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등시화 (유배지 등불 아래서 쓰다)

용등시화 (유배지 등불 아래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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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 말기 시문학 비평의
독보적 시선 정만조의 용등시화
1906년 어름, 고종 시대와 일제강점기의 저명한 시인이자 관료였던 정만조는 유배지 진도에서 시 비평집 『용등시화』를 쓴다. 용나무 창가 호롱불 아래서 쓴 시화라는 제목 하나만으로도 적적한 섬 한가운데서 등불을 밝혀놓고 글을 쓰는 문인의 애틋한 모습이 인상적으로 떠오른다. 무엇보다 이 책 『용등시화』는 한시사를 바라보는 저자만의 탁견이 빚어낸 남다른 문학 저작이다. 그는 대부분의 일제강점기 문학사가들처럼 한문학의 전개를 18세기 이후 쇠퇴기에 접어들어 조선 말기 이후 한문종자가 끊어지는 과정으로 매듭짓지 않았다. 오히려 동시대 시단의 전개과정을 계승하여 발전하는 과정으로 이해함으로써 객관성과 균형감을 확보했다. 특히 주요 시인들의 문학적 위상을 제대로 짚어내고, 고종 시대 한시단으로 이어지는 맥락을 분명하고 참신하게 제시하여 비평사가로서 뛰어난 안목을 보여주었다. 이 책을 통해 그가 세워낸 문학사의 구도와 비평적 시각은 20세기 이후 독자적 견해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한문학자 안대회 교수는 조선 후기 시화사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지 25년 만에 고대하던 이 저술을 발견하고 현대어로 옮겨 세상에 내놓으면서, 비록 훗날 저자가 친일행각을 본격화하며 매도와 질타의 대상이 되어갔지만, 『용등시화』와 그에 실린 내용만큼은 그런 결함과는 무관하게 조선 말기 한시단과 지성계를 이해하는 뛰어난 저술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저자

정만조

저자정만조鄭萬朝,1858~1936
고종시대와일제강점기의저명한시인이자관료이다.자는대경(大卿),호는무정(茂亭)으로소론명문가인동래(東萊)정씨임당공파(林塘公派)후손이다.개화파관료로활동하며,1889년12월문과에급제한이후요직을두루거쳤다.1896년을미사변에연루되어진도에유배되었다가1907년에사면되었다.이후문화와학술분야에서크게활동하여경성제대법문학부강사,조선사편수회위원,경학원대제학등을지내며한학계의태두로군림하였다.그런행적으로그는법률에의해친일반민족행위자로지정되었다.
1906년어름유배지에서고종시대시단을증언한『용등시화(榕燈詩話)』1권을저술하였다.문집에『자각산관초고(紫閣山館初稿)』와『무정존고(茂亭存稿)』등이남아있고,그밖에도많은논문과저작이흩어져있다.

목차

서설

용등시화
이항복의동몽시|인구에회자되는이달과이희지의시|조선시대송시풍의변곡점|성정을닮은시|시의기상|시의미래예측|시창작과운명|이우신의향염체|고문가의시창작|봄버들시회|누정시명작|초년의작품|이건승의시재|추사의위작|사물을읊은시|조병만의민첩한시재|백화수시의표절|하자의용법|평측의잘못된사용|성명이들어간시구|이학원의등단|여항시인이현식|고시의성률|신위의높은학문과시|여규형의등단과시재|이남규의민첩한시재|사가시선과작품의운수|정찬조의시명|정헌시의시정|절묘한대구|금강산을읊은시|무명과객의희작|붓장수의시|강경객주의시재|영덕아전의시재|자식낳고지은시의비교|오해를산이건창의시|의원의심기를건드린황현의시|이상적과강위의풍자시|관직을얻게한시들|궁핍은시인의운명|불가피한어용시의창작|꽃이름집구시와오아회의박학함|빈궁한시인윤영식|시인의성정과창작|경서어구를쓴시|성어를사용한시구|부귀한사람의슬프고괴로운시어|강위시의뛰어남|상중의시창작|정밀한대우맞춤|간지로짝을맞춘시구|첩자의금기|기둥에쓴시구들|이양연의격조|남주원의시풍|황현시의변모|이중하와이건창의절창|이중하의순정한문장|하동의시인성혜영과김창순|강위의용모와일화|윤성진과조창영의시재|서상우의시|이상황의시풍|시의내력과작자시의속어|박제가와신위의시경|불우한호걸시인이근수|강경문의처량한시어|남행조철림의배해체|이교영의남사당패시|이상학의신연시희작|신위의소악부|꿈속에서지은시|영해민란주모자의시|조면호의매화시|송언회의전별시|김택영의평양명작|동몽시명작|회인시의주석|순창의시인설규석|귀신의시|심홍택의아들떠돌이시인|윤자덕의문장과이건창의평가|정현오의실의와득의|초강김상우부자의시재|혼례날의시짓기|이상수이건초부자의시|강위시의풍신|지체가낮은재사친구들|조선한시의두가지경향|김홍집의작품|공령가신좌모와정현덕의시|유길준의천재성|내가만난시승|시승보연의시상|조선여류시인의조건|기녀금앵과구향의시|광주기생향심의인연|향염시명가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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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시대의실상을증언하는
용등시화의가치

『용등시화』는19세기후반고종시대시단을전체적으로조망한거의유일한사료다.불행하게도조선말기고종시대의문단과문인의활동상은다른어떤시기보다남아있는사료가부족하다.전통과근대가충돌하면서전통에속하는모든것들이거침없이허물어지는시기라차분하게직접체험한시대의문화예술을되짚어보는여유를누리지못했던까닭이다.특히중추적인물들이자신의활동을회고하는저술을남기지못했다.이점에서『용등시화』는대단히큰위상을점한다.
실제로『용등시화』에는저자자신이체험한시창작의현장이재현되어있다.강위ㆍ이상수ㆍ정기우ㆍ김윤식ㆍ이중하ㆍ여규형ㆍ김택영ㆍ이건창ㆍ황현ㆍ이남규와같은당대주요작가를포함하여군소작가수십명의생생한일화와시작품을수록하고있다.현재전하는어떤저술도이만한규모로그시기시단을보여주지않는다.그밖에도대원군ㆍ김홍집ㆍ어윤중ㆍ민영목ㆍ김옥균ㆍ유길준등조선말기정계의저명한인물들의시와일화도실려있는데,이또한다른어떤문헌에서도볼수없는기록이다.
『용등시화』가지닌두번째가치는‘남사(南社)’라는고종시대시단을대표하는시사(詩社)의활동을풍성하게보여주고있다는점이다.남사는한양의남쪽,곧남산북쪽의회현방(會賢坊)을중심으로창작활동을함께한시사이다.소론문인이주도하여홍기주ㆍ이중하ㆍ정기우ㆍ여규형ㆍ이건창ㆍ정만조등이주축이되고,여기에많은시인들이참여하였다.시화곳곳에서이른바‘남사제명승(南社諸名勝,남사의여러명사)’들이벌인시회의현장과거기에서창작된작품과일화를소개하고있다.
세번째로말할수있는가치는『용등시화』의내용대부분이간접견문이나독서를통해얻어진것이아니라저자가직접체험한시단의실상과많은시인들과교유한양상,그리고주고받은작품에대한평론이라는점이다.시단현장의견문과체험이그현장에있었던저자의손끝을통해독자에게직접생생하게전달된다.이는다른무엇과도바꿀수없는소중한가치이다.다른저술의내용을재론하거나재인용하지않고,거의모두직접보고확인한사실과자신의생각을글로썼기때문에사료적가치는남다르다.다시말해『용등시화』는저자가증언하는고종시대시단의활동상이면서동시에지성인들의숨겨진일화를기록한빼어난야사의하나이기도하다.따라서당시역사를이해하는데충분히가치있는사료로활용될수있다.
네번째로꼽을수있는가치는현재에는거의존재가묻힌여항시인이나지방문인의존재와작품의성취를크게부각시킨점이다.남사와관련을맺은유명무명의시인들이시화에는다수등장한다.시를잘지은이학원이이건창의소개로시사에처음나온사연(21칙),순창아전의아들로시를잘지은이현식(22칙),충청도강경의객주로시를잘지은방달주(34칙),경상도영덕아전의서자인주효상(35칙),하동출신시인성혜영과김창순(60칙),순창의시인설규석(80칙),호서의떠돌이시인심상모(82칙),강경의시인초강김상우부자(85칙),영해민란의주모자남두병(74칙),그리고무정이직접만나본승려시인(94칙)과기녀시인(96칙~98칙)등이다.이모두가조선말기시단에서크고작은활약을한시인들로서그들에관한자료가절대적으로부족한상황에서『용등시화』를다시금신뢰할만한문헌으로격상시키는전거가된다.

변화와발전을읽어냈던
한문학의근대에관한균형잡힌통찰

『용등시화』제90칙에서저자는조선시풍의양대조류를조선중기이전과근고(近古)시대의두가지경향으로놓고,앞선시기의경향과는반대가되는경향을‘한시사가(漢詩四家,이덕무ㆍ박제가ㆍ유득공ㆍ이서구)’와신위가대표한다고보았다.저자는“중엽이전에는오로지당시(唐詩)를일삼았으나건릉(健陵,정조)이후로는사가가오로지송시(宋詩)를일삼아서시체(詩體)가일변하였다”라는단언을전하면서사가를조선후기시풍변화의중추적핵심으로인정하였다.
또한19세기를사가가일으킨변화를계승발전시키는단계로이해하여,전반기에는신위가후반기고종대에는강위나이건창이뒤시기경향을계승하여더높은수준으로발전시켰다고해석하였다.즉,18세기후반의사가,19세기전반의신위,19세기후반의강위와이건창이란시단의거장들을중심으로한시사의변화를포착하고,나아가그변화를발전의시각으로읽어낸것이다.특히저자는정조시대를근대한시의기점으로보고,근대한시의방향을긍정적으로보는시각을강하게드러내었다.이구도는탁월한견해일뿐만아니라18세기이후시단의거시적조류를명료하고간명하게정리한결과였다.시사를파악하는이와같은선명한구도는저자의참신한견해이면서동시에그가속한시대및시사동인과공유하는시각이었다.
『용등시화』를통해달성된이와같은그의통찰은20세기이후독자적견해로서매우중요한의미를지니게된다.김태준을비롯한일제강점기문학사가대부분이문학의전개과정을일종의생명체와같이이해하고18세기이후쇠퇴기에접어들어조선말기이후그명맥이끊어지는과정으로이해한것과는그관점과평가가크게다르다.
이렇게근대한시단에대한깊이있는이해와관심을토대로세운저자의문학사적구도는이후그의?조선시문변천?과?조선근대문장가약서?라는학술논문으로발전한다.경성제대강의안이었던두논문은영조ㆍ정조시대문학을근대의출발로삼아이후의시문과문장가의맥락을잡고있다.근대적학술논문으로서두편의글은정조이후조선말기의한문학사를바라보는시각에큰영향을끼쳤다.
논문에서는학계의상식과다르게고종시대문장가로이응진과이상수,이근수를포함하고,경술(經術)을담은문장을특별히중시하며,강위ㆍ김택영ㆍ이건창ㆍ황현ㆍ이남규등남사구성원을대거포함했다.이는『용등시화』가저자의문학사구도의설정에얼마나큰영향을끼쳤는지말해준다.즉,『용등시화』는18세기와19세기한문학사와한시사의구도를균형있는시각으로파악한첫번째저술로서,문학의근대를조망하는데중요한의미를제공한다.

문재빛나던젊은문사는
한학계태두를거쳐
친일반민족행위자로남았지만

이책을현대어로옮기고해제작업을마친안대회교수는『용등시화』를평가할때걸림돌은바로저자정만조자신이라말한다.
관료로서크고작은직책을맡았던정만조는개화파로서주요한중앙의직책을두루거쳤고,1895년갑오개혁때는김홍집내각에서중용되기도했다.아관파천이후1896년4월을미사변에연루된혐의로15년형을받아전라도진도에유배되었지만,유배생활을하는11년동안진도와목포등지에서창작과교육활동을하다가1907년11월고종이억지로퇴위한뒤에사면되었다.
이후그는문화와학술분야에서본격적으로친일행적을이어갔다.대동학회를비롯한대한협회와기호흥학회회원으로활동하였고,일제강점기로접어들어서는조선총독부참사관실위원촉탁으로조선도서의해제사업을맡았다.1913년이래조선총독부직속기구인경학원의운영과활동을주관하여『경학원잡지』를주도적으로편찬하였고,경학원부제학과대제학을지냈다.1922년이후조선사편찬위원회위원,1925년이후경성제국대학법문학부강사,1927년4월조선사편수회위원,1930년명륜학원총재등을역임하면서유학과전통학술계분야에서가장높은지위를누렸다.또한한학과한시분야의대가로인정받아『조선일보』,『동아일보』를비롯한일제강점기언론계에서도두루활동하였다.즉,그의삶은대한제국몰락기를기점으로이전과이후가뚜렷하게갈리고,생애후반기의학술과문예활동은법률에의해친일반민족행위자로지정될만큼전형적인친일지식인의행적을따른다.
『용등시화』는그의생애전반기마지막단계에서쓰인저술로,어찌보면이작품은한문사의생애의빛깔을나누는상징적인징표와도같다.시화를쓴이후친일행각을노골화함으로써매도와질타의대상이되어간저자탓에시화를널리읽히고제대로평가하기가망설여진다고번역자안대회교수는고백한다.그러나저자의친일행적은그것대로평가하여야하지만,시화와그에실린내용을친일행적의기준으로만이해하고평가하는것도바람직하지않다고덧붙인다.조선말기시단과지성계,정치계를깊이이해하도록안내하는탁월한저술로서『용등시화』그자체를직시하자는것이학자로서그의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