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발췌 일지록

원서발췌 일지록

$14.80
Description
‘매일 깨달음의 기록’이라는 의미를 갖는 이 책은 명 왕조의 멸망을 통해 통치 기제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며, 고염무 자신의 정치적 문제의식까지 명료하게 드러내는 정치 개혁론이기도 하다. 전체 1021항목 중에서 고증의 사례, 정치제도, 사회·경제제도, 전통과 풍속, 경학 해석, 역사의식, 박문의 일곱 가지 세부 영역으로 구분해 총 69개 항목을 직접 발췌했다.
저자

고염무

고염무(顧炎武)
고염무는명나라만력(萬曆)41년강소성(江蘇省)곤산(昆山)에서출생해청나라강희(康熙)21년산서성(山西省)곡옥(曲沃)에서사망했다.본명은강(絳)이고자(字)는충청(忠淸)이다.명나라멸망후이름을염무(炎武),자를영인(寧人)으로고쳤다.서명(署名)은장산용(蔣山傭),호는정림(亭林)으로,정림선생으로도알려져있으며,청대고증학의개조(開祖)로평가되고있다.강동지역의명망가출신으로계조부(繼祖父)고소불(顧紹?)의아들인고동길(顧同吉)이죽어대를이을수없게되자고소불의양손자로입양되었다.수절한양어머니왕씨(王氏)에게서6세부터≪소학≫,≪대학≫을배우며국가에대한충성심과전통적명분론에감화를받았다고한다.14세에제생(諸生)자격을취득한후고염무는명나라멸망때까지양조부의교육과지도하에고전과당대의정치·경제에대한심도깊은학습을받았다.더욱이초서(抄書)를강조했던양조부의영향은그의3대정치저작으로알려진≪일지록≫,≪천하군국이병서(天下郡國利病書)≫,≪조역지(肇域志)≫찬술의기초로작용했다고한다.한편명나라멸망과함께청순치(順治)원년(1644)부터약12년간두차례무장투쟁과비밀결사인복사(復社)에도간여했다.이후청조출사를거부하고순치14년(1657)부터사망할때까지강남지역을떠나“사방을굽이굽이2∼3만리를왕래하며또한기록을열람한것만도1만여권에이르도록(往來曲折二三万里,所覽書又得萬餘卷)”하북·산동·산서·섬서등북방의옛제(齊)·노(魯)·연(燕)·조(趙)·진(晉)·진(秦)지역을여행하면서역사와경학의고증과음운연구및저술활동에주력했다.평생≪일지록≫32권,≪천하군국이병서≫100권,≪음학오서≫38권등370여권의저술을남겼다.

목차

1.고증(考證)에관해
2.정치(政治)에관해
3.사회·경제에관해
4.풍속(風俗)에관해
5.경학(經學)에관해
6.역사(歷史)에관해
7.박문(博聞)에관해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후대의군자를바로잡겠다
이책은왕부지(王夫之)·황종희(黃宗羲)와함께삼대유로(遺老)로알려진고염무의역작이다.고염무는일지(日知)의의미에대해“내(고염무)가어릴적부터책을읽다가깨달은바가있으면그때마다기록해두었는데합치되지않는부분이있어서때때로다시고쳤다…자하(子夏)의말을취해이름짓기를일지록이라했으니이를통해후대의군자를바로잡겠다”라고소개하고있다.즉일지는≪논어≫<자장>의“날마다알지못한것을깨닫게되고달마다할수있는것을잊지않으면배우는것을좋아한다고말할수있다(日知其所亡,月無忘其所能,可謂好學也已矣)”라는구절에서기원한다.

실패한통치기제의원인분석과이에대한대안모색
고염무는명왕조의멸망을과거순기능으로작용했던통치기제의합리성이붕괴된결과로판단했다.특히통치이념으로서성리학이본래지닌실용적이고경세적인측면이쇠락하고관념적이고추상적인원리로변질되었기때문에체제내부의문제에대응하지못했다고파악했다.왜냐하면성리학의심학화(心學化)는개인의수양에국한된세계관을가져왔고,이로인해정치과정에진입한학습된관료들역시해결능력의부족내지통치기제의합리성에대한몰이해라는문제점을드러냈기때문이다.이런맥락에서고염무는명의멸망원인중하나로당시의학술적폐해를지적한다.즉관념적·추상적원리로경도된심학으로서의이학(理學)의폐해로부터벗어나경전에대한충실한독서와경전에내포된본래의의미,즉경세(經世)를위한학문으로서의취지를회복해야한다는것이다.그해답은경학(經學)을중심으로하는경세적인학문태도로의복귀와이에의거해서학습된인재의등용을통한명왕조의부활이었다.결국이책은실패한통치기제의원인분석과이를보완할수있는대안의모색이라는정치개혁론의성격을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