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예기치않은사건앞에서,
책속의말들이다무너지는걸목도하고도
다시책앞에선사람의이야기”
_김애란(소설가)
“‘지나간다’는말안에얼마나많은고통이웅크리고있는지”
자신을설명할언어를책속에서찾아나간여정
“아버지는자살했다.”
이책은강렬한문장으로시작한다.장일호는아버지의죽음을삼십년가까이교통사고로알고살았다.고작스물아홉의젊은나이에청산가리를구해스스로세상을등진아버지.아버지죽음의진실을알게된그는배신감과고통으로울부짖는대신,아버지는본인이그토록바라던“멋진글대신멋진나를남겼으니까할일을다했다고생각해버린건아닐까”라고유쾌하게정리한다.“살면서가끔필요하고때로간절했던‘부정’의결핍”을극복하게해준것은책이었다.소설가김애란의《달려라,아비》의문장과행간에서“일종의연대”를느끼면서그는아버지의“없음”은물론,어머니의“있음”까지극복한다.
가난했던유년시절부터기자로살아가는현재에이르기까지,크고작은슬픔들이“구체적인얼굴”을띠고그의삶을찾아왔다.어느날은지하방에차오르던장맛비의모습으로,어느날은중환자실에누운할머니발의버석거리는촉감으로,또어느날은“무성의하게몸에붙여지는”환자식별스티커의모양으로.장일호는“‘지나간다’는말안에얼마나많은고통이웅크리고있는지”아는사람이다.그리하여한사람을온전히담을수있는단어같은건세상에존재하지않는다는사실을알게된사람이다.‘자살유가족’,‘성폭력피해자’,‘암환자’같은세상이명명한단어로는도저히담을수없는자신을설명할언어를그는책속에서구한다.책은그에게닥친사건들이그를불행한사람으로만들도록두지않았다.아버지의죽음을자신에게남긴“사랑”으로치환할수있게해주었고,그를“피해자”의자리에서“생존자”의자리로이동시켜주었다.아직오지않은또다른세상을상상할수있게해주었다.《슬픔의방문》은슬픔이찾아온날들에관한기록이면서,슬픔을곁에둔채로도살아갈수있는가능성을책속에서찾아가는눈부신여정이기도하다.
“고통으로부서진자리마다열리는가능성을책속에서찾았다.죽고,아프고,다치고,미친사람들이즐비한책사이를헤매며내삶의마디들을만들어갔다.”
살아가는일이살아남는일이되는세상에서
“상처받는마음을돌보는슬픔의상상력에기대어”
장일호의사수는‘단독기사’의의미를이렇게짚어주었다고한다.“제일처음쓰는것도의미있지만,마지막까지쓰는것도단독만큼이나중요하다고.”그말은“시대의안과밖을잘쓸고닦다가제일마지막에나오는사람이되고싶다”는열망을심어주었다.‘저자’로서의첫책에도그간절함이빼곡하게담겨있다.그는자신의개인적경험들을우리사회의가장예민한주제들에부단히접속시킨다.그가겪은가난은“자신이빠져나온세계”에여전히머물러있는이들에게로,사랑하는이들과의이별은“존엄한죽음”을둘러싼사회적논의로,투병경험은“아픈몸을대하는세상”에대한사유로나아간다.‘나’의이야기로발을뗀글들은예외없이세상한복판에착지한다.
《슬픔의방문》의마지막두문장은이렇다.“상처받는마음을돌보는슬픔의상상력에기대어나의마음에타인의자리를만들곤했다.살아가는일이살아남는일이되는세상에서기꺼이슬픔과나란히앉는다.”내가모르는삶을있는힘껏상상하게함으로써상처받는마음을돌보는것,나의마음에타인을위한자리를마련하는것.슬픔의쓸모를이보다더정확하게표현한말이있을까.“살아갈수록‘살아남았다’는감각만자꾸선명해”지는시대를살아가는독자들이이책을읽는동안슬픔과나란히앉아보게되길바란다.슬픔이지닌가능성을가만히느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