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 그리고 말: 대화편 (양장본 Hardcover)

시간과 공간 그리고 말: 대화편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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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오래전 강단에선 벗어났으나 아직 노장(老壯)의 뒤뜰에 머물며 남아 있는 마지막 미망을 소각 중인 철학자 송항룡의 대화체 철학소설.
장자와 혜시, 무하공과 맹랑자, 우화 단편들 속 여러 동물들이 제 목소리를 지닌 상상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동양철학의 문제적 화두들인 ‘시간’과 ‘공간’ 그리고 ‘언어’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 나누는 현장을 극화했다. 저자는 이 색다른 서사 방식을 통해 동양의 시공간론과 존재론 그리고 인식론과 언어철학에 관한 자신만의 사유를 풀어나간다. 그의 페르소나처럼 느껴지는 맹랑자의 발언인 ‘맹랑지언(孟浪之言)’ 속엔 가끔 인간과 삶에 관한 간단치 않은 통찰이 담겨 있다.
‘하나님과 진리’, ‘동양의 우주론’, ‘한국의 풍류’라는 주제로 부록에 마저 모아둔 세 편의 에세이는 본편 대화의 행간을 채우는 보론이다. “철학을 한다고 살아온 사람이 뒤늦게 가져보는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는 ‘진리’라는 대목에선 그의 철학적 허무주의가 도달할 종막을 가늠해볼 수 있다.
성균관대학교출판부가 펴내는 만들어진 이야기, 상상서사(想像敍事)의 세 번째 책이다.
저자

송항룡

경기도가평군산촌에서살고있는필자는1938년평안북도박천에서태어났다.해방되던해경상북도풍기로내려와소년시절을서당에서보내다가6.25때서울로올라왔다.성균관대학교에서동양철학을전공하여철학박사가된후,단국대학교교수를거쳐성균관대학교에서정년을맞았다.현재성균관대학교명예교수다.동양철학연구회장,도가철학회장등을역임했다.
지은책으로『한국도교철학사』,『동양인의철학적사고와그삶의세계』,『장자의사유와수필세계』,『맹랑선생전』,『남화원의향연-이야기장자철학』,『시간과공간그리고지금바로여기』,『노자가부른노래』,『노자를이렇게읽었다』『맹랑선생,그는광대였다』등이있다.

목차

작가의말

서곡


〈제1부혜시와장자의대화〉
물고기의즐거움
원숭이와저공


〈제2부무하공과맹랑자의대화1〉
시간과공간
말의의미와사실성
나이

〈제3부무하공과맹랑자의대화2〉
우주의그림과시ㆍ공간
우주의근원
너무큰수렁
-블랙홀과무-

〈제4부동물의대화〉
기와현과뱀과바람그리고눈과마음
오리와학의대화
하루살이와거북이의대화
하루살이와모기의대화

〈부록〉
테레사수녀와하나님그리고철학하는사람과진리
-하나님과진리-
고대동양철인들이생각한우주론
-동양우주론과블랙홀-
한국사상과풍류
-노래와춤-

출판사 서평

‘물(物)’과‘박(樸)’의언어적변주

시간과공간그리고말(언어).제목으로꼽아놓은세소재가운데서도‘말’은중추역할을맡는핵심키워드다.대화편본장이시작되기전서막에서저자는이렇게운을뗀다.“말은존재의옷이다.존재가입고있는옷이말이다.”누군가에의해“존재의집”에빗대지던무거운언표가아니라,말은차라리세상모든존재자들의피부에맞닿는옷이다.우리가‘주식의’라하지않고‘의식주’라하듯,문명속인간에게먼저긴요한것이다.
저자는여기에그러한“옷을입고우리앞에마주서는‘존재자’”인물(物)과그러한“옷을입지않고발가벗은몸으로있는‘존재’그자체”인박(樸)얘기를세운다.우리에게익숙한철학적표현으로구분해보자면,물은인식대상으로또는관찰대상으로마주서는모든존재현상을말하고,박은무물(無物)이자무명(無名)으로서자연(自然)또는실상(實相)이라할수있다.
사실이책은이‘물과박’이란토대위에서벌어지는‘말’의향연이다.책에소환된다양한인물/동물상은물과박이만들어낼변증적서사에하나의입장을대변하기위해동원되었다.입장다른이들의대화란게때론입씨름처럼,때론말장난처럼보이지만,정작은‘존재자와존재’,‘개념/물상과실상’,‘형식과실재’,‘유와무/일’등의문제를놓고그간동양철학이벌여온담론사의등줄기를관통해버린다.문명속인간이벗어버릴수없는‘말’로써화제들이풀려나오기시작하면,누군가는집착하지만누군가는폭로하고,누군가는통찰하지만누군가는초월하는셈이다.허구의형식을택한이철학이야기는이렇게박진감을만들어내고있다.

얼개와속

크게보면저자는,소설은,물(物)의허상과한계를고발하고그속박을벗겨내려는입장에서있다.그러고나면남는-드러나는-것은박(樸)의실상.다음은그속내가간취되는누군가의대사들이다.

“언어는동일성,보편성,불변성의기반위에서만그기능을가질수있네.우리는그것을의미라고하고개념이라고하지.개념은많은다른것중에서동일성을잡아내는것을말하는것이아닌가?그러므로개념은아무런개별적구체성을드러내지못하네.그러한개념이바로인식내용이아니겠는가?그러니까인식상에서는동일성이가능하다는것이네.그러나그것이사실의세계는아니네.역은바로이러한인식세계와사실세계를혼동하지말라는것이네.노자,장자철학의핵심은바로여기에있고,불교도그것은마찬가지라고할수있네.이들철학에서시간과공간이문제가되고언어가문제가되고있는까닭이그때문이라고생각하네.그모든것이결국앎의지평을열어가는데있는것이라고할수있지.”(본문87~88쪽)

그러나시간과공간은실재하는것이아니요,사물만이실재하는것이다.바로이점이시간과공간은시계와잣대의눈금위에있는것이아니라사물에있다고하는것이다.그러나그실재하지않는시간과공간이존재자를설명함으로써우리가마주서는사물에내용을가지게하는것이다.바로이것이동양철인들이생각하는시간과공간이다.(본문248쪽)

“그존재형식을벗어나있는존재를실상이라한다는것이네.태초에무가있었다는무가그실상이요,그무는비유비무(非有非無)로존재하는유무미분(有無未分)의일(一)을말한다네.그일이무요,무가실상이라네.그실상을우주의근원이라고할수있네.시간과공간으로나뉘기전시ㆍ공간미분의자리에있는존재가우주의근원이요,무가바로그러한존재요,우주의근원이라는것이네.우주의근원은곧만물의근원이기도하네.”(본문154쪽)

“옳은말이야.사람들은세상의모든것을크고작고길고짧은것으로만보고있지.그래서긴것을자르고짧은것은이으려는억지생각을만들어내고있어.그것은뱁새의말대로사물을사물로보지못하고모든것을수치로만보고있기때문이지.수치는동일하게만들수있지만,사물은그렇게있을수가없는것이거든.사물은모두다르게있다는것을모르고있는거야.이세상에같은것으로있는것은하나도없지.그것을같게하려는것은억지야.멍청이들이나하는짓이지.사람들이그런멍청이들이거든.”(본문184쪽)

장자와맹랑자라는대표적인등장인물들의입을빌려,저자는숫자로표상되는개념세계속에서만유지될뿐인동일성이론의허상을고발하고(제1부),존재형식일뿐인시간과공간이잣대위에구획해놓는세계와그에구속된인간인식의한계넘어(제2부),태초의무이자하나인세계의우주론에다가서려한다(제3부).있는그대로의자연스러움따라자신을상대에견주지않으면서,종내스스로에게진정필요한삶을사는차원에대한알레고리는동물들의대화형식을취한마지막대화편에놓인다(제4부).여기까지가닿으면,단하루를사는하루살이삶에도한낱실존주의가수습할수없는생에대한통찰이담겨있음을알게되는것이다.

정말중요한것

『남화원의향연』,『맹랑선생,그는광대였다』처럼허구세계안에서만문제의식들이재구성되었던전작들과달리,이번책끝에는익숙한화법의소논문세편이부록으로실려있다.
신과하나님얘기까지소환해낸첫번째꼭지는학자로서마지막미망을소각중인한노교수의고백록으로읽힌다.다른글에서그가여러번되뇌던문장-“모든이론은회색이요,빛나는생활의나무만이초록일세”-은이번에도맨끝에경구처럼달려있다.두번째는‘태초와무’,‘지금바로여기’,‘존재현전의실재’를거느리는동양의우주론을서양의그것에비추어보는꼭지다.그가보건대동양의우주론은서양의그것처럼시종(始終,탄생과종말)을문제삼는게아니라실상과물상의관계를밝히는데그본질이놓인다.언뜻엉뚱하다싶은마지막꼭지는‘한국인’과‘풍류’를다룬다.그는우리네풍류를‘삶의멋’이라정의하는데,여기엔한국인만의남다른현세관에서비롯된생의찬미가내장되어있다.제4부마지막대화편의동물들의우화를위한보조적사색으로읽어보면어떨까싶다.