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신 브라운/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

위대한 신 브라운/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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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현대 연극의 거장 유진 오닐의 실험적 정수와 사회적 통찰이 담긴 두 문제작 〈위대한 신 브라운〉과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를 묶었다. 물질문명의 폐해와 인간의 탐욕을 탐구한 실험극〈위대한 신 브라운〉은 ‘가면’이라는 극적 장치를 활용하여 사회적 페르소나와 내면의 자아 사이의 갈등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죽은 친구의 가면을 쓰고 그의 삶을 연기하던 주인공은 끝내 거짓 자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파멸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는 당시 미국 사회의 금기였던 흑인과 백인 간의 결혼 문제를 다루며, 인종적 편견과 공포가 개인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사실적으로 그린다. 오닐의 내밀한 가족사가 반영되어 있어 오닐의 작품 세계는 물론 생애를 들여다보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

유진 오닐

“미국 현대 연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진 오닐은 1888년에 연극배우이자 아일랜드계 이민자였던 제임스 오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공연을 따라 계속 이곳저곳 옮겨 다닌 그는 호텔에서 태어나 호텔에서 생을 마감했다.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지만 도중에 중퇴하고 어린 나이에 캐슬린 젠킨스와 결혼해 아들까지 낳았다. 그는 도피의 일환으로 배를 탔고 서인도제도와 남미를 여행하며 해양 생활을 경험했다. 오랜 바다 생활에 몸이 쇠약해져 폐결핵에 걸린 그는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고 거기서 니체와 스트린드베리 등 유럽 작가들을 만난다. 오닐은 유럽에서 그동안 이루어져 왔던 다양한 예술적 실험들을 받아들여 미국 무대에 올리려 했다. 오닐은 두 번째 아내와 이혼한 뒤 칼로타 몬터레이와 재혼했고 몬터레이는 오닐 사후인 1956년에 오닐이 사후 25년간 발표하지 말라고 했던 〈밤으로의 긴 여로〉를 출판 공연하도록 허락함으로써 그에게 네 번째 퓰리처상을 안겨 주었다.
그가 미국 연극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은 한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유럽에서 개발된 사조나 극작 기법을 과감하게 도입해 끊임없이 실험함으로써 후대 극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기법과 실험 가운데서도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불가해한 세력을 밝혀내려는” 시도였다. 그는 신에 대한 신앙과 전통적 가치 체계에 대한 신념이 붕괴된 사회에서 무엇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가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를 희극보다는 비극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닐은 후기로 가면서 자전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얼음 장수 오다〉, 〈밤으로의 긴 여로〉 같은 사실주의 작품으로 회귀했고 원숙한 경지를 보여 주며 노벨상과 4회에 걸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미국 현대 연극의 기초를 놓은 유진 오닐은 후배 극작가들의 영원한 영감과 영향력의 원천이 되면서 미국 연극의 아버지로 남아 있다.

목차

위대한 신 브라운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출판사 서평

가면 뒤에 숨겨진 현대인의 파편화된 자아
〈위대한 신 브라운〉
고뇌하는 예술가 ‘디온’과 성공한 사업가 ‘빌리 브라운’은 한 여인을 사이에 둔 경쟁자이자 거울 같은 존재다. 디온이 죽은 뒤 그의 가면을 훔쳐 쓴 브라운은 친구의 정체성을 연기하며 예술적 성취와 사랑을 얻지만, 결국 거짓 자아가 주는 내적 분열을 이기지 못하고 몰락한다. 1926년 초연 당시 독창적인 캐릭터와 과감한 시도로 미국 연극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오닐은 이 극에서 사회적 페르소나와 내면의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대인의 심리적 파편화를 극화했다.

금지된 결합과 소외된 영혼의 초상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
뉴욕 남쪽의 어느 모퉁이, 백인 거리와 흑인 거리가 나뉘는 경계에서 극은 시작된다. 어린 시절 인종의 벽을 넘어 호감을 나누었던 흑인 남성 짐과 백인 여성 엘라는 성인이 되어 결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들의 결합은 처절한 심리적 붕괴의 서막이 된다.
변호사가 되어 주류 사회에 편입하려던 짐의 열망은 내면에 깊이 박힌 두려움에 가로막혀 좌절된다. 엘라는 남편을 유일한 안식처로 삼으면서도 그의 배경을 증오하는 병적 증세를 보이다 결국 치매 상태로 퇴행한다. 짐은 그런 아내를 돌보는 비극적인 헌신 속에서 구원을 찾는다.
이 극은 흑인 영가에서 따온 희망적인 제목과 달리 편견과 공포에 짓눌린 부부의 처절한 심리적 붕괴를 그린다. 인종적 편견과 공포가 개인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사실적으로 보여 주며, 작가 자신의 내밀한 가족사가 투영되어 있어 오닐의 작품 세계와 생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24년 초연 당시, 미국 사회의 금기였던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결혼이라는 소재를 다루며 논란을 낳았고 뉴욕 검열 당국의 공연 불허 방침에도 100회 이상 공연되며 성공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