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와 음악 (일본 포로수용소,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츠의 음악 | 양장본 Hardcover)

수용소와 음악 (일본 포로수용소,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츠의 음악 | 양장본 Hardcover)

$25.95
Description
음악을 아름다움의 상징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여기는 단순한 생각은
이 책을 읽은 후 의문으로 바뀔 것이다

음악, 전쟁과 평화, 이 책의 문제의식
저자는 이 책에서 제1ㆍ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도 활발한 음악 활동이 전개되었던 독특한 수용소들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전쟁과 음악’ 그리고 ‘음악과 평화’의 관계를 사실감 있게 서사화한다. 서사의 주인공들은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에 위치해 있던 독일ㆍ오스트리아군 포로수용소-반도(板東)ㆍ구루메(久留米)ㆍ나라시노(習志野) 등-와 테레지엔슈타트(Theresienstadt)ㆍ아우슈비츠(Auschwitz) 등을 위시하여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나치 독일의 강제 집단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생존했던 포로와 유대인 수감자ㆍ희생자들이다. 저자는 수용소 안팎에서 진행된 이들의 음악 활동에 주목한다.

물론 전자와 후자의 음악 활동 사이에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공간상의 거리와, 한쪽은 독일ㆍ오스트리아군이 일본의 포로가 되었고, 다른 한쪽은 유대인이 나치에게 억류된 상황이라는 차이가 존재한다. 전자의 주인공이 군인들이라면, 후자의 주인공은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들로서, 양자는 한데 묶어 범주화하기 어려운 집단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자유의 제한과 억압이라는 ‘비인간적 조건’ 속에서도 공히 놀랄만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이어간-이어갈 수밖에 없었던-이들의 생존과 일상을 통해, 저 음악이 품고 있는 또 다른 의미의 지층들을 탐색해낸다. 무릇 “음악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있다”고 여겨지지만, 수용소라는 비정상적인 공간에서 연주되는 음악의 의미는 천진하게 평화로 직결될 수 없었다. 예컨대 아우슈비츠의 음악은 나치라는 가해자에 봉사하면서 동시에 희생자를 위로하는 모순적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이때 음악은 훨씬 복합적인 차원의 수단으로서 다층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음악과 평화의 동행이란 일반적 통념의 함정을 폭로함으로써 보다 세심하고 진전된 평화의 개념에 다가서려 한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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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경분

음악과문학을함께공부할수있는독일마르부르크대학에서「나치시기독일의망명음악과문학」이라는논문으로음악학박사학위를받았다.제2차세계대전중독일음악가들이나치를피해전세계로도피할때오히려독일로들어가지휘했던안익태의활동을예사로이여기지않고,독일연방아카이브에서조사ㆍ연구한끝에‘일본지휘자’안익태자료를발굴하여『잃어버린시간1938~1944』(2007)이란책으로발표했다.
2010년서울대학교일본연구소HK연구교수로재직하면서안익태와일본의관계뿐아니라한국ㆍ일본ㆍ독일의음악문화교류전반으로연구의지평을넓혀나갔다.제1차세계대전중일본의포로가된독일ㆍ오스트리아군인들의놀라운음악활동에주목하게된것은이때부터다.이후수용소음악에대한관심은한국전쟁시기거제도포로수용소로옮겨갔고,현재한국학중앙연구원의학술연구교수로재직하면서거제포로수용소의음악에대해연구하고있다.
주요저술로나치제국의음악정책에관한『망명음악,나치음악』(2004),『프로파간다와음악』(2009)등이있으며,주요논문으로「6.25전쟁기거제포로수용소의음악,냉전이데올로기와노래」,「베를린의한국음악유학생연구」,「독일제국권에서일본제국권으로온망명음악가연구」,「일본에서의윤이상」,「북한의망명음악가정추연구」등이있다.

목차

프롤로그

〈제1부일본포로수용소의음악〉
제1장칭다오의제1차세계대전과독일ㆍ오스트리아포로
제2장포로음악가,레퍼토리와청중
제3장유럽포로들이베토벤9번을‘일본초연’하다
제4장관용적포로정책과비인간적포로학대
제5장영국포로수용소의음악연주
제6장관동대지진시기의나라시노수용소
제7장일본포로수용소에서음악의평화적역할

〈제2부테레지엔슈타트의음악〉
제1장테레지엔슈타트의인상과실체
제2장게토수용소라칭하는이유
제3장거짓공장테레지엔슈타트에서의삶
제4장테레지엔슈타트의음악문화활동의변천사
제5장절정기의레퍼토리,연주단체,청중,인기음악
제6장테레지엔슈타트의뛰어난작곡가들
제7장테레지엔슈타트게토수용소에서음악의역할

〈제3부아우슈비츠의음악〉
제1장살인공장아우슈비츠
제2장살인자와음악
제3장아우슈비츠의수용소오케스트라들
제4장아우슈비츠의여성음악가들
제5장살인공장의레퍼토리,나치가원하는음악
제6장아우슈비츠에서음악의역할
제7장수용소제국의음악

에필로그
주ㆍ참고문헌ㆍ찾아보기
총서‘知의회랑’을기획하며

출판사 서평

반도-구루메-테레지엔슈타트-아우슈비츠
전쟁의참화속에서수용소하늘위로울려퍼지던
모순가득한,생존과일상의오케스트라선율들

음악이인간에게선사하는것은무엇일까.아름다움일까,사랑일까,평화일까.이책은전쟁이라는극한상황속에서인신이구속되고,나아가극단적처지로내몰린수용소인간들에게음악은과연어떤의미였는가를탐색한문제작이다.
여기서전쟁이란전인류가관여되었던제1ㆍ2차세계대전을,수용소란일본의독일군포로수용소들과나치에의해홀로코스트가자행된,저비극의장소테레지엔슈타트와아우슈비츠를가리킨다.이무슨아이러니인지전쟁의참화속에서도수용소하늘위로는수준높은오케스트라선율이울려퍼지고있었다.언젠가엄밀한자료조사와연구끝에‘문제적지휘자’안익태의두얼굴을학계와시민사회에보고했던저자는이번책에서언제나그렇게수용소들의시공을채우고있던,‘모순가득한’음악의얼굴에주목한다.
그음악은선전을위해허용된공간에서수감생활의무료를달래고친교의도구로사용되었음을물론,가장처절한폭력과살인의백그라운드뮤직이되어야만했으며,‘음악〓밥’이란표현처럼생존의수단이될수도있었고,동시에처참한지옥바깥에자유로운세상이있음을알게해주는희망의메시지가될수도있었다.수용소에서음악은그렇게거의‘모든것’이될수있었다고저자는말한다.
평화를상징하는음악과폭력의공간으로대비되는수용소.이모순공존의사건을직시하면서인간역사에대한성찰의계기를마련해보자.성균관대학교출판부학술기획총서‘知의회랑’의열일곱번째책.

일본포로수용소의음악
일상의권태수습에서베토벤교향곡의동아시아초연까지

1914년제1차세계대전이발발했을때제국주의국가독일이동아시아에조차지로보유한곳이중국산둥반도의칭다오였다.중국대륙으로진출하려던일본은칭다오에서독일을몰아낼기회를잡기위해영국(연합군)편에섰고,곧독일에전쟁을선포한다.하지만수적으로열세였던독일ㆍ오스트리아군은초기에가능한한적에게큰손실을끼치고재빠르게항복한다는전략을썼다.전쟁개시3개월만인1914년11월7일,독일은항복을결정했고,약4천7백명의독일ㆍ오스트리아군인이일본의포로가되었다.
당시는근대화의정도가곧국력의서열을의미하던시기였다.얼마전까지만해도근대화의‘스승’위치에있던독일이‘제자’라여기던일본의포로가되는상황이전개된것이다.일본은유럽포로들을일본본토로이송해간이수용시설들을거쳐,이후새로지은여섯개의대규모수용소로분산수용한다.
포로‘수용소’가존재하다는건,그안에어느정도일상이존재한다는의미다.지루한일상을견디기위해포로에겐정신적ㆍ육체적자극도필요하다.거의모든포로수용소에음악,스포츠와같은오락이늘있어왔던이유다.그런데제1차세계대전중일본본토에설치된포로수용소들에서는그런일상적오락의차원을넘어서서,베토벤ㆍ모차르트ㆍ바그너등의수준높은클래식음악까지연주되는,포로들로구성된오케스트라활동이광범위하게존재했다.무엇보다‘평화적’수용소의대명사로알려져있는도쿠시마현반도수용소에서는‘베토벤교향곡제9번’이동아시아에서초연되기도했다.
제1부에서저자는포로수용소라는공간에서어떻게이런일이가능했는지를차근차근분석해나간다.베를린연방아카이브에서찾아낸자료들-수용소운영문화프로그램ㆍ행사포스터ㆍ사진등-을통해당시포로들이누리고있던자연스런일상과문화생활들을구체적으로재확인하고,일본본토에서이렇게‘허용된평화’상황이조성될수있었던‘차별적이고이중적인’관용정책의실상과배경을낱낱이밝혀낸다.
특히저자는종전으로유럽포로들이귀환한지약3년이지나관동대지진이발생하자,한때포로들에게활발한음악활동이허용되었던나라시노수용소가비인간적인범죄장소로둔갑하는역사를아프게바라본다.적국의포로들에게마저관대했던공간이단지생존을위해거주하던조선인들에겐느닷없이학살의장소로탈바꿈해버린이유에서다.


테레지엔슈타트의음악
기만속에허용된게토수용소의수준높은오케스트라

제2차세계대전중나치수용소들에서도유대인음악가포로들을구성원으로하는클래식오케스트라가조직되어완성도높은음악연주가이어졌다.하지만이는연주가시원찮아서SS사령관맘에들지않으면,구성원전원이죽음의가스실로직행해야하는극한적상황속에의음악활동이었다.오케스트라구성원들은처참한몰골로강제노역에끌려나가는동료들을바라보며행진곡을연주해야했으며,지옥열차에서짐짝처럼쏟아져나온동료들이나치의손짓하나로삶과죽음을선별당하던플랫폼과,탈옥하다붙잡힌동료죄수가처형되는형장에서는물론,시체타는냄새,자욱한연기,고통스런비명들속에서폭력과살인의백그라운드뮤직을연주해야만했다.
제2부에서는제2차세계대전중수천개의나치강제수용소와게토가운데서가장수준높은음악이연주되었던체코의테레지엔슈타트수용소에주목한다.물론우리에게익히잘알려진아우슈비츠강제집단수용소도음악연주로유명했다.여러개의오케스트라가존재했고,다양한밴드도있었다.하지만초연된창작음악의수준이나문화적다양성차원에서보자면,테레지엔슈타트가훨씬정교하고뛰어났다.20세기체코음악사의주요작품다수가이곳에서탄생했을정도다.
사실수용소의실상이드러나지않도록나치가공들여‘위장’한곳이바로테레지엔슈타트였다.나치는수감자들이스스로‘자치행정제’를꾸려일상을운영하게함으로써자신들의잔혹한속셈을감췄다.겉으로는대표로선임된명망있는유대인장로가중심이되어,의식주를비롯한일상의모든것을유대인끼리자체적으로해결하는듯보였다.이는일반적인나치강제수용소들과도크게다른부분이었다.
그러나실제로는나치친위대소장이유대인대표와임원들을임명했으며,그들은정작주인에게목줄잡힌개에불과했다.나치는다만일선에서직접관리하고통제하지않을뿐이었다.이렇게관리되는테레지엔슈타트의일상은기만의연속이었다.저자는이런상황에서음악이야말로테레지엔슈타트에감금된유대인음악가들에게고통과비참함으로부터자기존재를지켜나갈수있는유일한피난처였을것이라고말한다.
물론마지막까지작곡하고연주했건만,음악은죽음에서이들모두를지켜주지못했다.1944년가을테레지엔슈타트의음악가대다수는아우슈비츠로강제이송되어가스실에서살해당한다.그렇게끝내육신은연기와함께사라졌지만,음악은남아서이들이실재했던진정한음악가임을증명하고있다.
당시테레지엔슈타트에선어떻게이런일이가능했는지,왜나치는수감자의음악ㆍ문화생활을‘기만적으로’지원했는지,제2차세계대전중가장독특했던이‘게토수용소’의음악활동과그내막을추적해본다.


살인공장아우슈비츠의음악
폭력속에명령당한인간의존엄성

제3부에들어서면기어이그악명높은아우슈비츠에도달한다.아우슈비츠는효율적으로인간학살을자행했던나치강제집단수용소의대명사다.‘거짓공장’테레지엔슈타트에서는나치의잔혹함이기만으로포장되어작동했다면,‘살인공장’아우슈비츠에서는인간학살의잔인함이적나라하게드러났다.누군가의일갈처럼아우슈비츠이후엔서정시조차야만일뿐이다.
아우슈비츠는단일수용소가아니라,수용소복합체였다.아우슈비츠제1수용소는행정본부가있는중앙수용소,아우슈비츠제2수용소는대규모살인이이루어지는비르케나우수용소단지,아우슈비츠제3수용소는군수공장단지에인접한강제노역수용소모노비츠그리고공장과산업체를뒷받침하는연구소들로이루어졌다.수감자들의노동력을착취하면서산업체와연구소가협력하여최대의성과를이끌어내는경영시스템이었다.이런구조속에서아우슈비츠는가스로인간을살육하는최대규모의‘절멸수용소’의대명사가되었다.
살인공장아우슈비츠에서도음악은중요한역할을했다.비르케나우에서만최대네개의오케스트라가있었을정도다.무엇보다아우슈비츠에서음악은가스실로향해야만했던이들에게‘죽음의향수이자생애마지막위로’였다.이러한삶의비극과모순이또있겠는가.저자는여기서주관적판단대신생존자들의육성을그대로옮겨놓는다.당시소녀오케스트라로활동하며“음악때문에살았다”고증언한아니타라스커-발피쉬(AnitaLasker-Wallfisch,1925~)를비롯해,파니아페네론(FaniaFenelon,1908~1983),에스더베자라노(EstherBejarano,1924~)등의인터뷰와회고는읽는내내충격으로다가온다.
왜나치는오케스트라를원했을까.아우슈비츠에서음악은가해자와피해자에게각각어떤역할을했을까.아우슈비츠가‘역사화되어가는’21세기,살인공장의음악이품고있는처연한인간의역사를직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