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발췌 이탈리아 여행기(큰글자책)

원서발췌 이탈리아 여행기(큰글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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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대시인의 천재성을 일깨우고 삶을 변화시킨 일대 전화기적 기록으로 평가받는다.1786년 9월부터 1788년 4월까지 괴테가 쓴 여행 기록을 담은 이 책은 여행의 추이에 따라 3부로 나뉘어져 있다. 기록, 서신, 보고(報告)의 다양한 양식의 글들 속에서 괴테가 품었던 예술에 대한 이상과 열정 등을 엿볼 수 있다.
저자

요한볼프강폰괴테

요한볼프강폰괴테(JohannWolfgangvonGoethe)
요한볼프강폰괴테는1749년8월28일독일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태어났다.아들의교육에헌신적이던아버지덕분에어려서부터그리스어,라틴어,히브리어,불어,영어,이탈리아어등을배웠고,그리스로마의고전문학과성경등을읽었다.1757년,어린나이에신년시를써서조부모에게선물할정도로문학적재능을타고났다.라이프치히대학에서법학을공부했으나문학과미술에더몰두하였고,1767년에첫희곡<연인의변덕>을썼다.1770년슈트라스부르크대학재학당시헤르더를통해호머,오시안,그리고특히셰익스피어의위대함에눈을떴으며,‘질풍노도운동’의계기를마련했다.1772년베츨라의법률사무소에서견습생활을하던중이미약혼자가있는샤를로테부프와사랑에빠지게되는데,이때의체험을소설로옮긴것이<젊은베르테르의슬픔>이다.이소설은당시유럽젊은이들사이에서선풍적인인기를끌어주인공베르테르의옷차림이나,절망적인사랑으로인한자살이유행하기까지했다.1775년카알아우구스트공의초청으로바이마르로이주하여그곳을문화의중심지로끌어올리는데결정적인역할을했다.행정가로국정에참여하고교육,재정,건설,군사,산림등온갖분야에서재능을발휘하여많은성과를거두었고,식물학,해부학,광물학,지질학,색채론등인간을설명하는모든분야에관심을기울였다.1786년이탈리아여행을통해고전주의문학관을확립했고,1794년독일문학계의또다른거장실러를만나그와함께독일바이마르고전주의를꽃피웠다.1796년에쓴<빌헬름마이스터의수업시대>는대표적인교양소설이다.1797년에는실러의<시신연감(詩神年鑑)>에공동작의단시(短詩)<쿠세니엔(손님에게드리는선물)>414편을발표하여문단을풍자하였다.또한문단의물의(物議)를외면한채이야기체로쓴시(詩)를경작(競作)하여,1797년은‘발라드의해’라고일컬어진다.1805년실러의죽음과더불어만년기(晩年期)를맞이하였다.만년의괴테의문학활동중가장특징적인것은‘세계문학’의제창(提唱)과그실천이었다.괴테는그무렵에이미유럽문학의최고위치를차지하고있었고,그위치에서프랑스·이탈리아·영국,나아가서신대륙인미국의문학을조망할수있었다.그래서그는각국민문학의교류를꾀하고,젊은세대를위한세계문학적시야를넓혔던것이다.실러의죽음으로“존재의절반을잃은것같다.”라고말할만큼큰충격에빠지지만이후에도창작활동과연구는끊임이없었고,<색채론>(1810),<빌헬름마이스터의편력시대>(1821),<이탈리아기행>(1829)등을완성했다.스물네살에구상하기시작하여생을마감하기바로한해전에완성한역작<파우스트>를마지막으로1832년세상을떠났다.

목차

제1부카를스바트에서로마까지(1786년9월∼1787년2월)
카를스바트에서브레너까지
브레너에서베로나까지
베로나에서베네치아까지
베네치아
페라라에서로마까지
로마

제2부나폴리와시칠리아(1787년2월∼1787년6월
나폴리
시칠리아
나폴리에서헤르더에게

제3부두번째로마체류(1787년6월∼1788년4월)
6월의서신
7월의서신
보고7월
8월의서신
9월의서신
10월의서신
보고10월
11월의서신
12월의서신
1월의서신
로마의사육제
2월의서신
3월의서신
4월의서신
보고4월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바이마르를탈출,로마라는학교에첫발을디딘괴테의첫말은,“나는다시금살아가는법을배워야하는어린아이와같다”는것이었다.그는너무나편협한사고의반경속에갇혀지냈던자신을발견했으며,이러한한계성을극복하기위해서는모든인식과행동을포함한자아의변화를시도하지않을수없었다.출간하기까지상당기간이걸린《이탈리아여행기(ItalienischeReise)》에는괴테의이러한정신적변화와성숙과정이잘나타나있다.
괴테의이탈리아여행은1786년9월3일부터1788년6월18일까지약22개월에걸쳐이루어졌다.비록긴기간은아니었지만,이여행은괴테의표현을빌리면그를“다시태어나게하고혁신시키고충실을기할수있게한”일대사건이었다.괴테는로마에발을디딘순간이제2의출생,진정한재생이라고생각했거니와,새로운세계와문화를배워새로운인간이되어돌아가겠다는것이그의다짐이었다.이러한목적에따라늘탐구적인자세를견지했으며비교적만족스런결과를귀국직전의편지에써보낼수있었다.
괴테에게있어이탈리아는고대의유적과유물을찾아보는관광지만이아니었다.공사다망했던바이마르를떠난그에게정신적안정감을되찾아주고잠자고있던그의천재성을다시일깨워준장소였다.그것은,수년간묵혀두었던원고들이현지에서완성되거나개작되었음을보아도알수있다.그는식물학을위시한자연과학의연구에도몰두했고인간과민족과예술의근원인자연을철학적으로고찰하기도했다.바이마르의지인(知人)들에게보낸많은편지에적혀있듯이그는껍질을벗는듯한자각의변화를체험했으며,그것은훗날〈파우스트(Faust)〉와같은대작을완성하는데중요한에너지가되었음에틀림없다.
괴테가이탈리아여행을감행한동기는대략다음의세가지로요약된다.
첫째,소년시절부터간직했던남국에대한동경심
둘째,바이마르의편협성에서도피하려는충동
셋째,오랫동안침체되어있던예술가정신을되찾고싶은욕구
괴테는이탈리아여행을통해이세가지소망을실현하는데성공했다.
처음에괴테는로마와나폴리만둘러볼생각이었다.그러나나폴리를찾아그기막힌아름다움에매료된그는한달가량이나머물다가시칠리아섬까지나아갔으며,결국은이탈리아체류를연장해야겠다는생각을하지않을수없었다.3개월이상이탈리아남부를여행하면서괴테는명랑하고자유로운나그네의정취를마음껏만끽했다.1787년6월6일다시로마로돌아온그는이위대한세계의학교에1년이상더체류하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