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왜이토록빨라졌는가
『속도비평』은속도를문화적,사회적,역사적현상으로바라본다.카메라,철도,자동차,항공기,스마트폰등근대이후등장한기술들이‘점’에서‘선’으로,다시‘공간’으로확장되는과정을추적하며속도가어떻게우리삶전체를뒤덮게되었는지를분석한다.속도는더이상특정교통수단이나기계의문제가아니게되었다.출퇴근시간,배송시간,생산시간,응답시간,심지어인간의집중력과감정까지도‘속도의체인’안에편입된다.현대인은속도를이용하는존재가아니라,속도라는시스템안에서살아가는존재가된것이다.
전쟁의폐허속에서출발해불과수십년만에세계최고수준의교통·통신인프라를갖춘초고속사회로변모한한국사회는압축성장과개발주의가만들어낸특유의속도문화를가지고있다.군인출신박정희의경부고속도로건설,‘불도저’로불린김현옥서울시장의청계고가도로,여전히건설과조선업계에남아있는‘돌관공사’,21세기에도사회전반에깔려있는밀어붙이기식업무방식은우리가속도를어떻게생각하고있는지보여주는좋은예다.
이영준은속도를둘러싼다양한장면들을예리하게포착해더풍부한사유를펼쳐나간다.미국의사진가윈스턴링크가증기기관차의찬란한마지막순간을담은한장의사진,롤랑바르트의「제트인간」에대한비판적독해,발터벤야민의‘역사의천사’에대한재해석등은단순한기술사의해설을벗어나인문학적사유의지평까지넓혀준다.속도는인간이세계를인식하는방식의문제이기도하기때문이다.
그리하여이책은역설적으로속도를제한하고통제하려는시도또한다룬다.과속방지턱,보행자중심도시계획,교통정온화정책등은더빠른사회를추구하면서도동시에속도를억제해야하는현대문명의모순을드러낸다.속도로인한눈부신발전이면에는플랫폼노동과물류산업,지역간격차와글로벌불평등이존재한다는사실또한짚어낸다.
속도의승리인가,속도의역습인가
이영준은전작『기계비평』에서자동차,카메라,컴퓨터,비행기같은기술적사물들을단순한도구로서가아니라인간과사회를구성하는문화적맥락으로서읽어낸바있다.『속도비평』에서는그문제의식을한층확장하여기계자체의분석에서더나아가자연과인간,그리고기계가서로연결되어만들어내는속도의체계전체를탐구한다.
속도를다룬기존의담론들은대개가속화된자본주의의병리나인간소외의문제를비판하는데집중했다.폴비릴리오는속도를전쟁과권력의문제로읽었고,하르트무트로자는사회적가속화가인간의삶을잠식한다고분석했다.그러나이영준은속도를추상적개념이나철학적은유로다루는데머물지않는다.철도와공항,선착장,물류시스템과플랫폼,스마트폰같은구체적장소와기계와기술의작동원리를추적하면서속도가실제로어떻게생산되고유지되는지를보여준다.
우리는더빠른이동수단을만들고,더빠른통신망을구축하며,더빠른서비스를요구해왔다.그러나이영준은바로그성공이새로운문제를낳고있다고지적한다.모든공간이속도의체인으로가득찰때,속도는오히려스스로의장애물이된다.교통체증,물류병목,플랫폼노동의과부하,끊임없는시간압박은속도가만들어낸새로운역설이다.
특히책후반부에서다루는물류노동과속도의불평등에대한분석은인상적이다.누구나빠른서비스를원하지만,그속도를떠받치는노동은잘보이지않는다.누군가는초고속인터넷과KTX의세계에살고,누군가는여전히지체된시스템속에머문다.속도는더이상중립적인기술이아니라현대사회의권력과불평등을드러내는척도이기도하다.
『속도비평』은단순히‘느리게살자’고말하는책이아니다.오히려속도를둘러싼낭만적환상과단순한비관론을동시에넘어선다.이책은현대사회를움직이는가장거대한힘인속도를정면으로응시하며,우리가살아가는문명의구조를새롭게이해하도록이끈다.속도가지배하는시대를살아가는모든이에게필요한가장입체적이고도도발적인문명비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