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해시안 (시를 꿰뚫어 보는 눈)

창해시안 (시를 꿰뚫어 보는 눈)

$32.62
Description
꿰뚫어 보는 눈으로
시를 논하다
이경유의 『창해시안』
조선 문인이 시를 보는 안목
이 책은 조선 후기 문인 이경유(李敬儒, 1750~1821)가 편찬한 시화(詩話) 『창해시안(滄海詩眼)』을 두 명의 고전문학자가 함께 현대어로 옮기고 주해와 서설을 단 것이다. 시 비평과 산문 비평, 야사 및 일화가 혼재된 대개의 시화들과 달리, ‘한시 비평서’의 성격이 뚜렷하고 중국의 시들에 대한 비평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단연히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비평론의 핵심엔 ‘시안(詩眼, 시를 보는 안목)’이라는 키워드가 자리한다. 풀어보자면 그것은 첫째, 전대의 문학적 성취를 폭넓게 학습하여 표절과 위작을 가려내고 능수능란하게 ‘점화(點化, 옛 격식을 취하되 새로이 고쳐 더 나은 시문을 지음)’할 수 있는 능력, 둘째, 시의 풍격을 좌우하는 ‘자안(字眼, 가장 중요한 대목의 글자)’에 대한 이해, 셋째, 기존의 비평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관점 등이다. 이경유는 이러한 입장을 충실히 이행했고, 그 성취는 탁월했다.
정국의 주도권을 놓치고 주류에서 밀려나 있던 당대 남인계 문단의 실상을 전하는 자료로도 일찌감치 주목 받아온 『창해시안』은 이렇게 한 젊은 문객의 엄격하고 독자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시론(詩論)을 품는다. “시의 묘리는 한 글자에 달려 있다”는 입론에 공감했던 조선후기 문인의 남다른 비평적 안목과 실천을 보여주는 문학 고전의 사례다.
우리 고전문학의 정수를 가려 꼽은, 성균관대학교출판부 ‘시화총서시리즈’의 어느덧 여섯 번째 책이다.

‘시안’으로 정립한
시를 대하는 엄격한 태도와 진지한 통찰

이경유는 증조대에 경북 상주로 낙향한 남인계 가문의 자제였다. 부친 이승연은 여러 차례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 그는 아들 이경유의 과거 급제를 간절히 기대하고 꼼꼼히 지도했으나 그 역시 과거에는 실패한다. 즉, 이경유 집안의 사회적 위상은 뚜렷이 쇠퇴하고 있었다. 이경유는 5세부터 『사략(史略)』을 배웠는데, 어려서부터 『사기』 열전을 본떠 글을 지었다. 『좌전(左傳)』, 『사기(史記)』, 『한서(漢書)』와 당송팔가(唐宋八家)의 글을 좋아했고, 시는 이백과 두보를 종주로 삼았으며, 특히 『당시품휘(唐詩品彙)』 읽기를 좋아하여 죽을 때까지 암송했다고 한다.
『창해시안』은 이렇게 성장해간 이경유가 과거 응시를 위해 서울을 드나들던 시절 전해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엮어낸 시화집이다. 출생과 삶의 근거지를 영남에 둔 그였지만, 『창해시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지역 인사보다 주로 선조(先祖)의 인적 관계망에 놓인 근기 남인이 다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창해시안』은 이경유의 비평론을 뒷받침하는 문헌이거니와 영남 지역에 국한된 문단사라기보다 그의 감식안 하에 근기 남인의 문학적 업적이 취합ㆍ평가된 저술로 보는 게 합당하다.
무엇보다 『창해시안』은 이경유가 시학(詩學)에 각별한 관심을 쏟은 30대 초반의 산물로, 이경유 문학의 완성이 아니라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저술이다. 모름지기 학습 과정에서 얻은 독자적 안목으로 기존의 비평에 얽매이지 않는 과감한 비평을 시도한 점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곳곳에서 폭넓은 독서와 사고를 통해 인용되고 완성된 문장들-“시를 보는 사람은 먼저 나의 속된 기운과 화려한 생각을 버리고, 깨끗하고 조용하며 여유 있을 때 앉으나 누우나 보아야 한다”(46쪽), “시는 세 가지에서 나오는 것이 있다. 기세에서 나오는 것, 정신에서 나오는 것, 정감에서 나오는 것이다”(47쪽), “시어를 가지고 시의 의미를 해쳐서는 안 되고, 그저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393쪽), “시는 기개가 우선이고 꾸밈은 뒷전이 되어야 한다”(406쪽), “시의 용사(用事)는 출처가 있어야 하니 자기 생각으로 어색하게 고집하면 안 된다”(462쪽)-은 젊은 시인의 시를 대하는 엄격한 태도와 진지한 통찰을 잘 대변해준다.
저자

이경유

본관은연안(延安),자는덕무(德懋),호는반속(半俗),창해(滄海),동야(東野),임하(林下)이다.이만부(李萬敷)의증손으로경북상주에거주했다.부친이승연(李承延)과숙부이병연(李秉延)의영향으로한때시학(詩學)에몰두하고,만년에는고문(古文)을탐독했다.1792년영남만인소에참여한뒤참봉,봉사를역임했으나곧사직하고,지역사회에서강학에전념했다.채제공(蔡濟恭),이헌경(李獻慶),정범조(丁範祖)등근기남인주요인사들과두루교유했고,역시상주에정착한강박(姜樸)후손들과교분이두터웠다.

목차

서설

〈창해시안권상〉
시는시대에따라변한다|송나라시의병폐|명나라시의특징|우리나라시인의수준|시는주석이필요없다|시는세가지에서나온다|오언절구와근체시결구|유장경의결구|두보와육유의결구|두보의시어|유방평의시어|유담의시어|권필의시어|고원하고신기한시|제영시의어려움|농재이병연의제영시|이승연의만월대시|사천이병연의시(1)|사천이병연의시(2)|허혼과유우석의회고시|노수신의시는두시와비슷하다|이옥,권해,채팽윤의시|정두경과채팽윤의가행장편|문장을일찍이룬사람|고적의시|잠삼의시(1)|잠삼의시(2)|잠삼의시(3)|강박이지은신치근만시|이병연이지은강박만시|강박이지은경종만시|채제공과이헌경이지은영조만시|이헌경의소년작|강박의송별시|최치원의시는거칠다|오언고시명가|최성대의오언시|왕유의시는그림과같다|위응물의시|유종원의고시|장적의악부시|왕건의시|일당시(1)|일당시(2)|일당시(3)|임포의매화시|육유의매화시|육유의시는송시의으뜸이다|조관빈의시는육유와비슷하다|일자사(1)|왕세정의시|이반룡의시|주자의시|백거이의시|이승연의춘첩자|백거이의곡자시|이경유의시|원진이백거이를전송하며지은시|이인복이이만유를전송하며지은시|신광수,정범조,이병연의시|농재이병연의대표작|이승연과이병연형제의명성|신광수와정범조의우열|이상은의시(1)|이상은의시(2)|이상은의시(3)|이상은의시(4)|이상은의시(5)|노동의시(1)|노동의시(2)|노동의시(3)|이하의시(1)|이하의시(2)|이하의시(3)|이하의시(4)|온정균의시(1)|온정균의시(2)|이하와온정균의시

〈창해시안권중〉
근세영남의시|권만의결구|신유한의촉석루시|이단의시|대숙륜과맹호연의우열|두순학의시|이몽양의시|진여의의시(1)|진여의의시(2)|『당시품휘』와『당음』|『기아』|이만부의시(1)|이만부의시(2)|김이만의시|강박의오언절구|채팽윤의시|이만유와채팽윤의시|강필신의시|최광악의시|담용지의시|후학을망친시|황정견의매화시|진여의의시(3)|진여의의시(4)|조영의변새시|오도일의시|홍면보의시|홍한보의시|조주규의시|강세백의결구|이안중의시|노비시인정일|이지정의시|임제와기생자고|이만유와기생천금환|채유후의시|채유후와이민구의시(1)|채유후와이민구의시(2)|채유후와이민구의시(3)|맹교의시(1)|맹교의시(2)|맹교의시(3)|왕유의시(1)|왕유의시(2)|초당사걸|맹호연의시|두심언의시|황정견이두보를배우다||이반룡의시|하경명의시|왕안석의시|소정석의시|장손좌보의시|이창정의시|형숙의시|왕지환과창당의시|경위와노륜의시|두상과방택의시|이만달의시(1)|이만달의시(2)|이만달의시(3)|강빈의시(1)|강빈의시(2)|읍청옹의시|이성유의시(1)|이성유의시(2)|강필공의시|조진택의시|이경일의시|정영방의시(1)|정영방의시(2)|송환경의시(1)|송환경의시(2)|송환경의시(3)|강필교의시|이계의시|도한의시|유신허의시|설거의시|장순의시|맹교와가도의가난|가도의시|엄유의시|하경명의시어|육유의시어|우리나라시는중국만못하다|오국륜의시|정백창과채유후가노비와주인행세를하다|채유후의절구|김창흡의시(1)|김창흡의시(2)|김창흡의시(3)|홍성의시|홍한보의시|김창협의시|이천보의시|신광하의시(1)|신광하의시(2)|옹도의자부|옹도의시|사마례의시|조하의시|이만부의시(1)|이만부의시(2)|소옹의『격양집』|서응과장호가장원을다투다|전기가귀신의시를얻다|서산사와금산사시|오광운의시|오대익의시|이학원의시(1)|이학원의시(2)|이용휴의시(1)|이용휴의시(2)|이가환의명성|정란의백두산시|정범조의만폭동시|이희사의시|홍수보의시|홍화보의시|최학우의시|남태제의시|김택동의시(1)|김택동의시(2)|설능의궁사|전기의시|소식의시|이몽양의시|진여의의시(5)|진우의시(5)|저자미상의시|소식의시|두상과두공의시|오희창이최립을흉내내다|이제화의시|채응일의시|고적의시(1)|고적의시(2)|석우풍|회파악|홍세태의시|최성대의시(1)|최성대의시(2)|왕유의육언시|육언시는짓기어렵다|농재이병연과사천이병연|김창협의시|신경천과정석유의시|남극관의시|홍봉한의시|이천보의시(1)|이천보의시(2)|박손경의시|정종로의시(1)|정종로의시(2)|이경유의낙화시|권사언의시|박천건의시|김이주가육유를표절하다|성정진의시|정경순,채득순,노긍이기생을읊다|채제공이신광수의운명을예견하다|최경창시의문제점|정철의시|박지화의시|최립의시|우리나라시는만당시절이낫다|이달의시|이정귀의시|소응천의시|소응천이여인과수창하다(1)|소응천이여인과수창하다(2)|윤영의시|홍서봉이지은이원익만사|오도일이홍만수를인정하다|홍영의시|천하를유람하는사람|이서우의시|김시습의동몽시|홍낙명의동몽시|박은의시|김정의시|정사룡의시(1)|정사룡의시(2)|노수신의시(1)|노수신의시(2)|유영길의시|신응시의시|조주규가당시를표절하다|왕유가옛시를활용하다|진계의시|고경명의시|최립의고목시|신광수가이병연에게준시|농재이병연의시|신광수의우스개시|백광훈의시|차천로와차운로의시|이수광의시(1)|차천로의시|이수광의시(2)|김류의시|정두경의시|충휘의시|지책의시(1)|탄일의시|지책의시(2)|이제현이두시를답습하다|정지상의시|이백이최호의시를답습하다|최호의시|이백의시|이중환의시|정범조의시

〈창해시안권하〉
진자앙의시|옛시인의답습|박인량의구산사시|가도가뱃사람흉내를내다|김황원과가도의시|시는마음으로이해해야한다(1)|시는마음으로이해해야한다(2)|성대중의시|아전최씨의시|왕세무,원굉도,전겸익의시|왕세무의시|원굉도의시|당나라시가가장공교롭다|강위의시(1)|강위의시(2)|나은이처묵의시를가로채다|육유의매화시|하송의시|강일용의백로시|소덕조의백로시|모란봉에서지은대우|이광덕과기생가련|오상렴의시(1)|오상렴의시(2)|오상렴의시(3)|강세백의추수사시|이광려가지은영조만시|채희범의시|김성구의시(1)|김성구의시(2)|신순악의시|김이탁의시|소리와경치|김인후의시|최사립과백원항의우열|이규보와죽림칠현|중복압운(1)|중복압운(2)|고려시인의답습|최해의시|일자사(2)|이인로,이혼,이규보의우열|김약수의시|정윤의의시|고사를사용한대우|낙화시|도잠의시|악부는짓기어렵다|유승단의시|시고치기를꺼리지말라|고윤의자화자찬|경전의말을사용한시||정도전이이숭인의시를혹평하다|이색의시와쌍계루기문|이승휴의풍자시|시비평의어려움|이규보의시(1)|이규보의시(2)|새이름을사용한시|정포가축간의시를답습하다|용사는출처가있어야한다|남자보다나은부인의시|이민보의시|조영석의시|정범조의시|전겸익의시|조변의시|허혼의시|정조의시|건륭제의시|두보의시는쉬운듯하지만어렵다|일자사(3)|정지상과진화의시|이규보의시(3)|이제현의시|이백,소식,인빈의시|낙제시|곤궁한선비들의시|이규보의시(4)|이색이최해의시를칭찬하다|두견새시|전유의시|영일의시|교연의시|눈을읊은시|이승연의시|농재이병연의시|채제공의시|목만중의칠언절구|이용휴의오언절구|이안중이당시를표절하다|최위의시|육유의강개한시|이몽양과하경명의시(1)|이몽양과하경명의시(2)|이희지의시|정홍조의시|정범조가지은정홍조만사|영철의중양절시|영철의풍자시|무가의시|이지존의절구|강세문의절구|농재이병연의오언절구|송지문의오언절구|장구령의여산폭포시|진여의의섣달그믐시|신후담의시(1)|신후담의시(2)|이재후의시|신광수의시|강세백의시|이원상의시|최학우의시|강빈의시|김득신이대구를찾다|허공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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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시안’의첫번째의미
“표절과위작을가려내라”

『창해시안』에는작가론ㆍ작품론ㆍ형식론등다양한양상의비평이혼재한다.얼핏보기에는산발적이지만그강령은분명히존재한다.그것은다름아닌‘안목’이다.‘시안’이라는서명도여기서나온것이다.그런데이경유가말하는안목은단순히가작(佳作)을알아보는감식안을의미하는것이아니다.여기엔세가지층위가있다.
첫째는표절과위작을알아보는안목이다.이경유는한위시(漢魏詩)를배우는자들이오로지표절을일삼는다고한탄하며,이처럼표절과위작이횡행하는것은사람들에게‘참된안목[眞眼目]’이없기때문이라고했다.『창해시안』에는표절과위작을지적하는기사가상당하다.보건대이경유는이안중(李安中)이당시(唐詩)를표절하고,조주규(趙胄逵)가두보와육유를표절한사실을밝혀냈으며,채홍리(蔡弘履)가발굴한일당시(逸唐詩)가위작임을간파했고,김안국(金安國)이가짜일당시에속지않았다는기사도수록했다.이경유는고문사파의문학론에기본적으로찬동하는입장이었으며,이들의시에대해서도우호적이었지만표절은배격했다.표절과위작을간파하는것이야말로그에게는비평의우선순위였다.
‘점화(點化)’에상당한지면을할애한것도이와관련이있다.점화에대한이경유의견해는대체로긍정적이며,여러사례를들어점화의선례를보였다.특히『동인시화』에서인용한45칙중점화에관한것이10여칙이다.본디점화와표절은경계가불분명하다.표절과위작을가려내고,점화를능숙히하기위해서는전대의시에해박해야한다는점도동일하다.이경유는과거의문학적성취를학습함으로써시를창작하고비평하는안목을기를수있다고보았다.이는『창해시안』에기존의문헌이다량인용된이유이기도하다.

‘시안’의두번째의미
“한두글자의절묘한배치에주목하라”

시안의두번째의미는‘자안(字眼)’이다.이경유는“시를배우는사람이옛사람의힘쓴부분을알고싶으면글자를놓은것을먼저보아야한다”고주장했다.실제로『창해시안』의한시비평은자(字)와구(句)단위에집중되어있다.시전편을인용한사례는드문편이며,전편을인용한경우는대부분절구이다.심지어장편시에서서로떨어진구절을뽑아하나의연으로구성한예도보인다.이경유가특히관심을기울인곳은시전편의유기적구성보다한두글자의절묘한배치가자아내는풍격이었다.
인용한기사도자안에관한것이많다.『당음』에서는정곡(鄭谷)이제기(齊己)의시에서한글자를고친일화를인용했고,『당시품휘』에서는관휴(貫休)가왕정백(王貞白)의시에서한글자를고친일화를인용했다.『동인시화』에서도소초재(蕭楚材)가장영(張詠)의시한글자를고치고,변계량(卞季良)이김구경(金久?)의시한글자를고친일화와이색(李穡)이이종학(李鍾學)의조언에따라한글자를고친일화를인용했다.이경유는“시의묘리는한글자에있다”라는서거정(徐居正)의발언에깊이공감했던것으로보인다.이밖에어느문헌에서인용했는지는알수없으나승려가김창흡(金昌翕)의시한글자를고쳐주었다는일화도보인다.자안에관한기사는『창해시안』의상당한분량을차지한다.

‘시안’의세번째의미
“세간의유행에흔들리지않는독자적시론을견지하라”

시안의세번째의미는독자적인안목이다.이경유는당대일각에서유행하던‘고원신기(高遠新奇)’한시풍에비판적이었으며,이러한시를“시도(詩道)의일대액운”이라했다.이는18세기를풍미한‘기궤첨신(奇詭尖新)’의시풍을가리키는것으로보인다.이경유는이러한시를두고“후세에본받는사람이있을까두렵다”라고맹렬히비난했으며,시선집에선발한것도문제삼았다.참신한시를선호하지않았다는점은다소보수적으로보이지만,당시이러한시가상당한인기를끌었다는사실을고려하면,세간의유행에흔들리지않는시론을견지했다고볼수있다.
반박하기어려운권위있는비평에대해서도완곡하게의문을제기했다.이경유는남인문단에서손꼽히는이서우의시를두고‘아름다운시구는몹시드물다’하고,최립의시를‘마음에드는것이없다’고일축했으며,퇴고(推敲)의고사로유명한가도의시구마저‘놀랍지않다’고폄하했다.안목이부족해서라고겸양하는태도를보였지만,문면그대로받아들이기어렵다.기존의비평에동의할수없다는완곡한표현으로보는것이온당하다.
이경유는『당시품휘』에수록된비평을자주인용했지만,자신의견해와다르면반박했다.『당음』과『당시품휘』는좋은시를빠뜨리거나좋지않은시를뽑았으며,『기아』에수록된시는태반을산삭해야한다는주장역시독자적인안목에서나온발언이다.『동인시화』에서인용한기사중에도기존의비평에의문을제기하고독자적인안목으로비평한것이상당하다.
이경유가기존비평의권위에얽매이지않았다는점은그의저술곳곳에서드러난다.『선시보주(選詩補註)』를읽고는“편장마다대략비평하며옛사람의정론에얽매이지않고그저내소견을따랐다”라고한점이나“서가에있는옛사람의시집을아무렇게나뽑아마음대로점을찍거나지웠다”라는경험을술회한것도그가항상독자적인안목으로과감한비평을시도했다는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