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희망의 나날들 (허희 산문집)

희미한 희망의 나날들 (허희 산문집)

$14.00
Description
“우리는 왜 때때로 글을 읽고 때때로 글을 쓰는가?”

낙관은 너무 늦었고 비관은 아직 이른 삶에서
어렴풋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허희의 첫 산문집. 2012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비평 작업을 통해 꾸준하게 목소리를 내온 그가 처음으로 타인의 글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비롯된 글을 내놓는다. 그래서 이 책은 감히 예쁜 내일을 꿈꿀 수 없지만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글을 읽고 쓰라”는 권유가 마땅한지 주저하다가 서투르게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보다는 스스로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겠다는 마음에서 써내려간 고백이다.

“나는 스스로가 싫어지는 상황을 자주 경험한다. 내가 꿈꾸는 이상은 터무니없이 숭고한 데 비해 내가 실제 사는 현실은 비루하기 짝이 없어서다.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양자의 거리가 나를 좌절하게 만든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앞으로 나의 삶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겠지. 이미 반쯤은 체념하고 있다. 그런데 나머지 반은 어떤가 하면 그렇지가 않다. 포기하지 못했다. 향상의 기대 없이, 나는 현재를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되었든 조금 더 만족스러운 쪽으로 바뀌어 가리라는 희미한 희망이 나를 숨 쉬게 한다.”
저자

허희

문학과영화에관련된글을쓰고말을하며살고있다.삶의진실을더자세히들여다보고싶어시작한일이다.삶의진실과나의바람이같지않음을조금씩받아들이고있다.비평집《시차의영도》를냈다.

목차

프롤로그비밀과고백

1장사랑은중력이다
픽션으로서의,망가진사람들의연애:몇편의한국근대소설과영화〈오버더펜스〉에부쳐
당신은회한쪽으로:무모한사랑의말로
사랑은중력이다:역학적사랑의공식
매일그대와:공존하는사랑의결정
나와너는어떻게증명되는가:극한사랑의탐색
타이밍이(안)중요한건가봐:사건과사고의차이

2장저기수많은별중에
시간을찾아서:낭비같은,그러나낭비가아닌
공허를부수는이야기,허무를허무하게하는글:다종다양쓰기욕망들
저기수많은별중에:생텍쥐페리의비상하는마음
슬픈마음의소리:묘생과인생사이
기적은아니지만기적처럼느껴지는:조해진과의‘완벽한’대화
아이에서어른으로:배신과이별에대처하는스카웃과진희의자세

3장우리를구원하는우리
수학처럼아름다운삶의증명:우애수와한국사회의참사화
실격당하는인간과문학적삶:다자이오사무의우울너머
우리를구원하는우리:비추고비치는빛
100퍼센트확률의기적:히가시노게이고와정세랑의환상적접점
우리가함께일수있다면:회자정리의애도
긍지의공동체를위하여:비극적간극에내재한희망

4장진실과상실의역설
어떤복수보다완벽한복수:셰익스피어의통찰이다다른곳
희미한희망을포기하지않기:계속하겠다는선언의가치
진실과상실의역설:무라카미하루키가묻는생의좌표
아주특별한,보통의삶:평범해서비범한사람
역술원말고힘,용기,지혜를구하기:불안을견디는한가지방법
하루라는시간의역사:리처드링클레이터의영화들

에필로그실패의실패224

출판사 서평

희미함이절망이아닌희망일수있도록,
우리는타인에게귀를기울이고자신을고백한다

“힐링은사람과사람사이를시혜자와수혜자라는차별적인위계로설정한다.그범위안에서존재감을확인하기위해서는반드시아파야한다.그래서내게는위로가더힘이세보인다.어떤책임이아닌사랑에의해,위아래가아니라옆으로이동하는것이기때문이다.그래서사랑의문법은‘그렇기때문에’라는가정이아니라‘그럼에도’라는역접과결부되어있다.우리는누군가를‘그래서’가아니라‘그럼에도불구하고’사랑한다.”

책을쓰는일을업으로삼은이들은“문학이무슨쓸모가있는가?”라는질문을종종받는다.근원적인질문에답하는일은언제나버겁다.그나마세월의더께가글로밀려나올수밖에없는창작자들이라면저마다의삶과글을증거로내밀수있을지도모르겠다.그러나자기라는여과를거쳐타인의목소리을재배열하는비평가들은저질문을받고소설가나시인보다훨씬오래주저할수밖에없을것이다.
《희미한희망의나날들》은한비평가가자신이왜자주읽고또때때로쓰는지오래자문한끝에내놓은답이다.나아가읽고쓰는것과무관하게하루하루를살아가는사람으로서처음으로시도하는일상에대한고백이기도하다.그래서이짧은분량의글이가진호흡은깊고서늘하다.구체적으로는소설《빨강머리앤》부터영화〈비포선라이즈〉에이르기까지우리에게비교적익숙한소설과영화,그리고노랫말을빌려살아오며마주해온편린들을이야기한다.
저자는다음과같은고백으로이야기를시작한다.“내가비평을쓰는까닭은내이야기를하고싶지만끝내직접하고싶지않은(무)의식에바탕을두고있다.…나는그러한용기가없기에경외하는작가들을평하는척하며슬며시나자신을끼워놓을뿐이었다.”비평가란스스로는갇혀있는자기를꺼낼수없기에작품을빌려어떻게든자신을해명하고자발버둥치는존재다.그러한노력들은헛되고,또쓸데없다고폄훼되지만그들은그것을할수밖에없다.
《희미한희망의나날들》또한평론가로서소설이나영화등을통해자신이하고싶은이야기를우회하는형식을취하는듯하지만,거기서한걸음나아가‘그럼에도불구하고’왜자신이비평을할수밖에없는지를함께드러내는에세이적인형식을취한다.예를들어〈공허를부수는이야기,허무를허무하게하는글〉에서는‘왜글을쓰는지’에대한질문에매번다르게답한다고하면서여기에매춘부와작가사이의착종에놓였던넬리아르캉의삶을덧댄다.2001년‘창녀’라는도발적인제목의자전소설로데뷔한그에대해저자는이렇게이야기한다.“타인을통해자기자신을발견하거나혹은상실한다는점에서,이자벨(아명)과신시아(매음굴에서의가명),넬리(필명)은결코다르지않았다.”
저자가이책을통해처음으로자신의이야기를꺼내는까닭도바로여기에서비롯된다.영화〈미스트〉의상황을굳이예로들지않더라도인간은막막함앞에서절망하지않기위해상상하게되고,상상은곧비관으로이어지며결국에는절망으로치닫게된다.그러나안개가걷힌실제삶은대개완전한희망도,그렇다고완벽한절망도아닌흐릿한그무엇인가다.
그희미함을막막함이아니라낙관으로살아내게하는것이바로타인과자신에게귀를기울이는태도다.이러한저자의주제의식은앞서소개한넬리아르캉뿐만아니라자신에게말을거는이가스스로를찾을수있도록인도했던마하엘엔데의모모와,세상과스스로를끝내포기하지않는자세에대해이야기하는황정은의글을소개하는데에이르기까지일관되게이어진다.이처럼《희미한희망의나날들》에서이야기하는읽고쓰기란나의범위를확장해누군가를상상하도록추동하는행위이며,저곳의모르는사람이이곳의나와다르지않다는가능성을잃지않도록소통과공감을지향하는노력이다.

문학에게쓸모를묻는세상에서,
공허를공허하게만들기위해읽고쓴다는것

“글은현실에서힘이없다.그러나우리는글을통해기억하고재창조하고타인을껴안을수있다.글은세상에서무력하지만,그세상을품어내또다른세상을만들어낸다.실재는우리가딛고선땅이아니라우리가날아가려는곳에있다.폴과‘나’가헬싱키로카마티오일가를만들어냈듯이말이다.쓸모없는몽상덕분에그들은끔찍한현실에무너지지않았다.그들은최선을다해상상하면서가장불행한시기를가장행복한시기로바꿔놓았다.그렇게그들은공허를공허로부숴냈다.”

저자는타인을꾸준하게읽고대화하듯글을썼다는고백을통해나와당신,기쁨과슬픔사이에끼어있는불투명한일상을‘그럼에도불구하고’희미한희망으로받아들이자고권유한다.그리고바로그지점에서세상을읽어스스로를정리하는자기학대적인행위인집필과,그결과를경청하는독서라는소통이자착각의의의를찾는다.
넬리아르캉은첫책을내고팔년이지난다음갑작스럽게세상을떠났다.그러한완결에대해듣고우리가우울에빠지기보다얄궂게도위안이라는불경한심정이든까닭도이때문일것이다.얀마텔과김현그리고김수영의입을빌리자면“글은현실에서무력하지만,인간의생에서공허를부수고허무를허무하게만드는것또한글이기때문”이다.넬리아르캉은자신과대화하고타인에게손을내밀며허무와싸웠기에끝내쓰러질수도있었다.그런의미에서문학은우주에홀로내팽개쳐진우리에게희미한희망을선사한다.이책의제목이‘희미한희망의나날들’인까닭은바로여기에있다.
이책에담긴담백하면서도섬세한사유들은그의바탕인문학평론을떠올리게도하지만,삶이라는막막한매순간마다주저앉으면서도어떻게든살아내려노력하는한인간의모습은현학에홀리는교양속물이아니라바로지금여기에서일상과버거운싸움을벌이는우리와포개진다.그래서작가는원하지않았을지도모르겠지만,그의글은그자체로어떤위로가되기도한다.여느문학이그러하듯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