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몽쇄언 2(큰글자책) (반품불가)

북몽쇄언 2(큰글자책) (반품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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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당나라 말부터 북송 초까지의 역사를 담은 손광헌의 《북몽쇄언》을 세계 최초로 완역 소개한다. 399조의 방대한 이야기는 당시 정치, 문인, 사회상을 생생히 보여 주며, 사료 및 문학적 가치가 높고 날카로운 사회 비판도 담고 있다. 이번 완역본은 청대 《운자재감총서》본을 저본으로 본문과 일문, 일문보까지 망라하고 상세 주석을 더해 1000년 전 역사의 목소리를 되살렸다. 《북몽쇄언》 2권에는 권11∼권20과 일문, 일문보, 부록 및 해설, 지은이 소개, 옮긴이 소개를 수록했다.
저자

손광헌

《북몽쇄언(北夢瑣言)》의 찬자 손광헌(孫廣憲, ?∼968)은 자가 맹문(孟文)이고 자호가 보광자(葆光子)이며 능주(陵州) 귀평[貴平 : 지금의 쓰촨성(四川省) 런서우현(仁壽縣)] 사람이다. 오대 후당(後唐) 때 능주판관(陵州判官)이 되어 명성이 있었다. 후당 명종(明宗) 천성(天成) 연간(926∼930) 초에 강릉(江陵)으로 피난했는데, 이때 고계흥[高季興 : 오대십국 형남(荊南)의 개국 군주]이 형남을 할거하고 사방의 선비를 초빙하자, 손광헌은 양진(梁震)의 천거를 받아 장서기(掌書記)로 들어갔다. 고계흥이 죽고 그의 아들 고종회(高從誨 : 형남의 제2대 군주)가 즉위했을 때 양진이 사직을 청하자, 모든 정사를 손광헌에게 맡겼다. 그 후로 손광헌은 고보융(高保融)·고보욱(高保勗)·고계충(高繼沖)을 차례로 섬기면서 형남절도부사(荊南節度副使)·조의랑(朝議郞)·검교비서소감(檢校秘書少監)·시어사중승(試御史中丞)을 역임했다. 북송 태조(太祖) 건덕(乾德) 원년(963)에 모용연쇠(慕容延釗) 등이 낭주(朗州)의 난을 평정하면서 형남에 길을 빌리고자 했는데, 손광헌이 고계충에게 세 주(州)의 땅을 바치고 송나라에 귀항(歸降)하라고 권했다. 태조는 손광헌의 공을 훌륭히 여겨 그를 황주자사(黄州刺史)에 제수하고 등급을 높여 상을 하사했다. 당시 재상이 손광헌을 학사(學士)로 천거했는데, 미처 그를 불러들이기 전에 건덕 6년(968)에 병사했다.
손광헌은 경사(經史)에 널리 통달하고 특히 학문에 매진했으며, 수천 권의 책을 모아 때때로 스스로 베껴 쓰면서 열심히 교감하는 일을 늙도록 그만두지 않았다. 저술을 좋아해 《북몽쇄언》 외에 《속통력(續通歷)》 10권, 《형대집(荊臺集)》 30권, 《공호편완(鞏湖編玩)》 3권, 《귤재집(橘齋集)》 2권, 《필용집(筆傭集)》 2권, 《잠서(蠶書)》 2권을 지었는데, 《북몽쇄언》만 전하고 나머지는 모두 망실되었다. 손광헌은 또 사(詞)에도 뛰어났는데, 오대 후촉(後蜀)의 조숭조(趙崇祚)가 편찬한 《화간집(花間集)》에 그의 사 61편이 수록되어 있다. 《송사(宋史)》 권483 〈형남고씨세가(荊南高氏世家)〉와 《십국춘추(十國春秋)》 권102에 그의 전(傳)이 있다.

목차

권11
11-1(193) 장직방이 배휴를 칭찬하다(張直方譽裴休)
11-2(194) 설 시랑이 종이로 새매를 싸다(薛侍郞紙裹鷂子)
11-3(195) 진사단의 담당 관리가 오히려 최 장원을 벌주다(進士團所由倒罰崔狀元)
11-4(196) 정하가 최아를 위해 상복을 입다(程賀爲崔亞持服)
11-5(197) 태위 고병이 남만의 재상을 붙잡으라고 청한 일(高太尉騈請留蠻宰相事)
11-6(198) 하후 상이 방중술로 인해 죽다(夏侯相以術而殂)
11-7(199) 장금오가 위세로 법술을 취하다(張金吾威勢取術)
11-8(200) 채전이 황당무계한 일을 하다(蔡畋虛誕)
11-9(201) 신도 별가의 법술이 부른 화(申屠別駕術禍)
11-10(202) 종소자의 단약이 부른 재앙(宗小子藥妖)
11-11(203) 상서 이벽이 율승을 처형하다(李璧尙書戮律僧)
11-12(204) 최현량이 구름과 학을 내려오게 하다(崔玄亮降雲鶴)
11-13(205) 관삼랑이 관으로 들어오다(關三郞入關)
11-14(206) 바라고 흠모하며 벼슬길에 나아가길 구하다(希慕求進)
11-15(207) 피눈물을 흘리다(垂血淚)
11-16(208) 정신병도 문장을 방해하지 못하다(心疾不妨文章)

권12
12-1(209) 노반의 신혼이 뛰어나다(盧潘神俊)
12-2(210) 양수가 선도를 배우지 않다(楊收不學仙)
12-3(211) 장씨 아들이 좀 벌레를 본받다(張氏子斆壁魚)
12-4(212) 유 대부가 글값을 받지 않다(柳大夫不受潤筆)
12-5(213) 양인이 관상술을 의심하다(楊寅疑相術)
12-6(214) 양표가 대고신의 배필이 되다(楊鑣偶大姑神)
12-7(215) 유씨 아들의 복두각(柳氏子幞頭腳)
12-8(216) 철보궐이 올곧고 담박하다(鐵補闕貞澹)
12-9(217) 장임이 농담을 많이 하다(張林多戲)
12-10(218) 심 상서가 비명횡사하다(沈尙書非命)
12-11(219) 사도 왕잠이 지전을 태우다(王潛司徒燒紙錢)
12-12(220) 최 종사가 사당 신에게서 약을 받다(崔從事爲廟神賜藥)
12-13(221) 장경이 사당 신을 위해 상주문을 지어 주다(張璟爲靈廟草奏)
12-14(222) 산수의 신이 정직하다(滻水神正直)
12-15(223) 두씨의 산언덕을 파낸 일(塹杜氏山岡事)
12-16(224) 족제비의 지혜(鼠狼智)

권13
13-1(225) 비적이 영공을 겁살하다(草賊刼令公)
13-2(226) 왕중영이 두 절도사를 축출하다(王重榮逐兩帥)
13-3(227) 정문공이 은혜에 보답하다(鄭文公報恩)
13-4(228) 한간이 강론을 듣다(韓簡聽書)
13-5(229) 맹방립이 고향에 대한 예를 표하다(孟方立陳桑梓禮)
13-6(230) 천둥과 번개가 왕용을 구하다(雷電救王鎔)
13-7(231) 이전충의 집에서 세 마디의 갈대가 자라다(李全忠蘆生三節)
13-8(232) 장건장이 바다를 건너다가 선녀를 만나다(張建章泛海遇仙)

권14
14-1(233) 이무정이 군주를 위협하고 재상을 죽이다(李茂貞脅君殺宰相)
14-2(234) 세 진장이 병사를 이끌고 와서 두 재상을 죽이다(三鎭擁兵殺二相)
14-3(235) 유장의 성패(儒將成敗)
14-4(236) 번진의 종사가 조정의 본성에서 상서하다(外藩從事於東 一作本 省上事)
14-5(237) 한건의 시말(韓建始終)
14-6(238) 공위가 염철인을 아까워하다(孔緯惜鹽鐵印)
14-7(239) 신이 나홍신에게 고하다(神告羅弘信)
14-8(240) 연왕 유인공의 특이한 꿈(燕王劉仁恭異夢)

권15
15-1(241) 털옷을 걸치고 궁전 문에 이르다(披褐至殿門)
15-2(242) 주전충이 봉상에서 어가를 영접하다(朱全忠迎駕於鳳翔)
15-3(243) 한건이 이거천을 팔아넘기다(韓建賣李巨川)
15-4(244) 천자가 훈신에게 시를 하사하다(天子賜勳臣詩)
15-5(245) 주 영공이 소종을 위해 말을 끌다(朱令公爲昭宗攏馬)
15-6(246) 소종이 시해당하다(昭宗遇弒)
15-7(247) 덕왕을 죽이길 청하다(請殺德王)
15-8(248) 조정 신하를 모해하다(謀害衣冠)
15-9(249) 하 태후를 무고하다(誣何太后)
15-10(250) 당숙모를 위해 병시중을 들다(爲堂叔母侍疾)
15-11(251) 진종권이 모반하지 않았다고 호소하다(秦宗權訴不反)
15-12(252) 이마운이 바리때를 내던지고 군대에 종사하다(李摩雲擲鉢從事)

권16
16-1(253) 술로 화를 부르다(以酒致禍)
16-2(254) 전촉의 사신이 통 크게 술을 마시다(蜀使洪飮)
16-3(255) 주근이 형을 살해하다(朱瑾殺兄)
16-4(256) 마경이 속임수를 펼치다(馬景設詐)
16-5(257) 주연수의 부인 왕씨는 열녀다(朱延壽妻王烈女)
16-6(258) 목성이 남두성으로 들어가다(木星入斗)
16-7(259) 나무 속의 특이한 글(木中異文)
16-8(260) 설이구의 화찬(薛貽矩畫讚)
16-9(261) 용마채(舂磨寨)
16-10(262) 양조가 위난에서 벗어나다(梁祖脫難)
16-11(263) 양조가 정회의 꿈을 꾸다(梁祖夢丁會)
16-12(264) 궁전의 용마루가 부러져 떨어지다(殿棟折墜)
16-13(265) 양조가 조강현을 포위한 일(梁祖圍棗強事)
16-14(266) 구은을 불러 점을 치다(仇殷召課)

권17
17-1(267) 양조가 고용살이하다(梁祖爲傭保)
17-2(268) 양조의 장 부인(梁祖張夫人)
17-3(269) 주야의 선대(朱邪先代)
17-4(270) 친왕이 번후에게 배례하다(親王拜蕃侯)
17-5(271) 이습길이 황하에 빠지다(李襲吉溺黃河)
17-6(272) 주식이 양조를 저지하다(周式抗梁祖)
17-7(273) 환관의 음모(宦官陰謀)
17-8(274) 진왕이 상원역에서 위난을 만나다(晉王上源驛遇難)
17-9(275) 유심이 옛 주군에게 충성하다(劉鄩忠于舊主)
17-10(276) 소종의 시호를 논박하다(駁昭宗謚號)
17-11(277) 진 세자가 입조해 황제를 알현하고 물새 술잔을 하사받다(晉世子入覲賜鸂酒器)
17-12(278) 업왕의 《투강동》 시(鄴王《偷江東》詩)
17-13(279) 위박의 아군(魏博衙軍)
17-14(280) 나귀에 인형을 묶고 깃발을 꽂다(縛驢戴旗)

권18
18-1(281) 양천랑(楊千郞)
18-2(282) 배 속의 태아가 말하다(娠子能語)
18-3(283) 명종이 자랑하지 않다(明宗不伐)
18-4(284) 명종 자신만의 견해(明宗獨見)
18-5(285) 장종의 여러 동생이 해를 당하다(莊宗諸弟遇害)
18-6(286) 유 황후가 아비를 볼기 치다(劉皇后笞父)
18-7(287) 명종이 여러 흉악한 자를 주살하다(明宗誅諸兇)
18-8(288) 한씨와 이씨 두 비(韓·伊二妃)
18-9(289) 공훈에 보답할 벼슬자리가 없다(無官酬勳)
18-10(290) 명종이 재상을 임명하다(明宗命相)
18-11(291) 명종의 의용(明宗睿相)
18-12(292) 명종이 탐관을 싫어하다(明宗惡貪吏)
18-13(293) 불효자를 주살하다(誅不孝)
18-14(294) 안중회가 임환을 억울하게 죽이다(安重誨枉殺任圜)

권19
19-1(295) 옥계척(玉界尺)
19-2(296) 주현표(周玄豹)
19-3(297) 늙을수록 더욱 탐욕스러워지다(老益貪)
19-4(298) 해원귀가 시를 바치다(解元龜進詩)
19-5(299) 사리를 쳐서 부수다(擊碎舍利)
19-6(300) 최협이 황제의 질문에 대답하다(崔協對敭)
19-7(301) 항룡 대사(降龍大師)
19-8(302) 물고기 눈으로 사리를 만들다(魚目爲舍利)
19-9(303) 요홍의 충렬(姚洪忠烈)
19-10(304) 좌주와 문생이 함께 한림원에 들어가다(座主門生同入翰林)
19-11(305) 소희보를 희롱하다(戲蕭希甫)
19-12(306) 명종이 풍도를 칭찬하다(明宗獎馮道)
19-13(307) 명종이 진왕을 훈계하다(明宗戒秦王)
19-14(308) 해학이 누가 되다(詼諧所累)
19-15(309) 명종이 말 진상을 좋아하지 않다(明宗不樂進馬)
19-16(310) 강징의 상소문(康澄章疏)
19-17(311) 명종이 맹곡을 풍자하다(明宗諷孟鵠)
19-18(312) 정연휘를 처형하다(戮丁延徽)

권20
20-1(313) 말을 보고 넓적다리를 치다(見馬撫髀)
20-2(314) 뇌물을 받아 법을 어기다(受賂曲法)
20-3(315) 일을 통해 간언을 받아들이게 하다(因事納諫)
20-4(316) 진왕이 경박하다(秦王輕佻)
20-5(317) 심휘의 〈곡강음〉(沈徽〈曲江吟〉)
20-6(318) 강지가 부친을 알아보다(姜誌認父)
20-7(319) 왕씨의 아들이 전생을 알다(王氏子知前生)
20-8(320) 서부가 세 번 쫓겨나고 세 번 대우받다(舒溥三斥三遇)
20-9(321) 박사 두하(杜何博士)
20-10(322) 위손이 나약하고 우둔하다(韋巽尪鈍)
20-11(323) 중령이 욕망을 참다(中令忍欲)
20-12(324) 하견귀(何見鬼)
20-13(325) 손난재(孫卵齋)
20-14(326) 풍견귀(馮見鬼)
20-15(327) 휴공이 진솔하다(休公眞率)

일문(逸文)
권1
일1-1(01) 양운외(楊雲外)
일1-2(02) 상은(向隱)
일1-3(03) 강신(強紳)
일1-4

출판사 서평

천년의 세월을 넘어 생생하게 부활한 역사의 기록, 《북몽쇄언》 세계 최초 완역!
《북몽쇄언(北夢瑣言)》은 '몽택(夢澤) 북쪽에서 기록한 자질구레한 이야기'라는 겸손한 제목과 달리, 당나라 말부터 오대십국을 거쳐 북송 초에 이르는 격동기의 중국사를 생생하게 담아낸 귀중한 역사서다. 문인 손광헌(孫光憲)이 직접 보고 듣고 수집한 399조의 방대한 이야기는 당시의 정치적 격변, 문인들의 풍류와 고뇌, 그리고 생생한 사회 풍속까지 아우르며 1000년 전의 세상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이 책은 단순한 일화집을 넘어선 깊이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구오대사(舊五代史)》,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고이(資治通鑑考異)》, 구양수(歐陽修)의 《신오대사(新五代史)》 등 정통 역사서들이 《북몽쇄언》의 기록을 인용하며 그 신뢰성을 입증했다. 또한 당나라와 오대의 유명 문인들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작품 배경을 알려 주는 문학사적 보고(寶庫)이기도 하며, 후대 소설과 희곡 창작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현존하는 20권본에 실리지 않은 90조의 귀중한 일문(逸文)을 《태평광기(太平廣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 사라질 뻔했던 역사의 조각들을 복원하는 데 기여한다.
손광헌은 단순한 기록자를 넘어, 날카로운 관찰자이자 비판자였다. 그는 환관의 전횡, 과거 부정, 관리들의 부패와 같은 사회 부조리를 가감 없이 폭로하며 후세에 경계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그의 '보광자왈(葆光子曰)'이라는 평어는 사건의 이면을 꿰뚫는 통찰을 보여 주며, 역사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이번에 선보이는 《북몽쇄언》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최초의 완역본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대중적 의미가 매우 크다. 옮긴이 김장환 교수는 청대 《운자재감총서(雲自在龕叢書)》본을 저본으로 해서 본문 20권 327조와 《태평광기》에서 집록한 일문 4권 90조, 그리고 저본에 실리지 않은 일문보(逸文補) 1조까지 충실히 번역하고 상세한 주석과 교감을 더했다. 또한 역대 서지 기록과 서문, 발문 등을 부록으로 실어 독자들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다. 자얼창(賈二强)의 교점본을 주요 참고 자료로 활용해 학술적 완성도를 높였다. 혼란과 변화의 시대를 기록한 이 귀중한 문헌을 통해, 독자들은 과거의 지혜를 배우고 현재를 살아가는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