으로데뷔한다.시나리오각색을맡아배우,제작진들과한편의영화를완성하는‘나’에게서는〈라콩브뤼시앵〉등여러편의영화시나리오작업에참여한모디아노가겹쳐보인다.무엇보다,소설첫장과마지막장에는갓태어난딸아이가등장하는데,이는실제로1974년10월22일첫딸을얻은모디아노의경험이투영된것으로볼수있다.
근원과혈통,정체성을찾으려고필사적으로노력하고단단한전통과소속감속에뿌리내리고싶어하는욕구는모디아노의소설들에공통적으로드러난다.11장에서“사람이언제까지나뿌리없이떠돌며살수만은없다”는삼촌의손에이끌려정착할곳을찾아낯선마을에도착한화자는삼촌에게서슬픔과실망감을감지하며“그런데삼촌,그많은노력이다무슨소용이던가요?”하고묻는다.빈틈이많은기억을이어붙여끝내하나의추억을완성할수는없으리라는점을작가는미리부터알고있는듯하다.
번역가김화영은모디아노가끝내찾아들어가는것은“필연적으로허물어지는삶그자체”이며“의미있는것이있다면그어둠속에서도어떤사람들의기억이섬광처럼소생시키는의식의빛,그빛에동력을제공하는삶에대한사랑일것이다.2차대전이파괴한것은단순히재산이나인명만이아니었다.그것은실질적인인간의정체성이기도하다.모디아노는바로대전의우연속에태어나모든과거를상실한세대로성장한대표적작가다”라고평했다.『추억을완성하기위하여』가슬프지만아름답게읽히는이유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