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절의 아이콘, 백이와 숙제 (서사와 이미지 변용의 계보학 | 양장본 Hardcover)

충절의 아이콘, 백이와 숙제 (서사와 이미지 변용의 계보학 | 양장본 Hardcover)

$24.55
Description
주나라 무왕이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받들어 싣고 동쪽 은나라 주왕을 정벌하려 할 때,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이렇게 간한다.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장례는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다니 이를 효(孝)라고 할 수 있습니까? 신하된 자가 군주를 시해하려 하다니 이를 인(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이 한 장면으로 백이와 숙제는 지금까지도 충의와 절개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동아시아 문헌들이 전하는 여러 기록을 찬찬히 뒤져보면, 백이와 숙제는 때론 변절자가 되기도 했고, 때론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정권 변동기나 혁명기엔 힘 있는 자들에 의해 그 형상이 갖은 굴곡을 겪기도 했다.

이 책은 백이와 숙제의 창조된 형상이 중국의 전 시대에 걸쳐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 국가에서는 어떤 이미지로 소비되어왔는지를 통시적으로 조감한 흥미로운 문학 저작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고정되거나 절대적인 이미지 혹은 실체는 존재할 수 없으며 다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활용ㆍ소비될 뿐이라는, 문헌학적이고 객관적인 서사와 이미지 변용의 계보학을 보여주고자 했다.
새로운 지의 총화를 모색하는 성균관대학교출판부 학술기획총서 ‘知의회랑’의 열두 번째 책이다.
저자

김민호

고려대학교중어중문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원에서문학석사ㆍ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한림대학교중국학과교수로있다.중국사회과학원문학연구소,스탠포드대학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하버드대학페어뱅크중국연구센터등에서방문학자를지냈다.
박사학위논문으로『중국화본소설의변천양상연구』를썼고,화본소설의주요배경인송대개봉(開封)의사회ㆍ문화상을기록한『동경몽화록』을번역했다.『조선선비의중국견문록』,『중화미각』(공저)등의저서가있다.최근에는연행록과표해록에기록되어있는중국에서의조선인과외국인의교류양상에관심을갖고연구를진행중이다.

목차

책머리에

제1장|선진시대의백이와숙제
1.초기기록속의백이와숙제
2.유가기록속의백이와숙제
3.도가기록속의백이와숙제
4.법가기록속의백이와숙제

제2장|진한시대의백이와숙제
1.불사이군백이의탄생
2.주무왕의정치에환멸을느껴떠난백이
3.수양산에서굶어죽은백이

제3장|위진과당대의백이와숙제
1.작위를버린어리석은백이
2.어리석은필부백이
3.우뚝서서홀로나아간백이
4.지조지킨다고쓸데없이배곯은백이

제4장|송대의백이와숙제
1.백이와숙제의충절이미지를깨려하다
2.종통을흔든비판받아마땅한백이
3.천명도모르고불사이군을주장한백이
4.간신과충신의동일한백이평가

제5장|명대의백이와숙제
1.주원장의이중적백이평가
2.군주에게쓸모없는백이
3.제대로원망했던백이

제6장|청대의백이와숙제
1.백이충절이미지의근본을흔들다
2.숙제가변절하다

제7장|현대중국의백이와숙제
1.조롱당하는백이와숙제
2.모택동의이중적백이평가
3.현대중국의백이와숙제

제8장|조선의백이와숙제
1.고려ㆍ조선교체기의백이관련기록
2.세조의왕위찬탈과백이관련기록
3.성인가운데청고한자백이
4.백이는정말말고삐를잡고간하였을까
5.품격이다른백이해석
6.고사리를먹지않은백이
7.연행록속백이와숙제

제9장|한자문화권의백이와숙제
1.베트남문헌속백이와숙제
2.일본문헌속백이와숙제

맺음말

주ㆍ참고문헌ㆍ찾아보기
총서‘知의회랑’을기획하며

출판사 서평

영원한충절은없다
동아시아충신의전형
백이와숙제의메타모르포시스

충의와절개의상징에서
변절자혹은조롱의대상까지
동아시아고전속에서입체화되는
백이와숙제캐릭터들의계보학

저작의단초

이책은사마천이쓴『사기』「백이열전」에서‘폭군’인주왕을없애려출정하는주무왕을막아서며‘충효의도리’를역설하던백이와숙제가과연칭송받아마땅한존재인가하는문제의식에서시작되었다.일반인의상식과성정이라면,폭군을치러간다는데이는막아설것이아니라도리어주무왕을도와그일에앞장서야하는게옳지않겠는가?그러나아시다시피백이와숙제는이돌발행위로써『사기』이후긴시간충절의상징이자대명사로인식되어왔다.이에두주인공이고통받는민초보다기득권을지닌군주의사정에더신경쓰는존재로만보였던21세기의저자는「백이열전」을읽고나서내내찜찜했었다고회상한다.저자가백이와숙제의고사들을‘계보학적’측면에서바라볼필요를느낀까닭이여기에있었다.

충절의아이콘이탄생하기까지

저자는곳곳에흩어져시차를두고제각각소비되어온백이와숙제의서사와이미지들을하나의시선속으로소환해낸다.사마천의『사기』가나온진한시대를하나의표지로삼아그앞에선진시대의백이ㆍ숙제자료들을세우고,그뒤로위진과당대ㆍ송대ㆍ명대ㆍ청대그리고현대중국의백이ㆍ숙제자료들을차례로채워통시적인조감의시야를확보한다.무엇보다놀라웠던건이미클리셰(clich?)나마찬가지인,그러하여하나의아이콘으로자리잡은백이ㆍ숙제의‘충절이미지’가『사기』「백이열전」이전에는그어떤문헌에서도발견되지않는다는사실이었다.
유가경전인『논어』에서는“인을추구하여인을얻은사람들”이라고이야기했을뿐,백이와숙제가주무왕의전쟁에반대했다는기록자체가없다.또한『맹자』에서는폭군인은나라주왕을군주가아닌“일개사나이[一夫]”로평가하고,주무왕역시섬길만한군주가아니라고묘사한대목이여럿나온다.즉,맹자는백성의입장에서상황을판단하면서백이와숙제를충절의상징으로상정하기는커녕,오히려폭군을제거하는상황을긍정적으로묘사하고있다.맹자는단지이들을“성인중맑은분[聖之淸者]”으로평가하고있을뿐이다.
도가경전인『장자』의경우도“어지러운정치를미루어폭정과바꾸는것일뿐[以亂易暴]”이라며주무왕의정치를폭정으로평가하고,나아가도가적세계관에의거해명분에얽매여있는백이와숙제를함께비판한다.법가의기록인『한비자』에도군주의통치에도움이안되는“무익한신하”라는언급만있을뿐,그어디에서도충절의아이콘이라는백이와숙제의형상은찾아볼수없다.
사마천이어떤자료를근거로백이와숙제가주무왕의말고삐를잡으며신하된입장에서군주를치는것은있을수없다고말했는지알수없지만,『사기』「백이열전」이전기록들에서는‘불사이군(不事二君)’하며군주의기득권을강화시키는백이와숙제의모습은찾아볼수없었다.다만이들이고죽국의왕자리를서로양보하고청렴한삶을살았다는점,그리고수양산으로들어가굶어죽은상황은『사기』이전대부분의기록들에서보인다.이렇게충절의상징으로서백이와숙제의이미지는사마천이처음창조해낸것이었다.

충절프레임에갇혀가다

『사기』「백이열전」에서처음나타난충절의상징으로서의백이형상은위진시기에는굳게자리잡지못했다.조조는「의전주양봉교」란교지(敎旨)에서백이와숙제에대해작위를버리고무왕을꾸짖은어리석은이들이라비판한다.은운의『소설』에서도백이는어리석은필부라비판받고있을뿐이다.
그런데당대의한유가「백이송」을쓰면서부터백이와숙제의충절이미지는확고해지기시작한다.한유는충성과절의의기준으로두주인공을평가하면서이들을“우뚝서서홀로나아갔다”며칭송한다.이어「백이송」이후거의모든백이관련기록들이이충절프레임에갇히게된다.
물론송대개혁파정치가왕안석이「백이론」을써서이프레임을깨보려애쓰지만,그저약간의파열음을내는데그칠뿐이었다.이후백이와숙제는확고하게충절의상징으로자리매김한다.송대보수파정치인소식은「무왕론」을써서주무왕의혁명을비판하는한편,백이와숙제의충절을높이며이프레임을더욱공고히한다.성리학의기틀을다진정이와주희는주무왕의혁명을막아선백이와숙제의행동을일정정도비판하기도하지만,이들역시같은프레임안에서논의하고있을뿐이다.북송의민족영웅인악비를죽음에몰아넣고금나라와화친해중국의대표간신에오른진회까지도백이와숙제의충절을드높일정도였다.

새로운차원

명나라개국황제주원장은「박한유백이송」에서충절의상징으로백이와숙제를칭송한한유를비판한다.개국공신유기도이들을쓸모없는신하로평가해버린다.새왕조의탄생을모색했던이들에게주무왕의말고삐나잡아전쟁을반대하는자들이란불필요한존재들일뿐이었다.그러나훗날정권이안정되자다시충신이필요해진주원장은백이와숙제를제왕의사당에종사하게하는아이러니를연출한다.
명대를살펴보는데있어서한가지염두에두어야할점은백이와숙제를비판하거나숭앙하는지에상관없이일단이들을충절의상징이란구조안에둔다는것이다.자연히송대를이어명대에도『사기』「백이열전」에서의전거는강력하게작동했다.다만이지(이탁오)의경우‘원망’이란키워드로써공자와사마천의백이와숙제해석을비교하면서기존과는다른그만의독창적인해석을내놓고있다.
청대에들어와황종희의『명이대방록』에서비로소객관적이고냉철하게백이와숙제의이야기가정리된다.그는『명이대방록』「원군」에서전통시기군주의개념을근본에서부터흔든다.명나라유민(遺民)인그는충절의상징들을적극칭송하며청을비판할수도있었다.그러나그는군주란원래백성을위해봉사하던존재였는데어느순간부터백성위에군림하게되었다며,이것도모른채폭군이나와도역성혁명을하면안된다면서불사이군이나외치는한유나소식같은옛지식인들은어리석은선비들이라고비판한다.
또한청초의독특한소설『두붕한화』에는「수양산숙제변절」이란숙제가변절한다는자극적인제목의작품이수록되어있다.그러나그내용을살펴보면숙제의변절을마냥부정적으로만그리지않고,합리적이고논리적으로설명해내는모습이인상적이다.요컨대확고하게자리잡았던백이와숙제의충절이미지자체를근본에서다시생각하는기록들이바로이시기에나타나기시작하는것이다.

서사와이미지의변용과활용

현대중국의혁명가이자소설가인노신(루쉰)은『고사신편』「채미」에서백이와숙제를세상물정모르는철없는늙은이로그려내고있다.낡고희망없는중국을바꿔보려했던그의입장에서,불사이군을외치며주무왕의혁명을막아서는백이와숙제는구시대의낡은인물에불과했다.또한모택동은정치상황에맞춰필요에따라이들을바라본다.즉,주무왕의혁명전쟁에함께하지않았다고백이를비판하는가하면,또주무왕의출병을막았다고이들을지지하기도했다.이제백이와숙제는언제든지그필요에따라소환ㆍ소비가가능한도구에불과해져버린것이다.
백이와숙제는바로지금도그렇게정치ㆍ경제적필요에의해활용되고있다.이책‘현대의장’에는최근이제묘가위치한노룡현현지를방문해중국고죽문화연구중심관계자와대화를나누면서백이ㆍ숙제의고사가새로운문화콘텐츠와정치적필요로다양하게활용되는상황을목도한저자의기록이함께수록되어있다.

서사와이미지의확산

조선의경우에도백이와숙제관련기록은넘쳐흘렀다.특히왕조교체기나비정상적인왕위변동의시기에백이는반드시소환되었다.고려와조선의교체기태종이방원은백이의행동을처음에는비판적으로묘사하다가나라상황이안정되어제왕조에충성할신하가필요해지자백이를다시긍정적으로호명한다.
일반적으로조선에서는백이와숙제의충절이미지가더강화되는경향이보인다.단종복위를꾀했던사육신과생육신의글에서는고사리도먹지말고죽었어야했다고할정도로충절의프레임은상황에따라극단으로흐르기도했다.김창흡과박지원처럼충절이미지를깨는,왕안석계열의백이관련기록이나오기도했지만,이는결코조선의주류가아니었다.매년북경을방문했던연행사들역시연행노정에있는이제묘를반드시방문해경건하게고사릿국을끓여먹으며이들을추모하곤했다.이들에게또다른해석은용납되지않았다.그러다18세기중엽박지원의『열하일기』속에서유머를활용해백이와숙제의경건함을희화하며비로소이들의충절이미지를부수는기록들이나오기시작한다.나아가백이와숙제의고사는베트남과일본에도널리퍼져있었다(두나라에서백이ㆍ숙제형상의변용양상도한중과유사하다).
정리하자면,이렇게백이와숙제의형상은전통시기한자문화권에서충절을상징하는대표적인이미지로굳게자리잡았고,또한이는불사이군하는기득권이데올로기를떠받치는데충실히작용했다.물론이러한이미지가등장한것은『사기』「백이열전」이후로,그이전의문헌에서는쉽게찾아볼수없는것이었다.따라서애당초동아시아권에서백이와숙제의이미지는하나로고정된것이아니라,상황과필요에따라변용되며흥미로운입체적형상으로거듭났다는것이저자의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