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보 옥중수기 (양장본 Hardcover)

신태보 옥중수기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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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신태보는 박해시대로 통칭되는 끔찍한 고문의 시대 속에서 천주교를 정착시키는 주춧돌이었다. 그에게 수난은 자신의 숙명이었다. 끝내 자신의 염원이었던 주교를 만나는 일은 이루지 못했으나, 1838년 시점에서 미완으로 남아 있던 옥중수기가 다블뤼 주교의 『조선 순교자 역사 비망기』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이름은 천주교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저자

유소연

목차

머리글
해제
모진심문과박해속에서피어난신앙의불씨

번역노트
믿음살이일생을기록한자필약전의참교리

번역문
1.신태보소개
2.1791~1801년박해직후
3.정조가최[필공]토마스를심문하다
4.주문모신부의유물과어느동정부부일화
5.순교자와기적
6.1804년-사촌이여진을위한구명활동
7.박해시대의신자공동체생활상
8.신태보가한때배교의뜻을표한적이있다는소문에대한다블뤼주교의변론
9.정해년에경상도상주잣골에서붙잡혀일곱차례형문을받다
10.미완의수기,순교로완성하다
11.신태보의며느리최조이바르바라의문초와수교

원문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박해시대어둠을밝힌‘신앙의불씨’

여기7차례의형문과13년간의옥고를치룬끝에참수당한죄인이있다.그는1801년신유박해가끝난뒤경기도에은거하였는데,그곳에거주하던40여명의신자들을이끌고강원도로옮겨갔다.이곳에서기록상최초로천주교신자들만의마을인교우촌(敎友村)을형성하였다.또한성직자를영입하기위해경비를마련하고,많은서적을베껴신자들에게나누어주면서그의이름이세간에알려졌다.결국정해박해때인1827년4월22일전주포졸들에게교리서를필사하고유포했다는죄목으로끌려갔다.이후1839년기해박해가발생하자동년5월29일70여세의나이로전주에서참수순교하였다.그는천주교신앙공동체재건을위해헌신했던인물중한사람이었다.바로신태보의이야기다.
신을향한믿음은멀고고통은가까워서,지나친고문속에비명처럼아는이름을내지르면그이름도피로얼룩졌다.불려나온이름들은반드시다른이름들로대체되어야만죽음을면했다.이연쇄의사슬에서누구도자유롭지못했다.비단천주교신자였던사람뿐만아니라아무런연고도없는선량한백성들까지도숱하게그대상이되었다.그런시대였다.수많은사람들이그렇게형장의이슬로,유배지의죄인으로떠났다.피할수없는증거를앞에둔채끌려온신태보도처음엔두려움을느꼈다.그러나오랜고난의시간은그를오히려단단하게만들었고,삶이죽음을향해한걸음다가설때마다“그날이언제냐”고반색할정도로믿음을더해갔다.신태보의옥중수기는죽음이임박한생사의급박한갈림길에서쓰였다.
그는말로만천주교를믿었던것이아니라누구보다충복한신자로서행동으로,실천으로신앙에앞장섰다.그의적극성과인내심은그의수기곳곳에서발견되는데혹독한고문으로명주실이살속을파고드는데도함께신앙생활을했던사촌이여진의행적을불지않았다.“주교를보내달라”는편지는밀사로파견된이여진의손에의해중국으로무사히전해질수있었다.
그의기도가하늘에닿았는지,1836년에모방신부가최초로입국했고,1837년샤스탕신부와제2대대목구장앵베르주교가입국하였다.이렇게해서조선교회는주교와2명의선교사신부를맞이하게되었다.신태보베드로는감옥안에서모든소식을전해들었을것이며,비록자신은신부를만나성사생활을하는행복을누리지못했어도조선교회에큰은총을허락해주신하느님께감사드리기위해자신의처지를기쁘게희생으로봉헌했을것이다.
신태보는박해시대로통칭되는끔찍한고문의시대속에서천주교를정착시키는주춧돌이었다.그에게수난은자신의숙명이었다.끝내자신의염원이었던주교를만나는일은이루지못했으나,1838년시점에서미완으로남아있던옥중수기가다블뤼주교의『조선순교자역사비망기』를통해세상에알려지게되었다.그리하여그의이름은천주교역사에영원히남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