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산 시집

니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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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세기 말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의령의 선비, 니산 남정찬의 한시를 소개한다. 이 책은 외세의 침탈 속에서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망국의 비통함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는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주희의 가르침을 본받아 학문적 신념을 굳건히 하고, 훼철된 서원을 대신해 재실을 세워 지역 유풍을 되살리고자 애썼다. 또한 고향에 은거하며 굳건한 절개를 시로 노래했다. 절망적인 시대에도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치열하게 고뇌했던 한 선비의 내면 기록이자, 의령 지역사 연구의 귀중한 사료다.
저자

남정찬

남정찬(南廷瓚,1580∼1900)의본관은의령,자는덕주(德柱)·문찬(文贊),호가니산(尼山)이다.그의선조들이영남에터를잡게된것은남간(南簡)의현손인남진(南振)이삼가두심동에서내려오면서부터다.남진은생육신의한사람인재종숙남효온(南孝溫)에게글을배웠는데,갑자사화이후남쪽으로내려왔다고한다.이후남주(南宙)가임진왜란뒤에의령으로옮겨거주함으로써그후손들이판곡리에대대로거주하게되었다.남주의손자남붕익(南鵬翼)은문학으로뛰어났으나관직에나아가지않았다.그리고증손남두장(南斗章,남정찬의증조부)은근면으로가업을일으켜후손들에게넉넉한경제적기반을물려주게되었다.
남정찬은남낙원(南洛元)과현풍곽씨[곽성수(郭聖洙)의딸]의1남3녀중외아들로태어났고,백부남귀원(南龜元)에게입후했다.14세(1863)에〈신안서사부〉를지었으며,21세(1870)에장남인남창희(南昌熙)가태어났다.24세(1873)에이정모(李正模)및향중선비들과주희의향약을전범으로하는향약계를맺었다.32세(1881)로삼가현감시를거쳐1882년(고종19)서울회시에서합격했다.이로써성균관에입학해대과준비를할여건이마련되었는데,향리로돌아오는것을택했다.36세(1885)에본생부남낙원을모시고삼가현묵동리로이주했다.당시삼가에는정면규(鄭冕圭)가은거해강학하고있었다.이때부터농산과학연을맺고,삼가의선비들과교류했다.37세(1886)에는유행병이돌아모부인이씨,생모부인곽씨,부인곽씨가연달아세상을떠나는슬픔을겪었다.40세(1889),계배재령이씨[이유수(李有秀)의딸]와함께의령판곡리옛집으로돌아왔다.
43세(1892)에의금부도사에임명되어다시서울에가게되었다.그러나이내의령으로돌아왔다.의금부도사직을사직한뒤로남정찬은집뒤에따로건물을지어도잠의유명한시〈음주〉의‘유연(悠然)’의뜻을취해‘유연정’이라편액을하고도잠의삶에뜻을두었다.이후,51세(1900)의나이로의령집에서졸해,유연정동쪽발니산에묻혔다.남정찬의원배는현풍곽씨로2남3녀를두었으니,아들의이름은각각창희(昌熙)·태희(台熙)이고,세딸은각각신영직(辛泳直)·권재채(權載采)·권재달(權載達)의부인이되었다.계배는재령이씨로3남2녀를두었으니,아들의이름은기희(箕熙)·두희(斗熙)·필희(畢熙)등이고,두딸은각각김규형(金奎馨)·노기렬(盧琪烈)의부인이되었다.모두5남5녀다.

목차

유연정편액의시
의양서원터에서느낌이있어서2수
계유년봄,자동성양이정모와고을의유림들과같이향약계를새로만들고운을짚어일을기록하다
조용구후를모시고,횡당에서행음례를했다.이튿날정암강가에나가노닐었다
비연당에서여러벗과함께마음을터놓다
종산재,자동께삼가드리다
수오곽성원어른의수연(壽宴)을축하하는시에차운하다
수회재유허에서느낌이있어
경모정에서미산강봉국어른,화언조선수군과함께하다
송암이정의공의연시(延諡)시에삼가차운하다
본생대인삼의당의생신을축수하며
표형현암,성응이재후,삼종질성문이귀희가자암정으로미산강씨어른을찾아오다
표숙노저박공의만시2수
친구를만나다
귀담문극곽후근과수창하다
이성양,이주여,관겸성일준,박맹선등여러벗님네와같이달빛아래에서탁족하다
단옷날시조의령군의묘를성묘하며
자암정에서강미산을모시고춘파강씨어른을추억하다
이상두어른의〈쌍봉정〉시에차운하다
경모정에서여러장로를모시고이야기하다
홍와대형이두훈의〈구름낀산에은거하다〉에차운하다
수오곽씨어른의만시
세명곽경근만시
여지문숙홍재학이소를올리고의롭게죽었다는소식을듣고시를지어멀리서조문하다
임오년봄,훈일이장희를경관에서만나시를짓고소회를논하다2수
응서조균호,도인정학인,응중조재학,표제선유권철희,족인국경남태원과함께경사의인사동에모이다
인사동객사에서자홍신종익에게수답하다
〈관수루〉에차운하다
옛친구에게장난스럽게답하다
김응동공의〈타농시〉운을뒤좇아차운하다
호군안흠어른을축수하는시에차운하다
아들창희에게주다
재종숙남태원의〈근소재〉시에차운하다
봄날들길에서
농와선조의〈초당〉시에삼가차운하다
갑신년3월19일,느낌이있어서
이지기어른의축수시에차운하다
종모부하치룡어른의만시3수
권병규어른의〈미양당〉시에차운하다
낮에도문을닫네
입춘
감회가일어
선군노주의시에삼가차운하다
차운해흘와이근옥진사의수연을축하하다
정건화어른이교관에보임되었다가고향으로돌아오니,차운해삼가축하드리다
휘운변원규,덕희윤봉호,현오윤광은,성노김호귀,효중이우선어른들이나란히찾아주었다.감회가있어시를지어드리다
자암정.동계정선생의시에차운하다
감역신규성의만시
직장김규응의만시절구2수
정원의대나무가지가꺾인것을보며탄식하다
가을밤벌레소리를듣고
호연정,현판의시에차운하다
배움을구하다
《논어》를읽다
사월초파일연등을보고
하늘의도
사람의도리
시절을아파하며
봄날의노래
길을가며
정응규어른이시를보내주셨기에그시에차운해되올리다
봉서재에서강회뒤여러공들과함께창수하다
물계에우거하던가운데고향의벗중언권만희에게부치다
봄날고사리가초동에게솎아지는것을보고
고향집국화를떠올리며
책을보다
성인의교화
요수정에오르다
수승대에서퇴계선생의시를읽다
심소정에서외가의여러공들과함께짓다
군자정
장서실에시를짓다
승지한치림의만시3수
표제준명권덕희를애도하며
도정김규한의만시4수
이대형군의벽에걸린고금(古琴)을보고,군에게한번탄주하기를청하다
맑은밤,책읽는소리가들려와서
물계에서승지단사신병우,도사전영관과같이술을마시며읊다
영지를읊다
진사낙칠이영훈을곡하다
꿈을기록하다
정금당,현판의시에차운하다
신단사께드리다
진사이병록어른이장수했다고해서승자하시니차운해삼가축하드리다
날이개다
미양권어른의만시2수
이보회어른의만시3수
안종락어른의만시
한경의여관에서강촌허식을만나술을마시며속마음을털어놓다
정언김석원이찾아오다
우연히짓다
나를탄식하며
본생선고께서의양선원이폐철됨을아파해스스로‘삼의’로당을이름했다.그뜻을추술하다
단사께드리다
안현여관에서단사와삼가함께하다
이우종어른의만시
봄날산에오르다
하목정.호곡선생의시에삼가차운하다
고헌정내석선생만시3수
애산후윤정재규가경모정을찾아와강의를했다.강의가끝나자시로써서로수창했다
석오권봉희가소를올려직언한일로흑산도에유배되었다가사면되어조정으로돌아오는날에시를지어축하하다2수
정언안순중의추자도귀양길에부치다
이정재후를삼가전별하다
만성박치복의만시3수
정교관의만시3수
경모정에서여러벗과함께수창하다
효효
홍와의〈동부복거〉에차운하다
가남강세순어른께드리다
참판장시표의만시
장숙신규헌을곡하다
정태용어른의만시
석계서진환의수시(壽詩)에차운하다
신승지의만시3수
석오권어른의수시(壽詩)에차운하다
중재이돈후를애도하다3수
한거
소무이계곡가에서애산과함께하다
홍와와함께고루암에서노닐며
망배대아래에서상사경신남정휘를송별하다2수
흘와이어른의〈과천정〉에차운하다
조유승후를모시고명륜당에서행음례를하다
취해책을보며
산거
달밤에무현금을안고서
높은산에올라
어옹의〈감분〉시운을사용하다
나의즐거움을즐기노라
회포를적다
소나무
국화
느낌이있어
경모정에서몇몇고을에서온벗들과함께연음을베풀고강설했다.다음날고루암에올라함께읊다
삼의공의유사를추모하며감회가있어서3수
은찬하재룡과헤어지며
애산에게올리다
순여곽휘근의만사
봄날고루암에오르다
농산주윤정면규에게부치다
시절을아파하며
경모정에서손님과수작(酬酌)하며
자암정아래푸른벽에적다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지만지한국문학의〈지역고전학총서〉는서울지역의주요문인에가려소외되었던빛나는지역학자의고전을발굴번역합니다.‘중심’과‘주변’이라는권력에서벗어나모든지역의문화자산이동등한대우를받을수있도록합니다.지역학문발전에이바지한지역지식인들의치열한삶과그성과를통해새로운지식지도를만들어나갑니다.

난세의격랑속,꼿꼿한선비의길을묻다
19세기말,조선은그야말로바람앞의등불이었다.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농민운동,청일전쟁,을미사변등숨가쁘게몰아치는역사적소용돌이속에서지식인들은어떤삶을선택해야했을까?《니산시집》은이혼란의시대를살다간경남의령의꼿꼿한선비,니산(尼山)남정찬(1850∼1900)의문집《니산집》권1에수록된한시를정성껏번역한책이다.
남정찬은영남남인의전통을바탕으로노론,북인등당파를초월해폭넓게교유하며지역사회의든든한버팀목역할을했던인물이다.그의한시는무려142제170수에달할만큼방대하며,화려한기교보다는주어진상황과감회를진솔하게담아내는데주력했다.특히지인들과주고받은증답시와죽은이를애도하는만시가전체의절반이상을차지할만큼,그는사람과사람사이의관계와일상의기록을소중히여겼다.
이책에실린남정찬의시편들은크게네가지결을지닌다.
첫째,무너져가는국권앞에서의비통함이다.갑신정변직후지은시에서그는“산에올라목놓아우니모든일이서글퍼라”라며망국의한을절절히토해냈다.
둘째,흔들리지않는학문적신념이다.주희의〈경재잠(敬齋箴)〉을본받아스스로〈경심잠(敬心箴)〉을지을만큼,그는혼탁한세상속에서도수신(修身)의고삐를늦추지않았다.
셋째,지역사회와가문의전통계승이다.훼철된의양서원을대신해경모재를건립하고,사족들을규합해무너져가는유풍을되살리려한그의고군분투가시곳곳에묻어난다.
넷째,도잠의삶을좇는은일(隱逸)의자세다.세속적영달을버리고고향에은거하며소나무,대나무,국화등에자신의굳건한절개를투영했다.
이책은경상국립대남명학연구소와의령문화원이주최한학술대회의뜻깊은결실이다.남정찬의동생남정우,남정섭,아들남창희등이른바'남씨3숙질'을비롯한가문의방대한문집은의령지역사연구의핵심사료로평가받는다.
《니산시집》은단순한고전번역을넘어,절망적인시대상황속에서도지식인으로서의정체성을잃지않으려했던한선비의치열한내면기록이다.혼란한세상을어떻게살아가야할것인가고민하는현대인들에게,남정찬의시는100년의시간을건너묵직한가르침을전해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