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

순교자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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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마지막까지 양 떼와 함께한 착한 목자, 평양교구 교구장 홍용호 주교의 일대기
평양교구는 일제 강점기인 1927년 설정되었고, 전쟁의 참상이 악화되던 1943년 독립교구가 되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로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소식이 끊겨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홍용호 주교는 1943년, 일제가 미국의 메리놀회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일본인을 성직에 앉힘으로써 한국 교회를 지배하려고 시도하던 그때 평양교구의 6대 교구장이자 두 번째 한국인 교구장으로 임명받았다. ‘일어나 가자Surgite Eamus(마태 26,46)’를 사목 표어로 천명한 그는 열정과 사랑으로 평양 교구민을 이끌었고, 홍 주교 자신이 관여한 가톨릭 운동을 통해 단련된 평양 교구민은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1945년 해방 직후, 홍 주교는 일제에 징발되었던 관후리 주교좌 성당 부지를 되찾고, 성당 재건을 추진하였다. 이는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신앙의 선언으로서 평양 교구민을 결속시켰으며, 일반 시민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공산 당국의 탄압과 배척 속에서 목숨을 잃을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착한 목자로서 끝까지 양 떼와 함께하기를 결단하였다. 1949년 5월 14일 오후 종신 서원 예정자들과의 면담을 마치고 북한 내무상 사무실로 향하던 길,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는 피랍되어 이후 생애는 공식적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사랑과 헌신은 신자들의 기억과 마음에 남아 지금도 그의 양 떼와 함께하고 있다.
저자

권은정

유스티나루이제
작가,전문인터뷰어,번역가.영문학을전공하고언론사의런던통신원으로일했으며국무총리실홍보기획비서관을지냈다.지은책으로『윤공희대주교의북한교회이야기』,『책으로노래하고영화로사랑하다』,『그사람이아름답다』,『불꽃이향기가되어(공저)』등이있고,옮긴책으로『상처입은관계의치유』,『시몬느베이유』,『삶의대화』등이있다.

목차

헌사
발간사
일러두기
1부
01그날-1949.5.14.토요일
02어린홍용호
03용산예수성심신학교시절
04평양교구의변화-마산성당
05긴방학의흔적
06순교자신심
07병상에있다
08사제품을받다
09평양교구관후리본당보좌신부
10가톨릭연구지발간
11문맹퇴치운동
12첫본당-영유성당주임시절
13『가톨릭조선』사장시절-의주변문방문
2부
14격랑의평양교구-1941년12월
15평양교구제6대교구장-첫방인교구장
16평양교구사제양성
17일제의관후리성당징발
18개신교예배당에서올린주교성성식
19조국해방
20소련군평양입성
21북녘땅에몰아치는공산정권의바람
22성지회복에나서다
23천주교박해-첫번째희생자
24다시지어올리는성전
25자전거신부,가난한신자들의정성
26덕원수도원의도움
278월의눈같은기적
28성전공사와신자들
29가톨릭학교폐쇄
30주교관이전하다
3부
31성당정초식-성모마리아께봉헌
32어느공소의하루
33대성전건설의마지막열정
34다시신학생양성
35평양교구마지막사제서품식
36공산당국의탄압
37홍주교의희망
38관후리성당을양도하라
39홍주교의대신리성당미사-신앙고백예절
40덕원수도원폐쇄
41홍주교의마지막성무-영원한도움의성모회
42홍주교피랍되다
43주교님어디에계십니까
44그날이후-평양인민교화소특2호사

평양교구성직자수도자평신도피랍일지
부록
홍용호주교연표
평양교구행사사진속의홍주교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