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장미가 사라졌다 (상실의 시대, 예술이 깨우는 감각)

어느 날 장미가 사라졌다 (상실의 시대, 예술이 깨우는 감각)

$19.00
Description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박보나 신작 에세이★
상실의 시대, 예술이 깨우는 감각

잊어버린 감정을 불러오고 사이를 이어줄,
예술의 다른 언어를 찾아서

『태도가 작품이 될 때』 『이름이 없는 것도 부른다면』 『예술이 내 것이 되는 순간』으로 자신만의 예술 에세이 영토를 확장해온 미술가 박보나의 신간 『어느 날 장미가 사라졌다』가 출간되었다. 전작을 통해 예술가의 태도, 비인간 동물의 자리, 영감의 순간 등 예술가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다뤄온 그가 이번에 천착한 주제는 ‘상실감’이다.
박보나는 최근 몇 년간 만나온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이 사라짐에 대한 공통적인 관심이며 그에 따른 쓸쓸함, 그리움, 무기력의 표현이라는 점을 포착했다. 가령 이들의 작품에는 어린 시절의 희미한 이미지, 주인을 알 수 없는 발자국, 홀로그램으로 찍은 곤충의 시체, 뼈대만 남은 듯한 나무 조각, 사람의 피부 같은 실리콘 껍질 등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상실의 대상이 구체적이라기보다는 다소 모호하며, 그것이 사회 역사적 현실에서 비롯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갈수록 물리적 감각 경험이 멸종되는 사회 속에서, 저자는 이러한 상실감의 정체가 실제로 뭔가를 ‘잃어버린’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잊기를 강요받은’ 데 있지 않은지 질문한다.
『어느 날 장미가 사라졌다』는 고도화된 기술 자본주의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 또한 잊기를 강요받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동시대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환기한다. 감각, 경험, 만남, 연결, 노동, 상상 등 상실의 목록은 다양하며, 책의 제목 속 ‘장미’ 또한 오가와 요코의 소설 『은밀한 결정』 속에서 권력자들에 의해 제거 명령이 내려진 대상으로 강요된 상실을 뜻한다. 하지만 박보나는 이러한 흐름에 저항하며 장미를 건져 올리려 고투하는 작가들이 있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도리스 살세도, 차학경,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박이소, 구정아, 김옥선 등의 미술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상실에 맞서는 방향, 즉 감각의 회복과 아름다운 가치의 지향-공동체 의식, 확장된 우정, 비인간에 대한 존중, 주체적인 독해, 새로운 상상 등-을 시각화한다. 이러한 작품들을 읽어내는 가운데 저자는 실제의 틈에서 아직 상실하지 않은 가치들을 쓰다듬으며, 회복의 시간을 제안한다.

이 책은 세상은 더 좋아진다는데 우리에게서는 빠져나가는 것들, 즉 이미 따라잡기 버거울 만큼 멀리 앞서가는 기술과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거대한 자본주의 속에서 우리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하며 또한 잊기를 강요받는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썼던 글을 모은 것이다. 글을 통해 이미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중요한 것들을 짚고 다시 한번 상기시킴으로써 그것의 회복을 얘기하고 싶었다. 실제의 틈에서 아직 상실하지 않은 가치들을 쓰다듬으면서 우리가 덜 외로워질 수 있는 시간을 상상했다.
_「들어가며-예술의 상상이 건네는 온기」, 12~13쪽


감각, 경험, 만남, 연결, 우정…
상실이 강요된 자리의 흔적을 더듬고
예술이 할 수 있는 좋은 상상을 보여주다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가 더 많은 노동과 자리를 대체하고, 황폐화된 지구 대신 화성을 새로 개척하는” 최첨단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 우리의 마음은 안녕한가? 수많은 정보가 감각을 대체하고, 디지털 기술이 경험을 매개하면서 실제와의 만남, 감각의 사용, 물리적 관계 맺기 등의 경험은 점점 소멸해간다. 실제에 대한 감각도, 인간다움의 본질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묘연해진 자리에 위안으로 주어진 것은 과거에 대한 막연한 노스탤지어일 뿐이다. 감각, 경험, 만남, 연결, 노동, 상상 등 인간다운 경험의 순간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가치는 잊혀간다, 아니 잊도록 강요당한다.
하지만 작품이라는 “실”로 자신과 세계를 이어가며, 얄팍한 실제와는 다른 세계의 틈을 더듬는 작가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구정아는 한국의 냄새를 후각과 시각으로 담아낸 설치작품 〈오도라마 시티〉를 통해 후각이 얼마나 강력한 기억의 매개체인지를 환기하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나의 몸이 감각할 때 비로소 나와 나의 세계도 만들어진다는 의미”로 읽어낸다. 또한 코로나 시기 미술관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담당했던 도슨트, 미화원 등의 목소리를 담은 박보나의 퍼포먼스 〈버튼과 문턱〉은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접촉이 가져올 다정한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가늠한다. 이주여성들의 초상을 담은 김옥선의 〈해피 투게더〉와 〈신부들, 사라〉 시리즈에서 목격할 수 있는 것은 “서로 만난 적 없는 (…) 개별적인 존재들이 사진을 통해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연결의 가능성이다. 재현 매체로서 사진의 역할이 사라진 시대, 작가가 읽어낸 태도의 가능성이 빛난다. 이렇게 연결되는 타자들의 범주에는 이주여성뿐 아니라 탈성매매 여성 등 사회의 가장자리에 머무른 존재들, 나아가 (비인간) 동물, 감정이 프로그래밍된 ‘디지털 유기체’까지도 포함한다. 인간 사이의 위계화된 관계에 대한 재고는 인간과 비인간,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로도 확장되는 것이다.
박보나가 시간과 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감각, 확장된 우정, 비인간에 대한 존중의 가치만큼이나 주목하는 것은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이다. 이는 차학경의 〈눈 먼 목소리〉와 〈딕테〉에 대한 장「시가 이겼다」 장과, 주체적인 독해로 사유의 실험을 확장하는 작품을 소개하는 「읽기의 아름다움」장에서 강조된다.

문법적으로 어긋나기도 하며 갑자기 낯설게 거리를 두기도 하는 차학경의 시적 언어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아시아 여성으로서 느끼는 분열된 정체성과 이방인의 소외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와 작가 자신의 목소리가 겹쳤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접속과 분리의 순간들을 담고 있다. (…)
어떤 언어는 논리정연하거나 설명적이지 않아도 설레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생각을 바꾼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들을 수 있게 해준다. 좋은 시가 그렇고, 차학경의 작품이 그렇다.
_「시가 이겼다」, 186~188쪽

차학경의 문학적 텍스트뿐 아니라 각 장마다 미술작품과 나란히 펼쳐지는 문학적 텍스트-『하늘의 뿌리』(로맹 가리) 『화씨451』(레이 브레드버리),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테드 창) 등-와의 겹쳐 읽기는 현대미술에 대한 허들을 낮추는 친절한 장치다. 이러한 글쓰기의 배경에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문학 독자로 머물러온 저자의 이력이 자리하기도 하지만, 저자가 강제된 상실에 저항할 도구로 독서, 즉 주체적인 ‘독해’를 강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독해가 없다면, 우리는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알기 어렵다.
막연한 그리움과 쓸쓸함, 무기력의 시대 가운데 잃어버린 무언가를 떼어내 작업하는 동시대 현대미술 작가 16인의 세계를 만나보자. 저자의 말처럼 예술은 “아름다운 가치와 감각의 회복을 얘기하기에 더없이 적합”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얄팍한 실제의 균열을 찾아내고 지금과는 다른 질서를 꿈꾸도록 해줄” 것이다. 작가가 건져온 ‘장미 꽃잎’들은 각자의 삶에서 떠내려간 ‘장미’를 건져 올리게 할 것이다. 예술은 언제나 잊어버린 것들을 부르기에.
저자

박보나

미술가.
영상,사운드,퍼포먼스와텍스트등을결합해예술과노동,협업,역사와개인의서사에관한작업을한다.아시아태평양현대미술트리엔날레(2019),광주비엔날레(2016)등국내외다수의전시에참여했다.
『뉴필로소퍼』등여러매체에글을기고해왔으며,지은책으로『태도가작품이될때』『이름없는것도부른다면』『예술이내것이되는순간』이있다.

목차

들어가며예술의상상이건네는온기

1부실제의틈
감각한다,고로기쁘게존재한다
가짜세계,진짜선택
어느비생명체의생애주기
꿈꾸기의예술

2부확장된우정
타인의아름다움에위안이있다
당신과나의우정
풍경이된얼굴들
미안해요,할머니

3부세계의구멍
지구라는테이블의공유
사람이사라진자리
필멸의가려움
당신의밝은미래

4부다정한속도
시가이겼다
읽기의아름다움
천천히빛나는

도판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