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맡, 평안(큰글자책) (반품불가)

머리맡, 평안(큰글자책) (반품불가)

$25.00
Description
제22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인 희곡 〈머리맡, 평안〉은 스스로 생을 놓아버린 ‘엄세원’과 그 상실의 궤적 속에 남겨진 ‘서지선’의 이야기를 담는다. 물에 젖은 수채화 같은 기억의 공백 속에서, 서지선은 엄세원이 남긴 고장 난 손목시계와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끝나지 않는 대화를 이어간다. 선명한 아픔과 모호한 판타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작품은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고 건너가는 행위가 지닌 슬프도록 진실한 애도의 기록을 그려낸다. 마침내 참혹한 기억의 밤을 지나, 살아가는 이들의 머리맡에 깊은 평안을 건넨다.
저자

이하라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를 졸업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극작과 전문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6년 한국극작가협회 신춘문예에서 〈dOnut〉으로 등단한 후, 〈기수(汽水)〉, 〈머리맡〉, 〈기형의 즐거움〉 등 희곡을 쓰고 공연했다. 웹툰 〈상사몽〉과 〈우드펑크〉의 스토리 작가였던 적도 있다.
2026년 현재 제주도에 거주 중이다. 개와 말의 식구(食口)로 살고 있다. 인간 동료들과는 해양 쓰레기를 줍고 모아 인형을 만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인형극 공연을 종종 한다. 동물들과 바다를 사랑한다. 언젠가 해녀 학교에 들어가 기술을 배워 그 일을 해 보고 싶다.
평범한 사람이고 평범한 일상이라 늘 새로움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다. 읽은 적 없는 글을 읽고 싶고, 들은 적 없는 이야기를 듣고 싶고, 본 적 없는 것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다.
하여, 아직 모르는 이야기를 만들고, 읽고, 듣고, 보고 싶은 작가다. 괜히 중얼거려 본다. “시(詩)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목차

작가의 말

나오는 사람들
머리맡, 평안

이하라는

출판사 서평

서지선과 엄세원, 그리고 희미한 기억의 공백
〈머리맡, 평안〉에는 상실의 경계에 서 있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기억의 길을 떠도는 ‘서지선’과, 모든 무게를 짊어진 채 밧줄 하나로 생을 마감한 ‘엄세원’. 노량진과 신도림을 오가던 짧은 시간의 기억은 물에 젖은 수채화처럼 모호하지만, 엄세원이 떠난 후 서지선에게 남겨진 아픔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선명하다. 단 한 장의 인화 사진도 없는 필름 카메라처럼, 잡히지 않는 진실 속에서 서지선은 과거와 현재, 죽음과 삶의 경계를 끊임없이 방황한다.


닫힌 문 사이의 독백과 틀린 시간의 손목시계
일상적인 농담과 꿈 이야기로 시작된 이들의 대화는 점차 서지선이 겪은 상실의 아픔과 묻어두었던 원망으로 번져간다. 엄세원이 두고 간 고장 난 손목시계는 여전히 틀린 채 초침을 이어가고, 닫힌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서지선은 실재했던 온기인지 상상인지 모를 환영을 향해 묻는다. “그때 평안했었니?…” 대답 없는 문을 마주하고 쏟아내는 고백은 작가가 ‘물에 젖은 수채화’라 부른 고통스럽고 불확실한 기억의 공백을 재구성한다. 깨진 유리 조각에 손을 베어가며 부서진 기억을 모아 올리는 이 과정은,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을 견디기 위해 한 스푼의 판타지를 얹어 지어 올린 처절하고도 명랑한 애도의 의식이다.


남겨진 자의 애도, 기어이 도래할 평안
"Ridonami la calma(나에게 평안을 주소서)." 침대 머리맡에 적힌 이탈리아어 문장처럼, 극은 지독한 상실감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기억하는 행위는 남겨진 자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세상이 너무 끈적거리고 무거워 밧줄 하나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죽은 자와, 그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만 하는 산 자는 굳게 닫힌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부른다. 〈머리맡, 평안〉은 상실의 아픔을 섣불리 잊으려 하지 않고, 희미하고 괴로운 기억을 꺼내어 대면함으로써 기어이 우리 삶의 머리맡에 평안을 불러내는 서투르지만 진실한 생존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