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발췌 해동속소학(큰글자도서)

원서발췌 해동속소학(큰글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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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이란 주자의 ≪소학≫에 이어지는 ‘조선 소학’이란 의미다. 19세기 말에 박재형이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을 닦고 학문 연구의 기틀을 잡아 주기 위해 우리나라의 훌륭한 선비들과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는 사람들의 미담과 교훈적인 말들을 가려 모아 펴낸 ‘우리 소학’이다. 사회 윤리와 도덕이 길을 잃은 오늘날, 다시 한번 되새겨볼 만한 내용이다. 총 410장 중 223장을 발췌 번역했다.
저자

박재형

박재형(朴在馨)
박재형(朴在馨)의자는백옹(伯翁),호는퇴계의사상으로나아가고자하는열망에서스스로진계(進溪)라지었으며본관은밀양이다.조선중기의문인소요당(逍遙堂)박하담(朴河淡,1479∼1560)의후손으로헌종4년(1838)에경북청도군금천면신지(薪旨)리에서태어났다.4세때까지말도못하고걷지도못해가족들의걱정은이만저만이아니었지만성장하고나서는학문을좋아해13경공부에몰두했으며특히성리학을깊이구명했다.
박재형은부친박시묵의사우(師友)관계를배경으로유치명과허전의문인이되어수학함으로써영남유학안에서도독특한학맥을형성하고있다.당대의석학이었던이종상,류주목,이돈우,장복추,이원조,이진상등에게서도가르침을받아학문을깊이하고김흥락,이만인,이종기,김도화등의학자들과교유하며학덕을닦았다.
고종7년(1870)생원시(生員試)에입격했으며그의훌륭한인품과뛰어난학문으로유일(遺逸)로서천거되어의령원참봉으로서수(敍授)되었지만응하지않고평생을처사로서향리에살면서후진육성과저술에전념했다.그는자력으로의창(義倉)을설치해구휼에힘쓰는가하면문간계(文簡契)를만들어장학에힘쓰기도했다.
광무4년(1900)에항일의병장으로추대받아거제도부인당포에출격했으나그해8월12일적탄에맞아순국했다.
그의저술에는≪해동속소학≫외에≪해동속고경중마방(海東續古鏡重磨方)≫,≪교자요언(敎子要言)≫,≪도산지언(陶山至言)≫등40여권이있다.이책들은대개당시의유교윤리의책들이중국위주이던것을통탄한박재형이우리나라선현들의언행을바탕으로저술한것이었다.특히≪도산지언≫은퇴계의언행을≪논어≫에비겨정리함으로써국학의성립을꾀했다.

목차

1.교육의근본을세움(立敎)
2.인륜을밝힘(明倫)
3.몸가짐과마음가짐을조심함(敬身)
4.옛일을살펴봄(稽古)
5.아름다운말(嘉言)
6.착한행실(善行)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박재형이≪해동속소학≫을펴낸동기와그의의는이책의서문과발문에잘드러나있다.박재형의스승인허전은서문에서우리나라의현인,군자들의훌륭한윤리적업적이≪소학≫에실리지않은것과이책이발간되는이유를주자절대존숭아래서의단순한시간적,지리적결정론으로서만말하고있다.
그러나이책에는또하나이유승이쓴제2의서문이있는데그취지는앞의것과는상당한차이를보인다.즉,“주자≪소학≫이나타내는것은때를달리하고곳을달리하고있어그실천에이르기가무척어렵기때문에우리나라에서는이것을능히실행하는자가적다.그러나이≪해동속소학≫이담고있는내용은우리선배들의언행이므로사람들이잘읽기만하면쉽게감동해곧실천하게되는것이다.더구나많은뛰어난사례속에서일부만을가려뽑았기에오랜세월을통해풍속화된규범들이다”라고말한다.즉,이책편찬의의의를,주체의중심을우리민족에두고가까운생활에서대상을찾아학습의효율성을강조하는것이라고적극적인평가를하고있다.
이제권말에실린자발(自跋)을통해박재형의말을들어보자.
“송나라의주자는옛중국사람들의아름다운말과착한행실을모아≪소학≫을편찬하니세상사람들은이것을으뜸으로여기고있다.생각하면우리나라는기자(箕子)가나라를다스린이후부터예악과문물이중국에비교될만큼발전하고어진사람들이많이나와서중국에못지않다고말할수있게되었다.그러나주자와같은사람이나오지않아서우리나라사람들의아름다운말과착한행실이≪소학≫에실릴수없었다.나는이것을개탄해우리나라옛사람들의말과행실을가려모아≪소학≫의체재에따라책을만들고≪해동속소학≫이라고제목을붙였다.”
여기서박재형은주자≪소학≫의가치를부정하지는않지만,우리민족의유구한역사와훌륭한문화에도불구하고우리의≪소학≫이없음을개탄해이책을펴내게됐다고말한다.
조선조의유학자들은‘선왕의도(道)’라해서그들의정치이념은언제나요,순,우삼대의실현에있었고,공자,맹자,주자의정통이론에는어떠한비판이나도전도용납되지않았다.그러나500년이나계속된주자학에입각한유교윤리도조선조말에이르러서는변용되지않을수없었다.정약용에의한≪목민심서≫의실사구시적인비판정신,최제우의동학창건,≪기측체의≫이래의수많은저작을통한최한기의경험론적사상체계의발전등은모두가근대화를위한몸부림의구체적표현이었다.이와같은동향속에서19세기말까지지속되어온봉건적유교윤리에입각한사회질서도밑바닥으로부터흔들리지않을수없었다.그결과로봉건유교윤리의재편(再編)을위한움직임이잇따라일어났다.그움직임의한예가≪해동속소학≫의편찬이라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