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대학로 (성균관 유생과 반촌 사람들 | 양장본 Hardcover)

조선의 대학로 (성균관 유생과 반촌 사람들 | 양장본 Hardcover)

$22.00
Description
꿈과 욕망이 뒤엉킨
조선 유일무이의 고시촌을 누비다

20개의 주제로 만나는 옛 대학가의 내밀한 풍경
매년 가을이면 단풍 명소로, 〈성균관 스캔들〉을 비롯한 드라마 속 배경으로 성균관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성균관에 얽힌 옛 이야기와 이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생활상까지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다양한 한문 고전으로 조선시대 지식인과 민중의 삶을 소개해온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는 성균관을 둘러싼 마을, 즉 ‘반촌’의 역사와 문화에 주목한다. 수년간 출퇴근길로 이곳을 오간 안대회 교수는 자신에게 일상의 중심지인 이 지역에 대한 사료를 꾸준히 수집해 과거의 반촌과 현재의 혜화동, 명륜동를 겹쳐 읽고 옛 조선의 대학로로 독자를 안내한다.
오늘날에는 공연문화의 메카로 여기는 대학로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이곳에 최고의 교육기관 성균관이 자리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3년에 한 번 열리는 과거시험 급제라는 꿈을 좇았던 성균관 유생들. 성균관 소속 공노비지만 다양한 상업 활동에 종사하며 유생들을 뒷바라지한 반인들. 이들이 어우러져 살아간 반촌은 그들만의 질서가 지배하는 또다른 세계이자, 외부에서 범죄자가 들어가도 형리와 포졸이 마음대로 쫓아올 수 없던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조선의 대학로』는 유생들의 하숙집과 반인들의 정육점이 공존한 조선 유일의 고시촌인 반촌의 생활상을 20개의 주제로 정리해 40여 점의 도판과 함께 제시한다. 제사와 상업, 유생과 노비가 뒤엉킨 반촌이라는 일종의 ‘게토’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서이자 안내서로 다양한 문헌과 시각 자료를 곁들여 이 지역 곳곳을 누비다보면 성균관 주변 풍경이 색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지대가 높으며 키 큰 소나무가 빽빽한 숲 언덕인 벽송정에서 정조는 성균관과 그 주변 마을인 반촌 일대를 둘러보면서 풍경이 아름답고 기운이 상서로워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 자리로는 최적이라고 감탄하였다. (…) 한양이 조선에서 모범이 되는 장소라면, 성균관은 그런 한양에서 모범이 되는 장소였다. 그래서 옛말로 서울과 반촌을 ‘수선(首善)’의 땅이라 하였다. 반촌은 풍경이 아름답고, 문명의 기운이 감도는 길지로서 인재를 육성하는 성균관이 자리를 잡은 곳이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유일의 대학가였다. _11~13쪽
저자

안대회

연세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같은학교대학원에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성균관대학교한문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성균관대학교문과대학학장,대동문화연구원장,한국한문학회회장등을역임했다.2015년제34회두계학술상,2016년제16회지훈상국학부문을수상했다.2023년SKKU-Fellowship교수로선정되었고,2024년제38회인촌상인문·사회부문을수상했다.
지은책으로『한국시화사』『조선의명문장가들』『담바고문화사』『궁극의시학』『천년벗과의대화』『벽광나치오』『조선을사로잡은꾼들』『정조의비밀편지』『선비답게산다는것』『18세기한국한시사연구』등다수가있고,옮긴책으로『박지원소설선』『채근담』『명심보감』『만오만필』(공역)『해동화식전』『한국산문선』(공역)『완역정본택리지』(공역)『소화시평:조선이사랑한시이야기』『내생애첫번째시』『북학의』등다수가있다.

목차

작가의말
서문

1부.성균관과반촌
1장.성균관마을의탄생
2장.한양의특수구역반촌
3장.반촌은어디서부터어디까지였을까?
4장.형리의출입을금하노라

2부.반촌사람들
5장.성균관에예속된운명
6장.반인만의특수한세계
7장.반촌을세거지로삼은명문가
8장.송동의송시열과포동의윤휴,두거인의비극
9장.성균관과반촌을빛낸대사성
10장.반인,성균관을운영하다
11장.반주인의상업활동과유생과의관계

3부.반촌은어떻게움직이는가
12장.성균관운영은어떻게이루어졌는가
13장.지방유생들의베이스캠프
14장.반촌곡회,성균관학우와동창생의모임

4부.반인의흥망성쇠
15장.지식과교양을갖춘반인
16장.반촌주민의시선집『반림영화』
17장.문묘의신주를지킨정신국
18장.반촌제일의훈장안광수와정학수
19장.근대이후성균관과반촌의변신
20장.마지막불꽃홍태윤과박승환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출세를위한조선의게토,반촌

명륜동,혜화동,대학로일대의대학가를20세기이전에는반촌(泮村)이라불렀다.여기서반(泮)이라는글자는성균관을지칭하므로반촌은‘성균관이있는동네’또는‘성균관마을’이라는뜻이다.조선시대에는한양의성균관과그주변마을을숭교방(교육을숭상하는구역)이라하여인재양성을위한교육구역으로설정했고여러가지혜택도주어특별히관리했다.성균관유생이라고하면TV드라마등의영향으로젊은미소년이미지를떠올리지만실상은달랐다.문과의예비시험인소과(생원시,진사시)에합격한이들은상재생으로,고관의자제를비롯한일반유생은하재생으로성균관에입학했는데18세기성균관상재생의평균나이가45세일정도로입학부터쉽지않았다.그렇게어렵게들어가도과거시험을통해3년에한차례씩33명만뽑았기에100~200명안팎의유생들은시험에살고시험에죽을수밖에없었다.이들유생이수험생활에집중할수있도록다양한편의를제공한마을이바로반촌이었다.출세를꿈꾼유생들과그유생을물심양면으로도운반인들의욕망이들끓은,조선유일의대학로였던것이다.
과거시험합격여부와별개로나이가적지않고학문과문예능력이우수한유생들을조정에서는무시할수가없었다.전국에서모여든유생들은국정의주요현안에대해상소를올려정국의향방에영향을끼치기도했다.집단휴학인권당(捲堂),집단자퇴인공관(公館)등의수단으로유생들은성균관에서당론의대리전을치르기도했다.전국유림들이공론을형성하는메카이기도했으나반촌은지방유생과관료들의한양내베이스캠프이자당대지성인들이교류한지식인커뮤니티로도기능했다.하지만이런시스템은영원하지않았다.최고의인재들이모여공부하는대학이자공자의신주를모시고제사를지내는문묘가있다는이유로특별대우를받았던성균관은점차최상위고등직업학교로변질되어갔다.개항이후에는서양식교육제도가도입되며힘을잃었으나반인들이학교를세워교육특구로서의전통을이어가려애쓰기도했다.이처럼반촌을통해조선시대교육시스템의변화상도하나하나짚는다.과거의대학가및대학문화를통해반촌이라는특수한지역의흥망성쇠를손에잡힐듯생생히제시한다.

반인의노동력을착취하여성균관을운영하기위하여국가차원에서현방의독점운영권을반인에게넘겼다.현방(懸房)은한글로는‘다림방’이라쓰는데소고기를걸어놓고판다고하여붙여진이름이다.현방에서거두는이익은곧성균관재정의확충으로이어졌다.그때문에성균관은현방과그운영자인반인을적극적으로대변하였고,현방경영자도성균관으로부터비호를받았다.성균관대사성과직원및반인과유생은이익공동체로서서로연대하지않을수없었다.그만큼반인의경제력과노동력은열악한성균관재정의버팀목이었다.소고기의도축과판매는도성안에서막대한이윤을만들어내는산업이었다.조선은술의제조와판매,소나무의벌채와함께소의도축을엄격하게금지하는이른바주금(酒禁).송금(松禁),우금(牛禁)의삼금(三禁)정책을초지일관시행하였다.이세가지가농업진흥과밀접하게관련되었기에금지했으나이삼금정책은역효과를낳기쉬웠다.금지할수없는상품을금지하고서특정집단에독점권을주면이는막대한이익을창출하는기화(奇貨)가되었다._134쪽

돈과교양을갖춘욕망하는노비의탄생

유생들이수험생활에매진하는동안성균관지킴이역할은반인이도맡았다.반인은성균관노비로법적으로는반촌을벗어날수없었다.말그대로성균관에평생매일수밖에없는운명이었다.하지만반인들은유생들의보조역할을하는데서그치지않았다.반인들은성균관운영에필요한재정을실질적으로도맡았던성균관의돈줄이자유교적의리와문화,예술을추구할줄아는교양인으로성장해갔다.『조선의대학로』에서안대회교수는면천(免賤)될수없는노비이되자기목소리를낼줄알았던반인의입체적면모를집중적으로살핀다.
특히흥미롭게눈여겨본부분은유생과반인의관계였다.양반과노비라는신분차이때문에이들의관계를주종관계로이해하기쉬우나실상은달랐다.일종의하숙집주인이었던반주인은유생의성균관생활과과거응시를돕고보증하는후견인이나집사와같은존재로둘사이에는상당히끈끈한인간관계가맺어졌다.이들의관계는심지어자손까지도대물림될정도였기에집안은물론이고지역색까지더해져점점카르텔처럼굳어졌다.여기에돈문제도더해졌다.정육점운영자,과거시험브로커,고리대금업자등반촌안에서다양한상업활동을전개한반인들은거침없이자기몫을챙겼다.벌어들인수입을성균관운영비로대기도했지만유생들이과거급제해수령이되면당당히보상을요구할정도로수백년동안이권네트워크를형성해갔다.일반서민보다생활수준도괜찮았던반인들은높은지식과교양까지쌓았다.반촌사람들이지은시를모아『반림영화』라는책까지낼정도로뛰어난문학적역량을갖췄고,성균관출판사업에도실무적으로참여했다.유교질서가지배하는조선사회였지만반촌이라는일종의게토에서굳어간돈과권력을좇는이들의독특한공존을『조선의대학로』에서확인할수있다.

벼슬하는사람은대부분유생과과거시험응시자가운데나왔고,그중더러는고관에이르렀다.일반지방관이되면반촌시절의수고에대한대가로반주인에게후한보상을하였다.이때의보상은이전의고통을상쇄하고도남을만큼큰돈이었다.공공연한관례로만들어진희생과보상이라는흐름에는당연히폐해가따랐다.일단그보상이대개유생자신의재물에더해공적재물에서나오는경우가많았다.금전을둘러싸고만들어진관계는결코일방적이지않았다.유생역시반주인과맺은인연을이용하여성균관이나반주인에게많은돈을빌렸다.성균관에서금전을빌리고갚지않는유생도적지않았다.그재물의관리자는곧전복이고,그역시대개반주인이었다.유생이빚을갚지않아도반주인이인정상억지로받아내지도못했다.이에그들은복잡한채무관계로얽히기쉬웠다._116쪽

역사가켜켜이쌓인대학로로떠나는여행

성균관을상징하는500년된은행나무는여전히가을이면그존재감을뽐내지만반촌의모습은20세기이후많이바뀌었다.『조선의대학로』에서안대회교수는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도로구조도,행정구역도재편된대학로의모습을하나씩발굴해간다.옛문헌과고지도를통해콘크리트건물과아스팔트도로에깔린수백년전이야기를파헤친다.성균관대학교도서관주변에는벽송정이,후문으로내려가면포동이,대학교정문앞에는문묘로들어오는향석교가,맞은편에는정신국을기리는정려문과호성사가자리했음을보여주며과거이곳의풍경을손에잡힐듯안내한다.
사라진옛모습뿐아니라현재도남아있는‘증주벽립’바위,명륜당,대성전,수복청,대학당등반촌의다양한장소에얽힌이야기도담아현장으로발길을이끌어준다.이책은단순한지역문화사의정리에서그치지않는다.성균관보다는반촌에,유생보다는반인에더초점을맞춰우리역사에서소외된‘반촌사람들’의삶과문화를생생하게되살려낼뿐아니라대학로의모습을풍성하고입체적으로재현해낸다.

성균관은옛위상을잃었으나반촌에는다양한교육기관이많이설립되어조선시대교육특구인숭교방의전통을이어갔다.흥덕사옛터로정학수의서당과북묘가있던자리일대에는보성학교와불교중앙학림이설립되었다가나중에는보성고등학교와동국대학교로발전하였다.그동쪽언덕에는경신학교가있었다.또사현사부지에는경성고등상업학교가세워졌다가차례로서울여자의과대학,우석대학교,고려대학교의과대학병원으로주인이바뀌었고,나중에는아남아파트로손바꿈하였다.반촌외곽에위치한명문가의세거지였던잣골언덕에는독일신부가땅을매입하여독일성당과신학교,동성상업학교가들어섰다.반촌남촌의연건동과동숭동,이화동에자리한경성제대와공업전습소를비롯한교육기관은굳이언급하지않는다.반촌과그주변에는대학과교육기관이면면히생명을이어갔다.현재도많은교육관련기관이이곳에남아있다._2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