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 아이러니 (18개 원소로 써 내려간 차별과 연대의 화학식)

주기율표 아이러니 (18개 원소로 써 내려간 차별과 연대의 화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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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화학자, 유대인 작가인 프리모 레비의 저서 《주기율표》에서 착안하여 시작된 기획으로, 한국의 사회의학자 김명희가 주기율표 위에서 상연되는 인간 사회의 장면들을 해박한 지식과 특유의 날카로운 유머로 포착했다. 인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화학원소 18개를 추출하여,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닌 “초연한” 원소가 인간과 결합할 때 어떤 아이러니가 발생하는지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광범한 시대와 공간을 가로지르며 풀어냈다.

원소 하나하나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의 능선이 몸과 병, 서구사회와 제3세계, 개인과 시스템, 기업과 정부, 과학과 SF, 전쟁터와 우주를 넘나들며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적재적소에 배치한 양질의 데이터와 풍부한 연구 사례들이 이야기가 종횡무진할 수 있는 든든한 연료가 되어주었음은 물론이다.

‘수은’ 편에서 프리모 레비가 “폐쇄적 공동체의 광기, 전근대의 도덕감각, 수은중독 증상을 분간하기 어려운 인물들의 기행”을 보여주었다면, 김명희는 공장에서 온도계를 만들던 15세 소년이 수은의 독성보다 치명적인 “기업과 정부의 환상적 연금술”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소상히 밝힌다. ‘아르곤’의 비활성 특성에서 프리모 레비가 그의 조상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점잖은 유대인”을 떠올릴 때, 김명희는 “오늘날의 원자화된 현대인”을 떠올린다. 《주기율표》가 유년의 이야기부터 인간에 대한 성찰까지 풍부한 문학성으로 풀어낸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회고록이라면, 그로부터 정확히 50년 뒤 우리에게 도착한 《주기율표 아이러니》는 레비의 실험대 위에서 새롭게 혼합한 인간 사회의 주기율표라고 할 수 있다.
저자

김명희

저자:김명희
의과대학을졸업한후예방의학전문의를취득하고,대학원에서보건학(석사)과예방의학(박사)을전공했다.그후의과대학에서예방의학조교수로근무하다시민사회독립연구소인(사)시민건강연구소로자리를옮겨10년동안활동했다.오랫동안건강불평등과노동자건강권,건강의사회적결정요인에대한연구와실천활동을해왔다.현재수도권의공공병원에서보건의료정책을연구하고있으며,노동건강연대의운영위원장을맡고있다.
그동안쓴책으로《가장평범한아픔》,《당신이숭배하든혐오하든》,함께쓴책으로《몸은사회를기록한다》,《한국의건강불평등》,《가늘게길게애틋하게:감염병시대를살아내는법》,《의료사유화의불편한진실》등이있고,함께옮긴책으로《부유한국가불행한국민》,《사회역학》,《과로자살》,《노동자건강의정치경제학》,《예방의학의전략》등이있다.

목차

프롤로그_원소를통해바라본세상

아이오딘_주홍빛방역의추억
산소_‘불멍’에서에크모까지,그곳에산소가있다
수은_온도계를만들던15살소년의죽음
황_아니오,저는지옥가겠습니다
나트륨_소금을둘러싼아이러니
납_지능을망치러온지성의구원자
아르곤_고독하지만외롭지는않게
은_‘은이솟구치는산’에서사회의학의탄생까지
탄소_시력을앗아간진짜범인
셀레늄_로봇공학3원칙과인간됨
리튬_친환경영웅의감추고싶은탄생기
알루미늄_살아남은사람들도아프다
수소_산테러를저지르는못난마음
비소_마담보바리의결심
인_원소계의‘샛별’은어쩌다살상무기가되었나
철_흡혈,매혈,헌혈사이철과피의연대기
칼슘_뼛속에새겨진삶과역사
질소_절멸캠프에서본인간의얼굴

출판사 서평

원소가인간과결합할때어떤차별을낳는가
‘과학은사회로부터자유로울수있는가?’

의대에진학했으나“입학하자마자운동권선배들에게‘픽’되어”‘데모꾼’으로활동하다보니“세상이이모양인데의사는해서뭐하나”라는회의가밀려왔다.원진레이온집회에참여한어느날저자는한선배의권유로예방의학이라는분야가있다는것을알게되고,이때인생경로가결정된다.개인의질병원인을사회구조에서찾는사회의학을업으로삼게된건“원진레이온투쟁이남긴여러유산중가장소소한것”이리라저자는회고한다.

137일동안이어진원진레이온‘장례투쟁’에서‘황’이야기가시작된다.그자체로는독성도없고일상생활의다양한분야에활용될뿐만아니라페니실린같은의약품,비료등의주요성분인황이어쩌다‘사신(死神)’이되었을까.황과탄소가결합한이황화탄소의독성을알고도생산기지를계속해서이전하며노동자들을방치한국내외기업들의사례를짚으며저자는“원인모를병마와외롭게싸우던노동자들,심각한정신질환에시달리다자살로생을마감한노동자들의고통은애초에겪지않아도되었던것”이라고일갈한다.황이야기를마무리하는에피소드는저자의지식(과학)과취향(SF)과사회적의식이드러나는,그자체로통쾌하고의미심장한의도적반어다.

“어느날지하철에서나에게열심히하나님의말씀을전파하던분은도저히내가넘어가지않자“천국에가고싶지않으세요?”라고물었다.나는대답했다.“아뇨,저는지옥가고싶은데요.”그분은옆칸으로도망갔다.꺼지지않는지옥불이라면인류가꿈꿔온무한동력,거절할이유가없다.파인만,호킹,힉스,슈뢰딩거,아인슈타인같은일류과학자들도신을믿지않는다는불경죄로이미그곳에가있을터,무한동력을이용하여일찌감치기술문명을꽃피우고있을가능성이크다.더글러스애덤스,커트보니것같은유쾌한작가들과많은SF작가들도나보다먼저가서자리잡고있을테니심심할걱정도없다.직업병걱정없이,쾌적한환경에서,유쾌한동료시민들과신비로운푸른색불꽃으로이글거리는유황지옥불을불멍할수있다면멋진일아닌가?”
-〈황:아니오,저는지옥가겠습니다〉

그런가하면,‘납’이야기의주인공은지질화학자클레어패터슨이다.그는집착에가까운노력으로역사상가장완벽한‘클린룸’을만들고,마침내지구생성시기에떨어진운석에함유된‘순수한’납함량을측정함으로써지구나이를추정하는데성공한다.그런데여기에서이야기는뜻밖의길로접어든다.그는도처에존재하는납이대체어디서유래한것인지궁금증을갖고다양한가설을검토한끝에1923년등장한유연휘발유가납오염과밀접한연관성이있다고결론내린다.정유산업은청부과학자까지동원해그의연구를방해하지만,패터슨은대서양과태평양의심해,남극과북극,설산,화산분화구,심지어인체유골과미라까지분석해자신의가설을입증한다.이야기는여기서그치지않고,미국의플린트시의상수관으로뻗어나간다.오염된납파이프상수관으로수도를공급하던가난한유색인종의도시‘플린트물사태’는중립적인원소가인간과결합할때어떤차별을낳는지선명하게보여주는한편,‘과학이사회로부터자유로울수있는가?’라는외면할수없는질문을남긴다.

트랄파마도어행성에서울먹이던질소에게
위로해줄말이우리에겐남아있다

제2차세계대전이끝난직후,트랄파마도어행성에모인화학원소들사이에서나치경비병과의사몸의일부로비자발적복무를한질소가울먹이고있다.커트보니것의소설《타임퀘이크》의한장면으로시작되는‘질소’편은인간의불가해한아이러니가가장강렬하게드러나는이책의클라이맥스다.인류의식량문제를해결하는데혁혁한공을세운질소가어쩌다사람들을학살하는데이용되는지,그여정을따라가다보면저자의말마따나“공포나슬픔보다의아함이”앞선다.

“독일의부헨발트수용소,폴란드의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수용소를직접가보았을때에도공포나슬픔보다의아함이더크게일었다.도대체,이게이렇게까지열심히할일인가?유럽전역에흩어져있는사람들을기차에태워이멀리까지이동시키고,조금이라도빠른업무처리를위해철로를수용소앞마당까지연결하고,그많은포로들을특성에따라세세히분류하여라벨을붙이고,많은사람을한꺼번에빠르게죽이기위해별도로가스실을건설하고,시체를옮기는수레에잔여물이남지않도록수레내부를코팅하고,가스실에서소각로입구까지시체운반용엘리베이터를설치하는부지런함과효율성의정체는과연무엇이냐는것이다.”
-〈질소:절멸캠프에서본인간의얼굴〉에서

그러나이책은인간의어두운면만이야기하지않는다.“학살자와방관자만이아니라,성공할것이라는희망이보이지않는곳에서불의에저항하고,가장위험하고비참한순간에도인류애를보여주고,아무도보지않는곳에서스스로의양심을지키기위해꼿꼿이버틴사람들몸속에도질소가들어있었다”며트랄파마도어행성에서울먹이던질소를위로한다.1980년광주,계엄군이시가지를장악하고대중교통도끊어진상황에서헌혈을하기위해목숨을걸고“혈액원입구에서병원정문까지구불구불하게줄을늘어선사람들의모습”,히틀러-나치에게경례하지않기위해“집밖을나설때면항상양손에무언가를들었다는”어느과학자의작은실천에숙연해지는것은우리에게여전히인간에대한희망이남아있기때문일것이다.

인간의역사는곧타자를어떻게대해왔는가에대한기록이기도하다.책에담긴18개원소들은그자체로흥미로운과학지식을품고있는물질의기본요소인한편,인간이인간을대상화할때어떤일들이벌어지는지증언하는‘목격자’이기도하다.‘철’편에서이야기되듯이민중의피를빨아먹는‘흡혈’사회와혈액마저상품으로거래되는‘매혈’사회,그리고특별한보상없이도자발적인‘헌혈’로생면부지의타인을돕는증여사회는각기다른미래를맞이할수밖에없다.저자가주기율표위에그려낸몸,타자화,연대의지도는자연과학의재료로사회를읽는지적즐거움뿐아니라,“나의행동혹은행동하지않음이어떤의미를갖는지”성찰할기회를준다.1975년에발표된프리모레비의《주기율표》에담긴아이러니와2025년의《주기율표아이러니》가얼마나비슷하고또다른지답해보는시간은독자들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