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과 밀 벌레와 신성한 손 (어느 식소수자의 풍성한 사계)

텃밭과 밀 벌레와 신성한 손 (어느 식소수자의 풍성한 사계)

$16.80
Description
사는 이야기에 먹는 이야기가 빠질 수 없어서

맞지 않는 음식을 거부하는 몸이 보내는 신호, 통증
잘 먹어야 잘 산다는 사람들 속 안 먹어야 건강한 삶
성실한 ‘바보’를 선택한 아픈 몸의 먹고사는 이야기
어느 식소수자의 ‘다르게 먹기’와 ‘다르게 살기’
“먹지 못하는 파전 맛을 상상했다” - ‘어쩌다 미식가’ 된 ‘식소수자’의 밥 읽고 책 먹는 삶
잘 살려면 잘 먹지 않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저속 노화’ 열풍 속 ‘먹방’과 ‘맛집 투어’가 누리는 인기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삶은 ‘먹기’와 ‘살기’를 둘러싼 갈등으로 가득하다. 먹는 데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사람들 사이, 건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먹는 방법을 바꾼 이가 있다. 나고 자란 마을을 둘러싼 이야기를 기록한 《대천마을을 공부하다》와 마을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탐험한 《나의 작고 부드러운 세계》를 쓴 신아영 작가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일상을 무너트린 통증을 치료하려 ‘병원 투어’를 한 끝에 신아영은 주식인 쌀밥을 끊고 몇 가지 곡물과 채소만 먹어야 하는 ‘식소수자’의 삶에 다다른다. 마을 도서관에서 일하고 이웃들 사이에 깃들어 살면서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 ‘어쩌다 미식가’가 돼 밥을 읽으면서 새로운 미식 세계에 발 디디고, 핫플 음식 대신 책을 먹으면서 ‘식소수자’라는 정체성에 눈을 뜬다.
《텃밭과 밀 벌레와 신성한 손》은 부산 금정산 자락 대천마을 동네 사람들이랑 읽고, 쓰고, 작은 텃밭을 가꾸는 이야기꾼이 식소수자의 삶에서 캐내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 꾸러미다. 먹는 음식은 제한되는데 미식의 세계는 다양해지고 생활 반경은 좁아지는데 마음의 세계는 넓어지는 역설은 고통받는 한 사람이 일상에서 구원을 찾고 ‘성실한 바보’가 돼 고단한 수행을 이어 가는 여정으로 우리를 이끈다. 생생한 묘사와 다정한 마음으로 가득한 글 밭을 누비다 보면 읽는 이는 어느새 이야기 듣는 사람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 된다. 어떤 삶을 살든, 사는 이야기에 먹는 이야기가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바구미도 다 먹고살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 - ‘성실한 바보’의 아픈 몸으로 다르게 먹고살기
‘먹기’는 ‘살기’다.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이 말은 모두 똑같이 잘 먹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균형 잡힌 식단이 몸에 해로운 사람도 있다. 이름하여 식소수자 신아영은 자기 몸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덜 아픈 사람이다. 어느 날 파스타에 붙은 검은깨가 눈에 들어왔다. 묵은 밀에서 생겨나 ‘밀 벌레’라고 이름 붙인, 흔히 바구미라 불리는 징그럽고 새카만 벌레들은 농약 없는 밀을 성실하게 먹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깨달았다. 아픈 몸으로 먹고살려면 성실한 바구미처럼 성실한 바보가 돼야 했다.
해법은 ‘안 먹기’가 아니라 ‘다르게 먹기’다. 통증은 아픈 몸이 보내는 신호였다. 비싸고 좋은 음식만 골라 잘 먹어야 건강하게 잘 산다고 믿는 세상에서 제한된 식재료로 차린 단출한 밥상은 바보나 하는 선택이었다. 바보가 돼 꽉 찬 식탁을 비우고 몸과 마음을 바꾸고 일상을 재배치하자 이유 없이 아픈 삶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그렇다고 모든 욕구에서 초연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먹방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멀리해야 하는 음식을 먹는 일탈도 저질렀다. 책 먹어 해결할 길 없는 문제는 직접 손을 움직여 음식을 만들고 낯선 맛을 탐험해 해결했다. 콩과 두부, 청국장과 오미자, 오트밀과 롱간(용안)을 새롭게 먹었고, 미니 밥솥 들고 나선 외국 여행에서는 베트남 마사지사의 따듯한 손에 연결됐다. 갑자기 떠난 아버지를 보내는 장례식장에서 식소수자의 먹고살기를 걱정하는 넉넉한 마음들도 만났다. 먹는 일에서 사는 일로 확장되는 식소수자 이야기는 한 사람을 둘러싼 세계가 확장되는 풍성한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두부를 많이 먹어라” - ‘신성한 손’에 담긴 씨앗과 ‘씩씩한 애도’ 품은 마음에서 싹트는 사계
아픈 사람에게 손이란 음식 만들고 씨앗 뿌리고 아픈 몸 달래어 나와 세상을 잇는 신성한 통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신성한 손을 써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뭔가 모자라도 충분한, 자극적이지 않아도 단순하고 소박한 다른 맛으로 몸과 마음을 돌보면서 내처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픈 아빠는 세상을 떠나기 전 딸에게 말한다. “두부를 많이 먹어라. 두부가 영양도 많고 최고로 몸에 좋다.” 먹는 이야기를 유언으로 남기고 떠난 아버지를 씩씩하게 애도하며 딸은 오늘도 다르게 먹고 다르게 살기 위해 밥 읽고 책 먹는다. 이제 어느 식소수자가 차린 이야기 밥상에 앉아 다채롭게 펼쳐지는 풍성한 사계를 따라가 보자. 새롭게 등장한 이야기꾼을 만나는 행운은 덤이다.
저자

신아영

저자:신아영
대천마을에서동네사람들이랑읽고,쓰고,작은텃밭도가꾸면서산다.온몸으로겪고,느끼고,배운것들에담긴견고한힘을믿는다.그힘으로작고미미한세계의드물고귀한이야기들을전하고싶다.그런바람을담아《대천마을을공부하다》와《나의작고부드러운세계》를썼다.

목차

1부바보가되겠습니까?
식소수자를위한나라는없다|빛과소금|오트밀을다시만나다|그때는모르고지금은알게된|비트에서배우다|소박한밥상|모심의손|제약속의창의|미지의맛을요리한다는것|바보가되겠습니까?|눈물의맛

2부밥의평범성
불편함이가르쳐준것|은행손질하기|꿈속에서|다정한헤아림|급식의기억|밥의평범성|병명없는병|고단한하루|대접과거절|대단하다는말|마켓컬리와할머니의텃밭|귀찮지만즐거운일|자립의집밥|밥은먹었나?

3부어쩌다미식가
맛의조화|청국장변주곡|도서관시식회|어쩌다미식가|미안한마음|세뇌와번뇌사이에서|비싸지않은풍요로움|먹방과상상의맛|재미난맛|음식냄새가불러일으키는것들|달달한기억의맛

4부두부를많이먹어라
특별한선물|위반에서회복으로|새로운난관|가서차나드세요|가을이기다려지는이유|밤하나의미세한세계|씨앗을심다|밀벌레,바구미|몸과몸|미니밥솥들고떠난여행|넘어서기,아니밀어내기|열번의요가수업|두부를많이먹어라

출판사 서평

“나도바구미도다먹고살려고노력하고있을뿐”―‘성실한바보’의아픈몸으로다르게먹고살기

‘먹기’는‘살기’다.아무도벗어날수없는이말은모두똑같이잘먹어야한다는뜻은아니다.균형잡힌식단이몸에해로운사람도있다.이름하여식소수자신아영은자기몸에맞는음식을먹어야덜아픈사람이다.어느날파스타에붙은검은깨가눈에들어왔다.묵은밀에서생겨나‘밀벌레’라고이름붙인,흔히바구미라불리는징그럽고새카만벌레들은농약없는밀을성실하게먹고있을뿐이었다.그렇게깨달았다.아픈몸으로먹고살려면성실한바구미처럼성실한바보가돼야했다.

해법은‘안먹기’가아니라‘다르게먹기’다.통증은아픈몸이보내는신호였다.비싸고좋은음식만골라잘먹어야건강하게잘산다고믿는세상에서제한된식재료로차린단출한밥상은바보나하는선택이었다.바보가돼꽉찬식탁을비우고몸과마음을바꾸고일상을재배치하자이유없이아픈삶이비로소제자리를찾았다.그렇다고모든욕구에서초연해질수는없는노릇이라먹방에정신을빼앗기거나멀리해야하는음식을먹는일탈도저질렀다.책먹어해결할길없는문제는직접손을움직여음식을만들고낯선맛을탐험해해결했다.콩과두부,청국장과오미자,오트밀과롱간(용안)을새롭게먹었고,미니밥솥들고나선외국여행에서는베트남마사지사의따듯한손에연결됐다.갑자기떠난아버지를보내는장례식장에서식소수자의먹고살기를걱정하는넉넉한마음들도만났다.먹는일에서사는일로확장되는식소수자이야기는한사람을둘러싼세계가확장되는풍성한시간으로우리를데려간다.

“두부를많이먹어라”―‘신성한손’에담긴씨앗과‘씩씩한애도’품은마음에서싹트는사계

아픈사람에게손이란음식만들고씨앗뿌리고아픈몸달래어나와세상을잇는신성한통로다.우리는모두각자의신성한손을써서완벽하지않아도괜찮고뭔가모자라도충분한,자극적이지않아도단순하고소박한다른맛으로몸과마음을돌보면서내처살아갈힘을얻는다.아픈아빠는세상을떠나기전딸에게말한다.“두부를많이먹어라.두부가영양도많고최고로몸에좋다.”먹는이야기를유언으로남기고떠난아버지를씩씩하게애도하며딸은오늘도다르게먹고다르게살기위해밥읽고책먹는다.이제어느식소수자가차린이야기밥상에앉아다채롭게펼쳐지는풍성한사계를따라가보자.새롭게등장한이야기꾼을만나는행운은덤이다.

책속에서

이제나는아프기이전의‘원래’삶이아니라내가머무는‘여기에서’세상모든것들을더깊이만나고교감하며살아가기를바란다.나랑이어진무수한것들의소리를잘듣고성실히응답하는삶말이다.그렇게내한몸을잘돌보면서,머지않아내주변도살뜰히보살피는그런생활로나아갈수있다면좋겠다.
---p.14

바보가되고보니그동안당연하다고여긴많은것들이다르게보이기시작했다.빠르고효율적인의료시스템과당장증상을완화하는데중점을두는치료가‘정상적’이거나‘자연스러운’방식이아닐수있다는생각이들었다.그러고보면그동안나는통증에서벗어나고싶어병원이나약에지나치게매달린듯싶었다.그저외부에서손쉬운방법을구하려고만했다.통증은몸이보내는신호였지만,그신호를제대로알아차리거나바라보지못했다.……그러니까건강을회복하는일은어느날기적처럼찾아오는구원이아니라매일이어지는생활속에서자기를바로세우는과정에다름아니다.오직내일상의삶을견실하게잘일궈야만건강한삶을만날수있다.그러기위해나는나날이더성실한바보가돼가려한다.
---p.58

‘이제는이생활에적응이돼서괜찮다고생각했는데,그렇지만은않은가보구나.’식단조절을몇년간하다보니나름이생활에도가터있다고느낄때가있다.체질식은어느덧애를써야하는일이아니라습관처럼최소한의에너지로유지하는일이됐다.그렇다고음식에관련된모든욕구에서초연해지지는않았다.어느날은특정한음식이먹고싶어서,어느날은가까운이들하고맛있는음식을나눠먹는평범한기쁨을누리고싶어서마음이울적해진다.누가뭔가를맛있게먹는모습을보면입에군침이돌고,음식을먹으며시간과마음을나누는사람들사이에서는조금외로워지기도한다.
---p.76

단맛없이어떻게사나걱정하면서도하루하루는그럭저럭잘흘러갔다.사람은적응하는동물이라는말을그시기를지나며더욱실감했다.얼마뒤에는전에모르던또다른단맛을발견했다.오감을자극하는짜릿한맛도,순식간에기분을바꾸는강렬한맛도아니지만,나름대로매력이있었다.이제나는푹익힌채소에서,된장국에서,귀리쌀과흰콩과통밀을넣고갓지은밥에서은근하게느껴지는단맛을만난다.
---p.175

쌀바구미를만났다.‘갈무리해둔쌀이나보리나밀이나수수나옥수수에꼬이는해충’이라고적혀있었다.어른벌레는석달에서넉달을살면서알을백개넘게낳는다고하니,집안에그렇게많은벌레가빠르게번식한상황이이해됐다.벌레가꼬인이유도따지고보면내게으름이니성실한바구미를탓할일은아니었다.나도바구미도다먹고살려고노력하고있을뿐.
---p.218

두부를많이먹으라고하면서아빠는또다른말을했다.“내가죽으면네가엄마랑살아라.”뜬금없다고생각해서별대꾸도하지않은말이다.나는그말을엄마가조금이나마덜아프게살수있게네가애를좀써달라는뜻으로알아들었다.그때는몰랐지만,지금되새겨보니아빠는늘그렇게엄마와내건강을마음깊이염려했다.아빠가남긴마지막말을떠올리면서,나는오늘도엄마랑함께집을나서서한의원으로간다.우리는그렇게씩씩하게애도하고있다.
---pp.247-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