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사회성

새들의 사회성

$17.50
저자

편혜영

저자:편혜영
1972년서울에서태어나서울예대문예창작과와한양대국어국문학과대학원을졸업했다.2000년『서울신문』신춘문예로등단했으며,소설집『아오이가든』,『사육장쪽으로』,『저녁의구애』,『밤이지나간다』,『소년이로』,그리고『어쩌면스무번』등이있고,장편소설『재와빨강』,『서쪽숲에갔다』,『선의법칙』,『홀TheHole』,『죽은자로하여금』등이있다.앤솔러지『놀이터는24시』에「우리가가는곳」을수록했다.한국일보문학상,이효석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젊은작가상,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셜리잭슨상,김유정문학상,제1회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현재명지대문예창작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우리가가는곳007
새들의사회성041
포도밭묘지075
초록스웨터107
아파트먼트137
목욕165
자매들193
남은사람221

해설|인아영(문학평론가)
살아남은삶을살리는247

작가의말267

출판사 서평

좀처럼행운이따르지않는삶의어린초심자들
그취약함속에서도끝내포기할수없는우정과살아있음의움직임

이번소설집에서는주로사회적,심리적,경제적으로취약한위치에처한어린사람들의이야기가그려진다.첫단편「우리가가는곳」은그취약함이인물들로하여금과연무엇까지하게만드는지보여주는흥미롭고독창적인소설이다.삶의막다른길에내몰려‘자발적실종’,즉‘증발’을감행하는것만이‘사는길’이라고여기는여자가있다.그여자에게필요한것은바로실종대행업자라고알려진사람의도움이다.그대행업자는버스를타고귀가하던학원강사가실종된것처럼사건을꾸미거나한숲에서추락한차를교통사고차량으로위장함으로써지금의삶에서분리되기를간절히원하는사람들을이세상에서사라지도록도왔다.하지만그것은모두오래전이야기이다.이제대행업자는사업을접고사무실을정리하려는상황이다.그런대행업자의사무실로여자가찾아와자신의사정을고백한뒤이렇게말한다.“저는죽고싶지않아요.”(26쪽)언뜻시니컬하고매정해보이던대행업자가여자의제안을물리치지‘못하면서’증발을도모하려는두사람의뜻밖의여정이펼쳐진다.

함께길을나서는또다른한쌍이있다.「새들의사회성」에는오랜만에재회한고등학교동창두사람이등장한다.하지만둘의만남은대개의재회가자아내는뭉클함과는거리가있다.두사람이다시만난곳이경찰서이기때문이다.제약회사마케팅팀에겨우인턴으로취직한‘나’는정규직으로전환될가능성이거의없는데도꿋꿋이회사를다니는상황이다.문제는잦은회식에빠짐없이참석해야하고회식비또한예외없이나눠내야한다는것.그날도‘나’는은행자동화코너에돈을뽑으러갔다가ATM기에놓인빨간지갑을보게된다.시간이지나도지갑의주인은돌아오지않고,‘나’의통장잔액은고작십일만원정도이다.아무도없는틈을타‘나’는지갑에서삼만원을슬쩍꺼낸다.“삼만원이없다고당장망하지는않으니까.그저재수없는셈치면되니까.”(56쪽)그리고‘점유이탈물횡령죄’로신고를받아경찰에도착하고서야‘나’는자신이함정에걸렸다는사실을깨닫는다.신고자가피식웃으며지갑에는‘삼만원’이아니라‘백만원’이있었다고말했기때문이다.그신고자가바로‘나’의고등학교동창‘신도’이다.피의자와피해자신분으로재회한두사람은‘빚’으로서로묶인채‘어쩔수없는’동행을시작하게된다.그동행은두사람을어디로이끌까?

책의표제이기도한‘새들의사회성’이란표현은취약한처지에있는인물들이약해보이지않기위해마치하늘을브이자대형으로나는새떼처럼함께어울려다니는것을가리킨다.삶을살아가는동안어쩔수없이터득할수밖에없는이사회성은과연새들의연약함에서만비롯되는것일까?「포도밭묘지」는상업고등학교시절부터사회초년생시절까지함께겪으며서로의좌절과안간힘의순간을모두지켜본,그렇기에영원히친구일수있는네사람의이야기를다룬다.네사람중유일하게대학을다닌사람은한명뿐이고그마저도은행일을하며야간대학을병행한것에서알수있듯이이들의부모는“형편이좋지않으니고등학교까지가르치면족하다는식”의단순한생각을갖고있었기에이들은“최소한의미래에순응”(82쪽)해야하는처지이다.

그럼에도인물들은미래의가능성을조금이나마넓히기위해부단히애쓰는데,「포도밭묘지」는그런움직임이어떤결과를가져오는지흔들림없는문장으로한자한자써내려간다.그리고이야기의끝에다다르면우리는새들의사회성을만든사회그자체에눈을돌리게된다.문학평론가인아영이“노동자의감춰진고통에이름을붙이는것이사회운동의일이라면,그고통에이야기를부여하는것은문학의일이아닐까”(해설「살아남은삶을살리는」,259쪽)라고말했듯편혜영의이번소설집은매일의노동을반복하며사회안에서살아나가는,‘생계와노동이한번도웃음거리였던적이없는’(「아파트먼트」,154쪽)사람들의이야기로두터워진다.

“삶에냉담해질이유가많았지만
그렇게되지않은것은그기억때문이었다.”

다리에화상을입어끔찍한통증에시달리는「남은사람」의‘그녀’는“인생은그렇게여기지않을게분명하지만언제나가져간것이더많”(230쪽)다고생각한다.「자매들」의‘정서’는어떠한가.정서는보호자처럼믿고따르던언니에게서갑자기전화가걸려왔을때크게놀라기보다는언니에게심각한일이벌어졌으리라확신한다.그것이어린시절내내억압적이면서무관심한부모밑에서자란,‘불행하지않은미래’를상상하기어려운정서의삶에서는자연스러운생각의흐름이므로.

하지만놀랍게도『새들의사회성』은자신앞에펼쳐진상황을그저비관하거나감내하는인물들의이야기에머물지않는다.「목욕」의‘나’는영업실적에압박을느끼며회사생활의녹록지않음을매순간체감하지만,아버지의죽음을계기로그전에는전혀몰랐던아버지의면모를새로이알게되면서노동과삶을대하는또다른시각하나를얻는다.그것은식량이넉넉지않은전쟁상황에서수프를끓여먹으려보리를갈던용도로쓰인수동커피밀을바라보며“사람은그처럼별거없다고,그저실용적인존재라고,언제나먹고사는일을제일로둔다고”말하는것이아니라“사람이그렇다니까요.그렇게대단하잖아요”(187쪽)라고순순히감탄하는일이다.

우정과사랑에연이어실패하며관계맺기에두려움을느끼던「초록스웨터」의‘나’또한엄마와엄마의친구들이서로멀어졌다가도어떻게용기를내어서로에게다시다가가는지를바라보며관계란처음부터끝까지완벽해야하는것이아니라중간에어긋나더라도다시조율하며매만질수있는것임을마음으로받아들이게된다.그것은스웨터를“잘못뜨는걸겁내지말라고”,“틀리면다시뜨면되고잘못되면풀어버리면된다”(133쪽)는조언과포개지는것이기도하다.엄마의친구가다음에집에또놀러오라며‘나’의손을꼭잡을때,그접촉은오랜병환끝에세상을떠난엄마가응급실에실려가기전잡아주었던손의감촉을상기시킨다.그렇듯이번소설집에는어느때보다많은삶과죽음이한손안에깃들어있다.원했으나끝내가지지못한것이더많은삶에서,동경했으나가닿지못한것이더많은삶에서,그럼에도우리가슬픔만을느끼지않도록하는것.삶에냉담해지지않도록손을잡아주는것.그것이『새들의사회성』이어렵게도달한성취이자,우리가오랫동안기억하게될편혜영의새로운얼굴이다.

*

이번책에담긴소설들을살펴보면서내가전보다이야기뒤에덜숨는다는걸깨달았다.인생의태반을소설을쓰거나읽어온덕에소설의아량과포용을배우며조금달라졌는지도모르겠다.만약용감해진것이라면소설덕분이다.대범해졌거나뻔뻔해진일면도소설덕분이다.

책을내는해는언제나그책의이름으로기억에남는다.올해여름은푸른하늘을어울려나는작은새들을그리며보내게될것같다.약하고작은존재들이서로연결되어허공을나는모습은아름답기만하다.책을읽는독자분들께도그아름다움이가닿기를바란다._‘작가의말’에서

정확한디테일,적절한상징,공감어린시선,깊은여운이어우러진이소설은우리가편혜영이라는작가에게경탄하게될순간이아직많이남아있다는사실을놀랍게알려준다.‘시험능력주의’와‘학벌신분사회’라는말로요약되는우리시대를향한작가의회고적응답이라고할만한「포도밭묘지」에,동시대청년들의삶에드리워진그늘에누구보다예민했던김승옥의이름을딴소설상이주어지는것은몹시합당한일로보인다._김승옥문학상심사평에서


책속으로

내가하는일이그것이다.사라지지않았지만사라진듯보이게만드는일,일종의실종대행업.(…)실종을어떻게대행하나싶겠지만몰라서하는소리다.자발적실종,즉증발이야말로충동적으로숨기만해서는안된다.능숙한조력자의도움을받아신중히감행해야성공확률이높아진다.
---「우리가가는곳」중에서

철새들이커다란브이자형태로늘어서서하늘을날고있었다.와,나는낮게감탄하는말을내뱉었다.남자가우리쪽을힐끔돌아보고웃으며말했다.
“약하니까요.약한것들은저렇게몰려다녀야그나마목숨을부지하죠.”
---「새들의사회성」중에서

우리는일단최소한의미래에순응했다.대학을가거나사회적으로주어진몫과다른사람이되려면응석을부리는대신자립심을키우는편이나았다.자립심이마음이나용기가아니라돈에서비롯된다는게문제였다.
---「포도밭묘지」중에서

그애가떠나고한동안무척자책하는시간을보냈다.이제껏사람들에게이런식으로거리를두며상처를주었다는생각이들었다.우정이시간과더불어저절로지속되지않는다싶어지면금세포기해버렸다.
---「초록스웨터」중에서

가장친밀했던존재가한순간낯을바꿔경멸섞인무관심을드러내자나는금세위축되었다.무엇을하든나를탓하고의심했다.한때사랑했던사람들과어떻게헤어져야하는지조금도아는바가없었다.
---「초록스웨터」,중에서

생계와노동이엄마에게웃음거리였던적은한번도없었다.
---「아파트먼트」중에서

김한수는줄곧그런게궁금했다.남들은아버지에대한실망과동시에드는연민을어떻게견뎌내는지.
---「목욕」중에서

그녀는마음놓고아팠다.더는통증을의심하지않아도된다는사실때문이었다.무엇보다아파야할때는기어이아프고지나가야한다는사실을새삼깨달았기때문이었다.
---「남은사람」중에서

때로사람들은다른사람의고통을몰라서가아니라너무잘알기때문에못본척했다.
---「남은사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