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채로, 여기까지

알 수 없는 채로, 여기까지

$15.13
Description
알 수 없는 채로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고,
나 자신을 믿지 못하던 순간조차 멈추지 않고 걸어왔다고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게 해준 반짝이는 순간들
“누구도 미래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채로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행락객이 빠져나간 늦겨울의 한 바닷가, 생 토방 쉬르 메르(Saint-aubin-sur-mer)에서 작가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하염없이 상념에 빠져 있었다. “나는 지금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걸까.” 문득 날이 저물었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정류장으로 달려갔지만, 숙소로 가는 버스는 이미 끊겨 있었다. 그녀는 버스가 다니는 정류장을 찾아 어둑해진 길을 덤불을 헤치며 걷고 또 걸었고, 다행히도 버스가 다니는 정류장을 찾았다. 하지만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붙은 종이들을 훑어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ATTENTION, Disparue L?opard(주의, 표범 탈출)’

근처 동물원에서 표범이 탈출했다는 경고문 아래 표범 사진과 발견했을 시의 연락처, 동물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작가는 사진 속 표범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 생각한다. ‘표범이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 캄캄한 밤길을 혼자 걸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것을 깨닫는 순간, 삶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된 듯했다.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알 수 없는 채로도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 말이다.
저자

레나

LENA
1980년여름서울에서태어났다.휴학과복학을반복하며6년만에간신히졸업한탓에‘외대의대졸업생’이라는별명을얻었다.스물아홉,처음떠난일본여행에서후지와라신야와앙리카르티에브레송의전시를보고사진의매력에눈을떴다.뉴욕필름아카데미에서공부하고,영국골드스미스대학에서사진및일렉트로닉아트(TheImageandElectronicArts)석사학위를받았다.‘아시안여성’이라는정체성과소수자에대한시선을테마로사진,영상,설치등다양한작업을이어오고있다.
레나(LENA)라는이름은좋아하는영어단어자유(Liberty),감정(Emotion),자연(Nature),아나키즘(Anarchism)의머리글자를따서조합한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1부반짝임과흔들림으로
사는건그렇게복잡한것도어려운것도아니란다
낯선이에게행운을빌어주던그들을위해서
나의장소,내자리를찾아서
우리가우연히스친곳은
괴물의그림자를드리우고
어두운터널을지날때
이세계에서여자라는이방인으로
히말라야에서너를보낸다
그런장면들을더많이갖고싶어서
내언몸을녹여주었던작은입김들
한사람의얼굴은하나의표정만을짓지않는다
우리를움직이는건강점이아니라약점이었다
이런세상에서도나는길위에서서

2부안녕,고마웠어요
아녜스바르다가사랑한해변
에밀리브론테의언덕에서
빨간머리앤이살았던그집엔앤이없다
버지니아울프와런던거리쏘다니기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실의에빠져나자신을망가뜨려갈때
나를일으킨작지만분명한호의들에관한기록

서른이넘어생각지도못했던분야로진로를바꾸면서미래에대한막막함으로주저앉고싶을때,낯선나라에서서툰언어로자꾸만주눅이들때작가를일으켜준것은딱필요한그순간의작은호의들이었다.호의를베푼이에게는“들꽃에먹던물병의물을살짝부어준정도”의대수롭지않은마음이었을지몰라도,작가에게는몸을일으켜다시앞으로나아갈수있게해준커다란힘이되었다.실의에빠져자신과주변의것들을속수무책으로망가뜨려갈때,“정신을차리게해주고반쯤깎여나간자아의빈자리를채워”준건대단한도움이나거창한약속이아니라,지금당장목을축일수있는한모금의물같은,작지만분명한호의였음을작가는이책을통해전하고있다.

“그해여름을뉴욕에서보내면서,지치고힘이들때마다그녀의말을떠올렸다.어쩌면그녀에게는보잘것없는들꽃에먹던물병의물을살짝부어준정도의호의였을지모르지만,나는덕분에무사히체류기간을마치고돌아올수있었다.내앞에어떤장면이펼쳐질지알수없는채로여기까지올수있었던건나를몇번이고일으킨작은호의들덕분이었다.”-〈프롤로그〉에서

잊을수없는만남이된우연한마주침
그리고여성예술가들과의특별한동행

《알수없는채로,여기까지》는국내외에서활발하게개인전을여는동시에여러작가들과전시를기획하고큐레이션하는사진작가레나의첫책으로,우연한마주침이잊을수없는만남이된순간들을기록한에세이이다.사진공부를위해런던과뉴욕에머물때,프랑스어를익히기위해파리와루앙에서지낼때,그리고세계각지의낯선도시를여행하면서마주한뜻밖의만남이위기를벗어나게해주고앞으로계속나아갈용기를주었던이야기를풀어냈다.

1부에서는“낯선이에게행운을빌어주던”이들과의반짝이는조우의순간들을담았다.자신을“‘특별한아이’라고불러주었던”아테네의마리아,“재능도없으면서시간만허비하고있는건아닐까”스스로를의심하던작가에게진심어린응원을건네주었던하나코,대학원시절“예민함은어디에서도배울수없는너만의재능”이라며북돋아주었던나이젤선생님…….작가는이들이건넨온기에“어깨위에놓인차가운짐을”잠시나마녹일수있었다.

2부에서는세상을떠난여성예술가들의흔적을찾아떠난특별한여정을담았다.아녜스바르다가사랑했던프랑스북부의해안도시노르망디에서그녀의영화들을불러내고,에밀리브론테의《폭풍의언덕》배경인하워스에서“청량하고깨끗한바람”을맞으며200여년전의작가와작품속인물과교감하는마법같은순간을경험한다.버지니아울프와동행한런던거리에서는“여자혼자외출을하는일조차불가능하던”믿어지지않는시대를지나이국의낯선거리를활보할수있는현재에새삼감격하며,“이러한현재가있기까지길을먼저걸어가며개척한여자들을떠올”리기도한다.

책을읽다보면,우리가딛고있는‘여기’,알수없는우연이이끈현재‘나의자리’를가만히돌아보게된다.한치앞을알수없는채로도우리는여기까지왔다고,나자신을믿지못하던순간조차멈추지않고걸어왔다고,자신을조금은긍정하게된다.그럼으로써미래를걱정하고두려워하기보다지금마주한사람의소중함을되새기고자신앞에펼쳐진풍경을있는그대로바라보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