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수명을 줄여라 (반역 사건으로 보는 조선의 이면)

왕의 수명을 줄여라 (반역 사건으로 보는 조선의 이면)

$20.22
Description
경직된 사회에 균열을! 조선의 트릭스터 분투기
낯선 사건에서 기시감을 느끼다, 지금 우리는
이 책은 『추안급국안』을 바탕으로 글쓴이의 상상력과 통찰을 더해 재구성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추안급국안이란 ‘추안(推案) 및 국안(鞫案)’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중범죄인 재판인 추국에 대한 법정 속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속기의 특성상 한문 어법에 충실하기보다 이두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세세한 기록 속에 현장감이 살아있다.
저자

편용우,문경득

고려대학교일어일문학과졸업후도쿄대학에서가부키를연구해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전주대학교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저서로는가부키작가연구서『四世鶴屋南北研究』등과다수의논문이있다.

목차

책을펴내며

1부그들은왜그리고어떻게역모를꿈꿨을까?
-왕족이되고자한요승(1676년요승처경사건)
-제주삼성혈의저주(1687년양우철사건)
-왕의상을가진노비(1688년박업귀사건)
-두명의진인과승려들의군대(1697년이영창사건)
-어느미역장수의음모(1712년이운고변사건)
-거사들의거사(1785,1786년유태수사건)
-왕의수명을줄여라(1872년김응룡·오윤근사건)

2부시대는바뀌어도역사는이어진다
-소궁둥이에풀먹이기(1723년어의이시필사건)
-매앞에장사없다(1728년무신년역적,1731년경술년모반사건외)
-객사의전패를훔치고,왕릉에불을지르다(1735년최하징,1725년최석산사건)
-영조친국의최후(1753년조관빈사건외)

국역『추안급국안』권별사건구성
미주

출판사 서평

1부맨땅에헤딩하기

‘추국’은역모등소위대역죄를대상으로하여왕의직접적인관여와통제아래이루어진재판이다.이엄중한재판은그체급에맞게국가의기강과사회질서를뒤흔들만한사건만을대상으로하였다.처벌의강도와범위도남달랐는데,추국대상범죄의특성상애초에범죄를꿈도꾸지못하게할필요가있었기때문이다.

이를테면추국죄인이받는사형은당사자의죽음그자체만을의미하지않았다.즉죄인의연고지에서공개처형을한다든지,잘린목을높은곳에매달아전시한다든지,사지를토막쳐서전국각지에돌려보인다든지하는식으로예비범죄자들을향한경고를담았다.게다가추국대상이되는범죄에는대부분연좌가적용되어죄가확정되면본인뿐아니라일가친척,때로는그가살던고을까지연대책임을지게되어있었다.그러나결론적으로무죄판결을받는다고해도심문받은사람의몸은만신창이가되기일쑤였다.당시에는일정한양식을갖춘고문이심문의일부로서허용되었기때문이다.

그렇다면이얽혀서좋을거라고는한가지도없어보이는범죄를저지르는사람은어떤인물일까?짐작건대역모등을통해권력을쟁취할수있는가능성이큰인물,최소한가만히있다가는잃을게너무많은인물일것이다.즉역모가실패했을때치러야할희생을생각하면거사의성공으로얻을것이실패로잃을것보다는훨씬커야한다.그런데이책에서다루는역모죄인,대역죄인의대다수는권력의중심부는커녕근처에도간적이없는서민이다.아직당황할필요는없다.우리는피지배계층이지배계층의횡포에저항하는이야기도알고있기때문이다.우리이야기의주인공들은아마도일종의홍길동,임꺽정같은서민의영웅이거나,권위주의에도전하는시민영웅일것임이틀림없다.

그러나안타깝게도우리주인공들의서사에서그런영웅적인면모를찾기는아주힘들다.그들이그큰일을벌여이루고자한것은출세(제주삼성혈의저주_양우철),경제적이익(왕족이되고자한요승_처경,왕의수명을줄여라_김응룡),사적원한해소(어느미역장수의음모_이운,객사의전패를훔치고,왕릉에불을지르다_최석산),조세회피(왕의수명을줄여라_오윤근),공금유용은폐(객사의전패를훔치고,왕릉에불을지르다_최하징)등이다.심지어그목적을이루기위해취한방법은무고한타인의삶을희생시키고사회에물의를일으키는방식이다.살기좋은세상을만들어보겠다는수준의배포라고는찾아볼수없다.공익적목적이없음은물론왕이나수령을직접적인타깃으로삼은경우조차사회적성찰이나정치적고뇌에서그런일을벌였다고할수없다.

목적에대한평가는차치한다고해도,그들이취한방법이자신이원하는결과를얻기에적합했는지조차도매우의문스럽다.실패했을때의대가가막심함은물론성공한다고하여도그성공의결실은그들이목표로했던바를공히뛰어넘는다.합리적인사고방식이든민주화의주역으로서의민중서사를읽어내는결에서든그들의행위는난해하다.그러나독자의이해가어떻든그들은기어코추국장에다다랐다.

도대체우리주인공들은왜그런이해하기힘든일을저지른걸까?어쩌다그험난한길로들어서게된걸까?그들은우리이야기의주인공이기도하지만,범죄의주모자로서사건의중심인물이기도하다.따라서그이름은사건기록에서가장정확하게작성되어야할이름일것이다.그런데실제기록에서는그표기가오락가락한다.한자뿐아니라소리까지바뀌는경우도간간이보이는걸로봐서단지한자표기문제만도아닌것같다.이는추국기록의첫부분에격식을갖추어편재된추국관리의이름들과대비된다.만약그이름들이역모를일으켰다면사건은어떻게전개되었을까?우리에게익숙한,모략과암투가판치는정치드라마같은상황으로흘러가지않았을까.

어쩌면우리주인공들은주인공의자리에서조차제이름하나제대로남기지못할만큼권력에서한없이소외되어있었기때문에역모나대역죄의무게가전혀와닿지않았던것일지도모르겠다.그들에게굵직한서사는없다.그러나종종일관성을잃어버리는진술속에비치는그들의삶의양태는한결같이비루하다.우리주인공들에게는절망스러운현실을타파하기위한비일상적인한방이필요했던건아닐까.고통이익숙했기에고문의고통따위는간과할수있었던것일지도모른다.

역모죄는예비과정도처벌한다.즉구체적인계획이나실질적인실행이없어도죄를받을수있다.왕조내지사회에대한불만을언급하는것만으로역모죄로내몰릴수있었다는뜻이다.조선말기로향할수록권력과거리가먼인물이포함된역모사건이늘어난다.이는서민이일상적인방법으로는살만한삶을구축할수없어진사회상황을반영하는것일수있다.

그리고이러한현실에매인것은식자계층도마찬가지였던걸로보인다.예컨대정조시기일어난역모사건(1785,1786년유태수사건)에는‘거사居士’라는부류의참여가두드러진다.‘거사’의사전적의미는‘속세에서불도를닦는남자’지만실상은불도에전념하기보다그핑계로조세나역등의부담에서벗어난계층에가까웠다.그들은대개글을알았고이동이비교적자유로웠기때문에,역모사건에서술사내지연락책으로참여했다.사정은제각각이겠으나글을아는것으로보아그들은양반내지중인의후예일가능성이있다.그럼에도그들은과거등을통한입신을포기한채술사,장사꾼등소위선비답지못한일로삶을영위하고있다.

한편낯선스타일의역모사건속우리주인공들이무척의지하는걸로보이는예언은더욱낯설다.지금대한민국에서메시아적존재라고하면대부분예수님이나미륵보살등을떠올릴것이다.그러나조선시대그들은이씨성과대비되는성씨를가진인물이그러한역할을하리라고믿었다.정씨진인등으로대표되는당대의메시아는기력이다한현왕조를무너뜨리고새시대를열성군내지성인으로상상되었다.이외에도예언을이루는요소,진인을찾아내기위한방법,반란의의례와그안에담긴상징모두낯설다.아마도조선과대한민국사이의역사에단절이있기때문일것이다.그렇기에그들의믿음을온전히이해하려면역사를되짚어봐야할테지만지금당장짐작할수있는것도있다.사회전반이메시아적존재를꿈꾸는상황,예언이생성되고널리퍼지며,믿음만으로예언을실현하고자하는사람들의활동이도드라지는상황이어떤지경인가하는것이다.그들이느꼈을고통과바람이지금우리의욕망과본질적으로다르지않을것이기때문이다.

역사를포함해모든기록은읽힘으로써현현한다.평범하다면평범했을옛사람들의이야기를읽으며당혹감을느끼게되는것은그간익혀온역사를읽는문법에서벗어난글이기때문일것이다.근래가장영향력있는서사는‘성공신화’이다.신화속성공은포기하지않는인내와노력의성과이다.실패는성공의전조로서만의미가있을뿐성공에다다르지못한실패란나약함,패배에불과하다.이이야기망속에서우리는실패를혐오하며자신을미워하지않기위해스스로를끊임없이닦달하곤한다.성공,좋다.노력,좋다.그러나그노력이공포에서비롯되고,자신을외면하는길이라면그성공이진짜성공일까.

우리주인공들은범죄를저질러평생스칠일없던높은사람들을만났다.그들은나름의목적을가지고판관들을설득하려고도해보고,변명도해보지만대부분불통이다.판관들이듣고싶은말은이미정해져있었기때문이다.그들의입맛에맞는말이나올때까지우리주인공들은고문을당하며말을만들어내야했다.지금꿈꾸는성공이내가꿈꾸는성공이맞는가.사회가원하는성공인가.우리고통이정말겪어야할고통이맞는가.우리주인공들은마음대로되지않는현실에절망하고,분노하다맨땅에헤딩을했다.잘다듬어진상징과바람직한서사에서빗겨난그들의이야기가답이정해진것처럼달려가는지금우리의일상에작은균열이되기를바란다.

2부나아가지않으면나아갈수없다

2부에는얼핏사회시스템이덜발전한전근대이전에나일어났을법한황당하고불편한사건들이실려있다.사회는자연스럽게진화하는가?만약그렇다면조선시대때저지른실수나잘못은현재대한민국에서는일어나지않을것이다.그런가?

어의이시필은부적절하게치료를거부하는경종에대한실언한마디내뱉었다가추국을받고,경종이수차례판결을번복하는와중에자살했다.저자는그가자살‘당’했다고표현한다.이는현대식으로하면갑질사건으로볼수있다.재벌가총수에게인격적모독을당하고직장까지잃게되었다는사건,성착취가해자에게역고소까지당했다는사건등은지금우리사회에서일어나는일이다.어쨌든이시필은재판을받았고,절차를밟아처형되었다.그러니공식적으로는권력자한둘때문에목숨을잃었다고할수는없다.그러나그재판과절차는이시필자신의목숨을보전하는데별역할을하지못했다.애초에재판장이기울어져있었기때문이다.지금대한민국의모든국민은헌법에의해재판청구권을보장받는다.그러나현실에서재판에임하는모든국민의처지가평등하며,재판과정이모두에게공정하다고할수있을까.어떤사건의피해자는재판의과정에서다시한번폭력을당하곤한다.

다음장에는합법적고문을통해창작수준의진술을뽑아내는이야기가실려있다.무신란(영조4년,1728)가담자를색출하는과정에서일어난일로,추국대상이된강위징은234대의곤장을맞은후사건과전연무관한두사람까지얽어넣어범죄사실을진술했다.강위직의자백속에서인물의이력,외모,반란장소,계획,행동등은믿을수없을만큼상세하다.결국강위징은능지처사되었고,그에게고발당한인물중한명은그형까지얽혀들어가고신(고문을동반한심문)을받다가그와중에둘다사망했으며,다른한명은종국에풀려나기는했지만고문후유증등으로고생했을것이다.
대한민국헌법은고문을허용하지않는다.이는국호를대한민국으로정한제헌헌법에서부터있던규정이다.하지만현실은어떠했는가.좌익내지공산당을색출한다는핑계로,민주화운동탄압의도구로,입맛에맞는범인을만들기위한기술로고문은계속존재해왔다.

그래도다음이야기에는시대가바뀌었음을여실히보여주는소재들이등장한다.왕을상징하는나무패인전패와왕의무덤인왕릉이다.이사건의범인들은각각전패를훼손하고,왕릉에불을질렀다.그러나그들은손괴죄나방화죄가아니라대역죄로처벌받았다.그들이훼손한게왕의상징물인전패,왕의무덤인왕릉이었기때문이다.왕의권위가중차대했던조선시대에나가능한범죄해석이었던셈이다.그러나범죄의실상을들여다보면여기서도기시감이느껴진다.최하징이전패를훼손한것은그렇게하면수령을쫓아낼수있다고믿었기때문이다.하지만전패가훼손되면해당고을의우두머리를파면한다는규칙은이미수년전에폐지된상태였다.그럼에도지방의향리였던최하징등은그사실을알지못했다.일종의정보격차이다.지역과계급에따라접근할수있는정보에차이가있고,선택의범위가달라지며그리하여대대손손인생의질까지달라진다는무서운이야기.이괴담은메가서울과지방소멸담론이한창인현재대한민국에서도건재하다.

한편왕릉에불을낸최석산은왕의권위를이용할생각조차없었다.그는그저자신을체포했던능졸들에게복수하고싶었을뿐이었다.그가처벌받게된이유는무단으로왕릉에침입해나무를베었기때문으로무리하게처벌받은경우는아니다.게다가왕릉을지키던능졸은무단침입한그를체포했을뿐,매질이나유배등처벌에관여한것도아니다.그럼에도최석산은유독능졸에게강한앙심을품고유배지에서탈출해서는협박으로동원한몇몇사람과함께왕릉에불을질렀다.그런데‘왕’릉이라느니‘왕릉’이라느니하는역사적요소를걷어내고보면최석산의범죄도은근히익숙하다.자기위주의시각에함몰되어피해당사자로서는인과관계도예측하기힘든황당한동기로타인의삶을무정하게훼손하는류의범죄.복잡다단한인간관계와이웃에누가사는지도모르는소원함이양립하는현대사회에서나일어날법한범죄가조선시대에도있었던것이다.

마지막이야기는영조의친국사례를분석한글이다.‘친국’은왕이추국장에서직접신문에참여하는추국이다.왕을포함한고위관료다수가참석하고,그에걸맞는호위가붙는등규모도크고갖춰야할것도많아서웬만한일이아니고선열리지않는추국중의추국이라고할수있다.영조는유달리추국을많이한왕이다.그는추국장에서다룰만한일도아닌데추국을열고,그에더해친국을거행하고는했다.이는영조가추국을자신의권위를강화하는용도로활용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