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선화

검은 수선화

$18.00
Description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믿음과 욕망이 함께 숨 쉬기 시작했다
대영제국 훈장을 받은 영국의 대표 여성 작가이자, 인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서양의 경계에 선 인간의 내면을 탁월하게 포착해 온 루머 고든의 대표작. 1939년 출간 직후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영화화되어 아카데미·골든글로브 등에서 주요 영화상을 수상하며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인도 북부 히말라야산맥에 위치한 작은 마을 모푸. 어느 날 그곳에 낯선 이방의 사람들을 가르치고 치료하며 선을 베풀겠다는 포부를 가진 수녀들이 파견된다. 그러나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압도하는 거대한 히말라야 산봉우리 앞에서 그녀들의 굳은 의지는 통제를 잃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억눌려 있던 감정과 욕망은 그 틈을 파고들고, 신앙으로 유지되던 질서는 조금씩 균열을 드러낸다.
『검은 수선화』는 단순한 종교 소설이나 오리엔탈리즘 소설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신념, 억압된 감정의 균열을 섬세하게 탐구한 심리소설이다. 문명과 자연, 신앙과 욕망이 충돌하는 과정과 그 끝에 도달하는 파국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인간이 스스로 세운 질서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줄거리]
히말라야산맥의 외딴 산골 마을 모푸. 영국의 한 수도원은 그곳에 수녀들을 파견한다. 과거 어느 인도 왕족이 자신의 여인들을 머물게 했던 궁전, 속칭 ‘여인의 집’이라 불리던 장소를 성스러운 공간으로 바꾸고, 학교와 병원을 세워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수녀들은 각자의 임무에 몰두한다. 그러나 궁전을 소유한 왕족의 대리인이자 이미 모푸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 영국인 관리자 미스터 딘은, 이 시도가 실패로 끝날 것이라 단언하며 그들에게 돌아갈 것을 권한다. 수녀회의 최연소 분원장인 클로다 수녀는 거칠고 야성적인 그를 경계하지만, 건물 보수를 위해 그가 수녀원 안을 드나드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한편, 처음에는 경이롭기만 했던 히말라야의 압도적인 자연과 낯선 환경은 점차 수녀들의 내면을 흔들기 시작한다. 고립된 공간 속에서 억눌려 있던 기억과 감정이 되살아나고, 개인의 욕망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공동체 내부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긴장과 균열이 번져 간다. 수녀원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 펼쳐진 설산과 끝없이 이어지는 바람,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고독은 그들을 점점 궁지로 몰아넣는다.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버티려 하지만, 그 의지의 중심에는 더 이상 신이 자리하고 있지 않다. 굳건한 신앙으로 유지되던 이 작은 공동체는 점차 파국으로 치달으며, 예측할 수 없는 광기와 비극의 장으로 물들어가는데…….
저자

루머고든

RumerGodden

1907년영국에서태어난대표적인영국의여성작가.인도콜카타에기반을둔영국해운회사임원이었던아버지의영향으로어린시절대부분을인도의아삼,벵골지역의외딴마을에서지냈다.이는『검은수선화』와같이인도를배경으로한작품을여럿집필하는계기가되었으며,문화와계급,종교의충돌등식민지인도의현실적인모습을세밀하게관찰해소설에녹여내었다.그녀는평생인도와영국을오가며살았고예순편이넘는소설과논픽션작품을집필했다.그중아홉편은영화로제작되었는데,영화계의거장으로손꼽히는장르누아르감독의〈강〉(1951)과아카데미에서미술상과촬영상을수상한〈검은수선화〉(1947)등이있다.아동문학작가로서의재능도뛰어나휘트브레드문학상을수상하기도했으며,1994년에는영국문학계에끼친공로를인정받아대영제국훈장을받았다.루머고든은이후로도꾸준히집필작업을이어나가다가1998년,아흔의나이로타계했다.

목차

서문|평온한풍경뒤에감춰진보이지않는진실·5
검은수선화·17

출판사 서평

★BBC드라마,아카데미·골든글로브수상작원작소설.
★고전·르포·미스터리등다양한장르의작품을통해우리삶에깃든빛과어둠의경계를포착해내고자하는잔상출판사〈어스름〉시리즈의첫번째도서.


의지할곳을잃어버린순간,
인간의발걸음은과연어디로향하게될까?

『검은수선화』에서가장인상적인장면중하나는,한수녀가뱉은짧은고백이다.
“저너머를바라보고있으면,내가심고있는감자는눈에들어오질않고,감자를심는일이아주하잘것없게느껴져요.”
끝없이펼쳐진지평선앞에서,그녀가수행하던일은갑자기의미를잃는다.이장면은이소설이다루는균열의본질을정확하게드러낸다.인간이스스로중요하다고믿어온가치와질서는,어떤거대한사건이아니라시선의변화만으로도쉽게흔들릴수있다는사실이다.루머고든은이작품에서인간의내면이무너지는과정을극적으로그리지않는다.대신,감각과인식이아주미세하게어긋나는순간들을반복적으로쌓아올린다.낯선환경,설명하기어려운동요,그리고점차흐려지는확신.이러한변화는겉으로드러나지않은채축적되다가,어느순간돌이킬수없는균열로이어진다.
신앞에무릎을꿇고평생자신의모든것을바치기로맹세한이들이지만,혼란속에서각자의기댈곳을찾으며점차자신의본분을망각해간다.이소설에서중요한것은욕망그자체가아니다.오히려그보다먼저,욕망을억제해온체계가어떻게흔들리는지에주목한다.인물들은여전히기도하고아이들을가르치고정원을가꾸며자신에게주어진역할을수행하고있다믿지만,그행위에부여되던의미는서서히탈색된다.그리고의미가사라진자리에는,이전에는의식되지않았던감정들이스며든다.

“자매님.너무외롭거나너무이상하다는생각이든다면
그곳환경에현혹되지말고말씀하세요.”_본문중에서

특히이작품은‘환경’이인간의인식을어떻게변화시키는지를집요하게탐구한다.고립된공간과반복되는일상,그리고시선을멀리끌어당기는압도적인풍경은,인간이붙잡고있던현실의크기와대비된다.그결과,지금까지절대적이라믿어왔던가치들은어느순간사소하고하찮은것으로느껴지기시작한다.이변화는의식적인선택이아니라,거의피할수없는과정에가깝다.수녀들은매일밤낮으로히말라야산맥을마주보며,자신이무너지고있다는사실을자각하기도전에이미이전과는다른상태로변해있다.그리고바로그지점에서,억눌려있던감정과욕망이모습을드러낸다.
『검은수선화』가끝내남기는것은비극적결말이나단순한파국이아니라,그파국에이르는과정에대한통찰이다.인간은자신의감정을억제하고,규율을따르며살아갈수있다.그러나그것이곧인간을완전히다른존재로만들수는없다.억눌린것들은사라지지않고,단지더깊이잠들어있을뿐이다.그리고어떤순간,그것들은다시깨어난다.『검은수선화』는의미가흔들리고,질서가무너지기시작하는바로그지점을집요하게응시하는소설이다.책을덮고나면,우리가붙잡고있는신념과질서가과연얼마나단단한것인지,다시묻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