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오전, 다섯 사람 이야기

허균 오전, 다섯 사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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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무엇이 불온하고, 어째서 천재일까? 이 책은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에 수록된 다섯 편의 전, ‘오전(五傳)’의 번역서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대부를 기린다는 ‘전(傳)’의 관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허균은 철저히 주류에서 밀려난 이단자들에 주목했다. 평생 초야에 묻혀 쓰이지 못한 선비, 서얼 출신의 천재 시인, 저마다의 이유로 세상과 섞이지 못한 이인(異人)들. 낡은 시대의 위선을 찌른 서늘하고도 묵직한 허균의 인간학을 만난다.
저자

허균

허균(許筠,1569∼1618)은어떤사람인가?흔히허균은한글소설《홍길동전》의저자,또는반역을기도하다가처형된인물로운위된다.《홍길동전》에나타나는적서차별에대한회의와새로운사회를건설하고자하는욕망이허균의평소염원을반영했다는식이다.하지만허균이《홍길동전》의저자라는의견은허균과거리를두어야할이유가충분했던적대적인물의전언(傳言)에만등장할뿐,허균이《홍길동전》을지었다는직접적인근거는남아있는것이없다.허균이반역을도모했는가하는문제역시진위가불분명하다.조선시대에반역죄로처형된여타인물의경우와달리,허균에대해서는직접적물증없이주변인물들의증언만으로사형이결정되었기에‘훗날반드시이론(異論)이있을것’이라는의견이《조선왕조실록》에수록되어있기도할정도다.
이처럼의심스러운정황이있음에도위의두가지사안은학교교육이나대중매체를통해널리알려졌고,그결과일반대중이허균이라는인물을생각하는방식에지대한영향을미쳤다.특히허균에관한직접경험이아니라허균에대한소문을채록한야사(野史)계통의자료에의존한현대의전언들이허균에대한부정확한정보를증폭시킨면이있다.
하지만신빙성있는1차자료를통해접근할수있는허균의면모는그런대중적인인식과는상당히다르다.그는조선시대를풍미한사상과문화,정치제도에순응한점에있어서는동시대의여느관료문인과크게다르지않았다.일례로허균은유가전통의핵심을이루는경서(經書)나사서(史書)에대한학습및내재화,충효라는덕목에대한숭상과실천을사대부가갖추어야할기본소양으로인정한다.본서에수록한〈엄처사전〉은물론,〈학산초담〉을비롯한초기작이나허균의나이40대초반에쓴〈학론(學論)〉(1610)같은글에서일관되게이입장이견지되고있다.흔히허균이당대관료나사대부문인들과구별되는개성을지녔다해운위되는것이불교서적이나도가사상에대한애호라고들한다.하지만도가적어휘가대거등장하는〈남궁선생전〉을쓴이후에도〈학론〉에서보여주는것처럼,정치의기본원리로서성리학의기본적사유방식을옹호한점은특기될필요가있다.
또한허균이혁명내지사회개혁을도모한인물로거론될때항상등장하는것이〈호민론〉이다.〈호민론〉에피력된입장은민(民)의역량에대한호감과긍정이아니라,민의불만을조기에무마해야기성지배층의안정적집권이가능하다는것이핵심메시지라는점이최근연구들에서지적되어왔다.민에대한허균의입장은결코호의적이지않으며,이점은본서에수록한〈남궁선생전〉의조회장면을통해서도확인할수있다.
허균은지배층의일원으로서기성의가치에상당히동조하는가운데주류사회에서자신의가치를인정받고자했던인물이다.40대이후에정계의고위직에참여할기회가주어졌을때기꺼이그에응했던사실은허균의본심이어디에있었던가를짐작하게한다.그뿐아니라그는자신의문학적역량을연마하는과정에서도,자신이상류층이기에접근할수있었던문화자원을적극활용했다.그가이룬문학적성취는대부분그의사회적지위덕분에얻을수있었던다양한자원들에힘입고있다.가령허균의척독과같은초단형(超斷形)의편지양식이나,그의산문창작에있어서중요한참조점이된《세설신어》같은책은단지허균이라는한개인의기호에의해개발되거나주목된책이아니다.
선조−광해군연간조선문단에서는명대문학,특히강남사대부문인들사이에서애호된문학양식에대한관심이고조되었고,허균역시이러한동향에참여하고있었다.《세설신어》역시강남사대부들사이에서16세기에재발견되고주목된서적중하나다.한단락정도되는짧은분량의일화나촌철살인의한마디를동원해묘사하고자하는인물의품성을간결하게스케치하는《세설신어》의스타일은위진남북조시대에나온것이지만,당시명대문학을선도하고있던16세기강남문단에서큰호응을얻었다.16세기말명대문단을주도했던왕세정(王世貞,1526∼1590)에의해1585년에《세설신어보》가출간되고,이어서《세설신어》를모방한각종후속작품이대거출현하고있었던것이다.
명대강남사대부문인그룹내에서《세설신어》가크게유행하게된이유중하나로제기되는설명은다음과같다.당대강남의경제적부흥에힘입어문화적소양이일천한신흥부유층이부상했고,이들의도전에응전하는기성사대부계층은자신들이야말로선천적인차원에서우수한문화적소양을지니고있다는입장을정립해갔다는것이다.이러한입장을취하는학자들의설명에따르면이지(李贄,1527∼1602)나원굉도(袁宏道,1568∼1610)처럼문학에있어개성표현의가치를중시한것도,강남지역의그러한문화적동향의한단면으로,기성사대부들의문화적권위를수성하려는경향의한지류로이해할수있다.
이러한배경을시야에넣고다시허균의저유명한발언,“나는나의법을따르겠다”라는개성중시의선언을되짚어보면,일견독창성을중시하는듯한허균의지향역시보다넓은문화적흐름의일부일가능성을생각하게된다.실로허균은《세설신어》를비롯해왕세정으로집약되는강남문인사회의문예적동향에지대한관심을갖고있었다.허균은그의〈사우재기〉에서도드러나는것처럼,세설체저작의저자이자왕세정과더불어강남의문예담론을주도했던인물인하량준(何良俊,1506∼1573)의글에대해서도열렬한호감을표했다.특히명사신이자강남출신문인인주지번(朱之蕃,1558∼1624)과1606년에직접만난이후로는,강남의문인들이그랬던것과같이회화,서예,미식등다채로운문화적활동전반으로관심의폭을확장해갔다.작문에있어서도기성의전범이나관습을답습하기보다글쓴이의고유성을드러내는것이중요하다는입장역시주지번과의만남이후뚜렷하게정식화된다.요컨대동시대조선관료문인과의비교에서드러나는허균의개성도좀더시야를확대해보면일정한문화적동향과의동질성속에서이해될수있는면이있다.
이상에서짚어본사실들에비추어볼때,허균은당대조선사회상류층의일원으로서일종의고급문화에깊이침잠함으로써자신의소양을형성해나갔으며,결국허균의문학적성취와개성강조의문학론은단순한개인의독창성의발로라기보다는,조선중기사대부문화와명대강남문인문화의흐름속에서형성된결과임을인지할필요가있을것이다.

목차

허균오전
엄처사전(嚴處士傳)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
장산인전(張山人傳)
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
장생전(蔣生傳)

원문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