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재 시선 2

태재 시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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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여말 선초의 학자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의 7언 율시 61제 108수를 소개한다. 목은 이색의 외증손인 그는 권근과 변계량에게 수학했으나, 가문이 민무구 형제의 옥사에 연루되는 바람에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고 장장 19년간의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유방선은 고려 말 시학의 전통을 계승해 조선 초 문단을 진작하고, 한시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서거정, 권남, 한명회 같은 탁월한 제자들을 길렀다. 그의 7언 율시에는 당시 문인들과의 교류, 유배지에서의 아픔, 그 가운데서도 잃지 않았던 ‘한(閒)’의 정서가 잘 드러난다.
저자

유방선

유방선(柳方善,1388∼1443)의본관은서산(瑞山),자는자계(子繼),호는태재(泰齋)다.일찍부터문명이났으며,10대때이색의문인인권근과변계량에게수학했다.1405년18세의나이로생원시에입격해성균관에서유학했으나,1409년부친유기가‘민무구형제의옥사’에연루되어그의가문은정치적몰락의길을걷게되었다.이후19년에이르는유배생활을하게되었음에도《주역》의태괘를자호로삼아희망을놓지않고,시를통해삶과마음을치유하고자했다.사면된뒤조정에서주부(主簿)로삼으려했으나관직에나아가지않고원주의법천에머무르며시문을강학했다.1443년56세의나이로일생을마감했다.비록가문의정치적시련으로인해평생관직에나아가지는못했지만,그는고려말시학의전통을이어받아조선초시단을진작하고한시의발전에많은영향을끼친인물로평가된다.

목차

즉사
감흥
일을적다
회포를읊다
조자경에게보내다
아우에게보내다
옛절
서울의승가사를떠올리며
이른매화
환귀사에서노닐며명곡스님에게주다
옛날에노닐던일을회억하며
제야에홀로앉으니느낌이있어
밤에읊다
나를읊다
나를탄식하다
홀로마시며
제야에꿈을기록하다
즉사
잡영
밤에창수탄을지나며
비오는가운데
회포를적어명곡스님에게주다
회포를적다
밤에앉아서
순흥부로돌아가는사람을전송하며
가을밤
촌장에이르러회포를읊다
나를읊다
이이립이경산에서귀양살이를하고있기에시를지어받들어부치다
회포를적다
밤에앉아서
이이립에게드리다
한가한가운데회포를읊어미천자에게드리다
병중에성재인외숙께드리다
명원루에올라회포를적어성재인외숙에게드리다
송화이사군이송이버섯을보내준것에사례하다
비오는가운데본것을쓰다
송화이사군이시로써안부를묻기에차운해받들어부치다
나를읊다
나를쓰다
명곡스님에게주다
저물녘에성루에올라회포를읊어성재에게드리다
밤에앉아서
밤중에비바람이크게일어홀로앉아회포를적다
조장원에게수창하다
전영천김태수에게보내다
사면을입고장수역에이르러영천향교의벗들에게부치다
이이립에게드리다
햇멥쌀을이우재에게드리다
운부사에이르러이수재에게부치다
이신급제가부모를뵈러영천으로돌아왔기에시를써서전별하다
취한채로회포를적어자리의여러공들에게드리다
권사간에게받들어드리다
신해년12월초9일동지에홀로법천촌사에앉아우연히절구두수를짓다
회포를읊다
양정랑을곡하다
조판봉상이능을순찰하고함길도로돌아가는것을삼가전송하다
권감사를대신해지어함길도김절제사에게보내드리다
강원감사권공이예천으로부모님을뵈러감에경상감사조공이시를지어보냈기에,그운(韻)을써서다시조공에게부치다
감회가있어
명곡에게보내다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지만지한국문학의〈지역고전학총서〉는서울지역의주요문인에가려소외되었던빛나는지역학자의고전을발굴번역합니다.‘중심’과‘주변’이라는권력에서벗어나모든지역의문화자산이동등한대우를받을수있도록합니다.지역학문발전에이바지한지역지식인들의치열한삶과그성과를통해새로운지식지도를만들어나갑니다.

가화(家禍)로인한19년간의유배생활
유방선(柳方善,1388∼1443)의본관은서산(瑞山),자는자계(子繼),호는태재(泰齋)다.송도(松都)의방제(坊第)에서태어났다.그는10대때권근(權近)과변계량(卞季良)에게수학했는데이들은이색의문인이다.유방선은1405년18세의나이로생원시에입격해성균관에서유학하며대과를준비했다.그러나1409년부친유기가‘민무구(閔無咎)형제의옥사’에연루되어유방선은청주로유배되었다.느닷없이들이닥친가화로가족이뿔뿔이흩어지고도무지희망이라고는찾아볼수없었던상황에서도그는《주역》의태괘(泰卦)를자호로삼고,영천서산의송곡아래에작은집을지어‘태재’라는편액을내걸었다.영천에서유배생활을하는동안이안유(李安柔),조상치(曺尙治),최원도(崔元道)와같은지역문인들을포함해승려들과도활발히교유했고,지역의자제들을양성했다.1427년에야완전히사면되었는데유배기간이모두19년이었다.1431년에영천에있던가족을이끌고원주의법천으로갔다.이후1443년56세의나이로생을마감할때까지법천에머무르며시문을강학했다.

여말선초의시단
유방선은비록가문의정치적시련으로인해평생관직에나아가지는못했지만,고려말시학의전통을이어받아조선초시단을진작했다고평가받는다.서거정,권남,한명회등탁월한제자들을양성했으며특히조선전기문단을대표하는서거정은“내가문명(文名)을훔쳐서오늘에이르게된것은모두선생이베푼은혜다”라고했고,허균도자신의가학의연원을유방선에서찾았다.유방선의시문학은고려후기이색,이숭인,정몽주,권근,변계량으로부터조선전기서거정,권남,이승소,성간,그리고허균에이르는여말선초문학사의흐름을이해하기위한중요한키워드가된다.그의문집《태재집》은모두5권2책으로,권1∼3은시,권4는문,권5는부록이다.수록된시문은시가모두663수(527제)이고문이모두14편으로,유방선의문학세계는시를통해구현되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

7언율시의매력
특히그는두시(杜詩)에정통했는데,율시의대가였던두보의영향을받아《태재집》에도율시가절반이상의비율을차지한다.《태재시선》에는그중7언율시61제108수를수록했다.이7언율시에는그가교유하고시를주고받았던주요인물들이상당수등장해당시학맥과문단의교유관계를살필수있다.또한유배지에서의아픔을그린작품이많고창작시기가명기된작품도있어,특별한사전지식없이도시를한수씩읽어나가다보면자연스레그의삶의궤적이그려진다.가혹한현실앞에서도‘한(閒)’의정서를잃지않는작품이많아그의삶의태도를엿볼수있다.무엇보다그의율시는대구가뛰어나고허사의쓰임도절묘해율시의매력을한껏맛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