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둠벙

고래둠벙

$13.50
Description
섬의 시간인 물때를 따라 배와 뭇 생명들이 깃들었다 나가는 곳,
사라져 가는 검은머리물떼새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 곳 『고래둠벙』
낙지를 잡는 아버지와
굴을 쪼는 어머니와
굴 바위 밑구녕에 붙어 있는
고둥을 줍는 나

아버지 망태기에는 낙지가
어머니 굴 바구니에는 굴과 박하지가
내 비닐봉지에는 애기 고둥과 돌중게가

물때가 밀려오면
누렁이 강아지가 컹컹
꼬리 치며 달려오는

갯내음 나는 발자국 따라
함께 걸어오는 갯티길

「갯티길」 전문

오랜 시간 줄곧 바다와 섬을 품고 말해 온 시인 이세기. 그간 정성스레 모은 동시들로 첫 동시집 『고래둠벙』을 꾸렸다. 소금기 서걱거리는 이 동시집은 무엇을 품고 있을까? 시인이 우리에게 알려 준 섬마을의 핏줄인 ‘갯티길’을 따라 둘레를 걸어 보자.
길을 따라가 보면 인천 덕적군도의 여러 섬들이 보인다. 문갑도, 덕적도, 굴업도, 울도, 백아도, 이작도 같은 섬들과, 백령도와 연평도 같은 서해 5도가 그 배경이다. 70년대와 오늘날이 갈마들며, ‘점박이’와 ‘나’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푸른 물길을 헤치고 손꼽아 기다리던 약을 실은 병원배가 들어오고, 경계가 엄한 군 철조망 너머 하늬바다에는 점박이물범들이 한가로이 노닌다. 토박이말을 쓰는 섬사람들은 갯티에서 굴과 고둥을 채취하고 아이들과 강아지는 그곳에서 배우고 어울린다. 갯벌은 생명력과 노동이 꿈틀거리고, 북녘 고향 땅을 그리는 건넛마을 할아버지와 뭍에 나간 자식을 걱정하는 이웃 할머니와, 구구단을 쓰다가도 상수리나무숲으로 장수하늘소를 만나러 가는 아이들의 섬 학교가 있다. 그믐밤 굴 껍데기 쌓인 새하얀 길을 엄마와 아이는 전등불을 밝히며 걸어오고, 모래벌판인 풀등에는 숱한 생명들의 숨소리가 조용히 왁자하다. 섬의 시간인 물때를 따라 배와 뭇 존재들이 들어왔다 나가는 곳, 사라져 가는 검은머리물떼새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 곳, 『고래둠벙』.
원종찬 아동문학평론가는 문학에서 장소성과 지역성은 중요한 바탕을 이루는 바, 한국문학의 지도에 덕적군도를 그려 넣은 이세기 시인의 발걸음은 무척 귀하다고 말했다. 사람에게 ‘사는 곳’은 중요한 의미를 띠지만 동시의 세계는 비교적 지역성과 장소성이 희미한 편이었기에, 임길택의 『탄광마을 아이들』과 안학수의 『낙지네 개흙 잔치』에 이어 『고래둠벙』이 더해지는 것은 든든한 일이라고. 이세기 시인은 섬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정서, 자연의 풍경을 시로 풀어내며 그가 지켜 온 ‘섬’을 독자들에게 펼쳐 보인다. 평생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살다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뿌리내린 시인의 언어로 섬을 만나 보자.

“내 사는 섬도 저 멀리서는 빛나는 별이 사는 마을”
70년대 섬에서 전학 온 아이 점박이와 오늘날 섬에서 살아가는 아이를 통해
섬의 삶, 다양한 생명들의 이름과 토박이말을 엿볼 수 있는 동시집
『고래둠벙』은 크게 3부로 짜여 있다. 1부는 70년대를 배경으로 섬에서 전학 온 아이 ‘점박이’를, 2부와 3부는 오늘날 섬에서 살아가는 ‘섬 아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1부 ‘점박이’에는 섬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초등학교 3학년 육지로 이사를 온 시인 자신이 겪은 일들이 변용되어 녹아 있다. 섬에서 전학 온 말수 없는 아이, 아버지가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다가 월경했다는 소문 속 아이가 점박이라는 별명을 얻고 이질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다가, 수군거림을 박차고 은빛 물고기처럼 훌쩍 뛰어오르는 과정, 교실의 모두를 한바탕 점박이물범 소동으로 이끄는 떠들썩한 순간이 한 편의 서사로 완성되어 간다. 어린 시절 연좌제의 그늘에서 아픔을 겪었던 시인 자신의 치유 과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누구나 가진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자 한 시인의 바람이 투영되어 있다.
2부 ‘섬 아이’는 시인이 인천의 섬들을 다니며 만나 온 아이들이 담겨 있다. 섬 전체가 놀이터이고 배움터인 아이들, 어른들이 쓰는 토박이말을 자연스럽게 익혀 쓰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말, 표정과 움직임이 시인 안에 차곡차곡 쌓여 ‘섬 아이’를 이루었다. 뭍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배 안에서 시구치(돌고래)를 기다리고, 섬으로 놀러 오라며 육지 아이들을 부르고, 할머니의 옹이 진 손끝에서 사랑을 느끼고, 갯바위를 들추었다가 깜짝 놀란 돌중게에게 미안해 갯바위를 내려놓고.
점박이와 섬 아이는 자신과 자신의 마을을 사랑할 뿐 아니라 섬의 생활과 ‘금기’ 속에서 생명에 대한 경외를 체화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섬 아이들은 모두 생태주의자고 생명주의자라고 밝힌다.

“섬에는 금기가 많아요. 뱃일이 늘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거세고 풍랑이 높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섬 아이들은 금기어를 많이 들으며 자라요.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말 없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작은 미물 하나라도 해치지 말라고, 그러면 그 화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어른들은 늘 일러 주셨어요. 저는 그런 금기 속에서 오히려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를 배웠다고 생각해요. 섬 아이들은 어쩌면 모두 생태주의자이고 생명주의자라고 할 수 있어요. 작은 섬에는 가게도 많지 않고 갈 곳도 많지 않기 때문에, 섬에서 겪는 모든 것이 몸과 마음에 깊게 저장됩니다. 장수풍뎅이, 먹구렁이 같은 존재들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마음속에 남는 거예요.”_이세기

그렇게 몸과 마음에 저장된 것들이 ‘나’뿐 아니라 서로를 밤하늘 별 같은 존재로 긍정하게 하며 함께 어우러진 세계를 만든다. 그 세계는 생명과 그들의 바람을 품은 고래둠벙과 맞닿아 있다.
저자

이세기

인천덕적군도문갑도에서태어났다.1998년『실천문학』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먹염바다』『언손』『서쪽이빛난다』,시론집『백석,자기구원의시혼』,산문집『이주,그먼길』『흔들리는생명의땅,섬』등을냈다.

목차

시인의말2

1부점박이
전학온점박이8점박이는이상한아이13운동회날점박이20점박이물범소동25

2부섬아이1
갯티길40굴봉까는손42밤길43우리집먹구렁이46바지락배굴배48낙지할배49왁자지껄부둣가50고양이가족52첫눈54도토리57저녁별60

3부섬아이2

이맘때쯤64섬학교65호랑게68생귤까먹기70망개떡할머니72까치복이야기74응달눈76
내가미처몰랐어78붉은부리새80고래둠벙83

해설원종찬86

출판사 서평

“장소성과지역성이희미한동시의영토에그려넣은덕적군도.
사람이‘살고있는곳’으로서의섬,
원초적감수성을깨워줄‘먼데’로서의섬을만날수있는기회.”_원종찬(아동문학평론가)


둠벙에는
깜팽이새끼
불가사리

둠벙에는
하늘이내려앉고

개흙에서나온
할아버지
낙지삽을씻고

할머니는
호미를씻고

고래를닮아서
고래둠벙

물때가오면
고래둠벙은
고래가되어
바다로헤엄쳐가겠지

「고래둠벙」전문

“섬은연결의감각을알려주는곳,끊어진세계가아닌모두가이어진세계.”
이세기시인은섬의모든길은갯티길로향해있다고말한다.갯티길은어른들에겐생계의터전,아이들에겐작은돌중게를보고,박하지를볼수있는그자체로하나의놀이터이자다른생명을느껴보는세계다.그가갯티길을놓아우리를『고래둠벙』으로부른다.그곳은과거와현재가,섬과육지가,바다와하늘이,사람과생명이공존한다.

“저는섬이끊어진세계라고생각하지않습니다.뱃길로이어져있듯모든섬은서로이어져있고육지와도이어져있어요.저는섬을통해‘이어진세계’를말하고싶었어요.우리의삶은때로외롭고고립되어보이지만,사실은서로연결되어있다고요.섬은제게그연결의감각을알려주는곳입니다.”_이세기

이세기시인은그간인천섬연구모임,황해섬네트워크등을만들어인천섬보전운동을해왔다.그과정에서사라져가는많은동식물들을만났다.왕은점표범나비,금방망이꽃,대청부채,먹구렁이,누룩뱀도보았고,우리나라에서가장오래된바위도보았다.풀등에서는검은머리물떼새,노랑부리백로,저어새도만났다.육지에서밀려난듯한자리에서도꿋꿋하게자기터전을지키고있었다.그는어린이들이이런섬의생명들에더많은관심을가지고함께지켜주었으면좋겠다는소망과더불어,기회가된다면인천섬의탄생이야기,갯티길에서만난사라져가는동식물이야기들도들려주고싶다고전해왔다.

바다의생명력을찬란하게펼쳐보이는김세현화가의그림
『고래둠벙』을감싼짙은파란빛은김세현화가의손끝에서뻗어나왔다.절제된색채는오히려더선명하게생명력짙은바다를드러낸다.섬마을밤하늘에빛을흩뿌리는별과,그별과같은존재들과,섬의정경이생동감있게때론흥겹게때론고즈넉하게한데놓인다.흰눈처럼마을에피어난동백꽃의이미지까지더해지며,바다위에펼쳐진섬을마주한듯심장이뛰는감각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