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만난 기억 (조선시대 기축옥사의 이해)

사실을 만난 기억 (조선시대 기축옥사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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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기축옥사 논의의 전말을 톺아보며 역사 탐구의 의미를 반추하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다. 이때 ‘사실’은 무엇인가. 저자는 사실을 “시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활동 또는 그 결과로, 구조, 의지, 우연의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정의한다. 이 책은 ‘기축옥사’를 둘러싼 논란을 검토하고 역사를 대하는 자세를 논한다.
저자

오항녕

전주대학교대학원사학과교수,한국고전번역원이사,인권평화연구원이사로있다.고려대학교사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지곡서당(태동고전연구소)에서한학을공부하고,한국사상사연구소연구원,국가기록관리위원회전문위원,연변대학교및튀빙겐대학교방문교수를지냈다.

지은책으로『역사학1교시,사실과해석』,『실록이란무엇인가』,『호모히스토리쿠스』,『광해군,그위험한거울』,『밀양인디언,역사가말할때』,『조선의힘』,『기록한다는것』,『한국사관제도성립사』,『조선초기성리학과역사학』등이있고,옮긴책으로『사통史通』,『율곡의경연일기』,『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존재집』,『문곡집』,『노봉집』,『병산집』등이있다

목차

프롤로그의심스러우면놔두고

제1부기축옥사의발생과전개
Ⅰ장_정여립모반사건과전개
-누구나두려운사건,반역
-연구동향과논점
-사료와논점의거리
-다문궐의多聞闕疑
-전쟁과혼란한정치
-황해도에서올라온고변
-설마정여립이…
-죄인의압송과추국
-양천회상소의논리
-사건을수습하라
-옥사의확대
-정암수의상소
-전국으로번진옥사
-공신을책봉하고
Ⅱ장_오염:당쟁론과근대주의
-안타까운의심들
-음모론적오류
-오류와날조는다르다
-송익필배후설의허구
-시간은기억의편이아니다
-당쟁론의굴레벗어나기
-『선조실록』의약점
-사라진그날의기록
-『선조실록』편찬의우여곡절
-실록수정의방향
-편파적인사론의수정
-무비판적인용의반성
-의외의소득,정인홍의‘자백’
-당색프레임에대한반증들
-기억의재현:지역차별?
-지역차별론에대한반론
-기억의재현:근대사상?
-정여립‘사상’의재검토
-설명과해석의딜렘마
-생산적인논의의길
-정철과이발의복권

제2부선조23년?선조24년?
Ⅲ장_그시대,송강과서애
-기억의갈림길
-두번째반론과비판
-모반은정당하다?
-다시숙제로돌아와
-실록에기록된송강의면모
-실록에기록된서애의면모

Ⅳ장_선조23년인가,선조24년인가
-야사野史는흐릿하여
-되살아난갈등의불씨
-왜곡된기억의재생
-정말어떻게된건가?
-반복되는빗나간기억들
-이제끝난것일까?
-또다른기억그리고의문
-누가더잘알수있을까
-『선조실록』의한계
-택당澤堂이식李植의고심
-주묵사朱墨史의다른뜻
-수정본의기축옥사기록
-후대기억과다른사실들
-혼군昏君의시대를지나
-잠정적인결론
-조건,의지그리고우연
-추국청의구성
-사례:피의자에대한처벌논의
-징역형이없던시대
-자백,그리고완전할수없는인간
-나와싸우자는거냐?

에필로그

부록
1.『송강행장[臨汀鄭相公行狀]』_김집金集
2.『서애행장西厓行狀』_정경세鄭經世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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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기축옥사를둘러싼오독들
기축옥사는선조22년정여립이역모를꾸민다는고변에서시작된대규모옥사를가리킨다.만2년가까이이어진옥사의와중에수많은인물이연루되어죽임을당했다.정여립은당색으로는동인에속한인물이다.전라도출신인물로전북전주와진안지역에서주로활동했다.죽임당한인물중상당수가동인계열이고,전라도출신이다.

이만큼들었는데동서대립,지역차별같은단어가자동으로떠오른다.‘당색’,‘지역’이라는프레임이작동하는것이다.실제로이러한프레임을보강하는주장이제기되고,연구가발표되어왔다.기축옥사와관련한일련의사건중어쩌면가장자극적이라고할수있는이발의노모와어린아들의고문사와관련해서는그원흉을색출하려는방향으로논점이뒤틀리기까지했다.

원색적인비난으로칠해진사건은살피지않고도알수있을것만같다.그러나사실은어떠했던가.기축옥사는‘모반’자체를중심에두고관찰할때그나마진실에다가갈수있다.당쟁론,지역차별론등에기초하여사건을바라보면시각이환원주의에빠지기십상이다.

‘모반자체’에집중해서사건을보다보면,모반소식이조정에처음전해졌을때동인,서인을떠나정여립이모반을일으키려했다는사실자체를믿지못하고곤혹스러워하는모습이보인다.정여립은홍문관수찬을지낸인물로,그는경연에참여하여국왕과세미나를하는근시(近侍),곧청직(淸職)이었기때문이다.그의인물교류를보면소위동인,혹은서인에속하는인물들이서로얽히고설켜있었음을알수있다.

또한당시이발의노모와어린아들을죽음에이르게한책임을누구한사람에게묻는것은불가능하다.추국청은다수의관원이심문하는장소이다.기축옥사는국왕이직접심문했던친국,국왕이임명한대신이위관(심문책임자)을맡은정국,의정부·사헌부·의금부가합좌하여국문했던삼성추국등으로진행되었다.특정위관한명의의향이판결에절대적인영향을끼칠수는없었던것이다.

저자는이발노모와어린아들의죽음당시위관으로지목되어온두사람,정철과유성룡을둘러싼사료를분석하여,당쟁프레임을거쳐왜소해진인물상을입체적으로복원해낸다.그들에관한여러기록과행장등을읽다보면,새삼그들도기축옥사의와중에나름대로선한의지를발휘하며한시대를살다간사람들이었다는것을느낄수있다.

저자는기축옥사를지역차별로보는선입관에도주의한다.기축옥사로전라도사람의피해가컸던것은사실이지만이는정여립의연고지가전라도였기때문으로,전라도라피해를받았다고보는것은원인과결과를혼동하는오류를범한것이다.이혼동이보다문제인이유는전라도를사건의무대가아니라사건의원인으로봄으로써전라도를차대한다는어떤‘의지’를상정한다는점이다.이러한태도는진상파악을곤란하게함은물론사람들의상처를자극하여불필요한긴장과오해를부추길수있다.또한저자는기축옥사로인해호남차대가나타났다는의견에도반대한다.그근거로제시되는문과급제율이주장과다른흐름을보이기때문이다.

나아가정여립을지역의대표인물로현창하는과정에서동원된근대주의프레임에도주의를촉구한다.여기서근대주의란“공화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등의사상이나이데올로기를인류의이상이나목적으로보는관점”을의미한다.정여립의사상을공화주의로포장해그를영국에서공화정체를수립한올리버크롬웰에게견주거나,반봉건적요소를강조해정여립의모반을프랑스혁명에비기는연구등이근대주의적프레임의영향을받은해석이라고볼수있다.근대주의는서유럽중심의단선적역사관으로두차례의세계대전을거치며많은비판을받고있다.

그런데이런해석에는보다근본적인결함이있다.‘정여립의사상’을판단할수있는자료가매우적은데도불구하고,무리한비약과추론을통해‘사상’이유추되었다는점이다.이런상황에서‘정여립의사상’을‘공화주의’,‘사회주의’로,‘모반’을‘혁명’으로보는것등은의욕이앞서사실을호도하는행위가될수있다.

2.건강한기억을위하여
기축옥사를둘러싼사실들은당대부터지금까지두고두고논란이되고있다.이런난독상이발생한이유는무엇일까.뭐라고해도첫번째원인은기축옥사와관련한원사료의부재또는부실이다.사안의중대성과사건의규모로보아양질의기록이남아있어야할것같지만기축옥사에관한사료는매우성기다.옥사가마무리될무렵임진왜란이발발했고전쟁통에사초,추국청문서등참고할만한사료가상당부분사라졌기때문이다.

이런와중에억울한심정과애매한상황이얹히면서,사람들의기억이뒤틀리기시작했다.이것이처음부터의도했던곡해였다고보기는어렵다.그시작은부실한기록과피해자의다친마음이었을것이다.즉관련자의원망과억울함이빈약한기록에스며들어균열을내고,그틈을바람섞인거짓기억으로메꾸어버린게아닐까.그러나상상이앞선설익은주장들은사실관계를난잡하게뒤섞어버렸고,상대방은물론자신의상처도덧내는결과를불러왔다.그렇게설왕설래하는사이의도치않은실수가더해지고,변질된사료위에다시말을쌓는악순환이되풀이되었다.

그렇다면이렇게원본사료자체가부실한데다가,긴시간오류가쌓이고,오류에기반한갑론을박이이어져서사실과거짓,기억과망각이뒤섞여버린경우‘사실’은어떻게구해내야하는걸까?저자는이문제를‘다문궐의(多聞闕疑)’의자세로풀어내기로한다.다문궐의는『논어』「위정爲政」편에나오는말로“많은사료를검토하고의심스러운데는놔두는”태도를의미한다.

저자는『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등의공적사료,숙종대유생양몽거의상소외반박에반박을거듭한상소들,기축옥사에관한후대의기록들과그기록에관한기록등을비교분석하며부정합한요소를골라내고,보다타당한사실을도출하며엉킨기억을정리해나간다.

3.역사공부의의미
그러나이모든과정을거쳐도보는눈은다양하고,사실은완벽하지않다.결국우리는언제나갈등의소지를안고서로다른기억을품은채함께살아가야하는것이다.그런점에서우선본보기가있다.광해군대편찬된『선조실록』,여기에오류가많다고하여인조대편찬한『선조수정실록』이그것이다.조선사람들은두실록을다남겨놓았다.원래의기록과수정한기록을모두알수있다고해서‘주묵사(朱墨史)’라고도부르는격조이다.이는스스로는사실을기록하였다고해도그기록에는판단과해석이작용할수있음을인지하고,그판단을후대에유보하는문화적,정치적행위이다.

주묵사의기록을분석하고,다문궐의를통해타당한사실을도출한후저자는‘춘추필법(春秋筆法)’을반추한다.춘추필법은공자가노나라의역사서‘춘추’를기반으로편찬한『춘추』의문체와서술방법으로춘추직필이라고도불린다.‘직필(直筆)’은무엇에도얽매이지않고사실그대로적고자하는태도내지그서술이다.

그런데『논어』「자로(子路)」편에서,공자는자기마을에아버지의범죄를고발한정직한사람이있다며자랑하는섭공에게우리마을은그와다르다며자식이부모의죄를,부모가자식의죄를숨겨주는것속에‘곧음[直]’이있다고응수한다.만약춘추필법의곧음에저‘곧음’의의미가담겨있다면어떨까.무엇이정의인지진실인지도뚜렷하지않은상황에서“인정(人情)을벗어나는정의(正義)가과연인간과사회의평안에기여”하는걸까?

저자는“서로다른기억을함께양해하며풀수있으며,서로둘러앉아해결할수있는기대”로이책을썼다고한다.과연어찌할수없는‘우연’과단단한‘구조’사이다문궐의의태도로쉽게의심하지도함부로판단하지도않으며,나와다른사람에대한애정과호기심을품고,공감할수있는진실을찾아나가는일을우리의‘의지’로삼을수는있을것이다.이책에담긴역사탐구의방법들이독자에게“연대의삶,공감의삶,배려의삶을확장”하는도구를제공할수있기를바라며글을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