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잔혹사 (설계자 이방원의 냉혹하고 외로운 선택)

조선 건국 잔혹사 (설계자 이방원의 냉혹하고 외로운 선택)

$19.55
Description
조선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처럼 시작되지 않았다!
습관처럼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을 지적했던 《비열한 역사와의 결별》의 저자 배상열의 『조선 건국 잔혹사』. 정몽주와 독대한 끝에 암살한 이가 정말 젊은 이방원인 것일까? 만약 아니라면 왜 이방원은 그와 같은 거짓을 역사로 남겼던 것일까? 단순히 후대인들에게 위엄을 세우기 위해 기록을 조작한 것이었을까? 이 책은 이처럼 사소한 지점에서 비롯된 궁금증을 추적하며 조선 건국 과정 자체에 대한 거대한 의문으로 나아가, 그때의 기록들이 숨긴 진실을 밝히고자 한 시도다.

행간에 진실을 교묘하게 감춘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정몽주가 살해당한 그날의 미스터리에서 출발해 조선 건국기에 얽힌 거대한 거짓을 집요하게 추적한 결과다. 방대한 당대 사료들을 대조해가며 사관들이 글줄이 아닌 글줄과 글줄 사이, 행간에 은밀하게 숨겨둔 사실들을 발굴한 저자는 한 가지 중요한 역사적 지점에 도달한다. 바로 1398년 1차 왕자의 난이다.

1차 왕자의 난, 또는 무인정사는 1398년 이방원을 중심으로 한 왕자들이 경복궁을 기습해 막냇동생인 이방석을 세자에서 폐하고 왕위를 찬탈한 쿠데타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한 왕조의 개조가 치맛바람에 홀려 자격이 없는 왕자를 선택했기 때문에 모든 참사가 벌어졌다는 해석보다 조금 더 합리적인 배경이 있을 것이라 주장하며 가설을 제시하고, 외로운 한 인간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렸던 비정한 선택들, 속을 감추고 감내했던 긴 시간들, 감당해야 했던 무거운 피의 무게, 끝까지 감춰야 했던 역사적 진실들에 대해 추적해간다.
저자

배상열

1963년경북의한시골마을에서태어난다음미처고향의말을배울사이도없이부친을따라서울로왔다.1988년부터2006년까지한국일보에서근무했으며,2003년역사장편소설을출판하면서작가의길을걷기시작했다.역사와관련된책을쓰면서‘새로운주장을
제기하거나,최소한기존의주장을보완하자’라는견해만은일관되게지키고자한다.지금까지추수밭에서출간된《조선을홀린무당진령군》,《비열한역사와의결별징비록》,《반역패자의슬픈낙인》을비롯해《동이》(제2회디지털작가대상),《난중일기외전》,《아무도조선을모른다》,《아효》등40여종을집필했다.

목차

들어가는글

1부정몽주암살사건의재구성
1장·실록은진실만을이야기하지않았다
공민왕,고려의부활을꿈꾼개혁가|신돈,새로운세상을바란개혁가|개혁가들의시간,고려의마지막기회|우왕은신돈의자식이아니다|“짐은그아이를조카로인정할수없네!”|“정종조차공정왕으로폄훼되었으니!”
2장·고려는그렇게멸망하지않았다
새로운역사의새로운등장인물들|지키려는자와뺏으려는자|이성계는명을공격할수없다고하지않았다|역사적인사기꾼들|위대한군주의미심쩍은출발|“그럼에도누군가는고려를지켜야합니다!”
3장·이방원은정몽주를죽이지않았다
정몽주,고려의마지막희망|정도전대정몽주|마침내,정몽주와고려의반격|정도전의치명적인실수|정몽주에게주어진최후의기회|“정몽주를죽여라!”|1392년4월4일,그날의진실|누가정몽주를살해했는가?|이방원이감추고실록이드러낸그날의범인|정몽주암살작전에이방원은없었다|진실을행간에은밀히감춘실록

2부왕자의난,반역의재구성
1장·종말과시작은이렇게교차되었다
새로운국가의시작|정도전,조선을설계하다|옛세상의시체를밟아야새세상이
보이는가?|이땅에왕씨가더이상없게하라
2장·반역은그렇게예정되었다
시작부터어긋난오백년의역사|실록밖에서찾은진실|“저희가적폐란말입니까”|이방석이야말로새로운왕에어울렸다|사대,비열한역사의시작|“조선의사신은오지못하게하라!”|무시받을수밖에없었던조선|드디어역사에모습을드러낸이방원|영락제는이방원을후대하지않았다|정도전의위험한개혁|이방원을만든사람들|주원장의계산된몽니|정도전을요구하는주원장
3장·반역의주인공은이방원이아니다
절대로성공할수없었던반역|허위로그득한그날의실록|경복궁은왜쉽게붕괴
되었을까?|바로곁에있었던그날의증거|조영무,다음왕을결정하다|이방원을저지할세력은없었을까?|역사앞으로나선이방원|뜻밖에이뤄진필연,왕자의난|이성계의진정한후계자|이방원의나라|이방원이감춘역사의진실

3부함흥차사살인사건,반란의재구성
1장·이성계는함흥차사를죽이지않았다
함흥차사는없다|아들에게겨눈아비의칼
2장·조사의의난은없었다
이성계는왜실패했는가?|조선의미래에도움이된반란3
3장·그들은떠나고조선만이남았다
피가깊은나무,조선|위대한오백년의설계자,태종

나가는글

출판사 서평

1392년그날,정몽주와이방원은결코만나지않았다!
1398년왕자의난을기획한인물은이방원이아니다!
이성계는이방원이보낸차사를살해한적이없다!

그렇다면이방원은왜이모든거짓을말한것일까?

피가깊은나무,조선느와르
이방원이꿈꾼잔혹하고우아한내일

사실을통해진실을뒤집은도발적인주장!
500년을감춘용의거짓말이밝혀진다!

습관처럼반복되는역사의비극을지적하며스테디셀러로자리매김한《비열한역사와의결별》의저자배상열의신작,《조선건국잔혹사》가출간되었다.이책은훗날눈밝은이가발견하기를바라며행간에진실을교묘하게감춘조선왕조실록을토대로,정몽주가살해당한그날의미스터리에서출발해조선건국기에얽힌거대한거짓을집요하게추적한결과다.이책에서저자는단언한다.조선은우리에게알려진것처럼시작되지않았으며,우리가아는〈하여가〉와〈단심가〉는모두거짓이었다고.

이방원은정몽주를죽이지않았다!
역사가감춘그날의재구성

임금께서눈물을글썽거리며저어했다.“그대의빛이파리하고몸은허약할진대먼길을감당할수있겠소?”이에정안군이아뢰었다.“종묘와사직의큰일을하는것인데어찌따르지않겠습니까.”

임금이중국사행을떠나는여리고무른왕자를아비로서배웅하는풍경같지만여기서정안군은훗날조선태종이되는이방원이다.우리에게조선태종은형제들을서슴없이죽이고아버지까지유폐한냉혹한군주로익숙하다.그러나역사상첫등장이라고할수있는《태조실록》에나오는그의모습은쿠데타로왕실을장악하고형을겁박해왕위를뺏은야심가와는다르다.실제로이방원은이성계의아들가운데유일하게문과에급제했으며칼보다는붓과친했던서생이었다.
자연스럽게함께떠오르는장면이있다.당대를배경으로하는사극에서빠짐없이등장하는정몽주와이방원의마지막만남이다.새로운왕조의실세와멸망을앞둔왕조의마지막버팀재가마주했던당시,나직한목소리로〈하여가〉를읊으면서회유하는이방원에게정몽주는〈단심가〉로단호하게거절한다.이에이방원은달빛을받으며돌아가는정몽주에게은밀히자객을보내고,정몽주가암살되었음을알게된이성계가분노하며안타까움으로크게앓아눕는다.
우리에게익숙한이야기지만실제역사는우리가사극에서봐왔던장면과는많이다르다.정몽주는이슥한한밤의다리위에서가아니라백주대낮에보란듯이살해당했다.또한당시정몽주는고려를대표하는학자로예순을바라보던나이였던데반해이방원은스물을겨우넘긴책상물림에지나지않았다.아무리고려최고권력자의아들이라고해도두사람이대결하듯마주앉은모습은쉽게납득되지않는다.무엇보다정몽주암살을지휘하기위해서는나라의스승과같은이를거리낌없이죽일수있는칼잡이들을다스리며상황에따라서는직접뛰어들수있는완력과경험을갖춰야하지만,역사에기록된당시이방원은그렇게괄괄한무인과는거리가멀었다.오히려아버지인이성계를따라수없이무공을세웠던그의형인이방과(훗날정종)나이방우가훨씬그자리에그럴듯해보인다.실제로이방원은실록의내용대로라면고려를무너뜨리는결정적인공을세웠음에도개국공신52인에서철저하게배제되었다.이에대해허락없이정몽주를제거해이성계의노여움을샀기때문이라고도해석하지만,당시이방원의명을받아이성계의자택을지켰을뿐인장사길까지공신으로녹권된것과견주면정작사건의주역에대한대접은터무니없을정도로박하다.
여기서이런의문을가질수있다.정몽주와독대한끝에암살한이가정말젊은이방원인것일까?만약아니라면왜이방원은그와같은거짓을역사로남겼던것일까?단순히후대인들에게위엄을세우기위해기록을조작한것이었을까?
《조선건국잔혹사》는이렇게사소한지점에서비롯된궁금증을추적하다가조선건국과정자체에대한거대한의문으로나아가,그때의기록들이숨긴진실을밝히고자한시도다.이책에서저자는방대한당대사료들을대조해가며사관들이글줄이아닌글줄과글줄사이,행간에은밀하게숨겨둔사실들을발굴해한가지중요한역사적지점에도달한다.바로1398년1차왕자의난이다.

1차왕자의난은없었다!왕으로선택받은왕자,이방원
1차왕자의난,또는무인정사는1398년이방원을중심으로한왕자들이경복궁을기습해막냇동생인이방석을세자에서폐하고왕위를찬탈한쿠데타로알려져있다.형제들끼리죽고죽인극단적인비극이발생한까닭으로는흔히권력에서소외된신의왕후소생의왕자들및종친들의불만,사병혁파등의조치에불만을품은권신들과개혁을주도한정도전세력간의갈등등을꼽는다.그러나《조선건국잔혹사》에서는역사상후계자문제로패망한사례들이있음에도이성계가무리해서막내아들에게왕위를물려준까닭에대해재검토를요구한다.한왕조의개조가치맛바람에홀려자격이없는왕자를선택했기때문에모든참사가벌어졌다는해석보다조금더합리적인배경이있을것이라는주장이다.여기서이책의저자는1차왕자의난의무대인경복궁이라는공간자체에주목한다.
경복궁이라는이름을지은이는이성계가아닌정도전이다.《시경》의‘군자만년개이경복君子萬年介爾景福’구절에서따온것으로,경복궁뿐만아니라근정전,교태전,강녕전등주요왕궁의이름또한모두왕이아닌정도전이붙였다.알튀세르는부르는행위를통해불리는자를질서로편입시키기에이름붙이기란이데올로기자체라고했다.성경에서아담이가장먼저시도한노동또한만물에이름을붙이는행위였다.마찬가지로궁궐이름의뜻과작명과정,그리고이름을처음부른이의정체를살펴보면조선의정체성부터훗날왕의정의와정체를놓고충돌했던예송논쟁까지쉽게짐작할수있다.정도전은조선의설계자로서왕이아닌관료들이다스리는신권중심의국가를구상했으며,이를실현하기위해서는새부대에새술을따르는이치처럼고려와인척관계로얽히지도않고자신의이념을잘따를수있는어린왕자가보다새로운나라에적합했다.
또한막내가후계자로지목된데에는세대및문화간의충돌도있었다.유교를근간으로하는조선에서장자상속제는당연한원칙같지만고려에서벼슬을하며유교식질서를배운왕자들과는다르게이성계는함흥을거점으로북방을지배했던울루스부카의아들이자조선을침공했던여진군벌삼선,삼개형제와는고종사촌간이었다.그리고몽골을비롯한유목민족의풍습으로는가문의적통을잇는이는장자가아닌막내다.이성계가‘오랑캐’라불리는옛시절의풍습을새로운왕조에적용했을리는없지만,장자가아닌이를후계자로지목하는데있어심리적저항감이덜했을것은분명하다.이성계자신또한장자가아님에도가문을이어받기도했다.
문제는신의왕후소생의왕자들을비롯해공신들의불만이었다.그러나이들의입장이쿠데타의원인일지라도이유는될수없다.정도전을위시해조정을장악한개혁세력들이이를모를리없었기때문이다.상식적으로도이성계와정도전이언제폭발할지모를반대파의동향을면밀히살피며견제했을것이당연하며,실제로1차왕자의난당시명과의갈등으로벼슬에서물러났음에도정도전은남은의집에묵으며경복궁주변을지키고있었다.왕자들의쿠데타는필연이었으되결코성공할수없었으며,짧은시간신속하게이뤄졌어야함에도장고하듯긴시간에걸쳐서서히진행되었고,그럼에도기적처럼성공했다.
이에《조선건국잔혹사》는다음과같이대담한가설을제안한다.첫째,1차왕자의난은면밀한계획에의해진행된쿠데타가결코아니며이성계의급병이라는돌발상황을기회로파악하고즉흥적으로이뤄진반역이다.둘째,1차왕자의난은왕자들이아닌이성계와매우가까운공신들의주도로벌어진쿠데타다.셋째,따라서1차왕자의난은이방원이주도한사건이아니었으며,그반대로이방원은반역을주도한이들에게일방적으로선택을받은것이다.그까닭은정도전이이성계의아들들가운데가장어린이방석을추대한사유와유사하다.
이러한가설을바탕으로저자는반역의주모자이자사실상태조다음의왕을선택한이로역사에가려진의외의인물을지목한다.이성계의최측근으로태조를지근에서모시며그의모든것을파악했으며,딱히두드러진공이없고정치적안배가필요하지않음에도이숙번,민무구형제등과더불어주요공신으로책봉되었고,이후전개된잔혹한숙청에서도살아남아조용히천수와부귀를누렸던그림자와같은이.바로조영무다.이책에서는그가내부에서이성계의급병이라는사태를이용해이성계를배신하고외부의난을촉발시킨다음대신이방원을선택해왕을만든과정을집요하게추적한다.

“용은내게비틀고얽으라했다”
이성계의형이원계는고려와의의리를지키기위해스스로목숨을끊는다.이성계의맏이인이방우또한장자로서누릴수있는모든권리를모두포기하고사실상은거한채삶을마쳤다.실록의내용과는다르게호방한무인이었던이방과는1차왕자의난이후왕위에오른다음곧내려왔다.이후넷째아들인이방번은이방과의후계를노리며2차왕자의난을일으켰다가배제당했다.
그렇게왕위에오른이방원의본색은공신들에게휘둘리는유약한책상물림이아니라독사의두뇌와범의심장을가진냉혹하고능숙한정치가였다.그는이숙번을비롯해자신의처가인민씨집안에이르기까지공신들을무자비하게숙청하고,사돈댁인심온의집안을비롯한모든외척을잔혹하게견제했다.의정부를설치하되권한을축소하고대신육조직계제를만들었으며,지방행정조직을정비하고명과의관계를재설정하는가하면경원의부활을명해훗날북방육진개척의토대를마련했다.그모두가아이러니하게도정도전이바라마지않았으나반발에부딪혀난항을겪었던새로운세상을위한사업들이었다.다만이방원은정도전의목적지와는다르게조선을설계했다.바로강력한왕권을바탕으로하는국가였다.이방원은죽을때까지정도전이이름붙였던‘경복궁’을의도적으로멀리했다.
그리고이와동시에이방원이은밀하게시행했던또다른주요사업은바로역사조작이었다.“왕친록을좌의정박은,이조판서박신,병조판서이원등에게보이며‘이를불살라버림이어떻겠느냐’고이르자모두가아뢰었다.‘대내에들여다두면누가알수있겠나이까!’”《태종실록》에서전하는이른바《왕친록》스캔들이다.이방원이조심스럽게전하며절대로남에게들키지말라고단단히일렀던족보를양녕대군은보란듯이공개했다.이사건은양녕대군세자폐위의한원인으로도지목될만큼파장이컸다.태종은사관인민인생과논쟁을자주벌일정도로현재를남기는기록에대해민감하게반응했고,과거를기록한역사들을은닉했으며,나아가정몽주살인사건부터1차왕자의난까지모든피의역사들을자신의행위로돌렸다.거짓을통해스스로의체면을세우기위함이아니라이성계가아닌자신의대에서사실상새로시작하는조선의명분을확립함으로써국가의틀을다지기위해서였다.그래서그는동생들을죽였고,형을무능한이로만들었으며아비를정신병자로몰았고,아들을탕아로매도했다.모두가조선의미래를위해서였다.

기꺼이‘태종’이라는운명을선택한이방원의고백
태종太宗은국가를창건한태조의뒤를이어왕조의틀을다진군주에게내려지는묘호다.공교롭게도조선태종과비슷한시기중국에서도태종이등장했다.바로명의기틀을다진영락제다.조선과명의태종은모두형제의피를뒤집어썼다는공통점을가지고있기도하다.이방원은쿠데타로즉위해수많은이들을서슴없이숙청했으며자신의형을‘정종’이아닌멸망한고려의말기군주들에게서나어울릴법한‘공정왕’이라는치욕적인시호로기록하는등잔혹과냉혹으로역사에이름을남겼으면서도태종이라는묘호를받았다.재미있게도동아시아의태종들은당태종이세민부터청태종홍타이지에이르기까지대체적으로결이이방원과비슷했다.그리고그묘호처럼조선은태종이방원이후오백년이라는긴시간을버텼다.
《조선건국잔혹사》는여진의지배자울루스부카의손자가왕으로선택받은다음‘태종’이라는운명을기꺼이받아들여모든피를뒤집어쓴은밀한역사에대한자백이다.그리고외로운한인간이새로운세상을만들기위해내렸던비정한선택들과,속을감추고감내했던긴시간들과,감당해야했던무거운피의무게와,끝까지감춰야했던역사적진실들에대한추적이다.
이를위해정몽주가살해당한그날의미스터리를축으로삼아철저하게폄훼된고려말의사실상마지막군주인공민왕부터자신의고향에서아들에게최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