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2년 전쟁 12년 논쟁 | 양장본 Hardcover)

임진왜란 (2년 전쟁 12년 논쟁 | 양장본 Hardcover)

$46.04
Description
국제정치적 차원에서 바라본
한ㆍ중ㆍ일 삼국의 유일한 전면전
‘임진왜란’에 대한 새로운 통사通史

전쟁의 징후부터 주둔군의 완전 철수까지
군사 대결 막전막후에서 펼쳐진
외교 접촉과 정책 대결의 리얼 역사 드라마
임진왜란은 한ㆍ중ㆍ일 삼국이 전면전을 벌인 유일한 사례다. 그간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국제질서의 메커니즘을 연구해온 정치학자 김영진 교수는 전쟁과 같은 중대 상황에서 삼국의 관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살펴보고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연구에 착수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국제정치 차원에서 4백여 년 전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동아시아 대전(大戰)’에 대한 그의 새로운 통사적 시도다.
저자는 ‘7년 전쟁’으로 기억되는 왜란에 대한 일반적 통념에서 벗어난다. 전시 상황은 1589년 6월 대마도주의 조선 방문과 통신사 파견 요구로부터 1600년 9월말 명군 지휘부의 철수까지 햇수로 12년. 이 기간 군사적 측면은 물론, 국내 정책 논의와 외교 및 국가간 협상 등 왜란의 비군사적 측면에 저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전쟁의 징후로부터 주둔군의 완전 철수까지 군사 접전의 막전막후에서 펼쳐지는 외교전과 정책 대결의 양상들은 입체적으로 재구축되고, 군사 대결 너머에서 전쟁의 향배와 국제관계의 변화를 결정지어온 것들의 의미는 재확인된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임진왜란 연구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했던 다양한 정책ㆍ외교관계 문서들에 대한 치밀한 접근과 분석이 압권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의 변화가 심상찮은 이때, 이 책이 던지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학술기획총서 ‘知의회랑’의 열여덟 번째 책.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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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영진

입시특급장학생으로경희대학교에입학해영어영문학학사를마치고,서울대학교에서정치학석사,독일베를린자유대학에서정치학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국민대학교중국학부교수로재직중이다.그간베이징대학방문학자,클레어몬트매케나칼리지(ClaremontMcKennaCollege)와퍼시픽대학(UniversityofthePacific)교환교수를지냈다.
최근에는중국과동아시아관계사에주목하여연구를진행하고있다.한ㆍ중ㆍ일삼국의유일한전면전인임진왜란을다룬이책을상재하기위해,「중화질서의이론과실제:임진왜란초기조명관계를예로」,「임진왜란초기제3국국제협력방안에대한고찰」,「임진왜란초기명의파병과조명관계의실제」,「임진왜란이후명군철수협상에대한고찰」등치밀한선행연구들을이끌어왔다.대표적인관련저술로『중국,대국의신화:중화제국정치의토대』가있다.

목차

프롤로그

〈제1부임진왜란〉

|제1장|침략의전야
1.중세동아시아질서
2.일본의외교적도전
대마도의중재|통신사파견에대한반대여론|대마도의2차시도|통신사파견의결정|통신사파견|통신사의귀국보고|히데요시에대한답변
3.명에대한보고여부
조헌의주장|조정의논의|유구(琉球)의보고|명의반응과추가적보고|일본현지본국인의보고

|제2장|왜군의침략과초기대응
1.왜군의화전양면작전
침략의개시|서울점령과전국분할|임진강에서|대동강에서|여타지역에서
2.국왕의피난그리고내부(內附)
국왕의피난|평양이후|분조(分朝)와내부요청|명조정,내부의거절
3.조선과명의접촉
최초의통보|두번째통보|명의반응|요동의정탐군대파견|명의자체조사|요동에대한군사요청
4.조선의반격과전세의균형
조선수군의승리|의병의조직|경상우도|전라도진출의좌절|경상좌도|경기도와황해도|함경도|진주성전투|요동군의평양공격

|제3장|명의참전
1.명ㆍ일교섭과조선의대응
심유경의조선방문|심유경-유키나가1차교섭|조선의대응|기요마사의강화조건?병부의계첩|조선의독자적공격방안|제2차강화협상|송응창의입장|강화와평양공격
2.명의파병결정
찬반논쟁|북경에진주사파견|북경의섬라사신|황제의파병칙서|조선의대응|건주여진의파병제안
3.명의출병과평양수복
송응창의원정준비|조선의협력|명군의진입|전투의전개|조선인참획|명군내부갈등|파병의이유쟁론

〈제2부강화협상〉

|제4장|벽제관전투와명의전략수정
1.벽제관전투
명군의남하|벽제관전투와조선군|명군의후퇴|산동순무손광의진격반대|식량과날씨|행주대첩|함경도왜군
2.명군의남하중단과강화
조선의남진요청|송응창의입장|송응창의조선진입|강화의가시화|국왕의남하|조선내찬반논의|왜군의전략변화

|제5장|명ㆍ일강화교섭
1.용산회담과왜군의서울철수
유성룡의보고|강화결과의통보|조선의대응|후속회담|왜군의서울철수|남하왜군의추격|수군에내려진지시|명조정의입장
2.진주성학살
배경|조선의대비|진주성학살이후|이융형제사건
3.나고야회담과히데요시의강화조건
명사절의도일|히데요시의지침|「대명과일본의화평조건」7개조|사절의귀국|심유경과소서비의요동행
4.명군잔류협상
조선의입장|송응창의지정학론|조명간논의|병부의결정

|제6장|강화와조선의대응
1.강화반대외교
서울수복사은|주청사황진|사은사정철|송응창의세자남하요구|사헌의조선방문|사은사김수
2.강화협상의중단
히데요시항복표문|계요총독고양겸의강화론|강화논의의중단
3.강요된책봉요청
호택의파견|조선내찬반논의|타협안|책봉요청진주문|주청사윤근수|광해군책봉문제
4.조ㆍ일교섭
배경|유정과기요마사의접촉|사명당과기요마사의4월교섭|7월담판|김응서와유키나가|사명당의세번째교섭|담판이후

|제7장|히데요시의책봉
1.책봉의결정
청봉진주문에대한황제의지시|강화론의대두|손광의조선경리론|소서비의북경진입|왜군철수의종용|책봉사절파견통보|진운홍의귀국보고|조선의대응|손광과기요마사의접촉
2.책봉사절의파행
책봉사절의서울도착|유키나가의일본행|책봉사절의남하|책봉사절의지체|책봉에대한비판|책봉정사의탈주|명의대응|조선의대응
3.조선통신사(근수사)
최초의조짐|공식화|조선의초기대응|명의입장|계속되는압력|최종결정

〈제3부정유재란〉

|제8장|책봉의식과강화의파탄
1.책봉의식
책봉의식의거행|황신의체험
2.책봉사절의보고
통신사의귀국|통신사의보고|요동의손광|진주사정기원|황신의대면보고|명사절의귀국보고
3.조ㆍ명의대응
황제의강화지시|명의재파병결정|고급사권협

|제9장|왜적의재침과대응
1.강화의재시도와대응책
유키나가의제안|이순신의파직|심유경의재활약|사명당과기요마사의담판|조선경리방안
2.왜군의공세와연합군의반격
명군의준비|왜군의진출|조선수군의궤멸|왜군의북상|파병에대한찬반|조ㆍ명의반격|조ㆍ명의갈등|울산전투|명ㆍ일간접촉
3.정응태의무고
요약|양호에대한참소|축성에대한변무|조선에대한무고|진주사의파견|관왕묘의방(榜)

|제10장|종전과전후처리
1.전쟁의종결
히데요시의사망|조명연합군의진격|강화와왜군의철수|조선의대응|대마도정벌론|사은사의파견
2.명군철수협상
조ㆍ명의입장|최초의방안,1만5천명|축소된방안,8천명|마지막제안,3천명
3.명군의철수
형개의상소|명조정의결정|협상의결렬|철군결정|최후의방안|최종철수

에필로그
주요사건일지
주요인물소개
참고문헌ㆍ주ㆍ찾아보기
총서‘知의회랑’을기획하며

출판사 서평

국제정치학자가전란통사를쓴까닭

임진왜란을다룬책은적지않다.그럼에도여기또한권의책을더하는이유는무엇인가.더구나저자는역사학자도아닌국제정치학자다.
저자는지금까지임진왜란연구가주로개별국가의입장에서진행되었다고지적한다.우리경우에는주로국난극복을위한투쟁위주로기술되었고,그결과의병이나이순신과같은영웅들의활약에초점이맞춰졌다.일본의경우에도전쟁수행자체에초점이두어졌다.그결과명나라의역할에는별로주의를기울이지않았다.더구나명나라자료들은물론조ㆍ명관계관련자료들도거의활용하지않았다.마찬가지로중국에서는명나라의군사적개입은강조되었지만,조선이나일본내부의사정에대해서는그만큼관심이적었다.이렇게전란당사자의입장에따라주안점이어긋나버린연구의편중성에대해,저자는진실왜곡의여부를떠나임진왜란에대한균형잡힌통사적기술자체가지연되어왔다고평가한다.그러하여근대이전동아시아의국제질서를고찰하는데자국중심주의와패권주의적입장을지적ㆍ경계하면서,동시에민족주의도국수주의도아닌냉정한태도를견지한채,임진왜란12년사를재구축해나가기시작한다.


2년전쟁12년논쟁
임진왜란은왜7년전쟁이아닌가

임진ㆍ정유왜란은종종7년전쟁으로간주되지만,실제군사대결기간은그리길지않았다.임진왜란시기그것은대략왜군이부산을공격한1592년4월중순부터이듬해6월하순진주성학살까지1년수개월이다.이후명군과왜군대다수가철수하고일부왜군이남해안에주둔했다.정유재란시기군사대결기간은대규모왜군이들어온1597년5월부터이듬해1월초울산전투종료까지와조ㆍ명연합군이전면공격에나선8월부터왜군이철수한11월말까지약10개월이다.따라서전체적으로해당기간은약2년정도다.
그렇지만저자가주목하는상호비군사적접촉기간은그보다훨씬길다.그시작은대략1589년6월대마도주의조선방문과통신사파견요구시점이고,전시상황의종료는1600년9월말명군지휘부의철수다.무엇보다군사대결중에도각종정책논의와외교접촉은끊이지않았다.이렇게본다면,그기간은햇수로12년에이른다.이글의부제가‘2년전쟁,12년논쟁’인이유가여기에있다.


임진왜란을프로파일링하다
군사대결과그너머에서작동했던모든것
그리고미해결의문제를푸는단서들

이책은임진ㆍ정유왜란당시주요사건ㆍ전투들의편년사와전란의시공에서활약한역사적인물들의정치외교열전을함께직조해나간역사드라마인동시에,무엇보다전면과이면에서이전쟁을작동시킨모든힘과관계의실체를프로파일링한수사기록이기도하다.
무릇전쟁은단지군사대결에만그치지않고,여러정책논의와협상에의해그방향과결과가정해지는중대사태다.전쟁을연구대상으로삼을때,단순히그결과만이아니라관철되지않는주장이나정책에도관심을가져야하는이유가여기에있다.나아가전쟁연구는시기적으로군사대결기간에국한하지않고,개별사안과연동되는각국의입장들을종합적으로고려해야한다.그래야만전쟁의전개과정에대한입체적인이해가가능해진다.이책의기본입장은그렇게세워졌으며,삼국의원자료들에대한정밀한분석과정리가뒤따랐다.
이를테면,명의군사적지원또는개입이왜군퇴치에크게기여했음은주지의사실이다.이사건을재구축하기위해저자는군사개입의목적,시점,규모,방법,종전에따른철수그리고그에대한조선의입장과대응등여러이슈들을세부적으로검토했다.또한이와관련되는사건으로서명과일본사이에서진행된강화(講和)역시그배경과과정에면밀한주의를기울였다.저자는이렇게분석적인전과정을통해서야비로소조ㆍ명관계의실체에접근할수있었다고강조한다.
마찬가지로전쟁과정에서일본의위상문제도치밀하게분석되었다.통상일본은조공ㆍ책봉질서에서벗어나있었다고간주되는경향에대한문제의식의발동이었다.실제로도요토미히데요시의조선침략은중국중심의질서에대한도전을의미했다.그러나다음과같은문제는여전히남아있다.최초계획에서그가명ㆍ일간교역이이뤄지던중국영파(寧波)에중심을둔국제질서를상상한까닭은무엇인가,또일찌감치조선조차정복이불가능해졌을때그가명황제의책봉에만족한것은무슨의미인가,과연그는해당질서관념에서벗어난것인가등등.이에저자는전쟁의각단계와상황에서노정된일본의정책들을면밀하게분석함으로써조ㆍ일관계를포함한당시동아시아국제질서에대한어렴풋한관념들을실제화해나간다.


전근대전쟁사를들여다보는국제정치학자의입체경(鏡)
-“오직사료(1차자료)로부터”

통사적접근그자체의난관을저자는이책에서오늘날용이해진자료접근방식으로돌파했다.이제언제든원하는자료원에접근할수있고,더욱이키워드검색까지도가능해진연구환경을적극활용한것이다.임진왜란연구의기초자료인『선조실록』이나『신종실록』뿐아니라당대여러인물들의문집등수많은자료들이책장에서뽑아쓰듯소환되었고,장기간에걸친사건들의입체적구성은끊임없이점검되었다.
사실통사적기술에서새로운자료의발굴이나활용보다더욱중요한것은기존자료들을다각도로검토하는일이다.그래야만사건에대한정확하고연속적인기술이가능하다.특히소통이많았던조선과명의자료들에대한상호점검은매우중요했다.『선조실록』,『신종실록』등의정사기록은관련인물들의주장이나경험에대한진술등으로보완했으며,이를위해당대정책담당자였던조선의관료들이남긴수많은문집들이소환되었다.정책의결정자나수행자로서유성룡의『징비록』이나이순신의『난중일기』등은물론이거니와,이호민(李好閔),신흠(申欽),최립(崔?)등과같은공문서작성전담자들의문집들,그리고명과일본을다녀온사신들의보고서도적재적소에활용되었다.이러한개별자료들의집합적검토는그자체로성과가적지않았다.

-“타국의새로운발굴사료들까지”

여기에더해,그간적극적으로도입되지못한자료들에대한접근ㆍ분석ㆍ활용이야말로이책의미덕이다.
먼저임진왜란이듬해부터정유재란직전까지3년반동안명군의조선원정총책임자였던손광(孫鑛)총독의문집『요강손월봉선생전집(姚江孫月峯先生全集)』(1814)이다.이문헌에는당시그가명조정의주요대신이나황제에게썼던편지와보고서들이들어있다.그는그간중국에서문장가로연구된바있으나,조선원정과관련하여국내에서활용된적은없었다.한국내대학의고문헌자료실에서이자료를발견해낸저자는,이것이손광재직시기전쟁의전개와조ㆍ명관계를이해하는데없어선안될귀중한자료임을강조한다.
두번째는정유재란시기약1년반동안손광에이어조선문제를총괄했던형개(邢?)의문집『경략어왜주의(經略禦倭奏議)』다.중국에서후대에발굴되어2004년에처음공개된것이다.이자료는국내에소개되었으나연구에제대로활용되지는못했다.돌이켜보면명의자료로이제까지일부라도활용되는것은『신종실록』과맨처음명의조선원정을책임졌던송응창(宋應昌)의『경략복구요편(經略復國要編)』정도다.또한조선과명사이에오갔던외교문서들의모음집으로『사대문궤(事大文軌)』(1619)도있지만,마찬가지로거의활용되지않았다.1925년조선총독부의조선사편수회에서재간행하기도했으나일부기간의자료들이망실되어있다.그럼에도주요사안들을둘러싼조ㆍ명의협력과갈등을드러내주는자료임이분명하다.
한편일본의1차자료는조선원정에직접참여했던다이묘가문에서출간된문서모음이중요한부분을차지하고있다.이는주로도요토미히데요시의명령서등공식적인문건들에집중되어있다.사실그간일본의임진왜란연구는활발했으며,위자료들은국내연구에도인용되어왔다.다만저자는전쟁의전체적인과정에서관련자료들이충분히이용되었는가에대해의문을표한다.다행히얼마전일본의임진왜란연구권위자인기타지마만지(北島万次)가『풍신수길조선침략관계사료(?臣秀吉朝鮮侵略關係史料)』(2017)를편집하면서관련문서들을상당부분수록했다.중세일본어로되어있어번역하는데어려움이없지않았지만,저자는관련연구들을원용하여이책에서최대한활용했다.


16세기동아시아대전이후를관통하는
21세기패권전쟁에대한서늘한인사이트

이렇게지난한경로를거쳐재구축된전란통사를앞에두고저자는다시현재적출발점에선다.
한반도는지정학적위상으로인해주변강대국의영향력확대시도나침략가능성이상존해왔다.특정동맹국에의존한안보는순간효과적일수있었으나동시에구조적인불안정성도엄존했다.강대국간세력변화나세력전이는필연적으로곤혹스런선택을강제하기때문이다.더욱이선택을둘러싸고늘국론은분열되고,그로인해기본역량조차발휘하지못했다.대개보수적인선택으로인해한반도는신흥강대국의일차적침략대상이되어버리고말았다.이러한패턴은-아직일본이동아시아질서를바꿀정도에이르지못했던-임진왜란시기보다극단적인형태로병자호란에서한국전쟁까지유사하게반복되었다.
그러하여저자는대외적으로공유될수있는역량을확장하자고말한다.이는하나의주어진동맹이아니라자신의역량과공유된가치를바탕으로다수의지원세력을확보하는것이다.최근확대되고있는미중간의패권경쟁상황에서양자택일은역사의악순환을반복하는것일뿐,궁극적대안이아니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